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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다녀오는 길에 가게에 들렀다. 아내와 아이가 같이 다녀왔는데, 뜻밖에 커다란 수박이 한 통 들어있었다. 벌써 수박이 제철인 것처럼 나온다. 값도 그렇게 비싸지 않다. 내가 들어보니 무게가 물경 10 kg은 넘을 것 같다. 감기 걸려서 열 난다고 엄마더러 사 달라고 이야기한 모양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수박 먹자고 난리다. 부엌에서 칼로 몇 도막으로 잘랐다. 그랬더니 옆에서 보고 있다가 하는 말이다.
"아빠. 이건 무슨 칼이야."
"응. 이건 부엌갈이다."
"와아. 크다."
평소에는 과일칼로 토마토나 사과 같은 것만 자르다가 오늘은 부엌칼을 쓰는 것을 보니 신기한가 보다.
꼬맹이가 먹기 좋게 작은 크기로 잘라주었더니 맛있게 먹는다.
"양양양양"
정말로 얌얌얌 하면서 먹는다. 우습고 귀엽다.
그러더니 엄마에게 한마디 던진다.
"엄마 먹어봐. 꿀맛이다."
정말 수박이 꿀맛이다. 어찌나 단지. 무슨 설탕을 버무려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보통 우리가 쓰는 말로는 설탕수박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거 완전히 설탕수박이네"했는데, 우리 꼬맹이는 꿀맛이라고 한다. 옳은 말이다. 설탕보다는 꿀이 낫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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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아이가 열이 있더니 드디어는 감기에 걸렸다. 목이 붓고, 몸에서 열이 많이 난다. 겨드랑이와 목은 만져보면 확실히 다른 부위와는 다르게 뜨겁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제 저녁 퇴근하고 아이 엄마와 함께 소아과에 갔다. 병원에 가서 기다리는 중에도 자꾸 아빠에게 와 기댄다. 그래서 가만히 쳐다보았더니 눈이 빨갛다. 열이 많이 나서 그런 탓이다. 평소에는 까만 눈동자만 보이던 녀석인데 눈동자 전체가 약간 흐린 색이었다. 가엾은 생각이 들어서 한마디 했다.
"우리 누리 눈이 빨갛네."
그랬더니 잠시 후에 돌아오는 기막힌 한마디.
"아빠 눈도 빨갛다."
그러고 보니 내 눈도 빨갛다. 퇴근하고 난 뒤라 피곤하면 눈에 핏발이 서곤 하는데, 녀석이 꼭 집어낸 것이다.
말에 관해서는 한수도 지지 않는다. 이것이 이제 겨우 태어난지 40개월을 넘긴 녀석의 내공이다. 한번씩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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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하고 있는데 작은 꼬맹이가 옆에 와서 얼쩡거리다가 엄마 지갑을 발견했다. 손에 쥐는 것을 보고 내가 얼른 지갑을 낚아 채니 이렇게 말한다.
 "아빠. 돈 좀 줘."
 "돈?"
 "응."
지갑을 뒤져보니 동전주머니가 있다. 거기서 10원짜리 동전을 꺼냈다. 다보탑 부분이 나와있는데 깨끗해 보였다.
 "자, 여기 있다."
주면서도 혹시 '이거 싫어. 100원짜리 줘' 할까봐 내심 걱정을 했다. 그런데 돈을 받자 마자 하는 말이 재미있다.
 "와. 황금 돈."
 "그렇네. 황금색이네."
두 말 없이 받아서 간다.
  이제 태어난지 3년하고 4개월이다.  요즘 돈이 무엇인지 알게 된 눈치다. 할머니하고 자주 인근 슈퍼마켓에 가다보니 돈으로 물건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한 달 사이에 '돈돈'하는 소리를 여러번 들었다. 그래도 아직 돈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돈이 편리한 물건이란 것을 깨달은 정도가 아닐까 싶다.
 
얼마전에는 할머니들 경로당에 놀러갔다가 용돈을 얻어온 모양이다. 늘 매고 다니는 가방에서 돈을 꺼내면서 "할머니들이 돈 줬다. 여기" 하면서 자랑을 한다. 천원짜리 종이돈이 세장이나 된다. 내가 얼른 받아 챙기면서 "이건 아빠가 가지고 있다가 누리 맛있는 거 사 줄게" 했다. 두말 없이 "응" 한다. "응" 하는 소리는 얼마나 귀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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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는 김치가 매워서 물에 씻어서 먹는다. 고추가루가 다 없어진 백김치를 참 맛있게 먹는다. 그런데 할머니가 늘 집에서 아침이나 점심을 먹이는 까닭에 안 좋은 버릇이 하나 생겼다. 할머니는 김치를 손으로 찟는 것을 예사롭게 한다. 옛날 할머니들은 원래 손을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누리가 이 버릇을 배웠다.

오늘도 저녁을 먹이는데 김치를 빨아 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 주었다. 그것을 밥에 얹어 먹는데, 젓가락이 아니라 손을 쓴다. 아무래도 네살짜리 꼬맹이에게는 젓가락 사용이 어려운 법이지. 손을 뻗쳐서 김치를 가져가는 것을 보고 한마디 했다.
"김치를 그렇게 손으로 집어먹으면 안 돼지.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 그 손으로 눈 만지거나 하면 눈이 아파서 울 거잖아. 그리고 냄새도 나고 말이야. 네가 할머니야 응?"
그랬더니 눈치를 슬슬 살핀다. 아빠 목소리가 제법 엄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무의식중에 한번 더 김치를 손으로 집으려는 것을 제지했다. 그랬더니 이제는 알겠다는 투로 젓가락을 사용한다. 그렇게 몇번을 먹었더니 씻어놓은 김치를 다 먹었다. 또 김치를 더 달라고 해서 새로 몇 가닥을 씼어서 작은 접시에 담아주었다. 그리고 밥을 먹는데 김치에 손가락이 뻗치고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또 손으로 김치를 만지지."하고 좀 큰소리를 쳤다.
그 순간에 녀석이 얼마나 놀란 눈치던지. 잠시 몇 초를 꼼짝 안하고 얼어있더니 금새 "으아앙"하고 울어버린다. 황당했다. 울 거까지야 있나 싶은데, 딴에는 심각했던 모양이다.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이 쏟아진다. 갑자기 수도꼭지가 열린 듯 하다. 참 감수성도 좋다. 이렇게 쉽게 울다니 말이야. 부럽다. 아이들은 심각한 것은 속에 담아두지 못하는 모양이다. 바로 이렇게 풀어야한다. 우는 품이 귀여워서 좀 보고 있다가 달랬다.
"아빠가 혼내니까 무서웠구나."하니 더 크게 운다.
눈물을 닦아 주고 나서
"아빠가 혼내니까 많이 무서웠구나"하니까 그제서야 "으응"한다.
"이제 아빠가 혼내지 않을께. 자, 김치먹자. 아 해봐"하면서 김치를 밥숟갈에 얹어서 떠 먹였다. 그랬더니 받아 먹는다. 그렇게 두번 정도 했다. 1분도 안 되어서 또 신나게 밥을 떠 먹는다.

나중에 내가 또 김치를 빨아서 가져왔다가 너무 큰 가닥이 있어서 자르다가 무심결에 손으로 반을 찢었다. 그랬더니 우리 작은 녀석이 하는 말에 내 가슴이 뜨끔했다.
"아빠. 김치를 손으로 먹으면 안 되잖아."
"으응? 그렇네. 아빠가 깜빡 실수했네. 우리 누리 말이 맞다. 김치를 손으로 먹으면 안 되는데 그렇지?"
"그래."
꼬맹이라고 얕보면 큰 코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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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04-28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가끔 어쩌다 날 잡아서 한번씩은 손으로 찢어서 먹는 것도 좋은데.........
아이가 김치먹는 법을 더 잘 아는군요..호호호~~~!고 녀석 귀여워라..

민달팽이 2006-04-29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30년은 더 나이먹은 나보다 더 고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좋은 날 잡아서 손으로 먹는 자유도 다 같이 만끽하는 기회를 만들어보아야겠습니다.
 

식탁에서 밥 먹다가 누리가 한 소리 한다.
엄마가 밥 먹다가 보리차물을 몇 잔 마시는 것을 보다가 하는 소리다.
"아빠. 엄마가 물 자꾸 먹어. 오줌 싸게."
"하하."

한 마디씩 하는 말이 촌철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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