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는 책마다 절판 혹은 품절인 게 대부분. 하지만 나는 2006년에도 꿋꿋하게 찾아 읽겠다!


13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앰 아이 블루?
마리온 데인 바우어 외 12인 지음, 조응주 옮김 / 낭기열라 / 2005년 10월
8,500원 → 7,650원(10%할인) / 마일리지 420원(5% 적립)
2006년 04월 22일에 저장
구판절판
모나리자 신드롬- 여성처럼 느끼는 남성, 남성처럼 느끼는 여성
레온 카플란 지음, 박영구 옮김 / 자작나무(송학) / 2002년 6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18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05년 05월 01일에 저장

가니메데스 유괴- 도미니크 페르낭데즈가 본 서양의 동성애문화
도미니크 페르낭데즈 지음, 김병욱 옮김 / 수수꽃다리 / 2004년 5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05년 01월 12일에 저장
품절
샀음.
동성애의 심리학
윤가현 지음 / 학지사 / 1997년 11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18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05년 01월 1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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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게 글을 쓴 건 참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나요? ^ ^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도표를 분석하는 투로, 그는 말했다.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나는 그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뭔가 말을 해야만 했다. 괴로워. 그런 차가운 얼굴로 보지 말고, 그런 말은 하지 말고, 내가 괴로울 때 늘 그랬듯이 어깨를 안아주면 안 될까.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말해야만 했다. 뭐라도 하지 않고는 두 발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내 속이 빙글빙글 끓고 있는 것 같았다.

  "때리고 싶어."

  알 수 없는 감정이었기에, 때리면 나아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럼 때려.”
  “안경 벗어.”

  미친 생각이었다. 나는 손을 들어올릴 수조차 없었다.

  “...한번도 누구 때려본 적 없어서 못 하겠어.”
  “넌 그런 점이 제일 무서워.” 그는 말했다.

  이 순간을 다시 돌릴 수만 있다면.

  손이 아팠다. 나아지기는커녕, 손이 너무 아팠다.

  “더 할 말 없어? 이제 가도 되지?”

  그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내려와 뒤도 안 보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

 

  “이야기, 하고 왔어.”

  친구는 나를 꼭 안았다. 나는, 내가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어째서인지 서 있기가 힘이 들어서 친구에게 안긴 채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친구는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교실에 들어가서는 엎드린 채 있었다. 내가 그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지금은 알 길이 없다. 수업 종이 울렸다. 수업, 듣고 싶지 않았다.

  “나, 양호실 갈게.”

  짧게 말하고 교실을 나섰다. 수업 시간에 양호실에 가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양호 선생님을 자주 뵈는 편도 아니어서, 왠지 긴장되는 대면이었다.

  “선생님, 한 시간 쉬어도 될까요.”
  “어디가 안 좋니?”

  많이 안 좋아요.

  “머리가 아파요.”
  “머리? 열이 있나?”
  “아뇨, 그건 아니고- 그냥 좀 어지러워서요.”
  “아무나 재워줄 순 없는데-”

  제발.
  “속도 안 좋고요.”
  “어떻게 안 좋은데?”

  못 하겠다. 혼자 있기만 하면 되니까 다른 데를 찾아보자.

  “그러니까- 아니, 그냥 수업 들으러 갈...”

  어째서일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상하리만치 단 한 방울 나지 않았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아마, 입을 다물어서 꼭 잠가두었던 것이 입이 열리면서 한꺼번에 쏟아진 것일 게다. 선생님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뭐 충격받은 일 있니?”

  ‘충격’. 그래, 그렇게 부르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진정하고- 들어가서 쉬어라.”

  감사합니다, 그만큼만 물어 주셔서- 침대방에는 이미 누군가 잠을 자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조심스레 두 번째 침대에 몸을 뉘이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끅끅거리며 소리를 낮춰서 한참을 울었다. 몇 분간의 일이 지난 1년보다도 더 긴 것처럼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

 

  자습 시간에, 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친구에게 전화했다.
  “어디 있는지 알아?”
  “아니, 그건 모르고- 지금 괜찮으면 좀 올라와. 이야기 좀 하자.”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두운 자치회실에서 그는 또 다시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접자. 그냥 친구로 돌아가는 거야.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안고 싶어.”
  “안 돼.”
  “상관 없어.”

  막무가내로 목을 끌어안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어깨를 토닥이기 시작했다. 나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내 머리 위에서 또 하나 눈물로 얼룩진 목소리가 울렸다.

  “이렇게나 약하면서 맨날 센 척만 하지.”

  그렇게 잘 알면서, 왜? 흐느끼는 소리는 더 커져갔다.

  “  … ….”

  숨이 멎을 것 같은 한 마디였다. 어째서인지 지금은 단 한 글자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조차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나에 대한 말, 그런 내용의 말이었다.

 

***

 

  울상이 되어 있는 친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충 이야기하는데, 자꾸만 말이 끊겼다. 그- 뭐더라- 하고. 아까부터 계속 그랬다. 양호실에 갔을 때부터였다. 치매라도 걸린 것처럼 있었던 일도,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지만 아픔이 목 근처에서 또아리를 튼 듯 나를 짓눌러왔다. 누워서는 온전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일어나 앉아야 했다. 숨구멍이라도 막힌 듯, 크게 심호흡을 해야만 겨우 편안해졌다. 옆에 누워있던 친구가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막았어야 했는데, 속상해, 하는 말이 드문드문 들렸다. 나도 같이 울고 싶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나는 울 수 없었다. 우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또 눈물이 나지 않았다.

 

***

 

한숨을 많이 쉬게 되었다.

 

***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았다.

  “너만 돌아보면 되잖아.”
  “왜 니가 돌아보면 안 되는데?”

 

***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일이 너무 많다. 크리스마스 날 전화는 행복한 목소리로 받아주고 싶었다. 그 때 너를 봤을 때는 달려가 안아주고 싶었다. 와 줘서 고맙다고 밝게 웃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리고...

  섭섭한 일도 많다. 왜 우리는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을까. 서로 얼굴 붉히며 화내고, 언성 높여본 적이 있었어도 좋았을 텐데. 나는 왜 나도 할 수 없는 일을 너에게 바랐을까. 왜 우리는 핀트가 어긋난 배려를 하면서 서로 상처받고 지쳐갔을까. 좀 더 감정을 드러내고 말을 했어도 좋았을 텐데.

 

***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얘는 애가 이렇게 착해가지고, 내가 싫어져도 싫다고 말도 못하고 계속 내 옆에 있지 않을까- 나도 그런 말 못 하니까, 어쩌면 우리는 계속 그런 어중간한 채로 있어야 할지도 몰라- 어쩌지, 그때가 오면 내가 먼저 말해야 하나?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그 ‘말’이 이렇게나 아플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웃고 있는 모습을 담은 기억의 조각들이 나를 가장 아프게 할 것임을.

  한 달도 더 지났는데 아픔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너무나 긴 이야기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문득 속이 상해서 글을 쓰면  기분이 나아졌던 기억이 나서 오랜만에 한 번 끼적여 본 것이다. 적어보니 참 삼류 연애소설보다 더 같잖은데(뭐 그거야 내 글솜씨 탓도 있겠지만), 여전히 너무 아프다는 게 참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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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짱 2007-12-20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날카로운 사금파리를 너무 오래 끼고 있지 않기를....

즉을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죽을 것 같으면서도 숨이 쉬어지고 그렇게 또 살아집니다.

다들 그런 사금파리 한두개씩 심장에 박고서도 잘들 살잖아요...

털짱 2007-12-20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고나서 다시 읽어보니 벌써 1년이 다되가는데 웬 뒷북인지...

明卵 2007-12-25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털짱님- ^ㅂ^! 정말 오랜만이죠-
수능 끝나고 집에서 뒹굴면서 논술 준비 하고있는 명란이에요 ㅎㅅㅎ
오랜만에 메일 확인하러 들어갔는데 댓글이 달려있다기에...

별로 뒷북은 아니에요.
마침, 저 위에 적은 날에서 1년이 다 되어가서 감상적이 되고 있던 찰나였어요... 히히.
1년- 내내 꽤나 힘들었는데- 이젠 잘 모르겠어요.
내가 왜 힘들었는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했는지- 그게 과연 있긴 했는지. ^^

털짱 2008-01-09 07:05   좋아요 0 | URL

미련이 길게 남는 상처가 결국 추억이라나 뭐라나...이히히히.

새벽 댓바람부터 주책이예요.
 

 

  "혼자서 묵묵히 소설을 읽는 인간은 집회에 모인 백 명의 인간에 필적하는 힘을 갖고 있어." (79쪽)

   우리는 서로에게 여러 가지 책과 CD와 영화를 추천하면서 '멋이 있느냐, 없느냐'는 두 가지 기준만 가지고 하나하나 선별해나갔다.
  사쿠라이는 내가 추천해준 대부분을 '멋있다'고 말해주었다. 부르스 스프링스턴, 루 리드, 지미 헨드릭스, 밥 딜런, 톰 웨이츠, 존 레논, 에릭 클립튼, 매디 워터스, 보디 가이……. 그러나 닐 영만은 사쿠라이의 취향에 맞지 않았다. (117쪽)

  "착실하게 공부하고 시험 봤는데도 자기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낙담하지 않고 헤실헤실거리는 쪽이 더 보기 흉하지. 시험이든, 가령 올림픽의 100미터 달리기든,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난.' (144쪽)

  "상관없어. 너희들이 나를 재일이라고 부르든 말든, 부르고 싶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불러. 너희들, 내가 무섭지? 어떻게든 부뉼를 하고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안심이 안 되지? 하지만 나는 인정 못 해. 나는 말이지, '사자'하고 비슷해. 사자는 자기를 사자라고 생각하지 않지. 너희들이 멋대로 이름을 붙여놓고 사자에 대해서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을 뿐이야. 그렇다고 흥에 겨워서 이름 불러가며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봐. 너희들의 경동맥에 달겨들어 콱 깨물어 죽일 테니까. 알아, 너희들이 우리를 재일이라고 부르는 한, 언제든 물려죽어야 하는 쪽이라구. 분하지 않냐구. 내 말해두는데, 나는 재일도 한국인도 몽골로이드도 아냐.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좁은 곳에다 처박지 마. 나는 나야. 아니, 난 내가 나라는 것이 싫어. 나는 내가 나라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나는 내가 나라는 것을 잊게 해주는 것을 찾아서 어디든 갈 거야. 이 나라에 그런 게 없으면, 너희들이 바라는 바대로 이 나라를 떠날 것이고, 너희들은 그렇게 할 수 없지? 너희들은 국가니 토지니 직함이니 인습이니 전통이니 문화니, 그런 것들에 평생을 얽매여 살다가 죽는 거야. 제길. 나는 처음부터 그런 것 갖고 있지 않으니까 어디든 갈 수 있어. 언제든 갈 수 있다구. 분하지? 안 분해……? ㅂ리어먹을, 내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지. 빌어먹을, 빌어먹을……." (234쪽)

  <유망기> 가이코 다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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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10-05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어 선생님이 애들에게 뭔가 생각을 좀 하게하려고 Go 영화 보여줬더니, 애들이 너무 재미없어하더라고 고민하시던데...왜 이 영화가 재미없을까요??

明卵 2006-10-05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아직 안 봤지만- 친구가 꼭 같이 보자면서 극찬을 하던데...
저는 이 책에 매료되었는데 말입니다.

2007-01-13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을산 2007-02-04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란님, 이제 3학년 되시나요?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해서 들려 보았습니다.
 

  '키즈마케팅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 대응방안'이라는 주제로 소논문을 썼다. 학교의 특성 교과 중 하나인 과제연구 때문인데- 나는 제대로 써 보고 싶었으나 능력의 한계로 짧은 논문이 아니라 긴 논술이 되어버렸다. 아래는 요약.

핵가족화와 함께 가족 당 자녀의 수는 감소하는 반면 부모들의 구매력은 크게 향상되었다. 결과적으로 어린이 한 명에게 집중되는 물질적인 지원이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현대의 어린이들은 소비 과정에 대단한 영향을 미치는 유력한 소비자로 대우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키즈마케팅은 ‘키즈시장에는 불황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효과를 보고 있다. 그러나 키즈마케팅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만만치 않다. 마케팅 업계에서는 고객으로서 어린이가 중요할뿐만 아니라, 광고가 어린이 소비자에게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소비자의 알 권리와 직결되며, 상품 선택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장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수의 시민단체들은 키즈마케팅 실무자들이 심리학의 힘까지 빌어가며 어린이들의 취약점을 이용하려고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광고가 어린이의 심리적, 신체적 발달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어린이를 대상으로 마케팅 활동을 할 때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마케팅 업계에서 어린이를 보는 시각을 비판하는 동시에 심리학의 선행 연구 자료를 토대로 키즈마케팅이 아동 사회화 및 발달 단계적 측면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현재 국내외에서 시행되고 있는 어린이 광고 관련 법률 및 규정을 알아보고 더욱 심화된 정책적 대응방안을 제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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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읽기와 입시를 연관시키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긴 하지만 <문장강화>를 읽기 시작할 때 ‘논술’, 나를 짓누르는 그 이름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걸 다 읽으면 논술이 좀 쉬워질까, 하고 말이다. 그렇다. 요즘 논술은 수학 다음으로 나를 괴롭게 하고 있다. 글쓰기를 나름 좋아하고 서재에서 페이퍼를 끼적여 본 경험도 있지만, 일정한 틀이 있는 논술은 많이 부담스럽다. 각설하고, 몇 장 읽으면서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논술이라는 한정된 영역에서만 보기에는 아까운 책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좀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문장강화>는 예상외로 읽기 쉽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태준이 쓰는 문장들이 ‘수필의 맛은 야채요리처럼 가볍고 산뜻한 데 묘미가 있다’ 하는 식으로 문학적이고 추상적이어서 따로 정리를 해야 요점이 눈에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번호까지 매겨져 있어서 읽기가 수월했다. 그리고 어떻게 찾은 건지 놀랍기만 한 풍부한 예시들 덕분에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1. 우리말의 일부, 한자어
  이 책에서는 ‘한자어’에 대한 지적이 가장 놀라웠다. 일상적으로 한자어를 그렇게 많이 접하는데도 한자어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나 자산에게도 놀랐다. 예를 들어 독서의 어감과 책읽기의 말맛은 확연히 다르다. 그렇다고 ‘독서’나 ‘어감’이 우리말이 아닌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자어도 떳떳한 우리말의 일부이다.


2. 문체의 변화
  문체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지만, 나는 적당히 오래된 맛과 한국 특유의 느낌이 두드러지는 글을 좋아한다. 이 ‘느낌’이 바로 문체의 한 부분이리라고 생각해본다. 한국인이 쓴 글인데도 일본 소설같이 단정하고 영어 번역처럼 가벼운 글이 있다. 요즘 들어 특히 그런 글들이 많아지는데, 읽고 있으면 텅 빈 껍데기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과 함께 조금 기분이 상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글의 ‘느낌’이 바뀌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문장강화>를 읽으면서 이런 흐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태준은 ‘문체란 사회적인 언어를 개인적이게 쓰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사회적인 언어’가 무섭도록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작가들도 언제까지나 과거의 조류를 따르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내 취향에 맞는 작품들 역시 그 이전의 것들과는 많이 다른, 지속적인 변화와 탐구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지금 일반적으로 쓰는 '하였다'도 '도다'나 '하니라'에 불만을 가진 누군가의 발견일 것이다. '거니와'도 고어 냄새가 나면서도, '였지만'에 단조로움을 느껴 새로 많이 쓰이는 새 맛의 토다. (<문장강화> 95쪽)
  당연하다는 듯이 쓰던 말이 예전에는 새로운 발견이라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지금은 읽어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닌 연암 박지원의 문체도 당시에는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연암은 도도한 어조로 당시의 배치를 이렇게 묘파한다. “비슷하다 함은 이미 참이 아닌데” “눈 앞의 일 속에 참된 정취 있거늘 / 어쩌자고 머나먼 옛날에서 찾는가” “사마천과 반고가 다시 살아난대도 / 사마천과 반고를 배우진 않으리라” 어설프게 고문을 본뜨지 말고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삼라만상’에 눈뜨라는 것이다. 사마천과 반고의 문장이 위대한 건 바로 그런 경지를 확보했기 때문인데, 그걸 보지 못하고 그저 베끼기에만 골몰하다니. 그들이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그들은 지금 시대에 맞는 전혀 새로운 문장을 만들지, 예전 자신들이 썼던 문장을 본뜰 리가 없다. 그건 이미 지난 시대의 문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이 천근타 말하지 말라 / 천 년 뒤엔 응당히 높을 터이니.”(<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131쪽)


3. 어휘력
  내가 독후감을 쓸 때 그 책보다도 더 많이 들춰보는 것이 있다. 바로 국어사전이다. (이제는 인터넷 사전을 이용하므로 정확히는 ‘들춰보는’ 게 아니라 ‘찾아보는’ 것이지만.)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단어도 글로 쓰려고 하면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이다. 그래도 그런 경우는 찾아볼 수라도 있어서 다행이지만, 내가 표현하고 싶은 말을 도저히 글자로 떠올릴 수 없을 때는 정말 난감하다. 대부분의 계획이 그렇듯 금방 그만두긴 했지만, 한때는 국어사전을 읽겠다는 원대한 계획도 세웠었다.
  <문장강화>의 저자 이태준과 <유혹하는 글쓰기>의 저자 스티븐 킹 두 사람 모두 어휘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생각을 같이 하고 있다. 이태준은 모파상의 말을, 스티븐 킹은 삼촌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를 강조한다. 
  모빠쌍의 말대로 유일어를 찾는 노력을 피해 아무 말로나 비슷하게 꾸려버리는 것은, 자기가 정말 쓰려던 문장은 아니요 그에 비슷한 문장으로 만족하고 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장강화> 90쪽)
 
 “그건 그래. 하지만 말이다, 스티브. 일단 여기 와봐야 또 뭐가 필요할지 알 수 있지 않겠니? 연장은 전부 다 갖고 다니는 게 좋단다. 안 그러면 뜻밖의 일이 생겼을 때 김이 빠져버리거든.” (중략) 가장 많이 쓰는 연장은 글쓰기의 원료라고 할 수 있는 낱말들이다. (<유혹하는 글쓰기> 136쪽)
  물론 나도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일단 쓸 말이 떠오르지 않으면 힘듦을 떠나서 아예 글쓰기를 시작할 수가 없다.


  <문장강화>를 통해 이태준은 말한다. 글을 쓸 때는 반드시 느껴지는 바를 적어야 하며, 개념이나 지식은 다 내버려도 좋다고 말이다. 두고두고 곱씹으며 읽을거리가 많은 책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이 말을 깊이 새기고 싶다. 그리고 늘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김 아무개나 이 아무개, 박 아무개…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말만 지껄이고 있는 게 아닌지, 맛없는 글만 쓰고 있는 게 아닌지.

 

아, 오랜만에 열심히 써 보려고 했는데, 잠이 심하게 온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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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8-28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후감을 쓸 때 국어사전을 찾아보면서 쓰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감탄*감탄!

明卵 2006-08-31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뜻을 제대로 모르니까 찾는 건데요 뭐..^^ 의외로 제가 알고 있던 뜻과 다른 경우가 많더라구요 ㅇㅅㅇ;

무지개언덕 2006-10-15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정말 모르고 있던,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우리말이 아주 많음을 알고 놀라게 될 때도 있어요.

明卵 2006-10-15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
어제 알게 된 건데 웃음을 나타내는 말들은 뜻이 참 예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