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엄마와 자주 전시장에 갔었다. 그림들을 보는 건 재미있었지만, 엄마가 그림 앞에 서서 한참이나 요리 봤다 조리 봤다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아무리 봐도 똑같은 그림일 뿐인데, 엄마는 몇 번이고 그림을 음미했다. 가까이서 보다가, 뒤에서 보다가……. 그런 엄마의 모습이 참 멋져 보여서, 언제부턴가 엄마를 따라해 보았었다. 느껴지는 건 별로 없지만 한 그림에서 많은 의미를―주로 외적으로 드러난 특이한 점들에서― 찾으려고 노력하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런 식으로 쌓아와서인지, 이제는 어릴 때보다는 좀 더 진득하게 작품을 감상할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훈련'은 서양화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한국의 미(美)'라. 나는 한국의 미에 대해 뭘 알고 있을까? 호주에 갔을 때 홈스테이 가족에게 선물로 한국화 엽서를 줬는데, 집에서 엄마의 설명을 듣고 갔음에도 그 그림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했다. 외적인 묘사를 할 수는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무동>을 보면서 아이가 춤을 추고 있고, 빙 둘러싸고 연주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전통 악기들이라는 것 정도만 말해줬다고 하면 될까? 그건 그림을 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 그림을 보고 있었지만 제대로 '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그때의 어리석은 그림 보기가 더욱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병색까지 알아볼 수 있는 '진실된' 초상화들, 한 올 한 올 그린 털이 몸의 흐름을 따라 움직일 것 같은 호랑이 그림, 깊은 의미를 가진 생일 화첩……. 이렇게나 은은하면서도 강직하고, 여유로우면서도 깊은 맛을 가진 한국의 미를 외면해왔다는 것은 얼마나 통탄할 일인지. 우리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 반성은, 많은 것을 너무 쉽게 해치워버리는 현대인에 대한 반성이라고 해도 좋겠다.

  흔히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말한다. 나도 전통 공연을 볼 때면 '아아, 참 한국적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적인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안 적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그저 느낌에 의존한 반응, 얄팍한 애국심에 기댄 반응이었던 게 아닐까. 공연은 분명 훌륭했겠지만, 내가 그 공연 속에 새겨진 역사와 의미를 제대로 알았다면 더 잘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책 한 권 읽었다고 그림 보는 눈이 많이 자라진 않았겠지만, 우리의 미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을 대하는 시선 자체가 상당히 달라진 느낌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고? 그래, 맞는 말이다.

●이 책에서 내 눈길을 앗아간 것은 김홍도의 <무동>이다.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춤추는 아이에게는 작가가 경탄할 만한 뭔가가 있다. 아무렇게나 휘감기는 옷자락하며, 그 색깔하며……. 그런데, 작가는 <무동>이 우상→좌하로 보는 작품이라 서양에서처럼 좌상→우하로 보면 정작 중요한 아이를 비껴가게 된다고 했지만, 그런 시선에 관계없이 내 눈에는 언제나 아이가 먼저 들어온다. 옆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춤에 빠져든 아이의 모습은 얼마나 흥겨운가! 마치, 콘서트에 갔을 때 밴드보다는 가수를 보는 것과 같은 이치로, 나는 언제나 관객이 되어 아이를 보고, 또 보았다.

103p. 먼 산에는 나무가 없고, 먼 강에는 물결치지 않고,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게는 눈이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아, 기분 좋다!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 (글쎄; 시험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건가...)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만두 2005-09-14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날개 2005-09-14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아~~!+.+ 정말 잘하시는군요..!

부리 2005-09-14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60점이면 정말 잘하는 거 아닙니까? 전 600 넘을 자신도 없는데.... 조금 더하시면 900점도 넘겠어요!

어룸 2005-09-15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우와우와우와!! 역시 울이쁜명란님~!!! >ㅂ<)b

明卵 2005-10-15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히 감사합니다~^ㅂ^
 

  박지원에 대해 관심도 없고, 역사적인 내용도 아는 바가 없는 나는 이 책이 참 버거웠다. 소백온의 <문견록> 이나 여씨의 <가숙기> 등에서 고인의 자잘한 일들까지 기록한 것을 본떠 저술하였다고 하는데, 과연 연암의 행적들 중 소소한 것까지 모두 쓰여 있었다. 근엄한 글보다는 나은지 모르지만 고인을 기억하려고 책을 읽은 게 아닌 나로서는 읽기가 힘들 수밖에. 그래도 교과서에 등장하는 과거의 인물이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작은 일들까지 들춰보는 것이 재미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내 눈을 끈 것은 ‘글’에 대한 박지원의 태도였다. 문장가였던 연암에 대한 글이라서인지 글쓰기에 대한 태도가 많이 보였는데, 연암의 기개와 고고한 인품 같은 것보다도 더 와 닿는 말이 많았다. 특히, 요즘 내가 고민해 마지않는 글읽기와 글쓰기에 대해, 그는 확고한 신념이 있는 사람이었다.

  “자네들이 책을 읽는 데에 부지런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글의 뜻과 이치에 깊이 파고들지 못하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닐세. 평소 과거시험의 글을 익히던 버릇이 종이와 입에서 떠나지 않고 있어. 그것을 벗어나 사색하지 않기 때문이지. 자네들이 진실로 나를 따라 배우고자 한다면 마땅히 하나의 과정을 정하도록 하게. 그리하여 매일 경서 한 장과 주자의 강목 한 단을 빨리 읽거나 외우려하지 말고, 자세히 음미하고 정밀하게 생각하여 토론, 분변함이 좋겠어”(41, 42쪽)

  빨리 읽거나 외우려하지 말고, 라. 뜨끔했다. 요즘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글 읽는 속도를 빠르게 하고 책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인데. 책을 읽는 이유와 방식이 사람마다 다른 것은 당연하고, 어떤 이유로 읽더라도 부끄러울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박지원에 대한 책 또한 그런 목적으로 손에 쥔 것이 부끄러워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연암은 책 읽는 속도가 느렸다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와 연암은 큰 차이가 있다. 그는 위와 같이 자세하게, 사색하며 글을 읽었기에 느렸으나 나는 단순히 읽는 속도가 느린 것일 뿐 내용을 아는 것 이상의 발전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시험을 치면 문제는 풀 수 있지만 말은 한 마디도 못 하는 전형적인 바보가 되는 게 아닌가.

  이런저런 대단한 일을 했다고 내세우는 것보다 작은 사건들을 알게 함으로써 고인을 기억한다는 이 책의 취지는, 나에게 과거에 대한 자각을 불러 일으켰다. 역사 속에 남은 그의 이름의 곁에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한반도와 이 세계의 과거에 대한 신뢰감이 갑자기 높아진 것 같은 느낌이다. 그전까지 알던 ‘역사’가 그저 기술된 자료에 불과했다면, <나의 아버지 박지원>을 통해 그 속에 있는 사람들과 시간에 대해 실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박지원의, 인간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글에 대해 몇 마디 더 적어보자면
  “옛을 본뜨는 사람은 그 자취에 구애됨이 병폐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법도가 없음이 폐단이다. 진실로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면서도 법도가 있다면 지금의 문장은 옛 문장과 같을 수 있을 것이다. (중략) 자구가 아름다운가 속된가 하는 것만 따지거나 한 편의 글이 고상한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것만 문제 삼는 자들은 비유컨대 마음속에 아무런 계책도 없는 용기 없는 장수와 같아서 갑자기 글제목을 대하면 우뚝 솟아 있는 견고한 성을 눈앞에 만난 것처럼 당황한다. 그러므로 글 짓는 사람의 걱정거리는 늘 스스로 길을 잃어 요령을 얻지 못하는 데 있다할 것이다.(180쪽)”

  “남을 아프게 하지도 가렵게 하지도 못하고, 구절마다 범범하고 데면데면하여 우유부단하기만 하다면 이런 글을 대체 얻다 쓰겠는가?(186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5-09-1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의 관점으로 쓴 아버지 박지원 이야기군요.
인간 박지원 참, 다정다감한 사람이었죠^^
 

 

 

 

 

머리가 아픈 관계로... 이따가 내키면 더 쓸지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룸 2005-09-11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란니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임~~~♡ 주말이로군요!! 주말이어요!! >ㅂ< 꺄아~~

明卵 2005-09-11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꺅♥ 투풀님, 이렇게 좋아해주시다니이이이ㅠㅠ!! 행복합니다 ㅎㅎ
 





에.. 이번주 정신이 좀 없었기 때문에 엉망진창^^;; 그래도 지금은 그나마 깨끗하다구요~!

 





기숙사 내 방. 혼자 쓰는 방이고, 토요일 아침에 짐 챙긴 다음 찍은 사진이라 뭔가 허전... 방학 끝나고 학교에 오니 아주 벌레 소굴이라서 주말에 방역을 실시한다고 했다. 그래서 행거에 있던 옷들을 다 쑤셔넣었다. 음.. 신문지라도 덮어주고 싶었지만 나갈 시간이 간당간당해서^^;; 게다가 미리 생각을 못 해서 신문지가 없었다. 바닥이 아주 깨끗한데, 평소에는 이렇지 않다-_-. 벌레때문에 에프킬라를 너무 많이 뿌려서, 하는 수없이 방을 닦은 것이다... 미끄덩~

 







토요일 아침, 기숙사에서 교사동으로 가는 길... 집에 가는 날이라서 모두 하나씩 트렁크를 질질 끌고 있다. 파란 쓰레기통을 들고 가는 청소당번들도 보이네. 계속 나오는 녀석은 친구^ㅂ^;; 미안하다, 우하하;;

이런 환경에서 살고 있답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RINY 2005-09-05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렁크를 끌고 등교하는 학생들이라. 저희 학교에도 기숙사반 애들 있지만, 그러고보니 걔네들은 트렁크 끌고 등교하는 모습 못 본 거 같은데, 어떻게 짐 실어 나르는걸까요? 아마 부모님들이 다 자가용으로 코앞까지 실어 날라다 주는 거 같아요.

가을산 2005-09-05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부산이라 그런지 경사가 있네요. 오르내리려면 운동 되겠네요.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이 다들 날씬한 듯.... ^^

明卵 2005-09-11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어머. 코앞까지 날라다줘도 트렁크가 없으면 불편할텐데^^ 저희 학교 교복 입고 트렁크 끌고 주말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번화가에 나가면 사람들 시선이 매우 따갑답니다. 흐흐; 반 친구 생일날, 서면에 단체로 교복패션에 트렁크 질질 끌고 나갔었거든요. "일본에서 왔나봐" "수학여행인가?" 등등, 사람들 수군거리는 소리 들려오고.. 아, 그거 참 민망하대요;

가을산님, 글쎄, 부산인 것도 있겠지만 일단 산에 있는 학교라는 게 가장 큰 이유겠죠^^; 그런데 원래 학교란 산에 있는 게 아니었답니까?! 부산의 학교들은 대부분 산에 있는데... 이 학교 학생들의 특징은, 키가 작고 상체는 그럭저럭 날씬한데 하체가 뚱뚱하다는 것이구요, 그 중에 저처럼 아래위로 고루 찐 학생도 종종 보입니다^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