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요즘 세상은 어수선하고, 어떤 사람들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곡기를 끊고, 또 그 사람들을 위해 겨울 아스팔트 찬바닥에 앉아서 목청껏 외치며 힘을 보태고, 그러는데 또 한해는 어김없이 저물고... 그래서 쓸쓸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쉬운 사람도 많을 것이고, 추운게 끔찍하게 싫은 가난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새해가 되면 좀 나아질까 하는 희망도 없이 그저 이 추위만 좀 사그라들었으면 하는 사람들도 아직 많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내 처지나 상황은 천국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나에게는 소중한 오늘이었기에 짧은 글로 기억해 두려고 한다.
어제 (12월 30일)우리 학교는 방학을 했고, 오늘은 우리 학교 도서부 학생들이랑 스케이트 타러 가기로 한 날이다. 도서부 활동이다, 학교 축제다, 도서실 운영이다 해서 1년동안 바쁘기만 했는데, 이번에 모처럼 시간을 내어서 같이 놀러가는 것이다.
지하철을 탈 때부터 큰소리로 '선생님, 여기 앉으세요'라는 말로 온 승객들의 주목을 끌더니, 시끌벅적함으로 내릴 때까지 민망했다. 오전에는 벡스코에 가서 스케이트를 좀 탔다. 아이들은 인라인을 타본 경험이 있어 그런지, 어릴 때 스케이트를 배운 적이 있는지는 몰라도 대부분 잘 탔다. 지하철을 타고 해운대 스펀지로 가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나와 같이 간 선생님이 계산했다. 아이들이 다시 가까운 해운대 아쿠아리움 지하로 가자고 했다.(그 때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쿠아리움도 아니고, 왜 거기 지하? 그래도 아이들끼리 계획을 잘 세워왔기에 편하고 좋았다. 아이들이 세운 계획은 이랬다. 오전 스케이트와 점심 식사는 도서부라면 필수!! 이후 보드카페와 노래방은 선택사항이라는 것이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순조로왔다.) 아무튼 모두 10분 정도 걸어서 아쿠아리움 지하로 갔고, 거기서 잠시 사라진 두 명을 기다리며 '마피아 게임'도 했다.
조금 후에 돌아온 두 명의 아이들. 손에는 케익을 들려 있었다. 속으로 '어? 오늘 누구 생일이지?'하는 생각을 하며 기억을 되살려 보는데,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 순간, '혹시?'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래도,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쿠아리움 지하 휴게소에서 케잌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인 다음, 이 녀석들이 '결혼 축하합니다'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하도 당황스럽고 고마워서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촛불을 끄니, 폭죽도 터트리고 준비해온 선물과 함께 내놓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몰랐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 말문이 막혔던 경우도 드물었지 싶다. 순박하고 아름다운 아이들! 어떤 댓가도 바라지 않고, 오직 내 결혼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준비한 마음의 선물이었다. 자기들끼리 이런 깜짝 이벤트를 기획하고, 행동으로 옮기려고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랬더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면서 내가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순간의 감동은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다.(사실, 이벤트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기까지 했는데...^^;;)
바닷가로 나갔더니 날은 예상보다 훨씬 추웠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오래 서있기 힘들었다.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어쩌다보니, 바다물에도 발목까지 한 번 빠지고 아무튼 무지 추었다. 아이들이랑 그냥 헤어지는 것이 섭섭해서 가까운 가게에서 따뜻한 코코아 한 잔씩 먹었다. 아이들은 보드카페를 갔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 무지 피곤했고, 아주 행복했다. 2004년 12월 31일의 하루였다.
* 함께 한 고마운 아이들
2학년 : 강정중, 장영근, 박수용, 류지훈
1학년 : 이정화, 양아름, 박규리, 이현지, 심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