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 떠나와서 또 무슨 휴가 타령이냐고 하겠지만, 안해가 온 이틀은 도보여행 대신에 우리가 즐겨하는 답사를 다니기로 했다. 고창에서 볼 만한 것이라면 당연히 선운사를 첫손에 꼽는다. 그래서 나도 선운사는 몇 번이나 다녀갔더랬다. 그래서 정작 고창의 다른 곳은 관심도 없었고, 당연히 제대로 구경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안해 덕분에 고창 지역을 천천히 둘러보게 되었다.

   역시나 늦게 일어난 탓에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하고 터미널 근처의 숙소를 나섰다. 이곳까지 왔으니 특별한 음식을 먹어야겠다 싶어서 찾다가 우리는 피자를 먹기로 했다. 어제저녁부터 신기한 피자집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안해 말로는 임실치즈가 유명하다는데, 읍내 한 복판에 '지정환임실피자'라는 피자집이 계속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피자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지정환'이라는 사람이 피자전문가인 줄 알았다. 그런데, 피자집에 식탁에 앉으니 '지정환 신부님의 삶'이라는 홍보물이 식탁 유리에 깔려있었다. 신부님? 게다가 유심히 보니 한국사람도 아니었다. 호기심에 홍보물을 유심히 보고, 가게를 한 번 휘 둘러보니 역시나 지신부님에 대한 사진과 약력이 붙어있다.

   벨기에 사람으로 1958년인가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는 희망으로 한국에 처음 온 신부님이 농민들의 소득 증대를 위해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농민들의 몰이해와 나쁜 품질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제는 제자리를 잡았고 농민조합에서 치즈 생산과 판매를 맡고 있다고 한다. 그 임실 치즈의 판매 증가를 위해 임실치즈만 사용하는 피자집에 자신의 초상권을 넘겼다고 한다.   도에서 주는 봉사상도 받고, 이 지역에서는 꽤 유명하신 분이신 듯했다.

   나는 피자가 나쁘지 않았는데, 안해는 좀 불만인 듯 했다. 토핑이 너무 적었다나... 콜라도 공짜로 주고 가격도 별로 비싸지 않은 건 좋았다면서도 불만이다. 상대적으로 나는 음식 맛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대부분의 음식이 다 고만고만하다.(맛도 잘 모르면서 나는 맛있다고 하는 집에 다니는 걸 좋아한다.) 아무튼 이런 피자집이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런 피자집이 없어지고, 한 가지 입맛만 강요하는 피자집만 남게 된다면... 상상하기 싫다.

   점심을 먹고 밖을 나서니 햇볕이 사람을 곧 죽일 것만 같다. 햇볕이 마치 화살 같이 피부에 꽂히는 것 같다. 하늘에서 수없이 쏟아지는 화살들! 피할 수도 없이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오늘 같은 날, 스스로에게 휴가를 줄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물론 또 걸어가야 할 길이었다면 아무 생각 없이 걸었겠지만 말이다.)

   고창지역의 답사 첫머리는 당연히 모양성이다. 모양은 백제 시대의 옛이름이다. 안내판이나 지도에는 고창읍성이라고 나와 있는데도 아직도 사람들은 모양성이라고 한다. 시내에서 5분 안에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모양성(牟陽城)에서 고창 들판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걸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해가 쨍쨍하기만 하다.

   읍성의 성곽은 대부분 자연석인데, 돌의 크기도 다양할 뿐더러 읍내의 여자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있어서 성곽을 밟으면 무병장수한다는 전설이 있다. 정문인 듯한 공북문을 통해서 읍성으로 들어갔다. 성문 입구에서 동헌과 객사가 있는 읍성 안으로 산보하듯 걸었다. 읍성의 길은 잘 닦인 산길처럼 폭신폭신하고 읍성 안 숲에서 나오는 향기가 달라서 우리는 한참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숲 속에서 편하게 앉아 있는 게 좋다. 하여튼 모양성에 올라서니 고창 너른 들판이 한 눈에 들어와서 햇살은 따가웠어도 시원했다.

  이건 군말인데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유적들을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고, 그냥 분위기만 대충 보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때는 답사와 관련된 책을 꽤 사 모으며 열심히 읽기도 했고, 읽은 내용을 머리 속에 남겨두려고 애도 많이 썼다. 언제부터인지 그런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심드렁하다. 여기서도 그래서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모양성은 아주 예쁜 읍성이니 고창으로 간다면 선운사만 둘러보지 말고 모양읍성에도 꼭 한 번 올라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오후에는 아내와 무장토성을 찾아나섰다. 얼핏 한적하기 그지 없는 여느 시골 동네 같은 무장면에,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은 토성이다. 특히, 토성 안에 있는 객사는 사진으로 보았을 때 아주 멋진 건물이어서 설레였다. 친절한 시내버스 아저씨 덕분에 바로 무장토성 앞에 내렸다. 무장토성의 남문인 '진무루(鎭茂樓)' 에 내렸다. 바로 객사로 올라가서 가방을 내려두고 객사 주위를 둘러봤다. 본격적으로 발굴조사를 시작하고 있어 주변이 좀 어수선했지만, 객사 주변의 울창한 나무는 아주 장관이었다. 

   객사에 앉아 숲을 바라보며 꽤 앉아 있었다. 객사 뒤쪽으로는 발굴 조사가 한창이고, 본격적인 조사를 위해 진무루 안에 있던 초등학교마저 이제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 학교 뒷편에 있던 동헌만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이들이 떠난 운동장은 풀만 무성해서 여름날의 한가로움과 고즈넉함을 더하고 있었다. 객사로 들어가는 입구엔 송덕비들이 즐비했다. 무장현에 내려온 목민관들이 현민들에게 모두 칭송받았던 관리들은 아니었을테고, 전임자의 '관례'에 따라 세운 것이리라. 자랑스러워야 할 송덕비가 이제는 관리들의 악행을 증거하는 기록물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백번 양보해서 이 송덕비의 주인들 중에 백성들이 마음으로 송덕할 수 있는 관리가 몇이나 있을까?

   무장객사 앞의 송덕비를 보며 갑오농민전쟁의 농민 장수 손화중이 떠올랐다. 손화중은 무장현의 동학 대접주였는데, 인근 사람들의 신망이 높은 그의 영향력 덕분에 무장현은 당시 조선의 최대 동학 조직이 있는 현이었다. 결국 농민전쟁도 전봉준과 손잡은 손화중이 이곳 무장현에 모인 4천명의 농민군과 함께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높이 걸고 군사를 일으켜서 시작된 것이니 손화중도 여기 무장토성에 올라 농민군을 지휘했을지 모른다. 목숨을 초개 같이 버리기로 작정한 사람들의 분노는 성난 파도와도 같았을 것이고, 무능한 조선 정부는 성난 민심을 달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그 결과는 또 한 번 외세의 힘을 빌 수 밖에 없는 것이었고, 그것으로 조선의 명운도 다하고 말았다.

   무장성에서 가장 시원한 진무루에 올랐다. 이번 여행에서는 서늘한 곳만 찾으면 잠이 쏟아졌다. 동네인 듯한 분들 틈에 누워 한잠 달게 자고 일어나도 해는 아직 멀쩡하다. 진무루를 나서 상갑리 고인돌에 가려고 나서고 한다니까 옆에 계신 분께서 조금만 기다리면 데려다 주겠다고 하셔서 그 분들과 꽤 오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문화재 해설사를 하신다는 그 분 덕택에 무장토성에 대한 덜 알려진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고창 고인돌에 대한 설명도 충분히 들었다. 그래도 차안에서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아주 멋있다. 문화재 해설사는 주말에 하는 봉사활동인데도 자기 고장에 대한 자부심으로 열정적인 사람을 대하니 마음이 흐뭇해진다.

   그러나 남방식 고인돌이 주로 모여있는 상갑리 고인돌군에서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남방식 고인돌은 내 눈에 들판에 옹기종기 모인 돌덩이에 불과했다. 작은 판석 위에 엄청나게 큰 뚜껑돌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고인돌은 그 이름만큼이나 너무 친숙해서 그런가 보다. 고인돌을 보려고 꽤 많이 모인 사람들은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2km를 걸어가서 본 도산리 고인돌은 달랐다. 이 잘생긴 고인돌 한 기는 상갑리 고인돌군의 맞은 편, 어느 민가 뒷편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우리가 '고인돌'하면 떠올리는 바로 그런 모양을 하고 있었다. 원래는 고인돌 앞에 그 집의 장독대가 소담하게 자리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 고인돌이 유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장독대가 치워져 아쉬웠다.

   마을 앞을 내려와 시내버스를 타고 고창터미널으로 향했다. 이제야 해가 넘어가 서쪽 하늘이 말도 못하게 붉으스름했다. 안해와 함께 상의해서 부안으로 가기로 했다. 부안행 버스에서 다시 쏟아지는 잠! 그러니 40km도 순식간이다. 걸으면 하루도 모자랄 정도로 긴 거리인데... 도시로 돌아가면 금방 익숙해지겠지만 지금은 이 빠른 속도에 머리가 어지럽다.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역시나 숙소를 구하는 일이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처럼 숙소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부안은 변산반도를 끼고 있어서 늘 관광객들이 많기 때문에 숙박업소가 턱없이 부족한 편이었다. 괜찮은 곳은 성수기라는 명목으로 턱없이 높은 값을 불러서 돌아나올 수 밖에 없었다. 터미널 근처의 허름한 숙소도 손님이 곧 다 찬다는 아주머니의 다그침과 재촉 속에서 가격 흥정 한 번 못해 보고 겨우 구했다.

   안해와 늦은 저녁을, 푸짐하게 먹었다. 함께 피시방에도 들러 서재에 들어와 놀았다. 요즘 나의 서재는 여전히 할랑하다. 내 서재에 여행 일정을 잠깐 기록하는 것 외에는 아내도, 나도 피시방에서 별로 할 일이 없다. 내일은 아침 일찍 내소사에 다녀오기로 했다. 가는 길에 곰소의 염전도 보고,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과 대웅보전의 단청은 여전한지 보고 오기로 했다.

   다음날 부안터미널 앞에서 이제는 전국적으로 흔한 김밥OO에서 아침을 먹고 군내버스를 탔다. 냉방차가 아니라서 더 반갑다. 버스는 서너 명을 태우고 좁은 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나는 곰소의 염전 못 가서 눈을 떴다. 곰소의 염전은 금방이라도 문을 닫을 것처럼 힘겨워 보인다. 빗방울도 후두둑 날리는 날씨라 더욱 염전이 활기가 없어 보였다. 버스는 염전도 무심한 듯 그냥 지나치고, 이제 버스는 안해와 나의 승용차가 되어 버렸다.

   내소사의 전나무 숲은 여전히 어지러운 사람의 마음을 씻어주고 있었고, 숲길은 약간 굽어 있어서 더욱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윽함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라도 절 입구에 들어설 때쯤이면 나무가 뿜는 피톤치드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절구경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내소사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딱 알맞은 거리에 절의 천왕문이 단풍나무 숲길 너머로 보였다.

   내소사는 지리산의 천은사처럼, 아담한 돌담이 매력적인, 사람의 마음을 편안한게 이끌어 주는 절집이다. 절집의 분위기뿐만 아니라 단청이 바래서 더 한 대웅보전의 고색창연함이야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연꽃밭 같은 대웅보전의 꽃창살의 화려함은 나라 안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설성당과 붙어 있는 요사채는 건물로도 특이하지만, 뒤로 올려다 뵈는 산세와 무척 잘 어울려 사진 찍기에 좋다. 천왕문을 건너면 바로 만나게 되는 나무인 입암마을 당산나무도 아직 할아버지 답지 않게 씩씩하다. 이렇듯 눈길이 가는 곳 아무 곳이라도 흐뭇한 웃음을 떠올리게 하는 절이 바로 내소사였다.

   짧은 내소사 여행을 뒤로 하고 다시 부안으로 가야할 시간이었다. 갔던 길을 되짚어 부안으로 돌아왔으나 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다. 안해가 부산으로 가야할 시간. 고창가는 버스 시간에 맞춰 간단하게 토스트를 점심을 먹었다. 안해가 버스에 올랐다. 아마도 부산까지는 여섯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안해가 떠나고 부안에서 하루를 더 보내고 김제로 올라갈까 하다가 숙박료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가까운 김제시로 가기로 했다.

   김제까지 버스로는 약 20분이 걸렸다. 오는 길에 창밖으로 김제의 너른 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정말 지평선이 보였다.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라더니 정말 논두렁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득했다. 역시나 터미널 근처에 숙소를 구했다. 오늘 저녁이면 또다른 동행자가 서울에서 내려올 것이라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의주 선생님. 서울에서 8.15 통일대축전 행사를 마치고 연극 한 편 보고 바로 김제로 달려왔다. 저녁이 부실했는지 야식으로 라면을 먹으며 지금껏 밀린 이야기를 했다. 보충수업이 끝나고, 전국 연극 교사 연수(원주)에 갔다가 8.15 통일 행사에 참가하고 오는 길이라고 한다.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 앞으로의 여행은 의주 선생님과 동행이다. 더욱 흥미진진하고 끄집어낼 생각들이 많을 것이다. 부푼 기대를 안고 잠이 들었다.

- 휴, 이틀 동안의 여행기가 너무 길었다. 이걸 끝까지 읽는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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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5-08-15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양성..이름 이쁘네요: ) 모양성..왜 이모양이야~;

푸른나무 2005-08-17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까지 읽는 사람이 제법 될것 같은데요..^^
저의 여행에 비하면 풍부한 정보와 감동 여행다운 여행의 재미에 신나게 읽어내려갑니다.
저는 역시나 몸이 비대해져서 어떻게 떨쳐버릴까 생각중...헝클어진 리듬...
중간중간 동행자를 랑데부하며 하는 여행 참 재미있겠네요. 끝까지 좋은 여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