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트로스

보들레르

 

자주 뱃사람들은 재미삼아

앨버트로스, 그 거대한 바닷새를 잡는다

거칠고 깊은 바다를 가로질러

무심한 보호자인 양 동행해주던 새를.

 

뱃사람들이 갑판 위에 내려놓자마자

이 하늘의 군주, 어색하고 창피하여

커다란 흰 날개를 늘어진 노처럼

애처롭게 질질 끌고 다닌다.

 

이 날개 달린 나그네는 얼마나 꼴사납고 나약한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기민했는데

지금은 얼마나 약하고 어색하고, 심지어 우스꽝스러운가!

어떤 선원은 담뱃대로 부리를 두드리고,

어떤 선원은 절뚝절뚝, 한때 하늘을 날던 불구자의 흉내를 낸다!

 

시인도 이 구름의 지배자 같아

총알이 이르지 못하는 곳에서 폭풍을 타고 놀지만

지상에 유배되면 야유와 조롱 속에서

거대한 날개 때문에 걷지도 못한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371쪽에서

 

우연히 책장에 있는 책을 뒤적거리다가 <불안>을 보게 되었다. 책을  넘기다보니 정말 우연히도 '앨버트로스'라는 시를 발견하게 되었다.

시는 시인이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겪게 되는 불운 같은 것을 묘사하고 있다. 보들레르는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에드거 앨런 포'를 좋아했는데, 이 시는 포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시는 마치 배를 타고 있던 화자가 앨버트로스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 앨버트로스는 거대한 날개 때문에 하늘의 군주요 구름의 지배자가 되기도 하지만, 지상에 내려오는 순간 우스꽝스럽고 나약한 존재가 되고 만다. 신천옹이라고도 불리는 이 새는 펼친 날개가 3미터에 이른다. 반드시 바람이 불어야만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 다른 새들처럼 이륙할 수가 없는 운명이다. 그리고 한번 날아오르면 5000km를 활공할 수 있다. 지구상의 불가사의한 존재들 중의 하나다. 시인도 인간들 중의 불가사의에 가까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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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Frost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어 잠들기 전에 몇십리 길을 가야만 한다. 잠들기 전에 몇십리 길을 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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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 교실

 

다시 사는 환희에 들떠
넘쳐나는 개선가.

여기는, 먼 먼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눈먼 몇십 대의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하여, 아직까지도 우리의 감격을 풀지 못하는 나약한 꽃밭.

여기는 또 조용한 갈림길, 우리는 깨끗이 직각으로 서로 꺾여져 가자. 다시 돌아다볼 비굴한 미련은 팽개쳐 버리자.

갑자기 너는 무엇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는가? 우리 오래 부끄러운 눈길을 피하던, 영원한 향수가 젖어있는 어머니의 젖가슴, 너는 다시 우리를 낳아준 본래 어머니의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

허면, 우리는 고운 매듭을 이어주는 숨소리를 음미할 때다. 살아있는 보람이 물결 일어 넘쳐나는 개선가를 불러준다.

여기는 먼 먼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생명의 온기를 감사하는 서정의 꽃밭.

 

 

해부학 교실 2

참, 저애 좀 봐라.
꼬옥 눈감고 웃고 있는
흰꽃으로 가슴 싼 저애 좀 봐라.

여기가 무덤이 아닐 바에야
우리는 소리 없이 울지도 못하는데

한세상 가자고 하다
끝내는 모두 지쳐버린 곳

네 살결이 표백되어
천장의 흰 바탕 보아라.

너를 얼리던 소년은
하나씩 외로운 척 흩어져가고
수줍어 눈 못뜨는 소녀야, 말해봐라.

전에는 종일 산을 싸돌고
꽃 따먹고, 색깔 있는 침을 뱉어

저 냄새, 내리는 햇살 냄새에
너는 웃기만 했지.

우리는 두 손
숨을 멈춘다.

참, 저애 좀 봐라.
그래도 볼우물 웃고
우리들 차가운 손바닥 위에
헤어지는 아늑함을 가르쳐주는
저애, 꽃순 숨소리 들어보아라.

 

 

조용한 기도

1

우리의 얼굴을 꾸밈없이 내보일 때
그 끝에 보이는 황홀함과 따뜻함이여.

한 손에 해골을 들고
내 얼굴의 향긋한 내음을 맡는다.

막막함도 잊고 웃고 있는 어제,
웃고 있는 내 얼굴, 친구들 얼굴
너무나도 섬세한 백토의 조각품.

근육을 한 개씩 분리할 때마다
어느 여름날 저녁의 바닷물 소리,
기억에 남아 있는 고운 목소리.

지금 소년는 얼마나 시원할까,
흩어져 누워 있는 때 묻은 소녀의 옷을
나는 힘들여 찢고 있다.

2

나 지금 정들어 입고 있는 옷도
천천히 모르게 헌 옷이 되게 하소서.

때가 되면 주저없이 새 옷을 마련하고
8가볍게 활개쳐 날게 하소서.

먼 거리를 나래치며 오르는
비상의 신비한 기쁨 누리게 하소서.

해부대 앞에서 눈감은 소녀같이
나를 부리소서, 시작하게 하소서.

 

정신과 병동

비 오는 가을 오후에
정신과 병동은 서 있다.
지금은 봄이지요. 봄 다음엔 겨울이 오고 겨울 다음엔 도둑놈이 옵니다. 몇 살이냐고요? 오백두 살입니다. 내 색시는 스물한 명이지요.

고시를 공부하다 지쳐버린
튼튼한 이 청년은 서 있다.
죽어가는 나무가 웃는다.
글쎄, 바그너의 작풍이 문제라니 내가 웃고 말밖에 없죠.
안 그렇습니까?

정신과 병동은
원시의 이끼가 자란다.
나르시의 수면이
비에 젖어 반짝인다.

이제 모두들 돌아왔습니다.
추상을 하다, 추상을 하다
추상이 되어버린 미술학도,
온종일 백지만 보면서도
지겹지 않고,ㅡ
가운 입은 피에로는
비 오는 것만 쓸쓸하다.

이제 모두들 깨어났습니다.

 

 

연가4

네가 어느 날 갑자기
젊은 들꽃이 되어
이 바다 앞에 서면

나는 긴 열병 끝에 온
어지러움을 일으켜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망각의 해변에
몸을 열어 눕히고
행복한 우리 누이여.

쓸려간 인파는
아직도 외면하고

사랑은 이렇게
작은 것이었구나.

 

임종

서향의 한 병실에 불이 꺼지고
어두운 겨울 그림자
낮은 산을 넘어서면

부검실은 차운 벽돌,
뼈를 톱질하는 소리로 울려도
이것은 피날레가 아니다.

나는 처음 해부학에서
자연스런 생명을 배웠다.
거기에 추위가 왔다.

막막한 청춘의 잠자리에서
나는 자주 사형선고를 받았다.
남은 시간의 화려한 현기증.

들리니, 포기한 키 큰 사내의
쓸쓸한 임종.
들리니, 이것은 피날레가 아니다.

 

바람의 말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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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에 갇혀 노래를 부르면서
정작 노래를 잃어버렸다
텅 빈 하늘을 행해 서서
목이 터져라 부르던 노래
바람이 머리칼을 흔들면
걸음을 뗄 때마다 저절로 나오던 노래
물가에 앉으면 가슴이 먼저 젖어 흘러나오던
그런 노래를 잃어버렸다
노래의 마음인 노랫말이 우리 마음을 움직이고
노래의 몸인 소리가 우리 몸을 흔들던 그런 노래들
어떤 날은 노래가 깃발이 되어
우리를 끌고 가고
어떤 날은 수천 수만의 사람을
한 방향으로 한 발짝씩 나아가게 하던 노래
혼자서 돌아오는 밤길 낮은 소리로 읊조리는
내 노래에 내 볼이 젖던 노래
그런 노래들을 잊어버렸다
혼자 부르고 또 불러서
온전히 내 노래가 되던 노래
노래 한 곡이 술 한 잔을 마시게 하고
노래만으로도 온 밤을 깨어 있게 하던
그런 노래들이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중심도 방향도 놓친 뒤부터
바람도 물소리도 멀리한 뒤부터
                                                        <슬픔의 뿌리>

 

노래란 무엇인가? 사람에게 노래란 무엇인지. 스스로의 마음을 위로하고, 때로는 삶의 환희를 표현하고, 함께 나아갈 이상을 드러내기도 하는 그런 것이다. 노래방이 아니라 광장에서 부르는 노래. 그런 노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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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 어둠에 덮인 산골짝 다락논 옆을 지나는데
개구리 소리 천지에 가득하다
점점 차가워지는 시간 속에 잠기어 목만 내놓은 채
개구리들이 이렇게 울어대는 건
막막함 때문이이리라
너도 혼자지 너도 무섭지 이렇게 서로에게 물으며
그래 그래 그래 그래 대답하는 소리 가득하다
어둠 속에서 한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외로움을
이기려는 소리 너도 아직 살아있구나
너도 그렇게 견디고 있구나
그래 그래 서로 대답하며 울음의 긴 끈으로
서로를 묶어놓는 소리 밤새도록 가득하다
                                                                       <슬픔의 뿌리>

개구리 소리를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시인이지. 참 재미있다. 이 시를 보니까 떠오르는 것이 이오덕의 <개구리 소리>와 권태응의 <맹꽁이>다. 도시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그리운 친구들이다.  귀가 따갑도록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를 들어보아야 여름이 왔구나 하고 느끼는데. '그래 그래 그래 그래'가 인상적이다. '개굴 개굴 개굴 개굴'이겠지. 앞으로는 나도 이렇게 대답해봐야 겠다. "밥 먹었니"하면 "개굴"하고 말이다. 이 도시라는 정글 속에서 무서움을 이기고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런 청개구리짓도 필요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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