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여지도 - 126 목판에 새긴 우리 땅 이야기 책 읽는 고래 : 고전 1
이차원 지음, 강경선 그림 / 웅진주니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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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는 김홍도를 단군이래 최고의 화가라고 어느 강연에서 말했다. 나는 김정호를 묘사하는 데도 그 말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정호는 단군이래 최고의 지리학자다. 김정호가 만들어낸 대동여지도와 동여도는 기계의 도움없이 그린 가장 정밀한 지도였다. 오늘날 우리가 인공위성에서 찍은 사진을 근거로 하여 만들어낸 지도와 견주어보아도 그 정확도는 떨어지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김정호는 황해도 출신으로 양반은 아니었다고 한다. 혜강 최한기는 김정호를 그의 글에서 "나의 친구 김정호"라고 호칭했지만 김정호는 아마 서울의 공공기관에 근무하던 인쇄업자 비슷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정하고 있다. 김정호를 후원한 사람들이 주로 무관 출신인점에 비추어보아서 김정호도 아마 군사계통에서 지도를 제작하는 데 관여하지 않았나 하고 추측하고 있다. 말 그대로 추측이다. 김정호 개인에 관한 당대의 기록을 한 손에 꼽을 정도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김정호는 오로지 그가 남긴 지도와 지리지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말하고 있을 뿐이다.

김정호는 30세에 최초로 <청구도>라는 지도를 펴냈다. 이것이 당대의 베스트셀러였던 모양이다. 이후에 김정호는 청구도를 더 발전시킨 지도들을 선보였다. 가장 세밀한 한반도 지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동여도>다. 이것은 붓으로 그린 것인데, <대동여지도>보다 더 상세하다. <대동여지도>는 <동여도>에서 얻은 성과를 바탕으로 지도를 판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목판에 새기다보니 <동여도>만큼 상세하게 나타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동여지도>는 조선시대 지리학의 성과를 최대치로 나타낸 작품이다. <대동여지도>는 전체를 펼치면 가로4미터, 세로 7미터난 되는 거대한 크기의 지도다. 목판에 이것을 판각했는데, 한판의 크기가 20*30센티미터다. 가로는 19칸, 세로는 22단이 된다. 모두 더하면 126개의 목판이 된다고 한다. 인쇄한 지도는 '분첩절첩식'이라고 하는데, '첩으로 나누고, 절로 합치다'라는 뜻이다. 커다란 지도를 한권의 책으로 접어서 들고 다닐 수가 있었던 것이다. 마치 요즘 전국지도를 책으로 만들어서 파는 것같이 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로 기억되는데, 사실 그간 우리가 대동여지도에 대해서 아는 사실은 보잘 것 없었다. 그것이 정확하게 밝혀지고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이우형이라는 지리학자의 몇십년에 걸친 노력이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우형을 현대의 김정호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우형은 신경준의 <산경표>를 재발견했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현장답사를 통해서 그 과학성을 입증했던 사람이다. 백두대간이라는 전통적인 우리의 산천개념을 발견해서 대중적으로 알린 것도 이우형의 공로다. 이분은 2001년에 돌아가셨다. angangi.com 이라는 사이트에 가면 이우형과 백두대간, 대동여지도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판각을 하는데 드는 비용을 대 준 사람들은 당대의 무신들이었다고 한다. 대원군 시절의 대표적인 무관이면서 나중에 병조판서까지 지낸 신헌장군, 궁중수호무관이며 부호였던 최성환 같은 이들이 김정호의 지도편찬작업을 후원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김정호의 지도는 군사적으로 쓰일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 각종 산성과 주둔지, 봉수, 역참 따위가 명시되어 있고, 거리와 방위도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조선에서 만든 가장 정밀한 군사지도라는 평을 들을만했던 것이다. 그런데 통탄할 만한 사실은 <대동여지도>가 나중에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 때 청군이나 러시안군, 일본군의 작전지도로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일본국회도서관에는 지금도 당시 일본 육군에서 군사용 지도로 사용했던 <대동여지도>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 전통지리학의 성과가 집약된 문화유산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우리를 침략하는 외세가 더욱 잘 이용했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김정호가 평생을 걸고 만든 지도가 결국 그렇게 이용될 것을 김정호는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앞으로도 이런 종류의 일이 없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나. 새삼 우리 민족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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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생겨난 이야기 사계절 저학년문고 6
김장성 / 사계절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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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편의 우리나라 창세신화들이 들어있다. 우리 꼬맹이 책꽂이에 꽃혀있던 것을 가끔 볼 때마다 저기에는 무슨 이야기가 들어있을까 하고 한번씩 생각하고는 했더라. 오늘 아침에 보았는데, 30여분 만에 이야기를 다 읽었다. 과연 저학년용 문고라 할 만하다. 제일 재미난 부분은 대별왕 소별왕 이야기였다. 우리반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더니 눈알이 초롱초롱해서 들었다. 근래에 보기드문 집중력이었다. 재미있게도 처음 세상이 만들어질 때는 해가 둘, 달이 둘이라서 낮에는 너무 덥고 밤에는 너무 추워서 살기가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꼭 나왔다. 영웅들이 해야할 일은 한개씩의 해와 달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천근이나 되는 활에 백근이나 되는 화살을 채워서 해와 달을 쏘아 떨어뜨렸더니 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이 되었더라는 이야기도 재미있지. 어른인 나도 재미있는데 아이들은 얼마나 신기할까. 왜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에 열광하는지 궁금하다. 정말 정신을 쏙 빼놓고 그 이야기속에 들어간다. 캠벨의 말처럼 신화 속에는 우리들 마음 속의 깊은 비밀을 간직한 진실이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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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간 사자 동화는 내 친구 72
필리파 피어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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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파 피어스는 처음 읽는 작가다. 이 책 이름은 많이 들었다. 막상 읽어보니 한시간 쯤 하니까 읽겠다. 저학년용 동화라서 그런지 이야기 구조도 단순하다. 그림책으로 만들어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할 이야기는 역시 <학교에 간 사자>다. 사자라는 맹수를 학교에 보내고, 학교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우습긴 한데, 아이들은 이야기에 빠져든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는 <무지무지 잘 드는 커다란 가위>와 <구부러진 새끼 손가락>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꿈꾸는 환상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자를 수 있는 가위와 무엇이든지 붙일 수 있는 풀은 얼마나 기막힌가. 거기다가 새끼 손가락만 구부리면 내가 원하는 물건은 뭐든지 내 앞으로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의 상상을 잘 살려서 쓴 이야기다. <여름 휴가 때 생긴 일>은 환상은 없지만 귀여운 생쥐가 등장한다. 생쥐를 살려주려고 꾀를 부리는 소년의 생각이 가상하다. 착상이 좋은 동화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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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글쓰기 나남산문선 11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기획 / 나남출판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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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었다. 퇴근 길에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가 잡아들었다. 앞부분의 김용택 부분을 읽다가 이 책을 사기로 결정했다. 집에 와서 두시간쯤 읽으니 끝나더라. 의미있는 영화 한 편을 보고 난 느낌이다. 단편영화의 모음 같다고 해야되겠다. 이 책에는 여러 사람의 필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앞부분의 소개글에 의하면 이 책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펼친 강연에서 연사로 참가한 유명작가들의 글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참가한  필자는 모두 아홉 사람이다. 김용택, 김원우, 도종환, 서정오, 성석제, 신달자, 안도현, 안정효, 우애령.

책을 사고 나서 바로 읽은 글은 서정오의 글이었다. 서정오의 내면에 대해서 듣고 싶었는데, 그런 내용이 없어서 좀 실망스러웠다. 남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버릇인데 말이다. 서정오는 작가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을 길게 하고 있다. 작가의 글쓰는 노동은 농부나 어부, 장사꾼, 집짓는 사람의 노동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작가들이 어려운 글을 너무 많이 쓴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귀기울여 들을 만한 부분이긴 한데,내가 익히 알고 있던 주장이라서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은 없었다. 그래서 내 나름의 기대와는 다른 글이었기에 실망스러웠다는 것이다.

이어서 안도현의 글을 읽는 줄 앍고 읽었는데 알고보니 성석제였다. 읽으면서도 안도현답지 않은 글이라서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끝나고 보니 성석제여서 좀 황당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역시 성석제다운 글이다. 이어서 안도현의 글을 읽었는데, 안도현이 문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계기가 된 사건이야기가 재미있었다. 80년대초 계엄령 시절 대학초년생이던 안도현이 군인들에게 얻어맞은 경험은 안도현이 문학을 현실과 연관짓는데 중요한 사건이었다. 경험한 이의 입장에서는 무참했을 기억인데도 구경꾼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재미있다. 문학에서는 상처가 자산이 된다는 말을 필자 중의 한 사람이 했는데 옳은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란 마냥 행복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한 켠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자기존재를 살리기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말이다. 신달자나 우애령 같은 여성작가의 이야기에는 작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굴곡의 세월이 들어있다. 신달자의 경우에는 아버지가 다른 살림을 차렸던 경우였고, 우애령은 태어나자 마자 남의 집에 맡겨질 뻔한 이야기였다. 모두들 자존을 심각하게 훼손당한 경험이었고, 그것들이 나중에 글로 풀어져나왔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글쓰기는 치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글은 김용택과 안정효의 글이었다. 책읽기와 글쓰기의 관계에 대해서 어떤 실마리를 던져주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김용택이 초임교사시절에 산골에 있으면서 월부책장사를 만나 방학 동안 <도스토옙스키 전집>이나 <헤르만헤세 전집>, <니체전집> 같은 책을 읽었던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하루종일 책만 읽다가 새벽에 일어나보면 코에서 코피가 흐르더라는 김용택의 체험담은 책에 깊숙이 빠져보았던 사람은 알 수 있는 경험이다. 김용택의 경우 그렇게 독서에 빠져들었던 시기는 20대 시절이었다. 하긴 대한민국에서 청소년이 책에 푹 빠져들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나의 경우에도 고3시절에 불었던 니체바람, 도스토옙스키,톨스토이 바람을 단호히 꺼버린 것은 담임선생님이었다. 대학붙으면 실컷 책 보라고. 대학가서는 사회과학만 들입다 팠다. 요즘에야 니체나 도스토옙스키를 다시 진지하게 읽어 볼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안정효는 책이라고는 거의 안 보다가 서강대 영문과에 들어가서야 책을 읽게 되었단다. 자기의 무지를 자각했기 때문이다. 방학 때 작정하고 문학전집을 파고들다가 보니 나중에는 외국의 현대문학에도 손을 대게 되었다. 나중에는 머리가 터질 듯해서 배설하듯이 써낸 것이 소설이었다고. 맨 처음 쓴 것도 신춘문예용 단편소설이 아니라 장편소설이었단다. 이어서 바로 영어로 소설도 썼단다. 안정효는 그렇게 글을 뽑아내던 그 시절을 정말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한다. 이른바 창작의 기쁨 아니겠는가. 나는 <책먹는 여우>를 떠올렸다. 안정효가 딱 그 이야기에 들어맞았다.

소설가 김원우는 말하기를 책읽기와 글쓰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한다. 어느 나라의 동전이든지 공통적으로 한쪽 면에는 그 나라의 유명인물을 새긴 그림이 나오고 한면은 아라비아숫자가 나온다. 이것을 특수성과 일반성의 통일로 본다. 글쓰기와 책읽기는 세상만사에 숨어있는 근본적인 원리에 대한 통찰을 강화해서 인생을 의미있게 만든다. 도종환에 의하면, 그런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사물이나 자기 자신의 감정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고 한다. '생각한 뒤에 행동하는 사람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이른바 깊이있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감정에 이끌려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결국에는 나를 울게 하던 감정이 다른 사람을 울리는 힘으로 전환된다고 한다. 이른바 울림의 원리다. 남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된다.' 책읽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몰입이나 경청 같은 것이라면 글쓰기는 자기의 머리 속에 들어있던 이야기나 감정을 배설하는 행위다. 쓰레기처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배설하고, 결국에는 삶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모든 창조행위가 그렇듯이 글쓰기도 그 속에는 생명의 희열 같은 것이 있다. 인간성이 고양된다. 그로써 우리는 영원에 한발짝 더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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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철학에 빠진 날
스티븐 로 지음, 오숙은 옮김 / 김영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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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2학년 쯤 되는 학생이 보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평소에 우리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철학이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선입견과 다르게, 철학이란 분야가 배워두면 쓸모있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기대는 좀 잔뜩하고 보았는데 보고나니 좀 심드렁한 책이다. 그야말로 의문들만 잔뜩 던지고 만 느낌이다. 철학을 거의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딱 좋겠다. 스티븐 로가 썼다는 다른 번역서를 읽어보아야겠다. 우편배달부 경력을 지닌 이 특이한 철학자의 내공이 어느 수준인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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