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동행자가 깨웠다. 내가 자고 있는 사이, 인터넷을 했나 보다. 좋은 계획이 세웠다고 한다. 오늘은 도보 대신에 차를 타고 가자고 했다. 동행자가 세운 계획은, 익산에서 군산까지는 전라선 기차를 타고 가서, 군산에서 점심을 먹고, 군산항에서 배를 타고 충남 장항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보령(대천)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어차피 정해진 일정이 있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선선히 그러자고 했다. 이렇게 동행자가 계획까지 세워주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오늘 세운 계획은 생생하게 실행해야겠지. 우선 근사한 숙소를 나올 때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번 여행 중에 언제 다시 이렇게 괜찮은 숙소에서 자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숙소에서 익산역까지는 10분 정도 걸으면 되는 가까운 거리다. 익산역은 KTX가 다닌다고 했나 그래서 한적한 시골역이 아니라, 꽤 큰 편이었다.

   빵과 우유로 서둘러 아침을 먹고는 군산행 기차를 탔다. 김제 평야가 다시 한 번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시원한 기차에서 창밖을 바라보니 마음도 한결 여유로와서, 걸을 때와는 달리 저 햇볕이 우리를 먹여살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초록의 들판을 보며 시인 이상은 '권태'롭다고 했는가? 넓은 들판이 주는 시원함과는 다른,  푸른 벌판에서 고통스러운 삶이 연상되었다면 여행객의 객적은 한담쯤으로 여길러나?

   기차는 들판을 가로질러, 전북 제 2의 도시라는 군산에 닿았다. 익산을 새도시라는 느낌을 많이 주던데, 군산은 이미 오래 전에 전성기를 지난 늙수그레한 아저씨의 이미지였다. 젊었을 때는 끓는 피를 주체하지 못해 흥청망청했을 것만 같은 동네 아저씨 한 분씩은 꼭 있지 않은가? 아마도, 그런---

   동행자의 호기심으로 '지정환임실치즈피자'를 찾아나섰다. 군산역에서 1시간을 걸어 겨우 도착한 시내에서 그 피자집을 찾았고, 거기서 행복한 마음으로 아직 이른, 점심을 먹었다. 정말 맛이야 있었든 아니든, 사람은 먹고 싶은 것은 먹어야 좋은 것 같다. 실제로 맛은 어땠는지 물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동행자는 만족하는 것 같았따. 

   이제는 군산항에서 장항으로 가는 도선을 타는 일만 남았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고 군산항 근처로 왔다. '군산항'하면 나는 왜 최민식이 떠오를까? 옛날에 본 드라마 때문일 것 같다. 아무튼 최민식은 그 때 군산항의 이미지에 잘 어울렸던 것 같다. 군산항에서 장항가는 배는 바로 있었다. 비록 15분이었지만, 배를 타는 흔치 않은 경험인지라 선실에 있지 않고 밖으로 나와 앉아 가물거리는 장항읍내와 아득한 군산 앞바다를 바라보았다.

   장항역은 선착장 근처에 있었다. 미리 확인해 둔 장항선 기차시간표에 따라 보령까지 가는 차표를 끊었다. 기차는 쾌적한 실내와 한적한 분위기였지만, 아주 무섭게 서울로 질주하고 있었다. 까마득한 거리를 50분만에 대천역에 닿았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떠나는지 큰 해수욕장이 있는 대천역에 많이 내렸다.

   우리는 익숙하게 숙소를 구하려고 했다. 기억을 더듬어서 작년 이곳 보령을 답사할 때 잔 숙소를 찾으려고 제법 걸어다닌 끝에 드디어 그 숙소를 발견하고 3만원을 주고 방을 구했다. 오늘은 차로 다녔기 때문에 오후 4시도 채 되지 않아서 짐을 풀었다. 마냥 풀어지고 싶은 마음을 다잡아서 다시 길을 나서기로 했다.

   오늘 여행의 2부가 시작된 셈이다. 우리가 둘러보려고 하는 곳은 무량사와 성주사터이다. 성주사터는 보령시 성주면에 있는 폐사지이고, 무량사는 부여군 외산면에 있는 절이다. 무량사까지 가는 차는 벌써 떠나버렸지만 폐사지는 저녁에 들러도 되니까 우선 버스를 타고 중간지점까지 가서 차를 얻어타고 무량사까지 가기로 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무사히 중간지점인 성주면에 도착! 여기서 1km 정도만 왼쪽으로 들어가면 성주사터가 있지만 나중에 들르기로 하고 무량사 방향에서 얻어타고 갈 차를 물색했다.

   어렵게 무량사 입구인 외산면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무량사까지는 다시 2km를 걸어야 한다. 햇살은 이제 뉘엿뉘엿 지는데, 허수아비만 멀뚱하게 춤을 추고 있는 사방은 풀벌레 소리만 가득할 뿐, 사람의 흔적을 찾기 쉬운 곳이 아니다.(그래서 무량사가 좋다.) 겨우 아스팔트만 닦인 좁다란 길에 어쩌다 차들이 지나 다니지만, 행색이 꾀죄죄한 우리를 쉽게 차를 태워줄 생각이 없는가 보다.

   절 입구에서 절까지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길이지만, 울창한 숲으로 인해서 깊은 골짜기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절 입구에서 무난하게 생긴 당간지주가 오는 객을 맞는다. 바로 천왕문을 들어서서 절 안쪽을 바라보면 정면에 석등, 5층석탑, 극락전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연꽃으로 하대석을 아름답게 장식한 보물 석등과 정림사지 5층 석탑을 그대로 빼닮은 백제 형식-아마도 백제 초기 목탑 형식의 석탑-의 당당한 보물 5층 석탑과 외형은 화엄사 각황전처럼 2층으로 짜올린 팔작지붕이지만 건물의 안은 통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보물 극락전이 다채로운 색깔을 지닌 채 한 줄로 서 있다. 더구나 절 한 켠에 이 석등과 석탑과 극락전을 포근하게 감싸 안거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것 같은 아름드리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더욱 운치가 있다. 무량사는 늦은 오후 다른 답사객이 다 떠난 뒤에 친한 사람이랑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둘러보면 더욱 좋을 그런 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량사를 내려와 다시 버스가 다니는 마을까지 걸었다. 이제는 해가 많이 기울어 어스름이 곱게 깔리는 것 같다. 순간 순간 다른 것은 눈에 띌 만큼 빨리 변해도 길은 변함이 없다. 고맙다. 외산면의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기엔 시간이 꽤 남았다. 또 차를 얻어타고, 성주면까지 왔다.

   이제는 아픈 다리를 끌고 터벅터벅 걸어 성주사(聖住寺)터에 닿았다. 작년에 왔을 때는 가랑비가 뿌렸는데 이번에는 어두워서 제대로 둘러보는 것이 힘들 정도다. 그래도 가운데 우아한 자태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5층 석탑을 다시 보니 반갑고, 5층 석탑을 호위하듯 서 있는 3층 석탑 세 기도 여전한 걸 보니 흐뭇하다. 이곳 성주사는 신라 시대에는 절의 승려들의 공양을 위해 씻은 쌀뜨물이 성주사 앞 성주천을 따라 십리를 내려갔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나라안의 거찰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절이 1400년이 지난 지금, 9천여평의 절터에 풀벌레 소리만 무성할 뿐이었다. 폐사지에 선 우리는 끝내, 우리의 삶도 이렇게 쓸쓸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운 좋게도 성주사터에서 보령까지 태워주시는 분이 있어 시내에 들어왔고, 그 분의 소개로 맛난 청국장 백반집을 찾아가 저녁까지 넉넉하게 먹고 나서야 하루 일과가 끝났다. 답사가 있는 여행이라 힘은 더 들어도, 운치 있다고 생각하련다.

   내일은 어디에서 이 여행기를 쓰고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