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c2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민희 옮김, 한창우 감수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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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더니스는 발랄한 학자이며 저술가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쓸 수 있는 학자는 흔하지 않다. 물리학에 관심있는 초보자들에게 더없이 유익한 책이다. 책이라기보다는 한편의 다큐멘터리 필름이나 재미난 영화 같은 글이다. 나는 이 책이 보여주는 글쓰기 방식이 영화적 글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전체의 구성 자체가 한편의 영화의 시작과 끝처럼 느껴진다.

E=mc2라는 간단하면서도 위대한 공식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양한 과학사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거의 신적으로 다루던 인물들도 포함된다. 페러데이, 라부와지에, 카시니, 맥스웰, 에밀리 뒤 샤틀레, 볼테르, 뉴턴, 하이젠베르크, 호펜하이머, 마이트너, 세실리아 페인, 프레드 호일, 찬드라세카르, 그리고 아인슈타인. 이름을 열거하기조차 벅차다. 물론 이 모든 등장인물들 중의 주연은 아인슈타인이다. 그러나 그도 이 과학사의 거대한 흐름 중 한 부분일 뿐이다. 과학은 끝없는 가설과 검증, 수정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말년의 아인슈타인은 과학사의 조명에서 약간 비껴나 있다는 느낌조차 들었다.

과학사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세속의 인간과 다를 바 없다. 과학은 진공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사의 한 부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보니 그럴 수 밖에. 인간과 역사, 사회를 벗어나는 인간의 창조물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에밀리 뒤 샤틀레와 마담 퀴리, 세실리아 페인, 마이트너 같은 시대를 앞서간 여성과학자들의 삶은 무수한 고뇌 속에서도 몰두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것 때문에 행복했을 것 같다.  더 찬찬히 한번 더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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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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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렇다. 바로 그 브라이슨이다. <나를 부르는 숲>을 쓴 그 브라이슨이다" 이게 이 책의 홍보문구 중 하나였다. <나를 부르는 숲>을 읽어본 사람은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알 것이다. 자유롭고 비판적이고, 유머러스한 지성의 소유자인 브라이슨의 글을 읽어본 사람은 그의 글에 매료되게 되어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여행작가인 브라이슨이 쓴 '과학교양서'다. 정확한 번역어는 <거의 모든 것의 간단한 역사>가 되겠다. 아니면 소사(小史)라고 해도 되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서 탐색한 인간의 지식사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연과학적 지식에 대해서 거의 다 다루고 있다. 브라이슨이 뒤에 붙인 참고문헌목록을 대강 헤아려보니 300권 정도 될 것 같다. 그가 이 일을 하는데는 3년 정도 걸렸단다. 읽고, 문답하고, 여행하고, 글을 쓰는데 걸린 시간이 그 정도다. 책속에 도표나 그림, 사진이 하나도 없으니 어쩌면 글쓰기는 쉬웠을 수도 있겠다. 거꾸로 본다면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순전히 글로 모든 것을 설명해내야 하니 말이다. 여하튼 그는 이 일을 아주 성공적으로 해냈다. 원자세계에서 세포, 우주, 공기, 물, 심해, 빙하기와 공룡시대, 호모 에렉투스에 이르기까지 거의(nearly) 다루지 않는 영역이 없을 정도다. 그러다보니 수박겉핥기식으로 대충대충일수도 있겠는데, 브라이슨은 핵심을 잘 짚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자기가 공부해서 이해한만큼만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신뢰가 간다. 고등학교 때까지 과학교육을 받은 정도라면 이 책을 읽고서 머리 속 지식을 재조정하고 보충하면서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이 책은 개론서이다보니 자연과학의 다른 영역을 더 읽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생물학 쪽의 책들을 더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포의 세계는 정말 흥미를 당겼다.

브라이슨은 여행작가답게, 이 책을 책들의 무덤 속에서만 쓰지 않고 모든 자료를 답파하고 필요한 곳을 직접 찾아가서 전문가와 비전문가 모두를 만난 뒤에 썼다. 그래서 더욱 실감이 난다. 브라이슨의 다른 책이 그렇듯이 곳곳에 땀과 고뇌의 흔적이 배어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옐로스톤국립공원을 묘사한 부분은 영락없는 다큐멘터리다. 나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필름이나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을 떠올렸다.

결론부분인 제30장의 제목은 '안녕'이다. 왜 그런가 했더니 '멸종'에대한 이야기였다. 인간이라는 이 특별한 종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사명에 대한 이야기다. 지구라는 행성자체 뿐 아니라 그 안에 사는 다종다양한 생명체들의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서 인간이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도도새는 최악의 경우였다. 인간이 다른 생물들에게 근본적으로 나쁜 존재일수도 있다는 의문은 다음의 수치로 표현된다. 생물의 역사전체를 통틀어서 지구의 멸종 속도는 4년마다 평균 한 종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오늘날 인간에 의한 멸종은 그보다 최대 12만배나 된다는 거다. 결국 인간의 지구의 암덩어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기성찰이 필요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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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학의 화술 오디세이
최병학 지음 / 아침기획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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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서 이 책에 대한 소개가 담긴 최병학님의 이야기를 보았을 때 눈이 번쩍 띄었다. 왜냐하면 이 책은 내 고민의 핵심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즈음의 내 화두는 '말과 글'이다. 어떻게 해야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쓸 것인가. 말에 관한 학문이 있다면 그것은 화술, 수사학이 되겠다. 글쓴이는 연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에 재미있게 참여하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 그 방법은 무엇이냐? 따지고 보면 다 아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낭독이 유일한 대안이다. 큰 소리로 글을 읽는 연습을 하루에 30분 정도씩 6개월쯤만 하면 누구나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확신에 찬 이야기다. 나도 그래서 혹했던 것이고. 사실 나도 그럴 것이라고 짐작했던 터인데, 누군가가 그것을 다시 확인해주니 반갑고 고마웠다. 이미 나는 시공부나 영어공부도 이 '크게 읽기'라는 방법, 더 나아가 '외우기'라는 방법만이 최고의 길임을 느끼고 있었는데 글쓴이는 그 것을 굳게 해 주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재미'라는 요소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은이는 시시하다고 생각되는 유머,혹은 우스개라도 수집해서 이야기하란다. 올바른 지적이다. 아무리 많은 지식이 머리 속에 들어있다고 자부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소통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상대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지식이 아니라 얼어있는 지식이다. 그렇지. 얼어있는 지식. 좀 더 실없어지고, 더 가벼워져라. 그래서 실수도 좀 많이 하고 그렇게해서 네 지식창고 속의 냉동지식들을 녹여라. 그 속에 답이 있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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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과 눈과 소리와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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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화작가의 글이라고는 읽은 것이 미야자와 겐지의 <주문이 많은 요리점>이 전부다. 겐지의 동화세계는 환상으로 가득한 것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은 언뜻 이해하기 힘든 세계였다. 그러나 다 읽고 나면 겐지가 그려낸 세계는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을 만큼 강렬하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세계는 겐지와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환상이라고는 전혀 없는데, 그가 그려낸 세계는 또한 너무 강렬하다. 이런 현실도 있구나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다룰 수도 있구나 싶은 것이다.

 

여기에는 다섯 편의 동화가 있다. 동화라기보다는 소설이라고 해야 옳겠다. 한국어판 서문에 소설의 배경이 되는 겐지로의 경험들이 쓰여있다. 소설은 머리 속으로 꾸며낸 이야기라기보다는 글쓴이의 체험이 상당부분 녹아있는 이야기들이다. 일본내의 조선인 이야기, 오키나와의 전쟁경험, 인도네시아 여행, 특수반 아이들, 사춘기 아이들의 학교내 갈등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오키나와 이야기와 조선인 이야기가 전형적인 일본의 소재라고 보면, 나머지는 우리 사회에서도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문제들이다. 다들 쉽게 공감이 갔다. 개인적으로는 <물 이야기>와 <친구>라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 인물들의 개성이 느껴졌다. <물 이야기>에 나오는 이소순의 아버지, <친구>의 주인공 미나코, 이타미, 나라, 요코야마 선생 같은 인물들은 개성이 뚜렷해서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도 머리 속에 그림이 생생하게 남는다. 열대어를 너무 좋아해서 열대어만 바라보고 있는다는 나라는 내가 아는 어떤 아이와도 연결되어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좋은 인연인 것 같다. 안데르센과 린드그렌을 처음 읽었던 때의 그런 마음이 든다. 참 좋은 작가와 만난 느낌 말이다. 올해는 하이타니 겐지로의 작품들에서 좋은 생각들을 많이 건질 것 같다. 숲길을 거닐다가 기막힌 장소를 발견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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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난마 한국경제 - 장하준.정승일의 격정대화
장하준 외 지음, 이종태 엮음 / 부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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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적인 책이다. 정말로 난마같이 얽힌 쟁점들을 잘드는 칼로 슥슥 잘라내는 듯한 통쾌함은 있지만 모든 대화의 주제들이 워낙 첨예한 쟁점들인지라 쉽게 수긍하기도 쉽게 부정하기도 어렵다. 더 공부해야 할 과제들을 한 무더기 던져주는 느낌이다. 박정희의 경제개발, 재벌, 신자유주의, 개혁정책, 사회적대타협 등의 주제들은 우리 사회를 명확하게 거의 둘로 가르는 쟁점들이니 말이다. 차라리 친일파니, 파시즘이니, 한국전쟁이니 하는 주제들을 던져주었다면 쉽게 답을 낼 수 있었을 것 같다. 정치는 쉬워도 경제는 어렵다. 여하튼 이런 주제를 이렇게 직설적으로 제기한 책이 드문 현실에서 보자면 참 유익한 것도 사실이다. 나도 이 얇은 책 덕분에 얻은 학습효과는 컸다.

장하준과 정성일은 우선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상징인 박정희식 경제발전전략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토지개혁을 통한 광범위한 자작농들, 우수하고 성실한 교육인력들이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그와같은 전략이 없었다면 경제발전을 달성하지 못했을 거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국가주도형 경제발전, 재벌육성, 중화학공업화, 관치금융, 저임금, 저곡가 정책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경제발전의 과정에서 희생된 노동자, 농민들의 경우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현실과 과학'의 이름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런 희생없는 경제발전은 자본주의의 역사상 전례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와 같은 국가주도형이 아니라 시장주의적인 방식으로 경제발전을 했다면 우리는 원금을 까먹고 선진국들에게 이자만 대주고 있는 국가가 될 수 밖에 없고, 제대로 된 제조업도 가질 수 없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진단이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쟁점들 모두가 과거에 80년대에 운동권에서 정부정책을 비판하던 그 부분들을 거의 다 뒤집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일면 긍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97년 이후에 극단적인 시장화 정책의 결과  혹독한 저성장, 고실업, 빈부의 양극화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10년 가까운 경험이라는 비교표가 없다면 당연히 저들의 주장에 대해서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을 것이다.

이들은 재벌체제에 대하여 긍정하고, 소액주주운동 같은 재벌비판 운동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재벌을 비판하려다가 자칫하면 외국의 금융자본에게 우리의 중요한 국가기간산업들을 먹잇감으로 넘겨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참여연대나 공정거래위원회, 민노당 같은 재벌비판운동의 선봉에 선 경제학자들, 시민운동은 비판된다. 스웨덴이나 핀란드의 예를 들어서 재벌과 노동, 정부가 서로 대타협하여 공생의 길을 가는 것이 더 낫다는 거지. 우리끼리 싸우다가 잘못하면 국제금융자본에게 '어부지리'의 이익만 보게 만들 수 있다는 거다. 글쎄, 딴은 그말도 맞는 것 같다. 자본에게도 국적이 있으니 그들을 순화시켜 우리사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인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옳은 것 같기도 하고. 헷갈린다.  신문에서 제일 헷갈리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칼럼을 읽을 때다. 서로 다른 입장의 글을 몇 번 보고 나면  누가 옳은지 잘 모르겠더라. 여하튼 스웨덴이나 핀란드를 예로 들면서 그런 길로 가자고 하니, '음 스웨덴 핀란드 같은 복지국가면 더 없이 좋지'싶은데 과연 그게 가능한지는 또 잘 모르겠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명확히 구별짓고,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대목은 나도 전적으로 긍정한다. 그간 대한민국의 정체성으로 지목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이 '반공과 친미'라는 본질을 감추기 위한 껍데기 언설에 불과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안다. 공산주의가 억압하는 것이 자유이고,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보니 그냥 그렇게 자유민주주의가 된 것 아닌가. 여기서 구분하는 자유주의(liberalism)은 역사상의 계보가 있는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다. 막연한 자유예찬론이 아니다. 19세기의 유럽에서 자유주의가 곧 '시장의 자유와 자본의 세계화'를 주장하는 이론임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의 (고전적)자유주의 부르주아 체제는 1914-1919년의 1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붕괴했다는 것은 상식이다. 물론 확실한 사망선고는 1929년의 세계대공황이후부터라고 할 것이다. 전세계적인 황금시대인 1945-1973년까지의 30년 가까운 세월의 경제적 번영은 자유주의가 아닌 자유주의에 대한 억압이라는 토대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요즈음 우리가 목격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는 그러한 자유주의의 부활이다. 거의 사망했다고 믿었던 자유주의가 새로운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이 신자유주의는 시장근본주의가 원래 이름이라고 보면 된다. 글쓴이들은 자유주의를 공격하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세우라고 충고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몇십년간 피흘려 이룩한 이 민주주의가 붕괴할 것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세우고, 시장근본주의에 대해서는 단호한 규제의지를 보여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적은 재벌이나 국가가 아니라 국제금융자본이라는 것이다.  이쯤되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이 책은 나에게 과제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다. 우선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부터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경제학 관련 책들을 많이 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어본다. 대학시절 겉읽기로 보았던 맑스 주의 경제학 책들을 비롯하여, 유명한 경제학자들의 책들도 좀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익했다. 반드시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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