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가토 요코 지음, 윤현명 외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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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서야 저자가 여자교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은연중에 당연히 전쟁을 다루니까 남자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알고보니 여자라서 좀 놀랐다. 이름이 카토 요코인데 왜 짐작도 못했을까? 일본 이름은 익숙하지가 않아서 대충 보고 지나가게 되는 버릇이 있어서 그런가 싶다. 저자는 1960년 생으로 도쿄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현재는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 교수로 있다고 한다.

이 책의 원본은 일본에서 2009년에 나왔다. 아사히 출판사에서 펴냈다.  2007년 마지막 주에 5일간 일본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강의를 토대로 했다. 1년 정도의 시차가 있는 셈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서해문집에서 2018년 1월에 나왔다. 거의 10년의 시차가 있는 셈이다. 현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게 경어체로 쓰였고, 질문과 답변도 그대로 기록했다.


책의 부제는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다. 책은 일본이 개항한 이후에 벌인 5개의 전쟁을 살피고 있다. 책은 서장인 <일본의 근현대사를 생각한다>에서는 루소와 E.H 카를 인용하면서 전쟁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다룬다. 1장은 청일전쟁, 2장은 러일전쟁, 3장은 제1차 세계대전, 4장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5장은 태평양전쟁을 다룬다.


일본은 1868년의 메이지 유신 이후에 처음으로 1894년에 청일전쟁을 벌여서 승리한다. 이로써 일본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화이질서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1904년 러시아와 벌인 러일전쟁으로 구라파의 국제질서에도 강대국의 하나로 인정받는다. 이후에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난 뒤에는 만주를 집어삼키고 중국을 침략하며 마지막에는 세계최강이라는 미국을 상대로 하여 태평양 전쟁까지 벌인다. 한마디로 일본은 전쟁을 통해서 일어나고 전쟁을 통해서 망한 국가였다. 2차대전의 결과 패전국이 된 일본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무력을 포기한 댓가로 경제적 번영을 약속받았고, 이제는 일본과 독일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 2,3위의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물론 중국이 다시 일어서기 전까지였다. 


이 책은 이런 전쟁 자체를 다룬 책이 아니다. 전쟁의 배경과 결과를 자세히 다룬다. 그래서 전쟁사만큼 흥미롭지는 않지만 왜 그런 전쟁이 일어났는가를 알게 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된다. 책에서 인상적인 사람은 두 사람이다. 영국의 케인즈와 중국의 후스다. 케인즈는 1차대전 후 파리강화회의에 영국의 대표단 일원으로 참가한 사람이다. 그는 2차대전이 일어날 수 밖에 없음을 예견했다. 독일에 대한 과도한 전쟁배상금이 결국 독일을 2차 대전이라는 전쟁으로 이끌게 되었음을 <평화의 경제적 결과>라는 책에서 논증한다. 후스는 중국이 일본의 할복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장제스에게 역설한다. 할복을 할 때는 할복한 무사의 목을 뒤에서 쳐주는 다른 무사가 필요하다. 중국은 스스로 국가적 할복을 선택한 일본을 뒤에서 도와줘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일본이 중국대륙을 침략하면 지구전으로 항전하며서 깨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그게 전 세계의 동정을 불러일으켜서 미국과 영국 등이 중국을 돕게 되리라는 것이다. 역사는 그대로 되었다. 이때 왕좌오밍은 다른 논리로 반박한다. 물론 일본을 이길 수 있겠지만, 그 동안에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승기를 잡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한다. 그래서 왕좌오밍은 일본과 협상하는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 역시 그대로 되었다. 결국 왕좌오밍은 중국에서는 민족을 배신한 정치가로 낙인찍혔고, 후스는 공산당에 쫒겨 대만으로 옮겨갔다. 


근대에 일본이 일으킨 동아시아의 전쟁 전체를 조망하는 데는 더없이 좋은 책인 것 같다. 다만 전쟁 자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다른 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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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 - 일본 근현대 정신의 뿌리, 요시다 쇼인과 쇼카손주쿠의 학생들
김세진 지음 / 호밀밭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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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할 때는 제목과 표지의 매력도가 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제목을 잘 뽑았다. 표지도 그럴듯하다. 표지의 요시다 쇼인의 초상화는 그렇게 강렬하지는 않지만, 조선의 초상화와는 다른 이질적인 느낌을 주면서 뭔가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책은 우리가 잘 익숙하지 않은 일본의 사상가를 다루고 있다. 요시다 쇼인은 일본에서는 관련 도서만 해도 1,200권 이상이 나와 있을 정도로 대단하게 취급하는 인물인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람을 전혀 모를까? 이토 히로부미는 잘 안다. 그가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한 인물인데다가 안중근 의사에게 암살되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이토는 요시다 쇼인이 만든 사립학교인 쇼카 손주쿠의 학생이었다. 또한 일본제국군대를 만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야마가토 아리토모도 요시다 쇼인의 제자다. 이토와 야마가토는 일본의 총리를 지낸 인물이면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이다. 조선에게는 침략의 원흉인 셈이다. 


요시다 쇼인은 불과 30세의 나이에 반역죄로 사형당한 인물이다. 당시 에도막부에 대항해서 천황중심의 정치체제를 만들려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그가 죽은 해는 1859년이다. 미국의 페리제독이 이른바 흑선 4척을 가지고 일본에 개항을 요구한 해는 1853년이다. 1854년 일본은 미국과 조약을 맺으면서 개국의 길로 접어 들었다. 그 전에 이미 동아시아에서는 청나라가 1840년에 일어난 아편전쟁에 패해서 영국에게 불평등 조약을 맺었던 전력이 있었다. 서양세력의 침략이라는 해일이 몰려오고 있었던 시점이다. 일본 내부에서는 개항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개항을 결정한 에도막부에 대항해서 일본천황을 옹립하고자 하는 존왕양이 운동이 시작되었다. 


유명무실했던 천황을 일본의 국체(국가의 핵심)로 삼고자 하는 운동이 조슈번과 사쓰마 번의 동맹(삿초 동맹)을 통해서 거세게 일어났다. 이 운동을 앞장서서 일으킨 선구자가 요시다 쇼인이다. 결국 그는 에도막부를 타도하려다가 자신이 타도되고 만다. 그는 사형당했지만 그를 따르는 제자들은 하나의 정치결사체를 이루어 존왕양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똘똘 뭉쳐 움직이게 된다. 결국 1868년 에도막부는 타도되고 일본은 천황이 통치하는 메이지유신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것이 일본 근대화의 기점이 되는 사건이다. 


올해는 메이지 유신 150돌이 되는 해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을 기념하는 다양한 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비해서 우리는 너무 조용하게 넘어가는 것 같다. 일제강점기와 한국현대사에 대해서는 좀 알지만 일본근현대사에 대해서는 너무 무지했다. 한반도의 최근 100여년 역사는 일본사를 모르면 그 시야가 좁을 수 밖에 없다.특히 식민지의 역사는 식민지 본국의 역사를 모르면 절반도 모르는 셈이다.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도 이웃을 알아야 한다. 이웃은 또 따른 내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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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뭐라고 - 강준만의 글쓰기 특강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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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문학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실용적인 글쓰기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스타일이 아니라 메시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설파하고 있다. 강준만의 글이 늘 그렇듯이 책은 인용으로 가득하다. 때로는 이런 글이 재미없을 때도 있지만, 강준만이 얼마나 성실하고 효율적인 독서가인지 새삼 놀란다.


저자는 글쓰기를 마음, 태도, 행위의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 있다. 저자도 책속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글은 제목이 70% 이상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강준만의 글 제목들은 글의 핵심을 적절하게 제시한다. 몇 개만 골라보겠다. 


작가들이 말하는 글쓰기 고통에 속지마라. 생각이 있어 쓰는 게 아니라 써야 생각한다."뭐 어때?"하면서 뻔뻔해져라. 글쓰기를 소확행 취미로 삼아라. 글의 전체 그림을 미리 한 번 그려보라. 인용은 강준만처럼 하지 마라. 제목이 글의 70퍼센트를 결정한다. 30초 내에 설명할 수 있는 콘셉트를 제시하라. 통계를 활용하되, 일상적 언어로 제시하라. 뭐든지 반대로 뒤집어 생각하라. 글쓰기가 민주주의를 완성한다. 


이 중에서 내가 인상깊게 보았던 것은 70%와 30초 이야기다. 글은 당연히 내용이 중요하지만, 읽히기 위해서는 제목이 제일 중요하고, 다음으로는 첫 문장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30초 내에 설명할 수 있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지 못하면 그 글은 뼈대가 아직 서 있지 않은 것이다. 이른바 '엘리베이터 스피치'는 엘리베이터가 서기 전 30초 안에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을 설명하는 말하기 방식을 말한다. 글도 그렇다는 말이다. 30초 정도면 문장으로 칠 때 한 문단 정도 분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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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지혈사 소명출판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107
박은식 지음, 김도형 옮김 / 소명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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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식은 1859년 황해도 황주 태생이다. 학문에 입문할 때는 골수 주자학자로 시작했지만, 죽을 무렵에는 양명학에 심취해있었다. 그는 1925년에 망명지 중국 땅에서 죽었다. 그는 교육자, 언론인, 혁명가, 역사학자로서 당대에 이름을 떨친 사람이었다. 오늘날에는 단재 신채호와 더불어 민족주의 역사학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운 역사학자로 추앙된다. 그가 쓴 대표적인 역사책은 <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있다.

 

이 책은 <한국통사>의 속편이다. 박은식은 1915년 상해에서 <한국통사>를 펴낼 때 후기에 독립운동사와 광복사에 대한 언급을 한 바 있다. 결국 그는 1920년에 <한국독립운동사>를 서술한다. 그런데 <한국통사>가 아픈 역사인 것처럼,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피의 역사다. 그래서 중국의 언론인 경정성은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통사는 눈물이오, 독립운동사는 피라. 전날의 눈물이 이미 변하여 두 해에 걸친 혁명의 피가 되고, 오늘의 피는 다시 온 세상의 동정어린 눈물을 널리 얻게 될 것이다(26).”

 

이 책은 상편, 하편, 부록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편은 3.1운동 이전의 역사를 다룬다. 이야기는 갑신정변에서 시작하여 동학농민전쟁, 민비시해, 독립협회, 을사늑약, 군대해산, 의병전쟁, 안중근 의거와 민영환의 순절, 105인 사건 등을 다룬다. 총독부의 조선통치에 대해서는 행정, 사법, 헌병경찰, 동양척식회사, 종교정책, 교육정책, 기업정책 등을 자세히 서술한다.

 

하편은 1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시작된 식민지 세계체제의 변화에 대해서 다룬다. 세계대전은 러시아혁명과 민족자결주의라는 결과물을 가져온다. 조선인민은 3.1운동과 파리강화회의 청원운동, 만주와 노령의 독립전쟁 등으로 독립을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서 몸부림친다. 일제는 여기에 야만적인 살육과 파괴, 고문 등으로 대처하다가 결국에는 한발 물러서 문화통치라는 새로운 식민지정책을 준비한다.

 

부록은 미국 선교사와 언론인, 중국인들의 시각, 미국상원 한국사정보고서 등 당대에 가장 최신의 조선에 대한 정보들을 원문으로 싣고 있다. 부록의 분량도 상당하다. China Press의 페퍼 기자가 쓴 사이토 조선총독 회견도 인상깊다.

 

전작인 <한국통사>는 대원군의 집권부터 시작해서 한일합방까지 진행된 조선의 비극적인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이에 비해서 이 책은 의병투쟁과 일본의 조선통치, 3.1운동의 전개과정과 일제의 야수와 같은 탄압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의병전쟁은 민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시행된 1895년부터 대규모로 진행된다. 그러나 일본군대의 조직적인 탄압에 맞서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의병전쟁이 더욱 큰 규모로 일어난 것은 1907년의 군대해산과 고종퇴위부터이다. 비록 규모는 만 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대한제국의 정규군대였던만큼 군인들이 항일의병에 참여한 것은 전쟁의 양상을 더욱 격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의병전쟁은 일제의 집요한 탄압에 밀려서 결국 1915년 무렵에 국내에서는 열기가 수그러들게 된다. 1915년 북한지역에서 체포된 의병장 채응언의 사진이 이러한 의병전쟁의 종말을 상징한다. 남은 의병들은 결국 만주와 러시아영토로 이동해서 독립투쟁을 계속하게 된다.

 

1910년 한일합방이후 조선인은 완전히 일본에 동화되었다고 믿어졌다. 일본의 총독정치는 수천 명의 헌병경찰이 식민지 조선을 통치하는 말 그대로 군사적 강압통치였다. 이러한 식민통치의 얼음장을 깨뜨린 것은 결국 외부로부터 왔다. 1917117일에 일어난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은 세계전쟁과 식민지체제에 거대한 균열을 일으켰다. 그리고 1년 뒤 191811111차 세계대전은 끝이 났다. 1919118일부터 시작된 파리강화회의는 전쟁의 뒤처리를 하는 협상이었다. 여기에서 미국대통령 윌슨이 내건 민족자결주의라는 원칙은 약소민족과 식민지인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우리 민족운동사의 빛나는 신기원들이 만들어진다. 1919년과 1920년에 우리 민족은 혁명적인 사건들을 만들어냈다. 파리강화회의에 한국대표를 파견하기 위한 만주와 연해주, 미주 동포들의 투쟁은 결국 김규식 일행을 프랑스에 보내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들의 협상을 뒷받침해주기 위한 국내동포들의 시위와 항쟁은 3.1운동이라는 거대한 시위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독립군들은 일제의 탄압에 맞서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라는 독립전쟁사의 전설을 세운다. 

 

박은식의 말처럼 3.1운동은 독립운동사와 세계혁명사의 신기원을 만들어냈다. 맨몸으로 일제의 헌병경찰에 맞선 한국인의 기개는 일본과 중국인을 비롯한 전세계의 인민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죽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민족이 10년 만에 다시 부활한 것이다. 수 개월간 지속된 시위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진행되었다. 대한민국의 역사의 분수령이 된 4.195.18, 6월 항쟁, 촛불혁명의 원형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3.1운동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세계사에 현대적인 의미를 가진 민족으로 다시 태어난 사건이었다. 3.1운동이 있어서 우리는 당당하게 독립된 국가를 요구할 수 있는 민족이 되었다.

 

박은식은 이 책의 상당부분을 3.1운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을 서술하는데 할애한다. 식민지인이었던 우리가 문화적인 방식으로 독립을 요구했다면, 일제는 야만적인 방식으로 독립을 탄압했다. 헌병경찰을 이용해서 평화시위에 총과 칼, 갈고리, 말 등을 사용했다. 저들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야만적인 행위들을 저질렀다. 수많은 이들이 죽고, 다치고, 감옥에 갇힌다. 감옥에서도 온갖 폭력과 만행을 저질러서 인간을 황폐하게 만든다. 수원에서는 교회안에 사람들을 집어넣어놓고 불을 지르고 죽인다.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그런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야수의 군율을 지닌 군대는 그렇게 되는 것일까? 우리도 야만적인 군사독재의 시절에 그와 꼭 같은 국가폭력을 경험했다. 식민지의 폭력은 해방후의 군대와 경찰에 청산되지 않고 그대로 전승된 것일까? 국가는 인민을 자기 권력의 원천이며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짓밟아도 되는 존재라고 본 것일까?

 

박은식은 독립운동이 피의 역사임을 증언한다. 그리고 거듭해서 중국이 제 2의 조선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일본이 만주와 중국을 집어삼키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파멸하는 길이 되리라는 것도 예상한다. 현실의 역사는 그대로 진행된다. 일제는 만주를 집어삼키고 중국도 먹으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아시아와 태평양을 거대한 전쟁터로 만들어 버린다. 수많은 파괴와 살육의 결과로 스스로도 파멸한다. 동아시아를 휩쓴 거대한 전쟁기계는 이제 멈춘 것일까? 전쟁의 원동력이 되었던 일본은 전쟁광들을 버리고 전쟁찬양을 내려놓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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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기회 - 민주당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자서전
엘리자베스 워런 지음, 박산호 옮김 / 에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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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워런은 1949년생이다. 올해로 68세다. 현재 미국 메사추세츠 주의 상원의원이다. 그 전에는 하버드 법대 교수를 지냈다. 파산법 분야의 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월가의 금융권에서 가장 꺼리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금융권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적극 지지하는 인물이다.

이 책은 그의 회고록이다. 법률가라서 그런지 그는 대단히 직설적이고 명확한 문장을 구사한다. 회고록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내가 철든 날을 알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어머니는 혼자서 가정을 꾸려나갈 수 밖에 없었다. 엄마는 50이 가까운 나이에 백화점에 취직한다. 취직 면접을 보러가기 위해 철지난 옷을 입으며 울먹이던 엄마를 보면서 그는 철이 들었다. 세상사를 환상의 안경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맨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이 책에는 이렇게 매력적인 문장들과 일화들이 넘쳐난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방어튀김은 내 입맛엔 별로였지만 브루스가 좋아했다.(195) (브루스는 그의 남편이다.)

-장관은 눈 덮인 산 정상에 서 있는데 나는 사막을 기어가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세상과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은 그렇게 달랐던 것이다.(202)

책의 마지막에 감사의 말이 길게 나오는데, 내가 가장 감동받은 문장은 세 오빠에게 바치는 감사의 말 끝에 나오는 부분이다. 워런은 위로 세 오빠가 있는 막내딸이다.

-이 세 오빠와 함께 살면서 어렸을 때부터 나는 뒤에 남아 사라지든가, 아니면 식탁에서 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걸 배웠다.(407)

그는 파산법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뛰어들어서 파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세운다. 1980년대에 광범위하게 일어난 파산은 결국 미국경제가 신자유주의 전성기를 맞아서 기업의 인수합병, 노조파괴 등을 통해서 중산층과 서민경제가 붕괴하는 과정의 반영이었다는 것을 입증해낸다. 파산자들은 도덕적인 문제아들이 아니라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난 인생들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워런은 분노한다.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은 정부가 구해주고, 힘없는 자들만 벌을 받는 형국을 그는 견딜 수 없어 한다.

우여곡절을 거쳐서 2008년 미국금융위기 이후 소비자금융보호국이라는 강력한 금융규제기관의 탄생을 불러온다. 맨 앞장에서 전사가 되어 싸운 것은 워런이었지만,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힘을 모아 미국은 금융권의 무차별적인 유혹과 공격에 내몰린 소비자들을 보호하는 강력한 기관을 만들어 냈다. 우리는 아직 이런 게 없다. 텔레비전만 틀면 나오는 대출광고를 생각해보라. 사뭇 끔찍한 현실이다.

엘리자베스 워런은 말한다.

-진짜 전쟁은 모두 공평하게 세금을 내는가 아니면 서민만 내는가, 바로 이것이다.(410)

-내가 얼마나 간절하게 이 싸움을 하고 싶었는지 생각하곤 했다. (392)

앞으로 다가올 5-10년 정도면 우리나라 현실에 직접 가져다 적용해도 될 만한 내용들이 책 속에 가득하다. 곧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닥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도 워런 상원의원 같은 이들이 필요하다. 오바마 같은 대통령도 필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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