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30분에 일어났다. 안면도로 들어가는 여객선이 대천항에서 7시 50분에 있는데, 그걸 탈 계획이었다. 미리부터 시간을 충분히 잡아두고 시작한 아침이었다. 7시 10분에 출발한 좌석버스는 비싼 요금 때문에 그냥 보내고, 대천해수욕장을 지나 대천항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15분에 탔다.  인터넷에는 20분 정도 걸린다고 나왔는데, 25분 정도 걸린다고 기사분께서 말씀하셨다. 그래도 10분 정도는 여유가 있으니 표를 끊고 배를 타는데는 별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간발의 차로 안면도로 가는 배를 놓쳤다. 다음 배는 12시 30분. 힘이 다 빠진 채로 터덜터덜 걸어서 대천항과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유명하다는 대천해수욕장에 가 보았다.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너무 많은 시간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서였다. 해수욕장 부근의 피시방에서 1시간을 놀고 나서 다시 고개를 넘어 여객선터미널로 돌아왔다.

   대천항에서 안면도로 가는 중간에 원산도라는 섬이 있는데 그곳까지 가는 배가 10시 30분에 있어서 그 배를 타기로 했다. 원산도에서 안면도까지는 가까운 거리기 때문에 우선 거기까지라도 가면 혹시 거기서는 안면도로 가는 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정기여객선을 타고 원산도에 닿았다. 거기도 해수욕장이 있는지 피서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내렸다.

   일단 여객선터미널에서 안면도로 가는 배가 있는지 확인했으나 기대와는 달리 대천항에서 12시 30분에 출발하는 그 배를 타야만 안면도까지 갈 수 있다고 했다. 다시 2시간을 이곳 원산도라는 섬에서 보내야 했다. 호기심에 사람들이 몰려가는 해수욕장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조금 걸으니 우리 옆에 봉고차가 서서 이 차를 타고 원산도해수욕장이라는 곳까지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사람 한 명 없는 해수욕장이었다. 군데군데 쓰레기만 널려있는 해수욕장을 다시 걸어나와야 했다.

   섬이라 다니는 차가 별로 없지만, 우리가 손만 들면 대부분 태워주었다. 차를 타고 배에서 내린 곳까지 와서 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퍼붓는 비. 아직도 배가 들어오려면 1시간이나 남았고, 점심시간은 되고 해서 식당을 찾아 헤매다가 쏟아지는 비를 많이 맞았다. 결국 마땅한 식당도 못 찾고, 수퍼에서 컵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앉아 있으니 어느새 비는 그쳤다. 배가 안 뜰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을 뒤엎고, 대천항에서 아면도까지 가는 배가 왔고, 얼마 후에 우리는 안면도의 영목이라는 항구에 닿았다.

   이제부터는 안면읍까지 도보여행. 길은 너무 좋았다. 가랑비 같았던 비가 굻어져서 입고 있던 옷이 다 젖을 때쯤 서녘 하늘에서부터 햇살이 다시 비치기 시작했다. 길다랗게 난 섬의 좌우를 둘러보니 바다는 넘실거리는 듯한데, 풍경 좋은 곳은 이미 곳곳에 펜션이 들어서 있었다. 차들이 적어서 도로는 한적하고, 한참을 걸어도 땀 한 방울 맺히지 않는, 걷기엔 더 없이 좋은 날이었다.

   오후 3시. 드디어 강OO 선생님께서 안면도에 도착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앞으로 남은 기간 우리와 함께 여행하려고 부산에서 안면도까지 급하게 달려온 것이다. 선생님은 실컷 걷는 여행을 해 보고 싶다고 해서 오게 되셨다. 우리가 있는 위치를 대강 말씀드렸고, 선생님은 차를 얻어타고 오시다가 중간에서 만나기로 했다. 한참 후에야 저 멀리 하얀색 트럭이 주춤거리더니 선생님이 보였다.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가방에서 호두과자와 물을 꺼내 주셨다. 이제 일행은 이제 셋이다.

   이후부터는 탄탄대로였다. 야트막한 안면도의 숲도 인상적이었고, 한적한 도로, 아름다운 바닷가, 도로 옆의 웃자란 소나무숲까지 눈맛이 시원했다. 게다가 동행자가 늘었으니 나눌 이야기도 더 많아졌다. 제법 많이 걸었는데도, 안면읍까지 편하게 올 수 있었던 것 이야기의 힘이 아니었나 싶다. 쓸 수 있는 돈이 빡빡한 우리는 꽤 비싸 보이는 펜션은 그림의 떡이고, 읍내로 나와 약간 허름한 곳에 숙소를 잡고 저녁을 먹었다. 숙소 아저씨의 소개로 오늘도 꽤 근사한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었다.

   일행이 한 명 더 늘어난 것을 기쁘게 여기며 어서 가서 간단한 파티라도 해야겠다. 내일은 태안까지 걸어갈 계획이다. 무리하지 않고, 마음으로 느끼는 여행을 하고 싶다. 서서히 여행이 끝나가고 있다. 이제는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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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8-19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뻐하신다니 감솨!! 껌이라 생각에 조금 죄송스러웠는데.. ^^

푸른나무 2005-08-19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는 넓구나... 안 가본데가 나는 이다지도 많은가...

느티나무 2005-08-25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나무님, 아직도 안 가본데가 많으신 님이 지금은 더 부럽습니다. ^^;;
 

   아침, 동행자가 깨웠다. 내가 자고 있는 사이, 인터넷을 했나 보다. 좋은 계획이 세웠다고 한다. 오늘은 도보 대신에 차를 타고 가자고 했다. 동행자가 세운 계획은, 익산에서 군산까지는 전라선 기차를 타고 가서, 군산에서 점심을 먹고, 군산항에서 배를 타고 충남 장항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보령(대천)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어차피 정해진 일정이 있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선선히 그러자고 했다. 이렇게 동행자가 계획까지 세워주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오늘 세운 계획은 생생하게 실행해야겠지. 우선 근사한 숙소를 나올 때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번 여행 중에 언제 다시 이렇게 괜찮은 숙소에서 자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숙소에서 익산역까지는 10분 정도 걸으면 되는 가까운 거리다. 익산역은 KTX가 다닌다고 했나 그래서 한적한 시골역이 아니라, 꽤 큰 편이었다.

   빵과 우유로 서둘러 아침을 먹고는 군산행 기차를 탔다. 김제 평야가 다시 한 번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시원한 기차에서 창밖을 바라보니 마음도 한결 여유로와서, 걸을 때와는 달리 저 햇볕이 우리를 먹여살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초록의 들판을 보며 시인 이상은 '권태'롭다고 했는가? 넓은 들판이 주는 시원함과는 다른,  푸른 벌판에서 고통스러운 삶이 연상되었다면 여행객의 객적은 한담쯤으로 여길러나?

   기차는 들판을 가로질러, 전북 제 2의 도시라는 군산에 닿았다. 익산을 새도시라는 느낌을 많이 주던데, 군산은 이미 오래 전에 전성기를 지난 늙수그레한 아저씨의 이미지였다. 젊었을 때는 끓는 피를 주체하지 못해 흥청망청했을 것만 같은 동네 아저씨 한 분씩은 꼭 있지 않은가? 아마도, 그런---

   동행자의 호기심으로 '지정환임실치즈피자'를 찾아나섰다. 군산역에서 1시간을 걸어 겨우 도착한 시내에서 그 피자집을 찾았고, 거기서 행복한 마음으로 아직 이른, 점심을 먹었다. 정말 맛이야 있었든 아니든, 사람은 먹고 싶은 것은 먹어야 좋은 것 같다. 실제로 맛은 어땠는지 물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동행자는 만족하는 것 같았따. 

   이제는 군산항에서 장항으로 가는 도선을 타는 일만 남았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고 군산항 근처로 왔다. '군산항'하면 나는 왜 최민식이 떠오를까? 옛날에 본 드라마 때문일 것 같다. 아무튼 최민식은 그 때 군산항의 이미지에 잘 어울렸던 것 같다. 군산항에서 장항가는 배는 바로 있었다. 비록 15분이었지만, 배를 타는 흔치 않은 경험인지라 선실에 있지 않고 밖으로 나와 앉아 가물거리는 장항읍내와 아득한 군산 앞바다를 바라보았다.

   장항역은 선착장 근처에 있었다. 미리 확인해 둔 장항선 기차시간표에 따라 보령까지 가는 차표를 끊었다. 기차는 쾌적한 실내와 한적한 분위기였지만, 아주 무섭게 서울로 질주하고 있었다. 까마득한 거리를 50분만에 대천역에 닿았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떠나는지 큰 해수욕장이 있는 대천역에 많이 내렸다.

   우리는 익숙하게 숙소를 구하려고 했다. 기억을 더듬어서 작년 이곳 보령을 답사할 때 잔 숙소를 찾으려고 제법 걸어다닌 끝에 드디어 그 숙소를 발견하고 3만원을 주고 방을 구했다. 오늘은 차로 다녔기 때문에 오후 4시도 채 되지 않아서 짐을 풀었다. 마냥 풀어지고 싶은 마음을 다잡아서 다시 길을 나서기로 했다.

   오늘 여행의 2부가 시작된 셈이다. 우리가 둘러보려고 하는 곳은 무량사와 성주사터이다. 성주사터는 보령시 성주면에 있는 폐사지이고, 무량사는 부여군 외산면에 있는 절이다. 무량사까지 가는 차는 벌써 떠나버렸지만 폐사지는 저녁에 들러도 되니까 우선 버스를 타고 중간지점까지 가서 차를 얻어타고 무량사까지 가기로 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무사히 중간지점인 성주면에 도착! 여기서 1km 정도만 왼쪽으로 들어가면 성주사터가 있지만 나중에 들르기로 하고 무량사 방향에서 얻어타고 갈 차를 물색했다.

   어렵게 무량사 입구인 외산면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무량사까지는 다시 2km를 걸어야 한다. 햇살은 이제 뉘엿뉘엿 지는데, 허수아비만 멀뚱하게 춤을 추고 있는 사방은 풀벌레 소리만 가득할 뿐, 사람의 흔적을 찾기 쉬운 곳이 아니다.(그래서 무량사가 좋다.) 겨우 아스팔트만 닦인 좁다란 길에 어쩌다 차들이 지나 다니지만, 행색이 꾀죄죄한 우리를 쉽게 차를 태워줄 생각이 없는가 보다.

   절 입구에서 절까지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길이지만, 울창한 숲으로 인해서 깊은 골짜기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절 입구에서 무난하게 생긴 당간지주가 오는 객을 맞는다. 바로 천왕문을 들어서서 절 안쪽을 바라보면 정면에 석등, 5층석탑, 극락전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연꽃으로 하대석을 아름답게 장식한 보물 석등과 정림사지 5층 석탑을 그대로 빼닮은 백제 형식-아마도 백제 초기 목탑 형식의 석탑-의 당당한 보물 5층 석탑과 외형은 화엄사 각황전처럼 2층으로 짜올린 팔작지붕이지만 건물의 안은 통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보물 극락전이 다채로운 색깔을 지닌 채 한 줄로 서 있다. 더구나 절 한 켠에 이 석등과 석탑과 극락전을 포근하게 감싸 안거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것 같은 아름드리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더욱 운치가 있다. 무량사는 늦은 오후 다른 답사객이 다 떠난 뒤에 친한 사람이랑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둘러보면 더욱 좋을 그런 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량사를 내려와 다시 버스가 다니는 마을까지 걸었다. 이제는 해가 많이 기울어 어스름이 곱게 깔리는 것 같다. 순간 순간 다른 것은 눈에 띌 만큼 빨리 변해도 길은 변함이 없다. 고맙다. 외산면의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기엔 시간이 꽤 남았다. 또 차를 얻어타고, 성주면까지 왔다.

   이제는 아픈 다리를 끌고 터벅터벅 걸어 성주사(聖住寺)터에 닿았다. 작년에 왔을 때는 가랑비가 뿌렸는데 이번에는 어두워서 제대로 둘러보는 것이 힘들 정도다. 그래도 가운데 우아한 자태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5층 석탑을 다시 보니 반갑고, 5층 석탑을 호위하듯 서 있는 3층 석탑 세 기도 여전한 걸 보니 흐뭇하다. 이곳 성주사는 신라 시대에는 절의 승려들의 공양을 위해 씻은 쌀뜨물이 성주사 앞 성주천을 따라 십리를 내려갔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나라안의 거찰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절이 1400년이 지난 지금, 9천여평의 절터에 풀벌레 소리만 무성할 뿐이었다. 폐사지에 선 우리는 끝내, 우리의 삶도 이렇게 쓸쓸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운 좋게도 성주사터에서 보령까지 태워주시는 분이 있어 시내에 들어왔고, 그 분의 소개로 맛난 청국장 백반집을 찾아가 저녁까지 넉넉하게 먹고 나서야 하루 일과가 끝났다. 답사가 있는 여행이라 힘은 더 들어도, 운치 있다고 생각하련다.

   내일은 어디에서 이 여행기를 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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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창밖은 흐릿한 듯 하다. 나는 무슨 일인지 밤새 잠을 설쳐 일어나는 게 힘들다. 이럴 때 마냥 퍼지지 않게 동행자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오늘은 다시 도보여행이 시작되는 날이다. 아무래도 동행자의 체력이 걱정이다. 어깨 수술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고, 보충수업이 끝나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바로 오기도 했고, 걸으면 첫날이 가장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별달리 힘든 내색 없이 신고 있는 샌들이 잘 맞을지 모르겠다는 한마디만 툭 던진다. 오늘 걸어야할 거리는 김제에서 익산까지 20km 정도! 무리하지 않고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거리다.

   숙소를 나오니 흐릿하던 날씨가 햇볕을 쏟는다. 맞은편 김밥집에 들러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김제시의 변두리를 한바퀴 돌아 나와 본격적으로 국도변에 올라섰다. 동행자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걸으니 지루하지 않고, 한결 여유가 있었다. 익산가는 도로는 4차선이라 차들이 쌩쌩 달렸지만, 거기에 지지 않고 우리는 씩씩하게 걸었다.

   적당한 시간이 되면 걷고 있던 가까운 마을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으나, 점심을 사 먹을 수 있는 마을은 나오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도로 갓길에서 파는 복숭아 두 개를 사서 나눠 먹으며 기분 좋게 걸었다. 햇볕은 여전히 뜨겁지만 혼자서 걸을 때보다는 훨씬 좋았다. 이야기의 소재도 무궁무진해서 거의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오후 1시쯤 더위를 피해 근처의 벽성대학으로 들어갔다. 이왕 들어선 거 해가 좀 기울어 더위가 한풀 꺾이면 다시 길을 나서기로 했다. 대학은 꽤 넓은 캠퍼스였지만 우리의 예상대로, 여느 시골 마을보다도 더 조용했다. 과연 이곳에 대학이 들어설 만큼 수요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생각도 들었으나, 몸이 더 지친 우리들은 텅 비어 있어서 더 좋은 도서관 옆의 휴게소에 진을 쳤다. 먼저 음료수와 물을 마시고는 신문지를 깔고 눕고, 간이 의자를 끌어다 누워 더위를 식혔다.

   세 시가 좀 넘어서 다시 길을 나섰다. 햇살은 아직도 맹렬한 기세였으나, 이건 허장성세임이 틀림없다. 오늘의 저 태양은 이제 곧 우리의 발밑으로 먼저 사라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또 뜰테니 그건 내일 생각하면 될 문제다. 오전보다 발걸음이 훨씬 가볍다.

   벽성대학을 나오면서 예정이 없던 도로로 들어서고 말았다. 드문드문 차들이, 걷는 사람이 심심하지 않게 다니는 옛날길이었다. 엉뚱한 길로 들어선 것이 오히려 우리에겐 더 좋았다. 걸어가고 있는 정면에는 저 멀리 익산의 시가지가 눈에 들어오고, 길 양쪽으로는 탐스러운 포도밭이 펼쳐진 아름다운 길을 걸었다. 사실, 포도밭으로 불쑥 들어가 몸을 숨기고 싶은 욕망을 누르느라 무척 힘들었다.

    익산터미널에 도착한 게 오후 5시쯤이었나 보다. 유달리 으리으리한 모텔들에 조금은 주눅들어 있던 우리들의 눈에 숙박 2만원이란 펼침막이 눈에 확 들어왔다. 반신반의하며 찾아가니 정말 그랬따. 인터넷이 되는 방을 2만 5천원에 구했다. 들어가서는 이어지는 감탄사! "우와!', "우와!"

   익산까지 왔으니 미륵사지를 빼놓을 수 있으랴 싶어서 서둘러 다녀오기로 했다. 버스타기가 왜 그렇게 힘들던지... 정류장을 찾아 여러 곳을 돌아다녔고, 한참을 기다려서 겨우 타려던 버스의 기사님께서 미륵사지는 반대편 정류장에서 타야한다고 말씀하시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다시 반대편에서 또 한참을 기다려 탄 버스! 한참을 달려 미륵사지에 도착했으나, 이미 어둑어둑해서 제대로 구경할 수도 없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 때쯤, 저 앞에 아슴프레하게 서 있는 미륵사지 서탑이 그림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륵사지탑은 2001년부터 해체 복원작업을 시작하여 지금껏 기약도 없이 계속되고 있어서 볼 수도 없었다. 안타까웠다.

   허탈한 마음만 가득 안고 밤늦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동행자의 끈질긴 노력으로 익산까지 오는 승용차를 얻어탈 수 있었다. 제대로 점심도 못 먹은 우리는 익산역 부근에서 뜻하지 않게 훌륭한 저녁을 먹은 것으로 행복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방안에 인터넷이 있다는 핑계로 늦게까지 지금껏 밀린 여행기를 적었다. 내일은 군산을 거쳐, 충청남도의 장항읍, 보령시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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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8-18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느티나무님! 지금 익산이신 건가요? 우오우오우오, 쫙쫙쫙! 환영합니다!!

푸른나무 2005-08-18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들게 한 여행은 그 이상의 가치와 보람과 삶의 의미도 가져다줄것 같은데요.
저는 지금 우리집의 편안함을 다시 한 번 만끽하는 중..강아지도 먼 여행에 지친듯 오자마자 늘어져 쉬고 있네요.
지유인이 되어 누빌 먼 길에 가벼운 발걸음과 축복이 있기를...
 

   기껏 떠나와서 또 무슨 휴가 타령이냐고 하겠지만, 안해가 온 이틀은 도보여행 대신에 우리가 즐겨하는 답사를 다니기로 했다. 고창에서 볼 만한 것이라면 당연히 선운사를 첫손에 꼽는다. 그래서 나도 선운사는 몇 번이나 다녀갔더랬다. 그래서 정작 고창의 다른 곳은 관심도 없었고, 당연히 제대로 구경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안해 덕분에 고창 지역을 천천히 둘러보게 되었다.

   역시나 늦게 일어난 탓에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하고 터미널 근처의 숙소를 나섰다. 이곳까지 왔으니 특별한 음식을 먹어야겠다 싶어서 찾다가 우리는 피자를 먹기로 했다. 어제저녁부터 신기한 피자집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안해 말로는 임실치즈가 유명하다는데, 읍내 한 복판에 '지정환임실피자'라는 피자집이 계속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피자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지정환'이라는 사람이 피자전문가인 줄 알았다. 그런데, 피자집에 식탁에 앉으니 '지정환 신부님의 삶'이라는 홍보물이 식탁 유리에 깔려있었다. 신부님? 게다가 유심히 보니 한국사람도 아니었다. 호기심에 홍보물을 유심히 보고, 가게를 한 번 휘 둘러보니 역시나 지신부님에 대한 사진과 약력이 붙어있다.

   벨기에 사람으로 1958년인가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는 희망으로 한국에 처음 온 신부님이 농민들의 소득 증대를 위해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농민들의 몰이해와 나쁜 품질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제는 제자리를 잡았고 농민조합에서 치즈 생산과 판매를 맡고 있다고 한다. 그 임실 치즈의 판매 증가를 위해 임실치즈만 사용하는 피자집에 자신의 초상권을 넘겼다고 한다.   도에서 주는 봉사상도 받고, 이 지역에서는 꽤 유명하신 분이신 듯했다.

   나는 피자가 나쁘지 않았는데, 안해는 좀 불만인 듯 했다. 토핑이 너무 적었다나... 콜라도 공짜로 주고 가격도 별로 비싸지 않은 건 좋았다면서도 불만이다. 상대적으로 나는 음식 맛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대부분의 음식이 다 고만고만하다.(맛도 잘 모르면서 나는 맛있다고 하는 집에 다니는 걸 좋아한다.) 아무튼 이런 피자집이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런 피자집이 없어지고, 한 가지 입맛만 강요하는 피자집만 남게 된다면... 상상하기 싫다.

   점심을 먹고 밖을 나서니 햇볕이 사람을 곧 죽일 것만 같다. 햇볕이 마치 화살 같이 피부에 꽂히는 것 같다. 하늘에서 수없이 쏟아지는 화살들! 피할 수도 없이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오늘 같은 날, 스스로에게 휴가를 줄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물론 또 걸어가야 할 길이었다면 아무 생각 없이 걸었겠지만 말이다.)

   고창지역의 답사 첫머리는 당연히 모양성이다. 모양은 백제 시대의 옛이름이다. 안내판이나 지도에는 고창읍성이라고 나와 있는데도 아직도 사람들은 모양성이라고 한다. 시내에서 5분 안에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모양성(牟陽城)에서 고창 들판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걸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해가 쨍쨍하기만 하다.

   읍성의 성곽은 대부분 자연석인데, 돌의 크기도 다양할 뿐더러 읍내의 여자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있어서 성곽을 밟으면 무병장수한다는 전설이 있다. 정문인 듯한 공북문을 통해서 읍성으로 들어갔다. 성문 입구에서 동헌과 객사가 있는 읍성 안으로 산보하듯 걸었다. 읍성의 길은 잘 닦인 산길처럼 폭신폭신하고 읍성 안 숲에서 나오는 향기가 달라서 우리는 한참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숲 속에서 편하게 앉아 있는 게 좋다. 하여튼 모양성에 올라서니 고창 너른 들판이 한 눈에 들어와서 햇살은 따가웠어도 시원했다.

  이건 군말인데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유적들을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고, 그냥 분위기만 대충 보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때는 답사와 관련된 책을 꽤 사 모으며 열심히 읽기도 했고, 읽은 내용을 머리 속에 남겨두려고 애도 많이 썼다. 언제부터인지 그런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심드렁하다. 여기서도 그래서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모양성은 아주 예쁜 읍성이니 고창으로 간다면 선운사만 둘러보지 말고 모양읍성에도 꼭 한 번 올라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오후에는 아내와 무장토성을 찾아나섰다. 얼핏 한적하기 그지 없는 여느 시골 동네 같은 무장면에,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은 토성이다. 특히, 토성 안에 있는 객사는 사진으로 보았을 때 아주 멋진 건물이어서 설레였다. 친절한 시내버스 아저씨 덕분에 바로 무장토성 앞에 내렸다. 무장토성의 남문인 '진무루(鎭茂樓)' 에 내렸다. 바로 객사로 올라가서 가방을 내려두고 객사 주위를 둘러봤다. 본격적으로 발굴조사를 시작하고 있어 주변이 좀 어수선했지만, 객사 주변의 울창한 나무는 아주 장관이었다. 

   객사에 앉아 숲을 바라보며 꽤 앉아 있었다. 객사 뒤쪽으로는 발굴 조사가 한창이고, 본격적인 조사를 위해 진무루 안에 있던 초등학교마저 이제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 학교 뒷편에 있던 동헌만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이들이 떠난 운동장은 풀만 무성해서 여름날의 한가로움과 고즈넉함을 더하고 있었다. 객사로 들어가는 입구엔 송덕비들이 즐비했다. 무장현에 내려온 목민관들이 현민들에게 모두 칭송받았던 관리들은 아니었을테고, 전임자의 '관례'에 따라 세운 것이리라. 자랑스러워야 할 송덕비가 이제는 관리들의 악행을 증거하는 기록물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백번 양보해서 이 송덕비의 주인들 중에 백성들이 마음으로 송덕할 수 있는 관리가 몇이나 있을까?

   무장객사 앞의 송덕비를 보며 갑오농민전쟁의 농민 장수 손화중이 떠올랐다. 손화중은 무장현의 동학 대접주였는데, 인근 사람들의 신망이 높은 그의 영향력 덕분에 무장현은 당시 조선의 최대 동학 조직이 있는 현이었다. 결국 농민전쟁도 전봉준과 손잡은 손화중이 이곳 무장현에 모인 4천명의 농민군과 함께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높이 걸고 군사를 일으켜서 시작된 것이니 손화중도 여기 무장토성에 올라 농민군을 지휘했을지 모른다. 목숨을 초개 같이 버리기로 작정한 사람들의 분노는 성난 파도와도 같았을 것이고, 무능한 조선 정부는 성난 민심을 달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그 결과는 또 한 번 외세의 힘을 빌 수 밖에 없는 것이었고, 그것으로 조선의 명운도 다하고 말았다.

   무장성에서 가장 시원한 진무루에 올랐다. 이번 여행에서는 서늘한 곳만 찾으면 잠이 쏟아졌다. 동네인 듯한 분들 틈에 누워 한잠 달게 자고 일어나도 해는 아직 멀쩡하다. 진무루를 나서 상갑리 고인돌에 가려고 나서고 한다니까 옆에 계신 분께서 조금만 기다리면 데려다 주겠다고 하셔서 그 분들과 꽤 오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문화재 해설사를 하신다는 그 분 덕택에 무장토성에 대한 덜 알려진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고창 고인돌에 대한 설명도 충분히 들었다. 그래도 차안에서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아주 멋있다. 문화재 해설사는 주말에 하는 봉사활동인데도 자기 고장에 대한 자부심으로 열정적인 사람을 대하니 마음이 흐뭇해진다.

   그러나 남방식 고인돌이 주로 모여있는 상갑리 고인돌군에서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남방식 고인돌은 내 눈에 들판에 옹기종기 모인 돌덩이에 불과했다. 작은 판석 위에 엄청나게 큰 뚜껑돌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고인돌은 그 이름만큼이나 너무 친숙해서 그런가 보다. 고인돌을 보려고 꽤 많이 모인 사람들은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2km를 걸어가서 본 도산리 고인돌은 달랐다. 이 잘생긴 고인돌 한 기는 상갑리 고인돌군의 맞은 편, 어느 민가 뒷편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우리가 '고인돌'하면 떠올리는 바로 그런 모양을 하고 있었다. 원래는 고인돌 앞에 그 집의 장독대가 소담하게 자리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 고인돌이 유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장독대가 치워져 아쉬웠다.

   마을 앞을 내려와 시내버스를 타고 고창터미널으로 향했다. 이제야 해가 넘어가 서쪽 하늘이 말도 못하게 붉으스름했다. 안해와 함께 상의해서 부안으로 가기로 했다. 부안행 버스에서 다시 쏟아지는 잠! 그러니 40km도 순식간이다. 걸으면 하루도 모자랄 정도로 긴 거리인데... 도시로 돌아가면 금방 익숙해지겠지만 지금은 이 빠른 속도에 머리가 어지럽다.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역시나 숙소를 구하는 일이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처럼 숙소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부안은 변산반도를 끼고 있어서 늘 관광객들이 많기 때문에 숙박업소가 턱없이 부족한 편이었다. 괜찮은 곳은 성수기라는 명목으로 턱없이 높은 값을 불러서 돌아나올 수 밖에 없었다. 터미널 근처의 허름한 숙소도 손님이 곧 다 찬다는 아주머니의 다그침과 재촉 속에서 가격 흥정 한 번 못해 보고 겨우 구했다.

   안해와 늦은 저녁을, 푸짐하게 먹었다. 함께 피시방에도 들러 서재에 들어와 놀았다. 요즘 나의 서재는 여전히 할랑하다. 내 서재에 여행 일정을 잠깐 기록하는 것 외에는 아내도, 나도 피시방에서 별로 할 일이 없다. 내일은 아침 일찍 내소사에 다녀오기로 했다. 가는 길에 곰소의 염전도 보고,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과 대웅보전의 단청은 여전한지 보고 오기로 했다.

   다음날 부안터미널 앞에서 이제는 전국적으로 흔한 김밥OO에서 아침을 먹고 군내버스를 탔다. 냉방차가 아니라서 더 반갑다. 버스는 서너 명을 태우고 좁은 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나는 곰소의 염전 못 가서 눈을 떴다. 곰소의 염전은 금방이라도 문을 닫을 것처럼 힘겨워 보인다. 빗방울도 후두둑 날리는 날씨라 더욱 염전이 활기가 없어 보였다. 버스는 염전도 무심한 듯 그냥 지나치고, 이제 버스는 안해와 나의 승용차가 되어 버렸다.

   내소사의 전나무 숲은 여전히 어지러운 사람의 마음을 씻어주고 있었고, 숲길은 약간 굽어 있어서 더욱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윽함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라도 절 입구에 들어설 때쯤이면 나무가 뿜는 피톤치드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절구경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내소사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딱 알맞은 거리에 절의 천왕문이 단풍나무 숲길 너머로 보였다.

   내소사는 지리산의 천은사처럼, 아담한 돌담이 매력적인, 사람의 마음을 편안한게 이끌어 주는 절집이다. 절집의 분위기뿐만 아니라 단청이 바래서 더 한 대웅보전의 고색창연함이야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연꽃밭 같은 대웅보전의 꽃창살의 화려함은 나라 안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설성당과 붙어 있는 요사채는 건물로도 특이하지만, 뒤로 올려다 뵈는 산세와 무척 잘 어울려 사진 찍기에 좋다. 천왕문을 건너면 바로 만나게 되는 나무인 입암마을 당산나무도 아직 할아버지 답지 않게 씩씩하다. 이렇듯 눈길이 가는 곳 아무 곳이라도 흐뭇한 웃음을 떠올리게 하는 절이 바로 내소사였다.

   짧은 내소사 여행을 뒤로 하고 다시 부안으로 가야할 시간이었다. 갔던 길을 되짚어 부안으로 돌아왔으나 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다. 안해가 부산으로 가야할 시간. 고창가는 버스 시간에 맞춰 간단하게 토스트를 점심을 먹었다. 안해가 버스에 올랐다. 아마도 부산까지는 여섯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안해가 떠나고 부안에서 하루를 더 보내고 김제로 올라갈까 하다가 숙박료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가까운 김제시로 가기로 했다.

   김제까지 버스로는 약 20분이 걸렸다. 오는 길에 창밖으로 김제의 너른 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정말 지평선이 보였다.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라더니 정말 논두렁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득했다. 역시나 터미널 근처에 숙소를 구했다. 오늘 저녁이면 또다른 동행자가 서울에서 내려올 것이라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의주 선생님. 서울에서 8.15 통일대축전 행사를 마치고 연극 한 편 보고 바로 김제로 달려왔다. 저녁이 부실했는지 야식으로 라면을 먹으며 지금껏 밀린 이야기를 했다. 보충수업이 끝나고, 전국 연극 교사 연수(원주)에 갔다가 8.15 통일 행사에 참가하고 오는 길이라고 한다.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 앞으로의 여행은 의주 선생님과 동행이다. 더욱 흥미진진하고 끄집어낼 생각들이 많을 것이다. 부푼 기대를 안고 잠이 들었다.

- 휴, 이틀 동안의 여행기가 너무 길었다. 이걸 끝까지 읽는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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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5-08-15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양성..이름 이쁘네요: ) 모양성..왜 이모양이야~;

푸른나무 2005-08-17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까지 읽는 사람이 제법 될것 같은데요..^^
저의 여행에 비하면 풍부한 정보와 감동 여행다운 여행의 재미에 신나게 읽어내려갑니다.
저는 역시나 몸이 비대해져서 어떻게 떨쳐버릴까 생각중...헝클어진 리듬...
중간중간 동행자를 랑데부하며 하는 여행 참 재미있겠네요. 끝까지 좋은 여행을..
 

   오늘은 정말이지 무지 더웠다. 출발하기 전에 창밖을 얼핏 보니 하얀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게 '오늘도 날씨가 돕는구나' 싶었는데, 걷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이 점점 걷히더니 말 그대로 햇볕이 작열하였다. 오늘은 숙소를 나오니 바로 떡집이 있었다. 예쁘게 포장된 경단을 사서 배낭에 넣고, 수퍼에 들러 마실 물을 사서 아침 준비를 했다. 

   그래도 아침 9시 30분에 출발해서 오후 1시까지 쉬지도 않고 꼬박 걷기만 했다. 중간에 마땅히 쉴 곳이 없었던 탓이다.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나오는 마을에는 어르신께 여쭈어도 그늘이 있는 자리가 없다는 말씀 뿐이고, 멋진 정자가 있는 마을은 도로에서 한참 들어가야 해서 포기했다. 그러다 보니, 세 시간 반 동안 15km를 꼬박 걸었다. 영광읍에서 고창군 대산면까지.

   정말, 대산면사무소를 앞둔 마지막 4km 정도는 오기로 버텼다. 하기야 버티지 않을래야 않을 도리도 없었다. 자외선 차단크림은 진작에 땀을 타고 흘러내렸는지 피부는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지열은 사람을 금방 지치게 만들었다. 스스로에게 '조금만 더 가자! 조금만 더,하며 암시를 걸었고, 그래도 시원한 공기가 섞여서 올라오는 아스팔트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디디며 걸었다.

   과정이 힘든 만큼 목표로 했던 곳에 이르자 짜릿한 쾌감이 밀려들었다. 면사무소 근처의 수퍼에 들어가 생수 한 병을 사고, 수퍼 앞에 앉아 가방을 풀고, 신발을 벗고 물을 마셨다. 그늘에 앉아 지나 온 길을 뒤돌아 보았다. 아마도 나는 그 때 세상을 다 가진 자의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정해 준 목표가 있고,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내 몸이 기어이 꾹꾹 눌러가며 그 목표에 다가갈 때의 뿌듯함. 남들이 알아 주는 근사한 무엇도 아닌, 소박하고 보잘 것 없기에 오히려 더욱 이겨내기 어려운 목표였을지도 모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잘 모르겠지만 오늘은 여기서 버스를 타고 고창읍내까지 가야한다. 시골의 버스터미널 풍경이 참 정겨웠다. 나는 버스표를 사고 할머니들이 앉아 계신 평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먼저 말씀을 건네니, 할머니들께서 이것 저것 물으신다. 목포에서 걸어오는 길이라니까 모두 첫 말씀이, "왜? 돈이 없는겨?" 이시다. 그냥 세상 구경 다니는 중이라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들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니 시간이 참 잘 갔다. 영광이 가까워서 '굴비'이야기도 하고-한 두릅 사서 집에 부칠까 생각도 했는데, 전화해보고 그만 뒀다- 외할머니댁에 놀러온 손녀딸 자랑도 듣고, 더운 날씨 이야기, 잃어버린 짐보퉁이 이야기... 정말 이야기는 저 주름살 곳곳에 살고 있다 술술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참 이야기 중에 내가 착한 일을 할 기회가 생겨, 놓치지 않고 착한 일을 하니 앉아 계신 분들이 모두 칭찬을 해 주셔서 뿌듯했다.

   고창읍내로 가는 버스에서 창 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걷다 보면 버스를 타고 창밖의 도로를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긴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보면서도 차폭은 좁은가, 길은 곧은가,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마을에 쉼터는 있는가, 이런 관점으로 보게 된다. 창 밖의 길은 끝없이 이어지고 아득해서 내가 걸어갈 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인데 감각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버리면 오히려 무덤덤해진다고 했다.

   아무튼 오후에는 기쁜 일이 있다. 고창읍내에 도착해서 터미널을 기웃거리고 있으니 마침 광주에서 고창으로 온 버스에서 안해가 내렸다. 연수 중인데도 2박 3일의 연휴 기간에 같이 있겠다면서 고창까지 온 것이다. 서둘러, 늦은 점심을 먹으며 늘 그렇듯 집안 이야기를 했다. 아직은 고창읍내의 지리를 잘 몰라, 여기저기 헤매고 다녔다. 다행스럽게도 숙소를 구했고, 저녁에는 고창읍성을 찾아 산책을 나왔으나 읍성을 찾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도 안해와 낯선 동네를 느릿느릿 걸으니 여행 와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내일은 안해가 와 있으니 여기, 고창에서도 휴가를 떠나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안해는 도보여행이 무리일 것이다. 더구나 오늘 같은 날씨라면 1시간도 못 가서 쓰러질지도 모른다. 선운사가 아니래도 고창에는 찾아보고 싶은 데가 참 많다. 내일까지는 안해랑 붙어다니며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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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5-08-14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언젠간 도보로 여행할 테예요.

▶◀소굼 2005-08-14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목만 보고..아 오늘은 사진을 보여주시려나?했답니다;
오늘도 무사히?: )

푸른나무 2005-08-14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종 그렇게 는꼈지만 느티나무님은 참 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외모는 여리게 보여 거친세상 살아가기 힘든사람으로 보입니다만 조금씩 알수록 못해낼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늘 작은일을 하는 듯 하면서도 거기서 큰 힘과 열정을 느낍니다. 인자는 바다로 가고 지자는 산으로 간다는데 평지를 끝없이 걷는 사람은 지자와 인자를 다 아우르는 사람이 아닐까요?

느티나무 2005-08-14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님, 제가 지금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여름엔 도보여행을, 겨울엔 세계여행을 떠날 겁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꼭 해 보라고 권합니다. 누구에게도 강추!!

느티나무 2005-08-14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요... 사진을 찍고 있기 하지만, pc방에서 그런 작업을 하기가 쉽지 않네요. 시간이 별로 없어요^^;; 하지만 시간이 되면 꼭 올리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사진은 아무래도 심심할 듯~~]

느티나무 2005-08-14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나무님은 항상 저에게 칭찬이 과하시다는 단점이 ^^;;
내일 떠나시는 여행이 즐겁고 행복하시기를 빌겠습니다. 푸른나무님이야 말로 지금도 못하시는 일이 없으신 듯 보이는 분이신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