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에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3
에리히 캐스트너 지음, 장영은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에리히 케스트너의 고향은 독일의 작센 주 드레스덴이다. 그 곳에서 케스트너는 청소년시절까지 살았나보다. 케스트너의 어린시절이 끝나는 시점은 1914년이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행복한 어린시절을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이다. 케스트너가 그리는 드레스덴의 어린시절을 어쩌면 그의 동화 속 이야기들과 많이 닮아 있다. 어머니가 가정집을 개조해서 미용실을 운영했다는 이야긴는 <에밀과 탐정들>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그의 집에 세들어 살았다고 하는 여러 선생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하늘을 나는 교실>의 선생들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어떻든 케스트너의 어린시절은 다양한 추억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의 아버지인 에밀 케스트너는 가죽제품을 만드는 마이스터였지만 공장제품에 밀려서 나중에는 일반 회사의 노동자로 입사해서 살아간다. 가죽제품을 만드는 것은 심심할 때 하는 소일거리로 전락한다. 작가의 어머니인 이다 케스트너는 도시에서 하녀로 살아가다가 결혼을 하지만 힘겨운 살림살이를 꾸려간다. 결혼한지 7년이 지나서나 처음으로 에리히를 낳게 된다. 에리히는 이 집안의 유일한 자식이 된다. 드레스덴에서 이 작은 가정은 어렵게 삶을 꾸려가는데, 그 과정에 에리히는 이 집안의 유일한 기쁨이 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에리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자 한다. 문제는 가난의 벽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 에리히는 사범학교를 들어가서 초등학교 선생이 되고자 한다. 그러다가 졸업을 앞둔 어느날에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길로 돌아서서 다시 대학을 간다. 그 결정을 어머니는 반대없이 지지해준다. 그렇게 해서 에리히는 글쓰는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1900년대 초이다. 그 시대는 수공업자인 마이스터들이 몰락하고 공장이 모든 산업을 장악해나가는 시대다. 말이 서서히 사라지고 자동차가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른바 현대문명의 중추들이 등장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전화, 자동차, 라디오, 텔레비전.  케스트너의 이야기 속에는 이런 것들이 등장하기 전의 과도기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방학이 되면 에리히와 그의 엄마가 2주 동안 도보여행을 떠난 이야기며, 레만 선생과 암벽등반을 하던 이야기 같은 것들이 등장하는데, 사는 모습을 그다지 다르지 않지만 삶에는 좀 더 여유가 있어보인다.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는 이야기가 좀 어수선했다. 어쩐지 어린이용이라기보다는 청소년용이나 성인용 같았다. 린드그렌의 <사라진 나라>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나오는 사건들이나 사회적인 배경들이 아이들이 읽어내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싶다. 5,6학년 아이들에게 읽혀보아야지 알 수 있겠다. 그래도 케스트너의 작품을 즐겨 읽는 사람으로서 작가의 어린시절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라서 참 귀중하게 느끼고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오나르도 다 빈치 평전 - 정신의 비상
찰스 니콜 지음, 안기순 옮김 / 고즈윈 / 200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홍규의 빈센트 반 고흐 전기의 제목은 <내 친구 빈센트>이다. 고흐가 늘 자기를 지칭하기를 빈센트라는 이름을 즐겨썼다는 것이 그 이유다. 고흐의 민중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제목 붙이기다. 나는 다빈치 평전의 독후감 제목을 내 친구 레오나르도라고 써 보았다. 위대한 르네상스인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그야말로 친구로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비범한 천재인 다빈치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뇌하는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레오나르도를 느낄 수 있다. 빈센트가 동생 테오에게 부친 편지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밝혀놓은 것처럼, 레오나르도는 스스로 남긴 수십권의 노트를 통해서 자신의 정신세계를 우리가 엿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 책은 전기를 서술하는 데 레오나르도의 노트를 많이 참조했음을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도 레오나르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는 사생아란 점. 여기에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어떤 정신적 배경이 있다. 예를 들자면 그의 성모자 그림에는 절대 예수의 아버지 요셉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둘째로 그는 르네상스 절정기의 이탈리아인이라는 사실. 셋째로 그는 신체적으로 대단히 준수한 용모를 지녔고,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는 점. 이 점에서 그는 미켈란젤로와 대비된다. 넷째로 그는 왼손잡이라는 사실. 다섯째로 그는 그림만 그린 사람이 아니라 음악과 수학, 해부학, 공학 등 다방면에 걸쳐서 엄청난 호기심과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점. 이런 면에서 레오나르도가 천재라는 것이다. 여섯째로 그는 사색적인 사람이었다는 점. 다혈질이라기보다는 고요히 생각하고 집중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여기서도 그는 미켈란젤로와 대비된다.

레오나르도의 아버지는 피렌체의 정치적 식민지라고 할 만한 도시인 빈치에서 활동한 사람이다. 직업은 공증인인데, 주로 귀족들의 문서를 취급하던 영향력있는 직업이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는법률적으로는 적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혼을 한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대의 상류층들의 결혼은 대부분 집안 간에 재산과 권력을 결합해서 서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거래의 성격이 강했다. 레오나르도는 어린시절에 사생아이지만 집안에서는 유일한 아들로서 (아버지의 본부인이 자식을 못 낳았기 때문) 할아버지나 삼촌 같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컸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렇게 하다가 레오나르도는 청소년 시기에 피렌체의 유명한 미술가인 베로키오의 작업장에 도제로 들어가게 된다. 10년 가까운 도제시절을 보낸 뒤에 레오나르도는 독립해서 자신의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그러나 동성연애 사건인 살타렐리 연애사건을 겪고 난뒤 얼마 후에 피렌체를 떠나버린다. 이 때문에 레오나르도가 동성연애를 했다는 평가가 있는데,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런데 당대에는 젊은 미소년과의 동성애가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거부감을 주지 않고 받아들여지는 사회적인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물론 법률적으로는 금지행위였다고 한다. 거기에 레오나르도가 걸려든 셈이다.

이어서 정착한 곳은 밀라노이다. 그곳은 절대권력자인 루도비코 스포르자의 궁정에 음악가로 고용된다. 이것이 좀 어울리지 않았는데, 알고보니 레오나르도는 수금(바이올린 비슷한 악기)를 잘 연주하는 연주가였다고 한다. 거기다 레오나르도는 스포르자에게 자신을 전쟁무기 제조의 전문가로 소개하는 유명한 소개장을 보냈다. 거기에 보면 레오나르도는 단순히 화가라기보다는 공학자에 더 어울릴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포르자의 궁정에서 있는 동안 레오나르도는 스포르자의 정부들의 초상화를 몇 점 그린다. 유명한 것이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이라고 하는 체칠리아 갈레아니의 초상화이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인데, 보고 있으면 놀랍다. 인물 속에 그 정신이 바로 느껴진다. 레오나르도는 스포르자의 궁정에서 20년 가까이를 보낸다. 거기서 레오나르도는 <최후의 만찬>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기기도 한다. 최후의 만찬은 당대의 그림과는 다른 점을 보여주는데, 그것을 글쓴이는 '역동적인 물결구도'라고 한다.  과연 해설을 보고 난 뒤 그림을 보니 최후의 만찬은 세 사람씩 모인 네 덩어리의 인물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인물들을 감싸고 있는 놀람의 표정들을 다빈치는 절묘하게 잡아내었다. 밀라노에서 레오나르도는 스포르자의 거대한 기마상을 만드는 엄청난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결국에는 완성을 보지 못하고 점토상 상태에서 파괴되는 수모를 겪는다. 여기에는 당대의 국제정치의 상황이 작용한다. 프랑스 국왕이 이탈리아 정치에 개입하고, 여기에 로마교황과 피렌체의 메디치 집안, 밀라노의 스포르자 집안 사이의 치열한 암투 같은 것들에 의해서 서로 침략과 동맹을 계속하기도 한다.

이 와중에 등장하는 인물이 유명한 마키아벨리와 체사르 보르자다. 체사르 보르자는 당대 로마 교황의 사생아였는데, 상당히 냉혹한 권력자였다고 한다. 마키아벨리는 체사르 보르자를 모델로 하여 <군주론>이라는 정치학 책의 고전을 쓰게 된다. 레오나르도는 밀라노에 침입한 프랑스 국왕에 협조하게 되는데, 이것은 말하자면 부역죄 같은 것이다. 나중에 스포르자 집안이 다시 밀라노를 접수하자 레오나르도는 밀라노를 탈출하여 피렌체로 돌아가기도 한다. 나중에 레오나르도는 체사르 보르자의 군사부문 책임자로 일하면서 당대의 전쟁터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느끼게 되는 것이다. 체사르 보르자와 인연은 잠시였다. 체사르 보르자의 아버지인 교황이 죽은 뒤 체사르 보르자는 몰락하게 되고, 레오나르도는 미리 그 낌새를 알아채고 체사르의 군사고문직을 그만둔다. 레오나르도는 결코 권력자에게 충성하지는 않았다. 자기 생존과 작품을 위해서 적절하게 권력자의 힘을 이용할 뿐이었다. 당대 예술가들의 입지를 감안할 때 현명한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레오나르도는 이후에 밀라노와 피렌체를 활동무대로 하면서 <모나리자>같은 불후의 명작을 남기기도 했다. 피렌체에서는 마키아벨리와 함께 시정을 위해서 일을 하기도 했다. 또 미켈란젤로와는 시청벽의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서로 맞은 편에 나누어서 그리기도 했다. 둘 다 전쟁장면을 그리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두 위대한 화가가 서로 경쟁하면서 그리는 풍경은 당대에도 화젯거리였다고 한다. 그 때 미켈란젤로는 레오나르도보다 훨씬 젊은 후배였는데도, 불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속사포처럼 내뱉아버리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60세가 넘은 말년에 레오나르도는 프랑스로 넘어가서 프랑스 국왕에게 의탁한다. 이미 노년의 레오나르도는 위대한 화가일 뿐 아니라 현인으로도 이름이 나서 젊은 프랑스 국왕은 레오나르도를 환대했고, 이 위대한 예술가는 거기서 노년을 보내다가 편안하게 이승을 떠나게 된다. 이 때 나이가 68세였다. 가족은 없었고, 유산은 모두 가족이나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뜻밖에 레오나르도는 완성된 작품을 얼마 남기지 않았다.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 수태고지의 그림이나 몇 가지 초상화와 최후의 만찬 같은 작품을 빼면 대부분이 미완성작이거나 소실된 경우가 많다. 미켈란젤로와 비교하면 작품의 양에서 레오나르도는 현격하게 적다. 그런데도 레오나르도가 유명해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모나리자> 도난 사건 때문이라고 한다.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던 모나리자를 이탈리아의 어떤 사람이 훔쳐서 가지고 갔다가 몇 년 뒤에 발각된 사건으로 <모나리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이 되었다고 한다. 도난사건을 통해서 <모나리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되고 만 것이다. 더불어 작가인 레오나르도도 더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모나리자>를 훔친 사람이 애초에는 모나리자를 훔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문제의 그림이 훔쳐서 품에 넣어가기에는 너무 크다 보니, 바로 곁에 있던 작은 작품인 모나리자를 훔쳤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미술품 도난 사건으로는 희대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가 천재라는 증거로 자주 인용되는 것이 그의 노트다. 레오나르도는 그가 평소에 생각한 수많은 것들을 노트에 기록으로 남겼다. 거기에는 수학, 철학, 의학, 미술, 천문학, 군사공학, 문학 등과 같은 레오나르도의 다양한 관심사가 세심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다빈치는 메모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박지원이 말 위에서 붓으로 메모를 했다는 고사가 생각나는 구절이다. 다빈치노트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공학적인 설계그림과 인체해부 그림들이다. 다빈치는 새에 관심이 대단히 많았다고 한다. 사람이 날기 위해서 필요한 온갖 장치를 고안해보았고, 새의 비행방법을 세밀히 관찰하고 연구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헬리콥터와 낙하산의 원리를 발견했다. 또한 장갑차, 잠수함 같은 군사기술에 대해서도 이미 그것들이 실용화되기 전에 고민해보았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고민이 가능했던 것도 그 시대가 르네상스시대라는 국제경쟁의 시대여서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마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다양한 사상들과 기술들이 나온 것처럼 말이다. 다빈치는 또 수십번의 인체해부를 통해서 인체의 비밀에 대해서 탐구한 사람이다. 기본적으로는 미술에 적용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노트에 남아있는 인체해부 그림을 보면 레오나르도는 철저한 관찰자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이나 풍설로 말하는 것을 믿지 않고, 직접 확인해보고 실험해 보는 정신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물론 당대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 한권의 가격은 요즘으로 치면 거의 자동차 가격 비슷한(너무 심한 표현인가. 컴퓨터 한대?) 정도로 아주 비싼 제품이었다. 때문에 집에 책을 소장한다는 것은 우리가 가구나 전자제품을 들여놓을 때 생각하는 그 정도의 고민이 필요한 것이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452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고 1519년 프랑스에서 죽었다. 우리로 치면 조선 초기다.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이 즉위한 때가 1452년이다. 1519년은 중종 14년인데, 역사책을 보니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사림들이 전격적으로 체포되어 사화가 일어난 해이다. 조광조는 죽을 때 38살이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가 죽을 때 68살이었으니 30살 차이가 난다. 이렇게 비교해서 보니 재미있다. 우리나라에서 레오나르도에 버금가는 예술가를 찾으라면 단원 김홍도나 공재 윤두서, 연암 박지원 같은 사람일까? 말을 좋아하고 그림도 많이 그렸다는 점에서는 공재 윤두서와 닮았고, 미술과 음악 모두에 능통했다는 점에서는 단원 김홍도를 닮았다. 메모광이라는 점에서는 연암 박지원을 좀 닮은 것 같다. 이탈리아라는 나라의 역사와 기질 모두가 한반도와 닮아 있다는 점에서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만 총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밀과 탐정들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26
에리히 캐스트너 글, 발터 트리어 그림, 장영은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에밀은 레알슐레 학생으로 나온다. 실업학교 정도로 번역이 되는데, 아마 우리로 치면 실업중학교 정도 되겠다. 독일은 직업과 학문의 길을 일찍 갈라놓는 전통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지방출신 학생인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없는 에밀은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어머니는 미용사다. 어렵게 마련한 돈을 모아서 에밀에게 120마르크라는 큰 돈을 맡겨 베를린에 사시는 외할머니에게 전해드리라고 한다. 에밀은 기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그 돈을 도둑맞고 만다. 베를린에 도착한 순간부터 에밀이 도둑을 잡아서 자기 돈을 찾는 순간까지의 이야기가 손에 땀을 쥐듯이 전개된다.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추리소설에 버금가는 속도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베를린에 사는 에밀의 또래 소년들은 에밀의 사정을 알아차리고 적극 도와준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게 소년들은 조직적으로 에밀을 돕는다. 여기에 어른들은 별 역할이 없다. 모든 일은 소년들의 힘으로 이루어진다.

에밀이라는 소년의 개성이 선명하고, 인품도 훌륭하게 나온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도 애틋하다. 개구쟁이지만 어머니의 희생을 생각해서 스스로 선택해서 모범생이 되는 에밀은 여러모로 아이들이 본받을 만한 요소가 많다. 에밀의 사촌으로 나오는 여자아이 포니 휘트헨과 베를린의 소년들인 교수(별명), 구스타브, 딘스탁 같은 등장인물들도 생생한 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모범적이다. 작가인 케스트너는 어쩌면 이렇게 어린이들의 심리를 잘 알아채고 있는지. 어린시절의 심정을 잊지 않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어린이들과 늘 이야기하고, 놀고, 교제하는 생활을 유지한 것은 아닌지. 케스트너라는 작가의 개성이 궁금해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방정환의 <칠칠단의 비밀>이라는 책을 자꾸 떠올리게 되었다. 비슷한 요소가 참 많았다. 소년들이 떼로 나와서 도둑을 잡는다는 설정도 방정환의 이야기에 나온다. 혹시 방정환의 동화에 케스트너의 작품이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싶은 의문을 가졌다. 책의 속표지를 보니 이 책은 1929년에 초판이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1929년 대공황이 닥치기 전에 나온 책일까? 그 이후에 나왔다면 독일이 얼마나 사정이 어려워졌는지 짐작이 갈 텐데. 1933년에 나찌당이 집권할 정도로 1929년의 대공황은 독일 민주주의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던 것인데. 어떻든, 방정환의 작품과 비교해보면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찌보면 이야기 솜씨는 방정환이 더 나은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워낙에 방정환이 이야기꾼이다보니 책을 손에서 내려놓기 싫을 정도로 긴박한 흐름을 가지고 있었거든. <칠칠단의 비밀>을 한번 더 읽어보아야겠다. 참고로, 방정환의 <동생을 찾아서>는 1925년, <칠칠단의 비밀>은 1926년에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밥보다 만화가 더 좋아 산하어린이 127
이영옥 지음, 박재동 그림 / 산하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도서관에서 빌린 책인데, 가져와서 1시간 만에 다 보았다. 박재동의 일화도 재미있고, 사이사이에 나오는 박재동의 그림과 만화를 보는 재미도 좋았다. 박재동이라는 만화가를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손에 잡으면 금방 읽어치울 것 같다. 박재동 만화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박재동의 힘은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물론 가장 큰 힘은 자기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오늘의 박재동을 있게 한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헌신이 있었더라. 특히 결핵에 걸린 아버지를 뒷수발하면서 자식들을 다 챙겼던 어머니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박재동이 그렇게 구김살 없이 자랄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가장 행복한 순간을 위험한 순간으로 인지하는 박재동의 도전 정신도 본받을 만하다. '내가 위험하다'는 글 제목을 달았는데, 과연 박재동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편안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줄 아는 사람이다. 물론 삶의 내면이야 우리가 다 모르는 것이지만 끊임없이 변신하면서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박재동의 삶은 우리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사표가 될 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사의 천재들
김병기.신정일.이덕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사실 난 이 책을 이가환 때문에 읽게 되었다. 언젠가 읽었던 이덕일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 나온 이가환에 대한 언급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번 읽은 내용은 모두 외워 버린다는 희대의 천재 이가환의 이야기는 누가 들어도 신기할 법하다. 과연 내용을 읽어보니 이가환은 타고난 천재였다. 당대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책을 읽었고, 동시에 거의 모든 책의 내용을 외우고 있었다니 가히 인간 컴퓨터였다. 역시 천재로 소문났던 정약용이 '귀신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의 천재가 이가환이었다. 그러나 이가환의 그러한 박식함으로도 그 시대의 한계를 돌파하기에는 노론이 장악하고 있는 현실정치의 벽이 너무 높았다. 기호남인들의 후원자이기도 했던 정조의 죽음이후에 정약용을 비롯하여 이가환, 권철신, 정약전, 이승훈들은 죽거나 귀양가는 불행을 당한다. 이가환은 노론에 정면으로 대항한 이잠의 후손이라는 이유, 천주교도라는 이유로 정조 사후 노론의 일당독재 시기에 죽임을 당한다. 향년 61세였다.

이가환 말고도 새로 알게 된 인물들이 있고,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들도 있다. 이벽에 대한 글과 정철에 대한 글이 인상적이었다. 역사책에서는 천주교를 전교한 인물 정도로 여겨지는 이벽이나 이승훈 같은 인물들이 당대 지식인들의 세계에서는 대단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었다는 점을 알게 된다. 특히 이벽은 비범한 인물로 나온다. 이벽의 조상은 소현세자가 중국에 볼모로 잡혀가 있을 때 청나라에서 세자를 섬기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 때 소현세자가 조선으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천주교 관계 서적들이 이벽의 집안에 전승되고 있었던 것을 이벽이 스스로 읽고 '자생적인 천주교인'이 된 것이다. 역사상 신부의 전교없이 자생적으로 천주교인이 된 사례는 이벽의 경우가 유일하다고 한다. 이벽은 그렇게 스스로 천주교인이 되어서 이승훈을 중국에 보내서 천주교회당에서 영세를 받도록 한다. 그렇게 해서 이벽은 조선 최초의 천주교 조직을 꾸리고 이끌어간다.  이벽은 정약용 형제의 큰 형인 정약현의 처남이다. 정약용과는 사돈관계가 된다. 유명한 천진암 강학회를 했을 때 참가했던 선비들의 나이는 권철신 44살, 이벽 26살, 이승훈 24살, 정약전 22살, 정약종 20살, 정약용 18살, 이총억 16살이었다고 한다. 성호 이익의 학문을 추종하던 기호 남인의 자제들이 이벽이라는 인물 때문에 대부분 천주교라는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나중에 이것이 씨앗이 되어 이 모임에 참가했던 선비들 대부분이 죽거나 귀양가는 처참한 처지에 빠지게 된다. 정약용은 <녹암 권철신 묘지명>에서 "나는 이벽을 추종하였고, 나의 형 정약전은 아주 일찍부터 이벽을 추종하였다. 뿐만 아니라 권일신은 열성적으로 이벽을 추종하였으며, 이가환 역시 이벽을 추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약용이 이벽을 따르고 존경했던 이야기들이 여러 곳에 나온다. 결국 이벽은 을사박해 후 32살의 나이로 죽게 된다. 문중의 강권에도 불구하고 천주교신앙을 지키려던 이벽은 결국 단식 14일 만에 탈진한 채 숨을 거둔다. 1785년 봄의 일이다. 경주 이씨 문중과 이벽의 아버지 이부만, 젊은 아들 이벽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줄다리기는 옛날일이 아니고 요즈음의 일처럼 느껴진다.

이 책에는 모두 열 세 사람의 천재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삼국시대 인물로는 최치원이 있고, 고려시대에는 이규보와 지눌,서희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김시습, 이이, 정철, 장영실, 유득공, 이가환이 있고, 구한말의 사람으로는 매천 황현과 이상설이 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분량이지만 각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이해하기에는 적절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깊이있게 알고 싶은 사람은 해당 위인의 전기를 읽어보면 될 일이다. 나는 몇 해 전에 나온 <김시습 평전>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니 열 세 사람 중에 전기가 책으로 나온 것이 김시습이나 율곡 이이 정도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용으로 각색한 전기는 많아도 정작 제대로 된 전기는 드문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나마 <김시습 평전> 같은 것이 나온 것도 어찌 보면 이 분야의 좋은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