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
주강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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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하자면 그간 나는 독도 문제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독도문제를 가지고 신나게 떠들어댈 때도 연례행사거니 했다. 내가 세상사에 눈뜬 이후부터 지금까지 30여년을 그렇게 독도는 문제시되어왔던 것이었으니 새삼스레 나도 덩달아 열내기가 뭐했던 것이다.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땅>보다는 한돌의 <홀로 아리랑>이 더 예술성이 있는 노래라서 독도 공식노래는 한돌의 것으로 하는 것이 좋다는 정도가 내 의견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다 무지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독도문제의 역사성과 미래적 가치를 내가 몰랐던 것이다. 최근에 노무현 대통령이 고이즈미 전 일본총리에게 제안했었다는 '동해를 평화의바다로 부르자'는 구상도 어찌보면 그가 독도문제에 얽힌 복잡한 속내를 잘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지도자나 민중이나 똑같이  너무 우리 주변의 바다에 대해서 모른다. 이 책은 어쩌면 동해와 서해에 얽힌 역사적인 의미를 짚어주는 거의 최초의 책이 아닐까 싶다.

책은 1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다. 독도와 울릉도 문제를 다루고 있는 부분이 모두 네 장으로 앞을 차지하고 있다. 다음으로 왜구문제, 일본과 서양의 교류, 근대일본의 메이지유신과 한반도침략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 네 장으로 중간을 차지한다. 이어서 일본의 동남아시아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장과 임진왜란과 왜성을 다루고 있는 장, 거문도를 무단점거한 영국해군 이야기, 대마도와 이키 섬 이야기가 나온다. 맨 끝에 동해와 일본해에 얽힌 역사적인 기록들을 다루고 있는 장이 마지막 장으로 나온다. 이 정도면 바다를 소재로 한 동아시아의 역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일본은 섬에 대한 욕심이 많은 나라다. 현재 중국과 센가쿠 열도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으며, 이른바 북방 5개섬 문제로 러시아와 오랜 설전을 벌여왔다. 우리 나라와는 독도문제로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왜 일본이 무인도나 다름없는 작은 섬들에 이토록 신경을 쓰고 있는가. 그것은 바다가 가진 가치를 일본이 냉철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는 자원의 보물창고이며, 물류가 움직이는 고속도로다. 일본은 자신들이 가진 땅보다 세배가 넘는 바다를 자국령으로 가지고 있다. 이른바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200해리 영해조항으로 인하여 엄청난 양의 바다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독도를 그렇게 끈질기게 물고늘어지는 것은 바다를 땅과 다름없이 보고 있는 일본의 시각때문이다. 우리는 그에 비해서 바다의 가치에 대하여 일본만큼의 인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조선건국 이후 700여년 가까운 역사동안 우리는 바다에 대하여 덜 의식하고 살아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주강현은 여말선초에 동아시아 바다에서 기승을 부린 왜구 때문이라고 말한다. 왜구는 일본의 지배세력과는 약간 거리를 두고있는 독자적인 해양세력이라고 한다. 14세기무렵부터 동아시아 바다를 지배하면서 명나라와 고려, 조선을 노략질해왔다. 그 때문에 조선정부는 섬을 비우는 ‘공도정책’을 실시해왔다. 울릉도와 완도, 진도 같은 섬도 비웠다고 한다. 그만큼 왜구의 노략질이 극심했던 모양이다. 공도정책의 결과로 우리는 섬과 바다에 대해 무지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울릉도는 조선조 내내 공도정책이 유지되는 동안에 고통받는 민중들에게는 이상향으로 인식되어 ‘동해의 이상향 삼봉도’라고 불렸던 모양이다.


이렇게 조선조정이 공도정책을 실시하는 동안에 우리에게 울릉도와 독도는 사실상 잊혀진 섬이 되어있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 대마도 사람들이었다. 수시로 울릉도를 자기네 영토로 지배하려는 야욕을 보였다. 여기에 쐐기를 박은 사람이 있었으니 숙종 때 동래의 어부인 안용복이었다. 안용복 사건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올 정도로 당대의 조일간 왜교분쟁을 야기시켰다. 주강현은 안용복을 하늘이 낸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안용복은 울릉도와 독도의 영토문제를 제기해서 외교적 매듭을 지은 사람이다. 평범한 어부가 그런 일을 해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조선의 지배세력은 그를 외교문제에 개입했다하여 유배를 보냈다고 하니 봉건지배세력의 통치란 참 어이가 없다. 주강현은 동아시아 바다에서 독도는 바둑으로 치면 화점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만큼 독도를 우리 영토로 사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독도가 가진 경제적, 생태적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그것을 우리가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신흥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이 메이지 유신을 이룬 중추세력은 이른바 ‘삿초동맹’이라는 인물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 삿초동맹이란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동맹이라는 것이다.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모두 변방의 바닷가에 위치한 곳이다. 그런데 그 두 곳에서 일본을 새로운 나라로 변화시킨 혁명세력이 길러지고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그들이 단순히 일본을 근대화시키는 데 머물지 않고, 일본의 대륙침략의 선구가 되었다는 점이다. 1866년에 타결된 삿초동맹은 사카모토 료마의 중재로 기도 다카요시, 사이고 다카모리 등이 당대의 봉건권력인 바쿠후 타도를 위하여 극적으로 밀약한 것이다. 기도 다카요시는 조슈번 출신, 사이고 다카모리는 사쓰마번 출신, 사카모토 료마는 도사번 출신이다. 이 동맹이 바로 메이지 유신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 사람의 후진들이 모두 이토오 히로부미를 비롯한 침략세력들이었다. 모두 육군이나 해군대장들이 되고 식민지총독이 되었던 사람들이었다. 명성황후를 살해한 사람들도 모두 이 출신들이었다. 냉혹한 정신으로 일본의 근대화를 밀어붙이고 조선침략과 중국침략,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자들이 바로 이들의 후예들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유신과 침략의 역사를 너무 모른다.


김교신과 함석헌의 스승으로 유명한 우치무라 간조는 1894년에 발간한 영문판 <일본과 일본인>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일본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두 명을 고르라 한다면, 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사이고 다카모리를 들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의 중세를 통일한 인물이라면, 사이고 다카모리는 메이지유신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둘다 조선정벌을 적극 주장하고 행동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알아도 사이고 다카모리는 모른다. 그만큼 우리가 일본의 근현대사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소리다. 지금 일본의 지배세력은 사실상 2차대전 전범들의 후신이다. 마치 독일에서 나치당의 후예들이 집권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일본은 전후에 식민지와 침략전쟁에 대해서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았고, 내부적으로도 전범세력을 청산하지 못했다. 이것은 미국이 아시아의 반공기지 구축을 위해서 일본내의 우익세력에 손을 내민 것이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일본은 그나마 일본의 전쟁본능을 제어해주고 있던 평화헌법을 바꿀려고 하는 중이다. 일본의 평화와 민주주의 세력은 이미 지리멸렬한 상태다. 이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한겨레>에 기고하는 서경식의 걱정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지금 유럽은 대통합과 평화, 번영의 시대로 가고 있다. 그에 비해서 동아시아는 각국의 민족주의를 자극해서 대립하고 불신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과연 공동의 번영은 가능할 것인가? 또 한번 동아시아의 바다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시대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인가? 굳이 우리가 일본에 대해서 격화된 감정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대로 정확히 알고 있어야 된다. 무지는 힘이 될 수 없다. 올해는 을사늑약 102주년, 해방 62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또다시 침략의 세기를 보내선 안 될 것이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바다를 무시하고 국가를 경영한 나라치고 번영한 나라가 드물다. 우리는 어찌보면 그간 삼면이 바다인 나라인데도 바다를 내륙의 중심지만큼 대우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운의 역사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육지와 해양의 역사를 함께 아우르는 자세를 가지고 공부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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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자누스 2008-12-25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유럽은 대통합과 평화, 번영의 시대로 가고 있다"는 사실과 다른 것 같습니다.
 
반쪽이, 세계오지를 가다 - 만화 오지 탐험, 이색 문화 체험 반쪽이 시리즈 2
최정현 글 그림 / 한겨레출판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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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물안 개구리다. 이 나이가 되도록 남들은 다 가는 해외여행이라고는 가 본 적이 없다. 바다 건너 가 본 곳이라고는 제주도가 유일하다. 아직 울릉도도 못 가 보았다. 특별히 바쁘게 산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주위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해에 한번 정도 나라 밖으로 나가는 것은 기본이다. 중국은 기본이고 일본, 동남아, 미국, 유럽까지 어지간하면 다들 다녀왔더라. 하도 주위에서 해외여행을 다니니까 이제 나도 슬슬 나라밖 구경을 한번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올 겨울방학때는 중국을 한번 다녀올까 싶어서 인터넷을 뒤적거리고 있다.  반쪽이의 오지여행은 여러모로 참고가 되는 책이다. 여행을 안 가더라도 그림보는 재미만 해도 좋다. 배울 것도 많다.

반쪽이가  다닌 곳은 주로 오지국가들이다. 뉴질랜드가 예외라고 볼 정도겠다. 산업화가 진행된 선진국은 거의 없다. 만화의 내용을 보니 여행 목적이 '한국청년해외봉사단'들이 있는 곳을 취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해외봉사라는 것이 살기어려운 나라들에 집중될 수 밖에 없을 것은 당연지사. 여행경로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김포공항-도미니카공화국-페루-파라과이-탄자니아-에티오피아-이집트-우즈베키스탄-피지-뉴질랜드-중국-베트남-파푸아뉴기니-김포공항. 한달쯤 여행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초판 1쇄가 나온 것이 1999년인데, 머리말에 보니 여행간지 1년이 되었다고 했으니 1998년쯤 되는 모양이다. 페루에서 후지모리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는 장면이 있었으니 아마 그 때쯤되겠다.

편에 따라서는 자세하게 그려진 곳이 있고, 간단하게 다룬 곳도 있다. 파푸아뉴기니 같은 나라는 길게 소개되고 있는 데 견주어보면 베트남은 지나치게 간략하다.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의 후진국들을 다녀왔다고 보면 되겠다. 반쪽이 만화이 그렇듯이 슬며시 미소짓게 하는 장면이 많은데 특히 재미있는 부분들은 이과수 폭포 이야기가 나오는 파라과이 편, 마사이족이 나오는 탄자니아 편, 각종 복지정책으로 심심한 천국을 구가하고 있는 뉴질랜드, 700여 언어와 800여 부족이 어울려 사는 파푸아 뉴기니의 원시적인 사람살이가 재미있게 읽혔다.

역시 후진국일수록 여자들이 고생을 많이 한다.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의 대부분 후진국들은 남자들은 놀고 여자들은 뼈빠지게 일하는 풍경을 보여준다. 에티오피아나 이집트 같은 나라에서는  여자들의 할례가 당연시되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여자들이 성형수술을 해서 살을 빼고 몸을 예쁘게 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듯이 그 나라들에서는 여자들의 성기를 할례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취급되고 있다고 한다. 문화란 참 무서운 것이다. 

 역시 제일 가보고 싶은 나라는 뉴질랜드. 완벽한 복지와 자연보호에다 환경오염이라고는 거의 없다고 하니 우리네 정서에서 보면 천국같은 곳이다. 거기 이민 간 우리나라 사람도 많이 증가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너무 바쁜 지옥이라면 거기는 심심한 천국이란다. 속도와 경쟁, 재미에 익숙한 우리 문화에서 보면 그 곳은 절간 같은 곳이겠지. 그래도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여자, 아이, 강아지, 남자 순으로 복지가 진행된다니 대한민국 남자들은 가서 살기가 어려운 곳이겠지. 워낙 남자대접받는 데 익숙하다보니 말이다. 그 밖에 꼭 가고 싶은 나라를 꼽으라면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산도 보고 용맹한 마사이족도 만나보고 싶다. 정말로 마사이워킹으로 걷는지, 사자를 투창 한번으로 잡을 정도로 팔힘이 센지도 한번 확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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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외지사 1 - 우리 시대 삶의 고수들
조용헌 지음, 김홍희 사진 / 정신세계원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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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은 요즘 내 탐구대상 중 한 사람이다. 몇년 전에 유홍준이나 강준만 같은 이들이 혜성처럼 등장해서 독서계를 들쑤셔 놓았듯이 조용헌도 요즘 거기에 버금가는 기세로 책을 써내고 있다. 기억나는 이름만 해도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고수기행>,<사주명리학 이야기>같은 것들이 있다.  우리 옛 전통과 특이한 인물들에 대한 탐구가 주를 이루는데 그 솜씨와 내공이 만만치 않다.

     이 책 <방외지사>1,2권은 두 권을 모두 합쳐서 440여쪽 정도의 두께를 가지고 있다. 왜 나누었는지는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이 책에서는 모두 '방외'를 거니는 이들 13명을 다루고 있다. 1권에서는 '밥걱정을 뛰어넘은 귀거래사'와 '사바세계에서 도를 찾는다'를 주제로 하여 7명의 삶을 다루고 있다. 2권에서는 '정신의 길을 가는 탐험가'와 '우리 곁의 이단자'를 주제로 6명의 삶이 펼쳐져 있다.

      공무원 생활 20년을 접고 은퇴하여 고향집에 돌아온사람 박태후,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강산을 떠도는 시인 이원규, 걱정없이 오로지 백수생활만 해온 처사 강기욱, 산중무술인 기천문의 2대 문주인 박사규, 차잎 냄새만 맡아도 원산지를 알아내는 차맛 품평가 손성구, 역술 하나만으로 가족을 꾸려오고 성공한 부산의 젊은 역술가 박종화, 내과의사이면서도 도를 구해 끊임없이 자신을 수련하는 의사 이동호, 제주도 한라산에서 '이뭣꼬' 화두만 붙들고 30년 세월을 홀로 살아온 대각심, 뗏목을 타고 동해와 서해를 누비는 탐험가이며 교수인 윤명철, 여자의 몸으로 중국의 도가 화산파 23대 장문인으로 등장한 여자 신선 곽종인, 전국의 산하를 오로지 발로만 걸어다닌 신정일, 지리산에서 태어난 뒤 실상사 앞에서 발우만 만드는 지리산의 지킴이 김을생, 나무를 다루는 소목장으로 폐교에서 민족전통의 솜씨를 이어가는 이정곤. 이렇게 열세명이다.

    하나같이 특이한 사람들이다. 지은이 조용헌은 이들을 방외에서 노니는 이들이라 해서 '방외지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처럼 도시와 일터에 몸붙여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삶을 자유롭게 꾸리는 이들이라 이거지. 이 책은 그 자유에 대한 헌사이면서 방내에 사는 이들에 대하 죽비같기도 하다. 네 삶을 여기 한번 비추어 보아라 이거다.

    방외지사들 모두가  결단의 순간이 있을 때 과감히 자르는 힘이 있다. 공무원 생활 20년 뒤 은퇴를 단행하는 이나, 깨달음을 위해 남편과 자식도 버린 이나, 항해를 위해 뗏목을 만들고 거친 바다 위에서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다는 사람이나 모두들 무엇인가에 미친 사람들이다. 물론 빛이 있다면 어둠이 있다. 그게 세상이치. 이들의 삶 뒤에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희생과 뒷받침, 가슴저림이 있을 것이다. 허영호같은 등산가나 김근태같은 민주화운동가의 삶도 이들과 같은 방외의 자유를 추구한 삶이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가까운 이들의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자기의 길을 간다면 희열이 있을지? 그 희열의 정체는 무엇일지 궁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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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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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인도소년 피신 몰리토 파텔의 삶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피신은 인도에서 태어나 풍요로운 소년시절을 보냈다. 온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 가는 중에 배가 침몰한다. 혼자 구명보트에 살아남은 소년은 227일동안이나 태평양을 헤매다가 멕시코 해안에 상륙한다. 그 구명보트에는 호랑이, 하이에나, 얼룩말, 오랑우탄이 같이 타고 있었다. 광고나 뒷표지에는 이 책이 신에 대한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이것이 동물이 인간됨, 인간이 동물됨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꼈다.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은 마치 신처럼 군림하지만 16살의 소년은 자신 속에 내재된 야성을 깨워서 살아남는다. 그가 살아남은 것은 신이 아니라 호랑이 리처드 파커 때문이었다. 리처드 파커라는 호랑이 때문에 파이는 야생의 호모 사피엔스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호랑이는 신의 현신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신화에서 보면 신은 어떤 생물로든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있으니까 말이다.

1부의 인도 폰디체리 지방에서 겪는 가족과 동물원, 학교, 종교 이야기는 차라리 2,3부 보다는 소설 냄새가 많이 난다. 난 차라리 1부가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2부의 태평양 장면은 충격적이어서 빨아들이는 힘이 있었지만 지루하기도 했다. 대화가 없고 오로지 관찰과 생각만 나오는 글은 계속 붙들고 있기가 힘들었다. 사람이 나오지 않고, 대화가 없는 소설은 적막했다. 어찌보면 1부에서 다루는 동물원과 종교 이야기는 태평양에서 겪는 사건들을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갖춘 소도구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야생동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주기 위해 피신의 아버지가 벌였던 일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호랑이가 이렇게 위험한데 피신은 구명보트에서 무려 7개월 이상을 호랑이와 같이 보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나는 문득 <쥬라기 공원>에서 철창에 갇혀있던 티라노사우루스에게 잡아먹히던 염소가 생각났다. 여기서도 희생제물은 염소더군. 피신은 왜 기독교와 힌두교, 이슬람교를 모두 다 받아들인 것일까?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쁨을 가지고 받아들였다. 심지어는 공산주의자 교사의 사고방식도 무리없이 받아들인다. 무신론과 유신론을 골고루 받아들이는 피신의 이 대단한 수용성이 나중에 그를 살아남도록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다의 표류 장면에서 우리는 참 다양한 것들을 배우게 된다. 우선 구명보트에서 살아남는 법을 우리는 배울 수 있다. 어찌보면 시시콜콜하다고 할 정도로 자세히 나와 있다. 바다에서 먹이구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 무엇보다도 특이한 것은 작은 구명보트에서 호랑이와 공존하면서 그를 길들이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어떻게 호랑이를 겁주는지, 그와 경계선을 나누는지, 음식을 나눠먹는지, 배설물을 치우는지 들이 자세하게 묘사되어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무슨 <구명보트에서 호랑이를 길들이고 살아남기>같은 실용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야기의 마지막 반전은 소름끼친다. 이미 맹인들의 만남, 식충섬 이야기에서부터 혼란스러워지던 표류 이야기는 파이 자신의 입을 통해서 전혀 다른 종류의 고백을 뱉어낸다. 호랑이보다 더 무시무시한 사람의 존재. 과연 사람은 사람에게 맹수보다도 더 무서울 수 있는 존재구나 싶어진다. 파이라는 소년의 고난이 가엾고, 또 인간이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는 능력의 불가사의함에 대해서도 감탄하게 된다.  바다에서처럼 우리 삶은 권태와 공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추다. 그래서 살기 위해서는 바쁘게 지내기. 그래야 이겨낼 수 있다. 인생은 우주와 섞여 있고, 아트만은 브라만에 닿는다. 삶은 광활함으로 나아가는 입구이며, 우주를 엿보는 구멍인데 여기 이곳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다. 이 작은 구멍이 우리가 가진 전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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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조 마라톤 스쿨
황영조 지음 / 한언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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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매력적인 운동이다. 마라톤은 달리기의 꽃이다. 그렇지만 달리기는 부상의 위험이 큰 운동이기도 하다. 달리기에 재미를 느끼다보면 어느 순간에 자기 몸을 잊게 되는 순간이 있다. 우리 몸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우리 관절과 근육, 힘줄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부상의 위험에 노출된다. 어떤 사람은 되돌리지 못할 부상을 입기도 한다. 모든 운동이 위험을 가지고 있다지만, 마라톤은 그 정도가 큰 운동이다. 그래도 우리는 마라톤에 도전하고 싶다.  42.195  km를 달린다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우리를 끌어당긴다.

황영조는 이 책에서 시종일관 fun marathon과 maranic(marthon picnic)을 강조한다. 부상당하지 말고, 달리기를 즐기라는 말이다. 마라톤 선수로서 황영조가 겪은 경험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라톤은 기원 자체가 '죽음에 이르는 운동'이다보니, 잘못하면 죽음이나 죽음에 가까운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황영조는 성공적인 마라톤 완주를 위해서 14단계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다. 풀코스 완주를 위해서는 14단계 프로그램을 충실히 밟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각 단계별로 1주씩을 배당한다. 이 한 주일 훈련프로그램을 무난하게 통과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특히 일요일의 '장거리 달리기'를 중요하게 보는데, 여기서 통과를 못하면 그 단계 훈련을 계속 되풀이한다. 그렇게 해서 그 단계에 필요한 힘을 얻게 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무리해서 욕심내면 안된다. 그것은 실패와 부상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보통 1단계에서는 걷기를 위주로 한다. 2단계에서부터 달리기가 시작된다. 이런 식으로 4단계까지 마치면 5 km 달리기에 도전할 수 있다. 5km달리기는 이른바 '건강달리기'라고 해서 보통 사람도 무난하게 할 수 있는 달리기다. 4단계 마무리 테스트는 50분 달리기를 가뿐하게 해낼 수 있으면 통과할 수 있다. 7단계까지 하면 10km달리기에 도전할 수 있다. 90분 달리기를 쉬지 않고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한다. 11단계를 완료하면 하프코스에 도전해볼 수 있고, 풀코스도 천천히 뛰면 할 수 있다. 120분 달리기가 테스트 조건이다. 마지막인 14단계를 마치면 풀코스에 도전할 수 있다. 프로그램대로 충실히 한다면 3-4시간에 완주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른바 서브쓰리(3시간 내 완주)는 못하더라도 거기에 버금가는 정도는 되는 셈이다. 쉬지않고 180분 정도를 달릴 수 있어야 14단계를 통과했다고 할 수 있다. 황영조식 훈련프로그램은 기록향상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꼭 인터벌 훈련을 해야 한다. 5단계부터 시작되는데, 강도가 장난이 아니다. 보통 일주일에 한번 수요일에 하는 데, 발목과 무릎만 튼튼하다면 못해볼 일은 아니겠다.

이 책은 마라톤이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황영조의 마라톤 관련 철학과 방법론이 다 녹아들어있는 느낌이다. 달리기의 매력, 몸의 기초이론, 신발 고르는 법부터 부상예방, 스트레칭까지 골고루 다루고 있어서 꽤 쓸모있다. 홍은택이 우리말로 옮긴 존 빙햄의 <천천히 달려라>를 황영조의 이 책과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존 빙햄의 책은 정말 달리는 것의 본질, 매력, 방법론을 황영조 같은 전문선수가 아닌 일반 동호인의 입장에서 서술한 매력적인 책이다. 존 빙햄에 비하다면 황영조는 아무래도 글쏨씨와 유머감각이 부족해 보인다. 그게 선수의 단점 아닐까. 너무 진지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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