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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겐 이 책도 빚쟁이 같은 책이다. 벌써 두 번이나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책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30쪽 정도 읽다가 말았다. 다른 기막힌 책이 눈에 들어와서 그만 이 책을 버리고 말았다. 기억도 선명하다. 그러다가 한 해 쯤 지난 뒤에 다시 읽으려고 했다. 이 때는 반 정도까지 읽었다. 재미있었다. 감동도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또 책을 중도에 버리고 말았다. 왜 버렸는지는 나도 모른다. 아마 다른 멋진 책이 다가와서 유혹했겠지. 그렇게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던 이 책을 이번에 겨우 읽었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이 책을 보면 마음이 편안하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한번씩 뽑아서 쓰윽 한번 넘겨본다. 아무 구절이나 읽어보고 내가 이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음에 만족한다.
원제목은 '작은 나무의 교육 The education of little tree'이다. 작은 나무는 여섯살짜리 꼬마 체로키 인디언이다. 작은 나무는 아버지 어머니가 죽고 난 뒤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따라서 산 속으로 들어간다. 산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할아버지는 190미터 정도 되는 거구를 지닌 인디언이다. 할아버지는 아일랜드인의 피가 섞인 혼혈 체로키다. 할머니는 순수한 체로키족 출신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자인 작은 나무를 정말로 사랑한다. 지구상 모든 종족들의 조부모가 손자를 사랑하는 그런 방식으로 사랑한다. 그러면서도 아이를 키우는 체로키적인 방식이 있다. 문명의 기준으로 보면 턱없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은나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품 안에서 아무런 부족도 느끼지 못한다. 행복을 느끼고 산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미국의 1929년 대공황을 전후한 때인 것 같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양은 좀 황폐해 보인다. 정부에서는 위스키 제조를 법으로 금하고 있다. 그렇지만 산간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옥수수 농사를 짓기 때문에 옥수수를 팔아서는 겨우 입에 풀칠할 만한 정도 밖의 수입을 얻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농부들은 옥수수를 가공해서 몰래 위스키를 제조해서 판다. 이 때는 금주법의 시대였기 때문에 술을 만드는 것는 좀 돈이 되는 때다. 도시에서는 아마 술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일을 마피아들이 관장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것 같다. 작은 나무의 할아버지는 몰래 위스키를 제조해서 아래 마을의 잡화점에 판다. 그 돈으로 필요한 생필품을 사게 된다. 작은 나무는 어린 나이지만 할아버지의 위스키 제조를 나름대로 돕는다. 할아버지는 작은 나무가 하는 일의 몫을 인정해주고 긍정한다. 정부에서는 이 불법위스키 제조를 뿌리뽑기 위해서 수시로 단속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배꼽을 잡는 일들이 일어난다.
할아버지는 글자를 모른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세상사를 해석하는 방식이 독창적이다. 어찌보면 핵심을 찌르는 말이기도 하다. 할아버지는 뉴욕이란 곳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살 땅이 모자라기 때문에 뉴욕 사람들 중 반 정도는 미쳐 있고, 그래서 총으로 자살하거나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일이 생긴다고 말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글자를 알고,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다. 그렇게 빌린 책으로 작은 나무에게 문자교육을 시킨다. 할머니가 읽어주는 책을 들으면서 할아버지가 보이는 반응이 웃기고 재미있다. 돌난로 앞에 앉아서 책을 읽어주는 할머니, 흔들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할아버지는 상상만 해도 정겹고 재미있다. 인디언은 몽골족이라니 아마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로 상상해도 좋을 듯하다. 물론 이렇게 정겨운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나라에서도 찾기는 참 드물겠지만 말이다.
작은나무가 정부공무원에 의해서 고아원으로 잡혀가는 장면은 소설로 치면 갈등과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평이한 에피소드의 연결 정도에 그치고 있던 이야기는 이 부분에서 갈등으로 치닫는다. 갈등의 해결도 감동적이다. 역시 인디언적인 방식이다. 우직한 지혜가 여기서 발휘된다. 체로키들이 지닌 인간적인 품격에 비하면 백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인격을 지닌 사람들이다. 고아원의 목사는 인디언의 핏줄인 작은 나무를 교육한답시고 막대기로 몸에서 피가 나도록 때린다. 인디언은 악의 씨앗이라는 것이 목사의 신념이다. 그에겐 이승은 선과 악으로 구분되고 저승은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진 곳이다. 할아버지가 이야기하는 이른바 '정치인'을 비롯해서 목사, 공무원,소작인들은 모두가 인격에 어떤 장애를 지닌 사람들처럼 보인다. 이에 비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인디언 동료들, 집에서 키우는 개들은 모두가 고결한 인격을 지닌 신비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전혀 다른 종류의 인류를 느낄 수 있다. 언젠가 <녹색평론>의 김종철 교수는 어떤 글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이야말로 가장 고결한 품성을 지닌 사람들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려서 사랑을 나누면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