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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9
이기형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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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몇 년 전에 <프레시안>에 실리는 김지하의 회고록 '모로누운 돌부처'을 읽는 것은 그 당시 생활의 재미 중 하나였다. 거기에는 秘史라면 비사라고 할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70년대 민주화운동의 입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김지하이니까 그 운동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참 많이 나왔다. 특히 60-70년대의 박정희 반대 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그룹으로 나오는 것이 이른바 원주캠프이다. 원주의 장일순과 지학순주교를 중심으로 하여 옛날 여운형의 근로인민당 계열 운동가들과 카톨릭의 새로운 운동세력이 결합하여 민주화운동의 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소상히 소개되어 있다. 특히 김지하는 장일순이라는 사람을 정신적, 정치적 지도자로 여기고 있는 대목이 여러 번 나온다.

나는 두 개의 의문이 들었다. 과연 장일순이라는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었고, 여운형이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이었느냐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근로인민당과 여운형이 어떤 사람이냐는 의문이  먼저 나왔다. 과연 그들은 어떤 경향을 지닌 운동세력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노태우 정권 시기에 대학을 다닌 사람인지라 당시의 현대사연구경향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만주의 항일무장투쟁이나 해방 후의 정치사와 대중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그토록 큰 힘을 가진 세력이었던 좌파와 노동운동세력이 왜 저토록 철저히 소멸되었는가 하는 것이 참 의문이었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이니 김남식의 <남로당연구> , 한길사의 <해방전후사의 인식>시리즈는 우리 세대들 모두에게 중요한 토론자료였다.  주위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김일성 아니면 박헌영 하는 식으로 경향을 대별하는 경우가 많았다. 참 쉽지 않은 답이었다. 그 즈음에 나온 것이 강준식의 <적과 동지>라는 일곱권짜리 정치소설이었다. 특이하게도 그 소설은 여운형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박헌영이 상당히 부정적인 정치지도자로 묘사되어 있었다.  <여운형 평전>을 읽고 나니 그 책 생각이 나서 한번 보려고 했더니 절판이었다. 여하튼 당시 우리에게 해방전후사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현미경 같은 것이었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현미경은 다 달랐다.  졸업할 무렵 동구권사회주의가 몰락하고, 92년 대선의 완전한 패배가 있었다.  썰물때의 갯벌 같은 광경들이 보였다. 그 때의 토론과 고민들은 오래 남았다. 과연 우리 민족이 그 불구덩이를 지나지 않고 평화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에 관심을 두다가 보니 몽양이라는 사람의 '좌우합작'이라는 방법과 정치적 처신등이 늘 머리 속에 화두처럼 남게되었다.   

몽양 여운형에 대하여는 대강은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는 모르고 있었다. 처음 몽양을 접한 것은 대학1학년 때 처음 본 정경모선생의 <찢겨진 산하>인가 하는 책이었다. 가상의 공간에서 김구, 여운형, 장준하 선생이 만나서 민족의 현실과 미래에 대하여 대담하는 책이었는데, 내용은 기억이 잘 안나지만 죽은 자들의 대담이라는 형식과 당시로서는 생소한 사람들의 이야기인지라 기억 속에 남았다. 대중적으로도 김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여운형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여운형은 사실상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잊혀진 정치가인 셈이다. 이승만, 김구, 박헌영, 김일성 같은 사람은 잘 알지만 여운형은 잘 모르는 편이다. 박헌영이나 김일성 같은 사람은 우리 형편상 언급하기조차 어려운 편이다. 이승만은 명옥상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세운 동시에 기본부터 혼란의 도가니로 만든 사람이다보니 기억하기가 용이할 것이다.  김구는 임시정부 주석이있고,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 때문에 요즘 시대가 기억하도록 우리에게 추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몽양은 그 정치적인 무게가 이들에 못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참 오랫동안 잊혀져 왔다.  나는 공개적으로 김구를 찬양하는 정치가는 많이 보았지만 몽양을 들먹이는 정치가는 보지 못했다. 자손들이 이북에서 고위직을 지내고 있기 때문이 그 이유일까?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몽양은 경기도 지방에서 태어났으면서 당파로 치자면 소론당파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문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편에 속하는 양반이었던 셈이다. 성년이 되기까지 몽양이 보인 행동들을 보면 본시 대범하고 진보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개화에 대한 신념을 가진 이후로 스스로 단발을 하고, 자기네 집의 종들을 해방시키는 과단성을 보이기도 한다. 이후 몽양의 사상적 궤적에는 기독교(당시에는 참으로 진보적이요, 민족적인 성격을 지닌 분파였다.)와 맑스주의가 포함된다. 그러나 그는 어떠한 사상에도 얽매이지 않는 현실주의자다운 면모가 있었다. 인간을 위한 사상이지 사상을 위한 인간이 아니라는 신념같은 것이 엿보인다. 몽먕을 굳이 사상적으로 분류하자면 중도좌파, 혹은 사회민주주의자 정도 되겠다. 국제적인 연대와 활동의 폭도 대단해서 직접 레닌과 대면한 우리나라의 운동가는 몽양이 몇 손가락에 드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중국혁명쪽에서는 손문과 모택동, 장개석을 직접 만나서 중국과 조선혁명의 긴밀한 연관을 강조하기도 했다.

8.15 해방 이후에 보건대 몽양만큼 당시의 국제정세를 잘 꿰뚫어보고 우리민족이 살아갈 길을 잘 인식한 지도자도 드물었다. 몽양은 미소냉전으로 인하여 우리 민족이 불행하게 될 가능성을 내다보고 남북의 좌우정치세력이 합심하여 국제정세를 주체적으로 이용해서 자주적인 독립국가를 만드는데 불철주야 노력한 사람이었다. 이것은 좌우합작운동이라는 방식으로 드러났지만 결국 극우세력의 테러에 의해 희생된다. 몽양이라는 중도세력의 거두가 사라지자 좌우합작운동은 급속히 그 힘을 잃게 되고, 국제적으로도 미소는 한반도에서 냉전적인 대립을 노골화한다. 결국 한반도에 민주적인 임시정부를 수립하려고 계획했던 미소공동위원회는 결렬되고, 한반도문제는 유엔으로 이관된다. 1948년 남과 북에 각각 다른 분단정부가 수립됨으로써 전쟁은 그 씨앗을 뿌리게 된다. 사실상 1948년부터 한반도는 내전상태로 돌입한다는 것이 현대사연구자들의 결론이다. 백범은 뒤늦게 그 위험을 깨닫고 남북협상에 나서지만 그 역시 친일반민족세력에 뿌리를 둔 극우세력에게 목숨을 잃고 만다. 돌이켜볼수록 통탄스러운 일이다. 이 겨레는 몽양, 백범 같은 민족지도자를 그 제단 위에 바친 댓가로 친일민족반역자들과 이승만 같은 독재자들의 배를 불리는 일만 했던 셈이다. 그 댓가로 우리 민족은 이 땅위에서 처참한 전쟁과 50년이 넘는 동안의 군사적 대립을 맛보아야 했으니 참 역사란 냉정한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몽양이라는 정치가의 현대적인 면모에 주목했다. 몽양이야말로 타고난 민주주의자였다. 이 시대에 몽양 같은 사람이 태어난다고 해도 전혀 옛날 인물 같은 느낌이 나지 않을 사람이 몽양이다. 그만킄 몽양은 당대를 뛰어넘는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사람이 멋있었으면 따르는 사람들이 몽양을 '사랑했다'는 비정치적인 용어까지 썼겠는가. '몽양은 영원한 청춘'이며 '싱싱하고''너무 착한'사람이었다는 표현도 쓴다. 몽양은 지나가듯 만난 사람에게도 참 좋고 든든한 인상을 남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민주노동당이라는 정치세력이 대중의 마음을 얻고 집권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몽양 같은 우리 정치사의 인물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상 민노당은 남조선노동당, 진보당, 근로인민당 같은 50년 전의 대중적 좌파정당들의 맥을 잇고 있는 셈이니 어떤 맥락을 이어야 미래에 성공하는 정당이 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쓴 이기형 선생은 몽양의 열렬한 추종자이면서 시인이다. 그렇다보니 좀 과장한 면이 없지는 않다. 이 책의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사실을 왜곡하지는 않았다. 냉철한 면이 좀 부족할 뿐이다. 430쪽 가까우니 좀 두꺼운 책인데, 나는 참 잘 읽었다. 몽양에 대한 전기가 몇 개 없는 현실에서 우선 몽양을 아는 데는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몽양의 딸인 여연구가 쓴 <나의 아버지 몽양>도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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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신현승 옮김 / 시공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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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프킨의 책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이 책 속에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바의 진실과 처방들이 제시되어 있다. 읽으면서 늘 생각하는 것이 '리프킨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이런 책들을 써낼 수 있을까'이다. 한 분야만 고정해서 써 내는 것이 아니라 현대세계의 다양한 쟁점들에 대해서 놀랄만하게 예리한 분석의 칼을 들이댄다. 리프킨의 책은 책으로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노동의 종말>이 나온 뒤 세계적으로 노동시간 단축 문제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던 것이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머리말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소의 수는 12억 8,000마리로 추산된다. 소의 사육면적은 전 세계 토지의 24%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들은 수억 명을 넉넉히 먹여 살릴 만한 양의 곡식을 먹어치우고 있다. 소의 무게를 전부 합치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의 무게를 능가한다.

머리말 속에 리프킨이 주장하는 내용의 핵심들이 다 들어있다. 그 주장의 핵심들을 몇 가지로 추려본다.

1.소는 지구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다. 소를 키우는 거대한 산업단지는 미국의 서부와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아프리카에 포진하고 있다. 그 곳은 지구의 허파라고 할 수 있는 열대우림이 있는 지역인데, 이곳이 소를 키우기 위한 곡물사료제조를 위해서 불태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아프리카는 급속한 사막화의 길을 걷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가 내뿜는 메탄가스는 지구온난화의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으며, 축산폐수는 지하수 오염의 주요요인이 되고 있다.

2.소고기 섭취로 인하여 음식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위치한 유럽과 북미인들은 각종 성인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또한 축산산업을 위해서 농작물 생산토지를 잠식당한 남미와 중앙 아메리카의 농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거나,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고 있다. 소는 부자나라와 가난한나라의 인민 모두에게 죽음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고 있는 셈이다.

3.소고기 섭취 문화는 계급주의와 인종주의,식민주의,남성우월주의를 고취하는 주요한 이데올로기적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주장만 강한데 있지 않고, 풍부한 자료에 있다. 너무도 생생한 자료를 읽다보면 지은이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은 전부 6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소와 서양문명
2부.미국 서부 정복기
3부.쇠고기의 산업화
4부.배부른 소 떼와 굶주린 사람들
5부.지구환경을 위협하는 소 떼
6부.육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의식구조

3부까지는 서양문명에서 소가 가지는 의미와 미국과 아메리카 대륙의 소고기 산업 성장 과정을 다루고 있다. 4부와 5부는 쇠고기 산업이 미치는 문화적 충격과 지구환경에 대한 위협을 다루고 있다. 6부에서는 육식이 가지는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정말로 햄버거나 쇠고기를 함부로 먹지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먹는 음식 전반에 대해서 새롭게 성찰하는 눈을 가지게 될 것이다. 추천의 말처럼, 우리 지구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육식을 종말시키기 위해서나 쇠고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필수 요소인 현대적인 식생활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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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0-13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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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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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번도 人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다. 늘 國民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되었다. 여기에는 개인, 혹은 사람으로 취급되기보다는 국가의 신민으로 취급되어온 우리들의 역사가 투영되어 있다. 물론 '인민'이라는 말이 잘 안 쓰인 이유에는 북녘의 공산주의자들이 그 말을 즐겨쓴다는 탓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 터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지도이념이 '국가주의' 혹은 '우익 전체주의'였기 때문에 그러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이유가 아닐까.

우리는 제도교육을 받아온 수십년,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아온 수십년 동안 끊임없이 국가우선의 이데올로기에 세뇌되어왔다. 그 이데올로기에는 개인의 행복이라는 생각은 중요하게 간주되지 않았다. 국가가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국가를 위해서 봉사해야만 하는 체제를 쉴새없이 구축해온 것이 우리의 현대사가 아니었나. 지금도 국가우선의 체제라는 성격은 변함이 없다. 남북한 양쪽에 버티고 선 두개의 제도는 이제 '국가를 위한 국가'라는 이념을 기리는 기념물이자 화석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대통령을 가지게 된 남쪽은 체제의 성격이 조금씩 변해왔지만, 북쪽은 여전히 경직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책에는 이와같이 화석이 된 국가인 남북한의 국가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힘이 있다. 참으로 예리한 분석의 도구라고 할까? 글쓴이는 쉽고 재미있게, 때로는 통절하게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우리를 지적인 편력으로 이끈다. 대한민국의 진짜 실체를 드러내는 사건들, 이야깃거리들을 가지고 숨겨진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있다. 그것들은 분노 이전에 슬픔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우리 민족은 참 험한 길을 힘들게도 지나왔구나 하는 애잔함 같은 것 말이다. 이 책에 실린 26편의 이야기들 모두가 시사주간지인 <한겨레21>에 매주 실렸던 것이고, 그 주제 역시 연재 당시의 첨예한 사회적 쟁점들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장님코끼리 만지듯 하다가 우리는 어느새 코끼리라는 존재의 실체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전부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대한민국의 정체를 말할 때 이야기되는 것들 여섯 개가 있다. 유산된 민주주의 혁명, 공화제, 임시정부 계승론, 태극기 탄생의 배경, 단군과 단일민족 신화의 허상, 김두한의 행적들이 논의되고 있다. 2부에서는 친일파와 고문경찰, 군사독재, 6.25전후의 민간인 학살, 일제의 만주국이 대한민국에 남긴 유산들이 논의되고 있다. 3부에서는 보수주의, 좌우대립, 사회주의, 연좌제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4부에서는 미국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주로 다루어진다. 맥아더장군, 정전협정 문제, SOFA협정, 광화문 촛불시위들이 다루어진다. 5부에서는 병영국가 대한민국의 이면인 징병제, 병역기피의 사회사가 다루어진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규정하는 말로 적절한 것이 '이식근대화'와 '압축근대화'이다. 일본과 미국이라는 두 강대국의 문화와 경제건설 경험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 근대 자본주의 경제 건설이다. 또한 급속한 시간의 압축을 통해서 이룩한 도시화, 공업화는 대한민국사회를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회로 만들었다. 도시화 비율이 1960년 28%에서 1995년 78.5%로 진행된 것만 해도 유럽이 150~200년 걸려서 할 것을 30~40년 만에 해치운 놀라운 경험이다. 정작 우리는 그것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시인 김진경은 <30년에 300년을 산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신일 수 있을까>라고 되물었던 적이 있다. 이와 같은 급속한 자본주의적 근대화는 이른바 '산업혁명'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러나 경제의 급속한 변화는 사회구성원의 급속한 계급변동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그것은 곧 정치지형의 새로운 변화를 추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같은 정치의 변화를 겪지 못했다. 이른바 '민주주의혁명'을 우리는 겪어내지 못했다. 그 대신 숱한 '항쟁'들을 겪었다. 4월항쟁(1960년), 5월항쟁(1980년), 6월항쟁(1987년). 이 항쟁들을 통해서나마 우리 역사는 한걸음씩 전진해왔다. 그러나 혁명적 변화를 겪지 못하다보니 낡은 세력들을 청산하지 못하고 아직도 그들을 우리사회의 돈과 권력을 쥐고 흔드는 세력으로 용인해주고 있다. 4.15총선을 지난 이제서야 우리역사는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한 길로 접어든 셈이다.

대한민국의 근저를 구축한 것은 두가지 세력이다. 친일파와 미국. 이 둘은 강력한 결합으로 한반도 남쪽에 강력한 친미반공기지를 건설했다. 여기에는 1945년 해방 이후의 격렬한 좌우대립, 1950-53년의 한국전쟁, 그리고 남한에서 좌파정치세력의 완전한 제거(한홍구 교수에 의하면 멸균실 수준의 반공),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100만명에 이르는), 강력한 군대에 근거한 병영국가의 건설, 극우반동적 정치세력의 활개들이 겹쳐진다. 용서할 수 없는 반민족세력이있던 친일파들이 친미우파적 정치세력으로 복권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 1946년의 신탁통치논쟁이었다. 이 논쟁, 혹은 대립으로 인해서 친일세력들은 정치적 시민권을 회복했다. 여기에는 친일경찰과 만주국군대 출신들을 중용한 미국정의 행위도 한 몫을 했다. 이승만을 정점으로 하는 친미우파세력들은 여기서 더 내달려 남한단독정부수립이라는 도박을 내걸어 승리했다. 1948년에 남북 양쪽에 건설된 국가들은 공히 중간파들이 배제된 분열주의 정권들이었다. 1950년에 일어난 전쟁은 그 싹을 이미 1948년에 배태하고 있었던 셈이다. 내전인 동시에 체제간 이데올로기전쟁일 수 밖에 없었던 이 전쟁은 결과적으로 남북한의 인민들을 '후라이팬을 피하고 보니 불구덩이'라는 말이 들어맞을 만큼 일제시대보다 더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또한 전쟁 중에 벌어진 10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학살'은 인민을 정치의 주인이 아닌 정치의 노예, 혹은 정치의 도망자로 만들었다. 이후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된 정치가 복원된 것은 그 시기의 기억을 지니지 않은 3세대에게서 가능한 일이었다.

한홍구 교수의 대단한 입심은 그의 해박한 역시지식과 주체적인 역사해석 덕분에 더욱 힘이 커졌다. 요소요소를 건드리며 진실을 드러내는 그의 능력에 새삼 경탄한다.  살아있는 역사, 현재를 해석하는 피와 살이 되는 역사, 미래를 위해 버려야할 요소를 깨닫게 해주는 역사를 그는 보여주었다.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비판의 무기가 될 것이고, 과거를 미화하는데 몰두하는 이들에게는 자기 등을 내려치는 죽비같은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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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설탕 두 조각 소년한길 동화 2
미하엘 엔데 지음, 유혜자 옮김 / 한길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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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엔데라는 이름은 몰라도 <모모>라는 책과 <네버엔딩 스토리: 끝없는 이야기>라는 책이름은 들은 적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모모>라는 전영록의 노래를 통해서 처음 '엔데'의 세계에 접한 셈이다. 그때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새를 쫒아가는 시계바늘이다'. 이 노랫말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 말의 의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철부지와 무지개, 시계바늘이 어떻게 하나로 연관되는 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도대체 모모는 무어야? 내 주위에 있는 사람치고 그 가사의 모모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충 생각한 것은 '모모'는 '某某', 즉 '누구누구'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아마 전영록이 좋아하는 어떤 사람인가보다하고 생각했었다.  교사발령을 받고나서 동화의 세계를 접하게 되면서 <모모>라는 책과 엔데라는 작가에 대하여 좀 알아듣게 되었다. ,<모모>가 유명한 책이라고 해서 한번 읽어보려고 샀다. 동화책이 왜 그렇게 두껍던지. 작정하고 읽어보려고 했던 것이 5,6년 전이다. 앞부분을 조금 보다가 손을 놓고 말았다. <모모>는 그렇게 나와는 인연이 없는 채로 우리집 책꽂이에서 잠자고 있다.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이라는 책은 인터넷서점에서 우연히 건진 책이다. 엔데라는 작가의 이름이 나를 끌었고, 적은 부피-92쪽-가 나를 유혹했다. 옳다구나, 이 정도면 한번 볼 만하겠다. 그리고 내 예감은 적중했다. 실물을 보니 부피도 적을 뿐만 아니라, 그림도 많았다. 게다가 글자크기도 크고, 문단간격도 넉넉했다. '한글'에서 편집하면 A4용지 다섯 장도 안 되겠다. 혹시나 해서 뒷표지를 보았더니 초등학교 낮은학년용이다. 흠 이 정도가 내 수준이군. 초등학교 2학년에서 4학년 사이의 권장도서가 내 수준에는 딱 맞다. 5,6학년용 장편동화는 읽기가 좀 어렵다. 벌써 소설적인 장치들이 등장하는 것이 독해가 쉽지 않다. 끈기있게 다 읽어내려고 하면 300쪽짜리 정도 책이라면 이틀이나 사흘 정도는 정신차리고 읽어야 한다. 역시 독서란 괴로운 일이다.

렝켄이란 아이는 어리다. 유치원생이던가? 엄마 아빠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에 성질이 난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하면 감기 걸린다고 안 된다고 하고, 텔레비전을 오래 보면 못 보게 하는 것들에서 욕구불만을 느낀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자기보다 약한 존재가 된다면 자기를 어쩌지 못하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 요정에게서 마법을 빌려 엄마 아빠를 작게 만들어버리고 싶어한다. 그리고 처음 만난 경찰 아저씨에게서 요정이 사는 곳을 알아낸다. 그리고 요정은 렝켄의 소원대로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준다. 그것을 엄마 아빠에게 먹이면 엄마 아빠가 렝켄의 말을 거역할 때마다 몸이 반으로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공짜지만 다음에 찾아올 때는 큰 댓가를 치러야 한다고 요정은 말한다. 렝켄은 또 찾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집에 와서 마법의 설탕 두조각을 엄마 아빠가 먹는 음료수에 탄다. 그리고  정말로 요정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된다. 엄마 아빠는 장난감 침대에서 누워자야할 정도로 작게 된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안돼". 그 순간에 몸은 정말로 반으로 줄어든다. 이 장면이 참 재미있다. 렝켄은 자기 마음대로 먹고, 보고, 씻지도 않고서 엄마 아빠의 큰 침대에서 잔다. 엄마 아빠는 너무 작아져서 고양이에게 쥐로 오인되어서 공격을 받을 정도까지 된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가 된다. 천둥벼락이 치는 밤 렝켄은 무서움에 떨며 엄마 아빠를 찾지만 엄마 아빠는 너무 작아서 렝켄을 도울 수가 없다. 그 때 요정의 편지가 온다. 렝켄은 요정의 편지가 변한 종이비행기를 따라서 요정에게로 간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듣는다. 그러나 그 댓가는 너무 힘든 것이었다. 과연 렝켄은 어떤 댓가를 치렀을까?  마지막은 행복하게 끝난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 갈등을 처리하는 부분이 좀 시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너무 갈등을 첨예하게 해서 위기를 해결하는 식의 이야기구조에 익숙한 탓인가? 어쨋든 이 책은 처음 한 쪽을 넘기는 순간부터 작가의 이야기 덫에 걸린다. 나도 그랬다. 끝날 때까지 이야기의 진행이 궁금해진다. 이런 것이 작가의 이야기 솜씨가 아니겠는가 싶다. 올 여름에는 <모모>에 도전해 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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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왜 바다로 갔을까
과학아이 글, 엄영신.윤정주 그림 / 창비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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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 없이 고래에 대해서 마음이 끌리는 것을 느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큰 동물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코끼리, 공룡, 고래, 하마 같은 덩치 큰 동물들. 나는 고래라는 이 동물에게 정이 갔다. 문득 고래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고래에 대해서 읽은 책이라고는 멜빌의 <모비딕>인데, 그나마도 초반부만 읽다가 그만둔 고등학교 시절 추억이다. 집에 있길래 한번 보려고 했는데, 보기가 쉽지 않았다. 내 눈도 이제 고급스러워졌는지 그림없는 글은 보기가 쉽지 않다.

할 수 없이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서점을 돌아다보면서 얻은 책이 시공사에서 나온 <고래>였다. 그 외에는 창비에서 어린이용으로 나온 이 책과 <라루스 백과사전-고래편>이었다. 모두 다 재미있는 책들이었다. 다만 성인용으로 된 고래에 대한 종합적인 안내서와 우리나라 인근의 고래와 포경산업의 역사에 대한 책자가 없어서 아쉬웠다. 이런 세세한 부분에 관해서는 아직 우리나라의 수준은 한참 늦는구나 싶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고래를 소개하기에 이만한 책자도 없을 것 같다. 여러모로 좋은 책이다. 삽화도 좋고, 내용도 쉽고 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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