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랑>을 읽고 있자니, 처음에 찾아온 것은 그저 분노 뿐이었다. 일본이 조선땅을 서서히 조아오는 모습이나, 그보다 더 미운 관리들의 행패는 내 속을 까맣게 태웠고, 이리 서러워서 어찌 마지막을 볼 수 있을까가 걱정이었다. 하지만 3권을 덮으며 나는 내가 품은 마음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소설이 그저 일본이 우리를 이렇게 침략했더랬지, 라는 말만을 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는 그런 암담한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있고, 그 인간사에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지고지순함과 정이 녹아있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형태있는 것이 헛것과 다르지 아니하며, 헛것이 형태있는 것과 다르지 아니하니라. 형태있는 것이 곧 헛것이요, 헛것이 곧 형태있는 것이니라. 언제 들어도 알듯 말듯 한 그 심오한 의미는 반야심경의 핵이었고, 그 응축된 구절은 반야심경을 불경 중의 불경으로 드높게 세우고 있었고, 그 난해하고도 오묘한 뜻은 꺠달은 자 석가모니의 지고한 진리의 정점인 동시에 불교가 푸는 우주만상에 얽힌 수수께끼의 열쇠였다. 우주만상의 수수께기를 푸는 열쇠라서 그러는 것인가…… 그 구절은 그대로 더할 수 없이 간결하고도 담담한 조사였고 그리고 명료하면서도 간단한 죽음에 대한 설파였다. 사람이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헛것이 형태를 지어 일시에 머무는 것이요, 그 형태가 다시 흩어져 헛것으로 돌아감이니 죽음을 너무 서러워하거나 애통해하지 말 일인 것이다…… (129~130쪽)
혼례식은 손씨가 말한 것처럼 입던 옷 빨아입고 찬물을 떠놓고 올리는 눈물나는 것이 아니었다. 신랑 신부가 호화로운 예복은 입지 못했을망정 말끔하게 새옷을 차려입었고, 혼례상에도 청실 홍실까지 갖출 것은 거의 갖추어져 있었다.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딸 가진 부모답게 손씨네가 여러 해에 걸쳐서 준비를 해온 덕이었다. 공허는 예식에 따라 혼례식을 진행시킨 다음 목탁없는 독경으로 두 사람의 백년가약을 축원했다. 공허는 지성으로 독경을 하면서 마음 뿌듯한 보람을 느끼는 동시에 어느 때 없이 허전함이 밀려드는 것도 느꼈다. 이상하게도 자신은 혼자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사무쳤던 것이다. 공허는 술이 거나하게 취해 천수동과 강기주네 가족들과 산등성이를 넘고 있었다. 뒤처져 걷던 공허는 산등성이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맑은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올려다 보았다. 바쁘게 보낸 며칠이 그렇게 보람스러울 수가 없었다. 세월은 험해도 사람은 이렇게 가지치며 살아내는 것이라 싶었다. (2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