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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다, 당신이군요. 최초의 프로그래머 - 컴퓨터 탄생을 둘러싼 기이하고 놀라운 이야기
시드니 파두아 지음, 홍승효 옮김 / 곰출판 / 201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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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이노베이터》에서 과학기술의 혁신은 뛰어난 혁신가 한 사람이 아니라 협업의 결과물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디지털 시대의 가장 진정한 창조성은 예술과 과학의 연결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인간-기계의 공생 시대에 인문과 과학의 융합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암 투병 중 마지막으로 제품 발표회에 나선 것은 2011년 아이패드2 출시 때였다. 당시 잡스는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결과를 낳은 것은 인문학과 결합된 테크놀로지라는 사실이 애플의 DNA에 박혀 있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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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쪽에서 보자면 예술과 과학의 결합을 체현한 대표적인 인물 중에 시인 바이런의 딸, 에이다 러브레이스(1815~1852)가 있었다.
에이다가 찰스 배비지(1791-1871)를 처음 만난 것은 1833년 6월 5일 수요일이었다. 당시 배비지는 매주 커다란 저택에서 손님 수백 명을 초대해 파티를 열곤 했다. 당일 그는 손님들에게 자신이 만든 ‘차분 기관’(Difference Engine)을 보여주었다. 배비지의 차분 기관은 다항 방정식을 풀 수 있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에이다는 여기에 깊이 매혹되었다. 에이다의 통찰력이 번쩍 뜨이는 순간이었다. 당시 배비지는 마흔둘, 에이다는 열여덟이었다. 그들은 평생 가까운 친구로 지냈다.
애니메이터 시드니 파두아는 컴퓨터 개발의 역사를 연 두 사람, 에이다와 배비지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렸다. 흥미로운 캐릭터, 풍부한 자료와 방대한 주석 덕분에 에이다는 오늘날 재탄생했다.
월터 아이작슨은 컴퓨터 혁명의 연대기는 에이다가 메나브레의 해석기관에 대한 논문에 주석을 발표한 1843년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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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묘사한 에이다(왼쪽)와 배비지
1840년 배비지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 해석기관에 대해 강연을 펼쳤다. 공학자 루이지 메나브레는 2년 후 한 프랑스 학술지에 강의에 대한 요약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배비지의 강의를 꽤 깔끔하게 글로 옮기고 기관의 기본 구조를 약술한 기록이었다.
에이다는 이 논문을 번역하면서 7개의 각주를 덧붙였다. 주석에는 현대의 컴퓨터 조작과 관련된 여러 발상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최초 버전을 담고 있었다. 가령 루프, 조건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분리, 범용 컴퓨터의 개념 등이 언급돼 있다. 이처럼 거의 완전한 컴퓨터 프로그램에 관한 논문은 에이다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에이다는 저자가 제목에 단대로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불린다. 배비지는 한 편지에서 에이다를 “과학의 가장 추상적인 분야에 마술을 거는 마법사”이자 “활기찬 요정”이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이 논문은 에이다의 마지막 논문이 됐다. 그녀는 1852년 서른여섯의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다. 아버지 바이런과는 생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지만, 죽어서는 나란히 묻혔다. 에이다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간통 사실을 남편에게 고백했다. 남편은 이후 그녀 곁을 떠났다. 그녀의 유품은 남김없이 처리됐다. 후속 연구에 대한 논문이 있었다면 같은 운명을 맞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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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uter History Museum(캘리포니아 마운틴뷰 소재)에서 시연된 차분 기관
두 사람은 해석 기관(Analytical Engine)을 만들고자 했으나 결코 완성하지 못했다. 차분 기관 역시 당시에는 일부만 작동했고, 배비지가 설계한 대로 완전히 구축된 것은 2000년에 와서야 가능했다. 현대식 컴퓨터의 기능을 모두 갖춘 최초의 컴퓨터는 1945년 11월에 완성된 ENIAC이다.
한편 빅토리아 여왕이 차분 기관의 시연을 지켜보고 한 말이 있다. “짐은 즐겁지 않소.” 빅토리아 여왕은 에이다와 공통점이 좀 있었지만 둘은 서로 잘 지내지 못했다. 관심사가 달랐던 것이다.
에이다는 아버지 쪽에서 시적 기질을 물려받았고, 어머니 쪽에서 수학적 기질이 나왔다. 이 때문에 그녀는 ‘시적인 과학’의 면모를 잘 보여주었다. 아버지 바이런은 기계 방직기를 부순 러다이트를 옹호했지만, 에이다는 천공 카드가 그런 방직기에 아름다운 무늬를 짜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을 사랑했으며,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이런 경이로운 결함이 컴퓨터에서도 표현될 수 있다고 상상했다.
*1890년 미국의 허먼 홀러리스가 천공 카드 기계를 만들었고, 이는 1911년 설립된 IBM의 모태가 됐다.
이 책은 스물 넷의 나이 차를 초월하여 우정을 나눈 에이다와 배비지를 완벽하게 재현했다. 보는 만화와 읽는 재미, 둘의 장점을 멋지게 살린 대작이다. 저자의 열정과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