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드디어 읽었다. 프랑스 이야기일 줄 알고 잡았는데 웬 상하이...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냥 글자만 읽고 넘겼다. 배경지식을 쌓은 후 제정신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작품 리스트에 추가 되시겠다.

  "나도 전에 무심코 거울을 들여다보고 통 내 얼굴같이 보이지 않았던 적이 있었지……."
  그의 엄지손가락은 마치 추억의 가루를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오른손 손가락들을 조용히 매만지고 있었다. (57쪽)

아내가 자기를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몇 달 전부터, 메이의 얼굴을 바라보건 말건 이미 메이라는 여자를 보는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그 어떤 표정들을 포착했을 뿐……. 그들을 마치 애들처럼 서로 뭉치게 하던 그 경련적인 사랑의 도취, 삶과 죽음에 관한 그들의 공통적인 견해, 그리고 둘 사이의 육체적인 결합 등, 이 모든 것도 우리들의 눈동자가 충만하게 즐겨온 모습들을 결국은 퇴색시켜 버리는 저 숙명 앞에서는 정녕 허무할 뿐이 아닌가! (63쪽)

사물도, 행위조차도 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 모든 것은 한갓 꿈이다. 우리가 이 꿈에 힘들 주기 때문에 그 꿈이 우리를 억누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꿈이기에 그것을 부정할 수도 있다……. (222쪽)

  그 순간 그들은 죽음이 갈라놓은 것 이상으로 서로 동떨어져 있었다. 그 눈이며 입이며 관자놀이……, 애무를 받아온 그 모든 자리가 마치 죽은 여자의 그것처럼 보였다. 저 두드러진 광대뼈며 긴 눈까풀도 지금은 오직 낯선 딴 세상의 것일 뿐. 가장 깊은 사랑의 상처는 가장 격렬한 증오를 낳게 마련이다. (258쪽) [에서 261쪽까지 장면]

자기 운명이 얼마나 일반 사람들에게는 무관심한 것인가를, 그리고 자기 운명은 오로지 자기에게만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3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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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숙제를 해낸 기분이다. 다 읽었다고 해서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읽어냈다는 데 의의를 둔다.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그 '괴테'도 한 시대를 살아간 인간이었고, 그도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이 이렇게 오랜 기간 (사실 세상의 역사를 보았을 때 인간의 역사란 미미한 것이라 하더라도) 예술을 공유하며 생존해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메게라 : 아무도 소망하던 것을 품안에 간직할 수 없어요.
                최상의 행복이라도 곧 익숙해지면,
                어리석게도 더 탐나는 걸 그리워합니다.
                태양을 등지고 서리로 몸을 녹이려는 격이지요. (48쪽)

주석 33) das Schaudern. 괴테는 신비로운 것에 대한 놀라움이 인간의 가장 귀한 소질이라고 보았고, 무관심이 아니라 이런 놀라움에 의해 가치있는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애커만과의 대화에서도 <인간이 도달할 수 잇는 최고의 경지가 바로 놀라움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89쪽)

메피스토펠레스 : 누구나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는 법,
                               정들어 살던 곳이 천국이지. (178쪽)

파우스트 : 부유한 가운데 결핍을 느낀다는 건
                    우리의 고통 중에 가장 혹독한 것이다.
                    저 종소리와 보리수 향기
                    교회와 무덤 속인 양 나를 휩싸는구나.
                    더없이 강력한 의지의 선택도
                    이 모래에 부딪히면 산산이 부서진다.
                    어찌하면 마음속에서 몰아낼 수 있으랴!
                    저 종소리 울리면 미칠 것만 같구나. (349쪽)

근심 : 누구든 내게 한번 붙잡히면,
            온 세상이 쓸모 없게 되지요.
            영원한 어둠이 내리덮여서
            해는 뜨지도 지지도 않고,
            외부의 감각이 완전하다 해도
            내부엔 어둠이 자리잡게 됩니다.
            온갖 보화 중 어느 것 하나도
            제것으로 소유할 수 없어요.
            행복도 불행도 시름이 되어
            풍족한 속에서도 굶주리게 되지요.
            환희든 고뇌든 간에
            다음날로 밀어젖히고,
            그저 앞날만을 고대할 뿐
            결코 아무것도 이루질 못해요. (358쪽)


(루카 조르다노 - 다이아나와 엔디미온)
귀부인 : 엔디미언과 루나를 그려논 것 같아요!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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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은 처음 읽어보는데, 참 자유로워서 좋았다. 해석따위 적혀 있지 않아서 '공부'해야 한다는 짐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시를 '공부'하다가 해석을 납득할 수 없어서 선생님께 여쭤보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네 생각도 맞구나."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면 답이 안 나온다는 거다. 최악이다.

  백석의 시에는 사람이 살더라. 눈이 보이고, 풍경이 보이고, 영상처럼 스쳐가는 시간들이 보인다. 어떤 짧은 순간이 주는 감동에 걷잡을 수 없이 가슴이 뛸 때가 있다. 이 순간에 나는 무엇이든 쓰고 싶어 안달하게 된다. 능력이 모자라서 아예 시작도 못하거나, 시작을 하더라도 그 느낌을 그려내듯 표현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백석의 시는 그림을 뛰어 넘어 영상을 보여준다. 무한한 순간들의 포착. 그런 걸 할 수 있는 이 사람은 참 좋겠다.

수라(修羅)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조당(澡塘)에서

나는 지나(支那)나라 사람들과 같이 목욕을 한다
무슨 은(殷)이며 상(商)이며 월(越)이며 하는 나라사람들의 후손들과 같이
한 물통 안에 들어 목욕을 한다
서로 나라가 다른 사람인데
다들 쪽 발가벗고 같이 물에 몸을 녹히고 있는 것은
대대로 조상도 서로 모르고 말도 제가끔 틀리고 먹고 입는 것도 모두 다른데
이렇게 발가들 벗고 한 물에 몸을 씻는 것은
생각하면 쓸쓸한 일이다
이 딴 나라 사람들이 모두 이마들이 번번하니 넓고 눈은 컴컴하니 흐리고
그리고 길즛한 다리에 모두 민숭민숭하니 다리털이 없는 것이
이것이 나는 왜 자꾸 슬퍼지는 것일까
그런데 저기 나무판장에 반쯤 나가 누워서
나주볕을 한없이 바라보며 혼자 무엇을 즐기는 듯한 목이 긴 사람은
도연명(陶淵明)은 저러한 사람이었을 것이고
또 여기 더운 물에 뛰어들며
무슨 물새처럼 악악 소리를 지르는 삐삐 파리한 사람은
양자(楊子)라는 사람은 아무래도 이와 같었을 것만 같다
나는 시방 옛날 진(晋)이라는 나라나 위(衛)라는 나라에 와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 같다
이리하야 어쩐지 내 마음은 갑자기 반가워지나
그러나 나는 조금 무서웁고 외로워진다
그런데 참으로 그 은(殷)이며 상(商)이며 월(越)이며 위(衛)며 진(晋)이며 하는 나라 사람들의 이 후손들은
얼마나 마음이 한가하고 게으른가
더운 물에 몸을 불키거나 때를 밀거나 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제 배꼽을 들여다보거나 남의 낯을 쳐다보거나 하는 것인데
이러면서 그 무슨 제비의 침이라는 연소탕(燕巢湯)이 맛도 있는 것과 또 어느 바루 새악씨가 곱기도 한 것 같은 것을 생각하는 것일 것인데
나는 이렇게 한가하고 게으르고 그러면서 목숨이라든가 인생이라든가 하는 것을 정말 사랑할 줄 아는
그 오래고 깊은 마음들이 참으로 좋고 우러러진다
그러나 나라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글쎄 어린 아이들도 아닌데 쪽 발가벗고 있는 것은
어쩐지 조금 우수웁기도 하다

 

팔원(八院)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妙香山行) 승합자동차(乘合自動車)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慈城)은 예서 삼백오십리(三百五十里) 묘향산(妙香山) 백오십리(百五十里)
묘향산(妙香山)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쌔하얗게 얼은 자동차(自動車)유리창 밖에
내지인(內地人) 주재소장(駐在所長)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텅 비인 차(車)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內地人) 주재소장(駐在所長)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삼호(三湖)

문기슭에 바다해자를 까꾸로 붙인 집
산듯한 청삿자리 위에서 찌륵찌륵
우는 전복회를 먹어 한여름을 보낸다

이렇게 한여름을 보내면서 나는 하늑이는
물살에 나이금이 느는 꽃조개와 함께
허리도리가 굵어가는 한 사람을 연연해 한다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룻밤 뽀 오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여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어느 하룻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옛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재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 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하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굳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쇳스럽게 : 카랑카랑하게
이스라치전 : 앵두가 지천에 깔려 펼쳐져 있는 곳
쇠리쇠리한 : 눈이 부신, 눈이 시우린, 시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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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9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明卵 2006-08-21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귓속말님, 아아... 오랜만에 뵙는데- 어쩐지 조금 슬퍼서... '힘내세요', 라고 밖에는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아니, '힘냅시다'! 가 맞을지도요. ^ㅛ^!!
 

  생각보다 흥미진진하고 쉽게 읽히는 책이었다. 현실을 꿰뚫고 비꼬면서 이렇게 물흐르듯 쓸 수 있다니! 이걸 이렇게 쉽게 읽어도 되나, 내가 너무 생각이 없는 건가, 좀 고민하긴 했다. 하지만 굳이 모든 책을 심각하게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걱정을 접기로 했다.

  으르렁대지 말아라, 삽살개야! 지금 나의 영혼을
  온통 감싸고 있는 성스러운 음향에는
  짐승의 소리가 어울리지 않느니라.
  흔한 일이지만 우리 인간은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조소하고,
  때로 불편한 일이 발생하면
  착하고 아름다운 걸 봐도 곧잘 불평한다마는
  너희들 개도 인간들처럼 으르렁거리고 싶단 말이냐? (파우스트, 73쪽)

  지금껏 다른 애가 잘못을 저지르면
  난 얼마나 신이 나서 헐뜯어댔던가!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선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었지!
  남의 허물이 검게 보이면, 그 검은빛이 성에 차지 않아
  더욱 검은색을 덧칠하려 했지.
  그리곤 죄 없는 나 자신이 대견해 마냥 우쭐했는데
  이젠 나 자신이 죄인이 되었구나!
  하지만- 날 이지경으로 몰아댄 모든 것이
  아아! 마냥 즐겁고 사랑스럽기만 했으니! (마르가레테,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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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비문학 지문을 읽는데 복제 예술의 발달로 대중이 예술 수용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는 내용이 나왔다. 나는 그 글에서 이 한 줄의 문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회화에 대해 입도 벙긋 못하는 이들도 영화에 대해서는 저마다 한마디씩 할 줄 안다." 나는 나의 그 '한마디'가 나에게 어떤 의미를 남길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영화를 '읽고', 영화를 '텍스트화'하고 싶다. 소유욕이라고 해도 좋다. 소유에게서 도망칠 생각은 없다.

  이렇게 의욕이야 대단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영화를 보고 나면 늘 뭔가 생각해보고, 기록해보지만 결과물은 늘 똑같다. 그저 떠오른 이야기를 주절거려 놓은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것도 틀에 박힌 내용과 고리타분한 사고의 결과물 정도다. 다시 읽어보면 한숨만 나오는 멍청한 기록들을 그래도 계속 해나가는 것은 그게 없으면 그나마 영화를 본 기억마저 스러지고 말기 때문이다. 써놓지 않으면 꿈이 흔적도 없이 날아가버리는 것처럼, 영화도 금방 나를 떠나고, 나에게는 흐릿한 느낌과 한 문장만큼의 지식만 남는다. 누군가 나에게 그 영화가 어땠느냐고 물어보면 "아, 괜찮은 작품이었어"라고 말할 만큼의 지식말이다. '영화 한 편'에서 '영화'보다 '하나'라는 숫자가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아, 괜찮은 작품이었어"는 내가 그 영화를 봤다는 것의 과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계속되는 망각과, 단조로운 기록과, 그보다 더 단조로운 나의 대답이 싫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좋았다. 내가 늘 동경했지만 하지 못한 일이기에 좋았다. 영화와 철학을 연결시키려 했다는 것도 좋았다. 이 책은 마치 나의 동경을 집대성해놓은 것 같다.  번역투 문장은 그 좋아하는 마음으로 눈감고 넘어가기로 했다.

어쨌든 영화와 사귀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사귐은 영화를 작품work이 아닌 텍스트text로 만난다는 것을 뜻한다. 롤랑 바르트는 작품과 텍스트를 구분했다. 작품에서는 오직 작가의 뜻을 읽어낼 뿐이지만, 텍스트에서는 우리가 뜻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작품은 닫혀 있으나 텍스트는 열려 있다. 작품은 때로 고통을 안기지만 텍스트는 언제나 즐거움을 준다. (6쪽)

그런데 한 사람에 대해 내리는 이 총체적 판단이 어처구니없이 단순한 사실들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동사서독> 53쪽)

그러나 그 상황이 어떤 것이든 진짜 인간의 기준은 변함없는 것이니, 우리는 그런 기준으로 가짜 인간과 진짜 인간을 구분한다. 그것은 선택, 믿음, 사랑을 통해 자신을 어떤 존재로 만들어가며 실존하는 대자존재다. (<매트릭스> 81쪽)
⇒ <가타카>의 세계 또한 '선택'이 사라진 미래 사회를 다루고 있다. <아일랜드>의 도너들 또한 그런 세계 속에 살아간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은 다른 이들과 달리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였다. 왜 주인공은 언제나 살아 남을까? 왜 주인공은 언제나 성공할까? 반복되는 주인공 지상주의를 보면서 늘 드는 의문이었다. 우리가 아직 인간이길 바라기 때문이었나 보다. 다른 어떤 존재에게 세계를 바꿀 권리(아주 이기적인 생각이지만)를 넘겨주고 싶지 않아서였나 보다. 이런 점에서 는 특이한 영화다. 인간의 선택 의지에 앞서는 더 중요한 가치, 사랑을 부각하기 위해 인간만이 아니라 기계 또한 행복할 수 있는 결말을 준비했으니 말이다. 단, 그 결말이 인간의 세계가 종말을 맞아 '선택'이 사라진 뒤의 일이긴 하지만.

인생에는 모험 끝에 얻게 되는 보물 같은 것은 없다. 그 편력의 험난한 과정에서 다채롭고 풍요해지며 아름다워지는 삶밖에는.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 288쪽)

그렇다. 사랑은 휴대전화를 눌러대거나 기도하거나 마술을 부리는 게 아니다. 상대를 위해 지금 당장 행동하는 것이다. (<오아시스> 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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