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 이후로 영화를 세 번 봤다. 두 번은,


-이건 영웅담이 아니다. 내 삶을 바꾼 유쾌한 여행-


이라는 카피로 시작하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이것은 대담한 행동에 대해 부풀린 이야기도 아니며, 그저 냉소적인 이야기 따위도 아니다. 적어도 그런 짓을 말할 생각은 아니다. 그것은 일치된 열망과 비슷한 꿈을 갖고 한동안 나란히 달린 두 인생의 한 도막이다." - 에르네스토 게바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중에서


   이 영화는 게바라가 끝임없이 자기의 '길'-물론 젊은 시절 그는 그 길의 의미를 분명하게 인식하지는 않았겠지만- 을 찾아 라틴 아메리카를 주유(走遊)하며, 여행의 끝자락에선 지금껏 아무도 건너지 못한 아마존'강'을 헤엄쳐 건너 나환자들의 곁으로 가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긴 여정의 끝무렵, 게바라는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게 된다.


* 이 영화는 도서실에 <체 게바라 평전>을 빌리러 온 학생이랑 게바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날 같이 보기로 약속하고 보았다.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으면서 영화에 대해,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지난 1년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학생들이랑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나는 참 행복한 선생이다.


   오늘은 도서실에서 DVD로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이란 영화를 보았다. 도서실도 빔 프로젝터가 있고, 스피커 시설도 괜찮은 편이라서 영화를 보는데 불편하지 않다. 앞으로는 아이들이랑 자주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 영화도 예전에 극장에서 본 영화인데, 중간에 잠깐 졸아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다시 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지만, 줄거리가 금방 기억이 났고 결론을 알고 있으니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물론 뻔한 스토리지만, 처음 보면 유쾌하고 따뜻한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은 영 글쓰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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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도 갈레이노 지음, 조숙영 옮김, 르네상스, 2004


어느 가족 이야기


   니콜라스 에스코바르가 가장 좋아하는 이모가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 자택에서 매우 편안한 죽음을 맞았다. 니콜라스는 TV 앞을 떠날 줄 모르는 여섯 살 꼬마였다. 이모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니콜라스는 이렇게 물었다. "이모는 누가 죽였어?"


-124쪽



가난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낭비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조용하게 살 수도 없고, 조용함을 살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나는 법을 잊어버린 암탉의 날개처럼 걷는 법을 잊어버린 다리를 가진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쓰레기를 먹으며 마치 음식이라도 되는 양 돈을 내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마치 공기라도 되는 양 10원 한 장 내지 않고 똥을 먹을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텔레비전 채널 두 개를 놓고 하나를 택할 자유외에는 아무런 자유도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기계와 함께 열정적이고 극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항상 다수지만 항상 외로운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자신들이 가난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265쪽



농담이야 2


   모스크바를 빠져나오던 차 한 대가 산산조각이 났다. 잔해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운전자는 이렇게 신음했다.


" 내 메르세데스...... 내 메르세데스......"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선생...... 차가 무슨 소용이요? 팔 하나를 잃어버린 걸 모르시겠소?"


팔이 잘려 나간 자리를 쳐다보며, 그는 이렇게 흐느꼈다.


"내 롤렉스...... 내 롤렉스......"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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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많이 받고 살아도 되는 것일까?

   오늘 아침에 출근을 하니, 며칠 전에 있었던 체육대회 기념으로 큰 수건을 하나씩 나눠 주셨다. 게다가 지난 주에 결혼하신 선생님께서도 결혼식 답례로 수건 한 장씩 주셨다.

   이건 선물은 아니지만, 오전에는 알라딘에서 주문한 책이 오늘 내 손에 들어왔다.(신용카드로 사기 때문에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이러면 안 되는데 ^^;;) 책 목록이야 뻔하지만 그래도 한 권 한 권 뒤적이면서 요리조리 살펴도 보고 그랬다.

   거기에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선물 도착! 드디어 nrim님께서 보내신 책과 통장이 나에게도 도착했다. 책도 두 권이나 담으셨고, 예쁜 글씨로 쓴 짧은 편지. 그리고 보는 사람들의 놀라움을 자아낸 독서통장-어쩌면 이렇게 잘 만들수 있을까- 받자마자 몇몇 사람들에게 자랑하면서 혼자 뿌듯했다. (nrim님께 받은 선물 사진은 내일 올리겠습니다.)

   저녁에는 논어모임을 했는데, 또 선물을 받았다. 해콩님의 햇살이 가득한 뜨락 서재 500번째 방문 캡처에 성공해서 선물달라고 떼를 썼더니, '이아무개의 장자 산책'이라는 책을 건네 주셨다. 게다가 묵직한 의미를 담은 예쁜 책갈피까지.

   정말 오늘은 따뜻한 마음의 선물이 쏟아져서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누구에게 어떤 선물을 나누고 있는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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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2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우맘 2004-11-22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하루가 즐거우셨겠네요.^^

느티나무 2004-11-22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 맞습니다. 오늘도 도서실에 앉아 있다가 놀러온 애들이랑 수다떨면서 놀았어요. 도서실이 다 좋은데, 쬐끔 추운 거... 이게 좀 아쉽네요. ^^;; 선물 때문에 당근, 행복했구요.

2004-11-23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래언덕 2004-11-23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러워요. 선생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소굼 2004-11-23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보다 손수 쓴 편지가 더 좋지 않던가요? :)

2004-11-24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04-11-25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 주신 님, 감사합니다. 하지만, 과찬이세요. ^^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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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1-20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느티나무님, 선운사에서.. 그러시길래 드뎌 이 냥반이 날 보러 오셨군, 했어요. 가쉼만 두근거리다 말았네..X! 날 보러 와요, 날 보러 와요~ 흠흠..이거 시는 진지한데 넘 까불었나..죄송요.

느티나무 2004-11-20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하시다니요... 동백꽃이 후두둑 떨어지던 날, 선운사에 갔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좀 추웠는데... 그래도 선운사로 걸어들어가는 길과 선운사의 그 동백숲과 도솔암까지의 길이 참 예뻤지요. 손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걸었던 그 시절,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걸었던 그 길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이렇게 시를 올려 둡니다.

비로그인 2004-11-20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선운사를 기억해주시고 아껴주시기까지 하시다니요. 선운사의 풍광은 사계절이 아름다운데 특히 겨울과 가을이 인상적이었어요. 겨울엔 선운사를 지나 도솔암까지 올라가는 어귀에 빨간 새끼단풍들이 하얀 잔설에 붉으스름한 손을 내밀고 있더라구요. 가을엔 또 우수수, 지는 가랑잎과 은행잎도 장관이구요. 걷다보면 모과향내에 취해 그만 아찔해질 때도 있답니다. 운이 좋으면 보랏빛 산꿩도 볼 수 있어요. 고창에 사는 건 아니지만..암튼!
 

   오늘 저녁 밤차로 나에게 달려오고 있는 책들이다. 며칠 전에 생각해 보니 책을 산 지가 좀 지난 것 같아서 습관성으로 주문해 버렸다. 알라딘을 돌아다니다가 서평이 좋거나, 신문에 소개된 책이거나, 예전부터 읽고 싶었으나, 인연이 닿지 않았던 책-장미의 이름-을 드디어 사게 되었다.

린 마을 이야기  황수민 지음, 양영균 옮김 / 이산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  홍대용 지음, 김태준.박성순 옮김 / 돌베개

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나탈리 앤지어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해나무

석굴암, 그 이념과 미학  성낙주 글, 박정훈 사진 / 개마고원

우리 옛건축에 담긴 표정들 류경수 지음 / 대원사

장미의 이름 - /하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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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9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11-19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연우주 2004-11-19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래저래 상황이 그러네요. 제가 요즘. 암튼 얼른 평상심으로 돌아가야겠지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갈대 2004-11-19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린 마을 이야기 한겨레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 보려고 콕 찍어둔 책이죠. 장미의 이름도 구입하셨군요.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어렵더라도 끝까지 읽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해가 안 되서 처음부터 다시, 다시, 하다가 6개월만에 완독했거든요..-_-;;

느티나무 2004-11-19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 말씀 들으니 슬슬 걱정이 되네요. 저 어려운 책 잘 못 읽어내는데... 린 마을 이야기는 한겨레신문의 아깝다, 이 책! 코너에 실렸었지요. 얼마 전에 상상의 초가교실이란 책도 거기난 거 보고 읽었는데 괜찮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