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8일,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아이들의 졸업식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수업에 들어가는 아이들의 표정을 사진으로 담는 작업을 해왔다. 그 사진으로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줄 작은 기념품을 만들고 싶었다. 욕심내지 않고, 그냥 지금껏 찍은 사진을 분류만 하고, 담임선생님들의 영상편지를 찍어서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그렇게 했다.(물론, 정색하면서 카메라를 거부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어쩔 수 없었다. 이젠 '그냥, 그런, 사람들인가 보다' 하고 신경쓰고 싶지도 않다!!)

   나로서는 거액을 들여서 CD와 케이스도 샀고, CD에 붙이는 라벨도 구했다. CD라벨의 디자인은 아이들 사진을 조각조각 붙이는 것으로 했고, '빛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라는 카피도 달았다. 아이들 사진과 몇 분 선생님들의 영상편지, 그리고 약간 허전한 느낌이 들어서 불켜진 학교의 야경도 동영상으로 찍고 편집했다. 그리고, 꾜박 이틀을 야간작업까지 해 가면서 320장의 CD를 구웠다. 졸업식에 반 별로 나눠주고 나니, 그제야 내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든다.

   졸업한 날 저녁, 허전한 마음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문자메세지가 왔다. 대부분 CD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그 메세지들을 보는 순간, 지금껏 고생했던 기억들이 정말  까마득해 지는 게 정말 잘 만들어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의 글은 학교 야경을 배경으로 아이들에게 보낸 마지막 글이었다.

 

태양이 보이는가 보이지 않는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눈이 먼 소경보다도 더욱 안타까운 것은

마음 속에 빛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늘 마음 속에 세상을 비추는 빛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기원하며,

앞으로 영원히 우리 마음을 환하게 밝힐

소중한 불씨를 드립니다.

여러분 한/ 명/ 한/ 명/을 기억하며...

 

2005년 2월 17일 느티나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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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2-22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아쉬운 졸업식이었겠군요. 그리고 애정이 담긴 CD, 아이들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참 좋은 선생님이셨어요, 느티나무님. 새 학교에 가셔서도 건강하시고 새로운 아이들과의 만남, 잘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앗..저 복돌이 맞어요? 말투가 왜 근댜..느끼하게..헤헤..

▶◀소굼 2005-02-22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선생님~

느티나무 2005-02-2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멋진 선생님으로 인정해야 멋진 선생님이 되는 거겠죠? ㅎㅎ 새 학교는 조금 부담스러운 학교라 내심 걱정입니다. 어딜 가나 아이들하고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그럼 되었지, 뭔 걱정을 또 하고 있을까요??) 자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래저래 싱숭생숭한 요즘입니다. 응원해 주셔서 늘 고맙습니다. ^^
 

   늦게 시작했던 방학인지라 우리 학교(지역)은 오늘 개학을 했다. 모처럼 분주한 분위기, 익숙해서 편한 분위기이다. 늘 하던 아침 회의시간이 이어지고, 강당에서 전체 학생들과의 조례. 언제나 아이들은 밝고 명랑한 표정들이다. 부러운 모습!

   나도 이번 주에는 해야할 일이 아주 많아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졸업하는 아이들과의 이별도 준비해야 하고, 떠나는 학교라 해 온 일을 이번 주에 마무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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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5-02-14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새신랑 선생님,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떠나는 학교라.. 다른 학교로 전근가시는 건가요?

느티나무 2005-02-14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어쩌다 보니 학교를 옮기게 되었답니다. 어디로 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학교야 어디든 비슷하거든요. 어딜 가나 아이들은 이쁘고...

▶◀소굼 2005-02-14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옹..전근가시는군요. 다른곳에서도 즐거운 생활 하실 수 있길: )

2005-02-14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1월 16일, 부산에는 몇 년 만에 눈이 펑펑 내렸답니다. 그 날 저는 가족, 친지, 학생들의 따뜻한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했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왔습니다. 그리고,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다 신혼여행 중에 아내가 아파서 좀 고생했습니다. 여행다니는 동안, 그리고 귀국할 때도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귀국하자마자 친구의 도움으로 바로 입원을 했었습니다. 외국에서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익숙한 의료 체계와 담당 의사의 진단, 그리고 알게 된 병명으로 안도했습니다.

   며칠 동안의 입원생활이 이어졌고, 어제야 겨우 퇴원을 했습니다. 지금도 집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는 중이구요. 앞으로 며칠 쉬면 나아진다고 합니다. 

   오랜 여행과 발병, 모두가 뒤돌아보니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 흔적이 없는데도 썰렁한 서재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서재주인님들 모두새해에도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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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2-06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님, 반가운데 좋지 않은 일이 계셨군요. 그래도 부인께서 건강하시다니 다행이네요. 이제 종종 뵐 수 있겠습니다, 그려.^^

푸른나무 2005-02-06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셨군요. 모처럼 여행인데 걱정이 많으셨겠습니다만 첫 출발에 더욱 단단한 부부의 연으로 결속을 다지기 위한 신의 계시라 봅니다. 애틋한 가운데 사랑은 더욱 깊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해콩 2005-02-06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여행중에 아팠다구요? 어디가요? 당연히 잘 다녀왔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걱정과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아는 병명이고 치료가 잘 되어가고 있다니 안심이긴 하지만.. 만나서 물어봐야겠네요. 경황 없으시겠지만 둘이 되어 맞는 첫 '설'도 잘 보내시구요. ^^

비발~* 2005-02-07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입니다. 흠... 이제 느티님의 신혼일기를 기대해볼까나~^^

starrysky 2005-02-08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님, 늦었지만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즐거운 신혼여행 중에 부인께서 타지에서 병이 나셨다니 걱정이 많으셨겠네요. 모쪼록 몸조리 잘 하셔서 하루 속히 완쾌하시길 기원합니다.
편안한 설 맞으시고, 행복한 하루하루 되세요. ^^

느티나무 2005-02-14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의 걱정 덕분에 무사히 설을 쇨 수 있었답니다. 서로 마음을 모아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앞으로는 더 자주 글도 올리구요. 모두 건강하세요 ^^
 

   존경하는 교수를 찾기가 쉽지 않은 요즘-혹 잘 모르겠다, 내 성미가 까다로워 이렇게 말하는 것인지도-, 그래도 학교 다닐 때 꼿꼿한 자세로 열심히 연구하고 가르치시던 교수님.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했던 그 선생님.

  교수님께서 작년 여름에 정년 퇴임하실 때, 300명의 제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정년 퇴임식을 조촐하게 열었더랬다. 그리 성대하지는 않았지만, 스승님의 훌륭한 가르침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마련한 제자들의 소박한 마음 씀씀이였다.

   며칠 전 주례를 부탁드리려고 선생님댁을 찾아 뵈었을 때, 선생님께서 여러가지 말씀을 해 주셨지만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마디!

 - 정직하고, 정의로워라. 그러나 너그러워라.

* 덧붙여 설명하자면, 남들이 정직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은 것을 탓하지 말아라. 그러나 너희는 정직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또 부정직한 사람과 정의롭지 않은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라. 그리고 그 사람들을 -그 정도의 인간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에 대해서-불쌍하고 가엽게 여겨야 네가 너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그저 그런 '말'로 들렸겠지만, 당신이 이 말씀대로 살아오신 분이시라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좋은 사람 만나기가 어렵다고 항상 투덜거리기도 하지만, 나는 정말로 좋은 선생님과 멋진 친구들, 아름다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 속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던 행운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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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1 0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05-01-11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주신 님, 고맙습니다. 성실하게, 따뜻하게 열심히 살겠습니다.
 

   오늘 OO이의 자기소개서를 퇴고해 주었다.

   사실은 OO이가 구랍 29일 저녁에 문자로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을 좀 가르쳐 달라고 해서, 30일, 방학하는 날에 학교 도서실에서 만났다. 학교 선생님들은 방학을 겸해서 2004년을 정리하는 자리라 송년모임을 가셨고 학교는 텅 비었었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방법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이야기를 시작하다보니 이런저런 온갖 이야기가 다 나왔다. 선생과 학생의 대화가 아니라, 현직 교사와 예비 교사 사이의 인터뷰라고 할까...

   언제나 어른스럽고 당찬 학생인 OO이. OO이와는 몇가지 웃긴 해프닝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을 일이 있다.

   그 때가 가을쯤이었다. 학생들은 한창 수능준비로 바빴던 것 같다. 그 날도 여느 날처럼 수업이 끝나고 앞자리에 앉은 몇 명의 학생들이 질문을 해 오길래 교탁 근처에서 질문에 답을 해 주고 있었다. 그 때 제일 앞에 앉아 있던 OO이가 일어서며 다른 아이에게 설명하고 있는 나에게 슬쩍 다가와서 가만히 속삭이고는 앞문으로 나갔다.

- 샘, 바지 지퍼 열렸는데요...

   처음엔 농담인 줄 알고 웃으며 '그래' 이러고, 설명은 계속하면서 한 손으로 바지 지퍼쪽으로 손을 내렸다. 순간 움찔! 지퍼가 반쯤 내려가 있었다. 순간 얼굴은 빨개지다 못해 하얗게 변했다. 그래도 입으로는 하던 설명을 마저 했기에 다른 학생들은 눈치를 못 챈 것 같았다. OO이가 다시 앞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내가 하던 설명을 계속 하고 있으니까 걱정스러운 말투로 한 마디 더 했다.

- 샘, 아까 제 말씀 들으셨어요?

- 응, 들었어. 그래, 정말 고맙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순간은 참 민망했다. 서둘러 설명을 끝내고 교무실로 돌아오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OO이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다 듣는 앞에서 짖궂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그 후로도 OO이는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OO이는 그렇게 속이 깊은 아이다. OO이가 이번에 모대학의 국어교육과에 원서를 넣었다. 결과가 좋으면 앞으로 몇 년 후에는 내가 그런 것처럼 한 학교에서 같은 국어교사로 근무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은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의 제도 아래에서는 학과 공부를 충실히 하면 누구라도 교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교사가 되기는 정말 어렵다. 물론 '좋은' 이라는 형용사는 다양하게 정의내릴 수 있기 때문에 사람마다 의미가 다르겠지만, 어렵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좋은 선생님-아이들을 사랑하고, 잘 가르치고, 헌신적인 선생님-이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OO이에게서 좋은 선생님의 싹을 본 오늘 기쁜 날이다. 내일 심층면접을 보는 OO이에게 게으름부리지 않고, 지금껏 공부해 온 노력의 결과가 한껏 나타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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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6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