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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과 눈과 소리와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일본 동화작가의 글이라고는 읽은 것이 미야자와 겐지의 <주문이 많은 요리점>이 전부다. 겐지의 동화세계는 환상으로 가득한 것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은 언뜻 이해하기 힘든 세계였다. 그러나 다 읽고 나면 겐지가 그려낸 세계는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을 만큼 강렬하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세계는 겐지와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환상이라고는 전혀 없는데, 그가 그려낸 세계는 또한 너무 강렬하다. 이런 현실도 있구나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다룰 수도 있구나 싶은 것이다.
여기에는 다섯 편의 동화가 있다. 동화라기보다는 소설이라고 해야 옳겠다. 한국어판 서문에 소설의 배경이 되는 겐지로의 경험들이 쓰여있다. 소설은 머리 속으로 꾸며낸 이야기라기보다는 글쓴이의 체험이 상당부분 녹아있는 이야기들이다. 일본내의 조선인 이야기, 오키나와의 전쟁경험, 인도네시아 여행, 특수반 아이들, 사춘기 아이들의 학교내 갈등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오키나와 이야기와 조선인 이야기가 전형적인 일본의 소재라고 보면, 나머지는 우리 사회에서도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문제들이다. 다들 쉽게 공감이 갔다. 개인적으로는 <물 이야기>와 <친구>라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 인물들의 개성이 느껴졌다. <물 이야기>에 나오는 이소순의 아버지, <친구>의 주인공 미나코, 이타미, 나라, 요코야마 선생 같은 인물들은 개성이 뚜렷해서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도 머리 속에 그림이 생생하게 남는다. 열대어를 너무 좋아해서 열대어만 바라보고 있는다는 나라는 내가 아는 어떤 아이와도 연결되어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좋은 인연인 것 같다. 안데르센과 린드그렌을 처음 읽었던 때의 그런 마음이 든다. 참 좋은 작가와 만난 느낌 말이다. 올해는 하이타니 겐지로의 작품들에서 좋은 생각들을 많이 건질 것 같다. 숲길을 거닐다가 기막힌 장소를 발견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