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시대 - 우리는 정말 이건희를 알고 있는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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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은 대통령선거라는 전국최대의 게임에 들어가있는 중이다. 모두들 이 게임에 신경을 쓰느라 파묻혀 가고 있는 중요한 쟁점들도 많다. 언뜻 생각나는 것만 열거해보아도 '외고 입학시험문제 유출 사건','연세대총장부인의 편입학 관련 뇌물수수사건','삼성비자금사건','국가보훈처 차장의 부정'등이 있겠다. 하나하나가 충격적인 것들이다.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에 대해서 묻게 만드는 문제들이다. 그 중에서도 그 사안의 중대성을 따지라면 단연 삼성비자금 사건이 가장 무겁다. 그러나 그 중대성에 비해서 언론이 다루는 정도는 미약하기 그지없다. 대부분 삼성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무릎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막강한 돈의 힘. 제4의 권력기관이라는 언론도 광고를 매개로 한 돈의 힘 앞에는 힘을 쓸 수 없는 것 같다.

강준만의 이 책을 읽은 것은 삼성 비자금 사건이 터지기 전이었다. 책읽고 난 뒤 일주일 쯤 지난 뒤에 삼성비자금 사건이 터졌다. 강준만이 책의 모두와 말미에서 지적하고 있는 삼성의 문제들이 드디어 곪아터져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이 망할 수는 없다고 한다면 삼성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독소들이 밖으로 들어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강준만의 이 책은 사실 문화방송 이상호 기자의 삼성엑스파일 사건이 터지기 얼마 전에 나온 것이다. 벌써 2년쯤 전인 2005년 8월에 나온 책이다. 그래도 읽어보면 현재성이 있다.

강준만은 정말 시대상황에 맞는 문제적인 저작들을 던진다.1997년 대선 전에 나온 <김대중 죽이기>를 비롯해서<서울대의나라>,<노무현과국민사기극>같은 책들은 시대의 물꼬를 튼 책들이다. 이책도 삼성의 문제를 조목조목 건드린 책인데, 예전의 책들에서 보이는 신랄함이 좀 모자란 느낌이다. 강준만도 이건희 천재적인 경영과 삼성의 거대한 힘앞에 좀 몸을 사리는 느낌도 든다. 나는 오히려 이 책을 읽고 나서 삼성과 이건희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더 하게 되었다. 예전에 나는 삼성과 이건희를 생각하면 황제경영과 아들 이재용의 변칙상속,무노조경영, 불법정치자금 등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나서는 삼성과 이건희의 긍정적인 면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선 삼성이 차지하는 대한민국 경제 내의 위치다. 삼성그룹이 차지하는 국민경제의 비중이 20%에 가까울 뿐더러, 삼성전자는 휴대폰과 반도체, 엘시디 등에서 세계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는 기업이다. 삼성전자는 2007년 현재 대한민국이 가지는 자부심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기업이 되었다. 이런 모든 성과의 선두에 이건희라는 사람이 서 있다. 황제경영이라는 부정적인 면 이전에 그의 천재경영, 디자인 중시, 인재중시, 본질주의 같은 것은 현시대세계 경제를 꿰뚫는 힘 같은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긍정만 할 수 없는 것은 이번 비자금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우리 사회에서 삼서이 가지는 순기능이 역기능에 추월당할 정도의 위치까지 왔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주고, 국민을 먹여살린다고 해도 법위에 군림하고 선출되지 않는 권력을 국민에게 행사할 수는 없는 거지. 제 아무리 그가 세금을 많이 내고 우리 같은 소시민들이 내는 세금은 쥐꼬리만큼 된다고 해도 국민이라는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오히려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시민들의 국가기여도가 그보다 더 클 것이다. 이것은 결국 오늘날의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이냐, 민주주의는 과연 무엇이며 무슨 쓸모가 있는냐의 문제를 제기한다.

삼성에 대해서 읽은 책이 겨우 이 책 한권에 불과한데 무슨 소리를 많이 하겠는가. 하다보니 말이 많아졌는데, 강준만이라는 우리 시대의 길눈이를 따라가면서 삼성문제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도 좋은 해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독을 권한다. 이건희와 삼성에 대한 공부를 하는 데 기본 교과서가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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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살림지식총서 194
김윤아 지음 / 살림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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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총서는 처음 잡아본다. 며칠 전에 신문에서 살림총서가 300권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궁금증이 생겨났다. 오늘 퇴근하고 나서 서점에 들러 300권 중 한권을 샀다. 3,300원이라는 책값은 나를 행복하게 했고, 100쪽도 안 되는 두께는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한시간이면 보겠지 싶었는데, 실제로는 두시간쯤 걸렸다. 비디오 한편 보는 시간이라고 보면 되겠다. 비슷한 종류인 책세상 문고와 비교해보았다. 책세상 문고는 값이 5,900원이다. 두께도 좀 있다. 보통 읽는 책의 반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에 견주면 살림총서는 보통 책의 3,4분의 1 정도 되겠다. 부담이 없어서 좋다. 일주일에 한 권 정도 맛보기로 사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 책은 표지가 마음에 안 든다. 왜 이런 사진을 넣었는지 일단 이해가 안 된다. 충분히 눈길을 끌만한 사진이 많은데도 왜 이런 사진을 넣었는지 모를 일이다. 책의 내용도 기대했던 것과는 좀 다르다.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기 작품들인 <원령공주>,<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내용적으로 분석하는 책인 줄 짐작하고 보았는데 내 생각과는 책의 흐름이 좀 달랐다. 그래도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신화에 대한 시각, 90년대 일본경제의 불황, 최근 일본의 우경화 경향을 분석하고 있는 시각들이 일면 어려웠지만 일면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세 작품 모두가 일본에서 엄청난 흥행성공을 거둔 작품들인데, 그 성공의 바탕에 깔린 대중적 감성에 주목하고 있는 점이 흥미를 끈다. 그것은 일단 90년대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에 벌어진 '잃어버린 10년'동안 일본사회가 보인 자신감 상실을 메꿀 어떤 기제가 필요했는데, 그것에 부응한 것이 <원령공주>,<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것이다. 원령공주에 나오는 사슴신을 천황의 상징이라고 보고, 고다마(숲의 정령들)들을 대중 혹은 카미카제특공대에 비유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처음에는 '설마'하는 생각이다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모든 예술은 사회와 교감하는 법이니까. 더구나 성공한 대중예술은 그 근저에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 같은 것이니까.

글쓴이가 자기의 논지 전개를 위해서 끌어들이고 있는 학자들로는 가라타니 고진, 조셉캠벨, 엘리아데, 팩스턴, 스튜어트 홀 같은 이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세 작품의 신화적인 요소를 분석하기 위해서 조셉캠벨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파시즘의 위험을 거론하기 위해서 팩스턴을 끌어대는 부분은 분석이 좀 미약하다 싶다. 서경식 같은 재일교포 지식인들의 최근 글을 통해서 보는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 준 파시즘 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글은 그런 분석들이 좀 근거가 빈약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우선 내가 일본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것이 문제고, 글쓴이도 자기 주관을 너무 강조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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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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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사보았던 기억이 있다. 몇 부분 뒤적이다가 말았는데 어느새 책이 책꽂이에서 사라져버렸었다. 느낌표에서 이 책을 추천할 때도 한번 읽어보아야지 하는 생각은 했더랬는데 그 때는 웬지 마음이 나지 않았다. 막상 책을 서점에서 산 것은 1주 전이다. 술먹고 집에 가는 길에 우연히 길가에 있던 서점에 들러서 책을 뒤적거리다가 이 책을 샀다. 술먹고 고르는 책인데도 여러권의 책을 물망에 올라놓고 골랐던 기억이 난다. 초판본과 맺은 인연으로 치면 15년 정도 되는 셈이다. 내가 산 책은 2006년 2월 118쇄본이다. 많이도 팔렸다. 소설이 100쇄를 넘긴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사람들 가정에 대부분 한 권 정도는 있다는 소리가 아닐까 싶다. 책을 한번 손에 잡으니 세시간 정도는 그냥 간다. 마치 재미있는 영화 한편을 보는 것 같다. 아니면 말 잘하는 친구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듯이 그냥 술술 훌러간다. 어제 오늘 이틀 만에 다보았다. 재미있는 소설의 특징이 그렇듯이, 다음이 궁금해서 책을 덮어놓고 다른 일을 하기가 싫었다. 결국 오전에 끝장을 보고 말았다. 무언가 가슴이 뿌듯하고 아련해오는 게 있다. 이런 게 감동이 아닐까 싶다. 문학에서 우리가 얻기를 바라는 위안 같은 것을 나는 받은 느낌이다.

박완서는 막 쉰살을 넘긴 나이에 이 소설을 썼다. 소설로 그린 자화상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소설과 자서전의 성격이 골고루 들어있다고 느꼈다. 50살 정도가 되면 보통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픈 유혹을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60살이 되기에는 아직 10년을 남겨둔 나이지만 이 때쯤이면 자식들을 대부분 다 키워서 대학에 보내고 난 뒤의 나이다.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의 지위에 도달해 있을 즈음이다.  박완서는 개성 시골에서 자란 유년시절의 기억과 서울로 이사와서 겪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한국전쟁 직후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고 있다. 삶이란 것이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소설가의 어린시절도 즐거움과 괴로움이 골고루 섞여있다. 세살무렵에 아버지를 갑작스런 병으로 잃어버리고 난 뒤의 여자아이는 할아버지와 숙부들의 그늘에서 아버지없는 설움을 특별히 겪지 않고 자라난다. 그러나 서울로 가서 성공하고픈 욕망이 강했던 어머니의 결단에 의해서 서울로 이사를 하고, 거기서 초등학교와 여고(중고등학교가 통합된 6년과정)시절을 겪는다. 그 기간은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시기와 8.15해방, 한국전쟁 전의 혼란기였다. 그 시절의 혼란을 겪으면서도 지금의 우리가 그렇듯이 어린시절, 청소년시절은 똑같이 겪게된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나 할 것 없이 인생은 겪을 것을 다 겪어야 성숙하는 법이다. 단지 1950년의 그 격동기는 스무살의 처녀가 겪어내기에는 너무도 혹독한 것이었다. 그 시절의 이야기는 한편의 풍경화나 풍속화처럼 느껴진다. 일제하에 면서기로 지역민들을 수탈했던 큰숙부와 얼음장사와 밀매로 장사를 해나가는 작은 숙부, 젊은 혈기로 좌익운동에 빠져드는 오빠와 그것을 말리는 어머니, 그 밖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당대의 그림을 형상화하는데 꼭 필요한 인물들이다. 나는 언뜻 리영희의 <역정>을 떠올렸는데, 그 와는 또다른 맛이 있다. 워낙 모든 이들의 삶을 뒤흔든 대사건이었다보니 그 시대를 살아낸 모든 사람의 이야기는 생생하고 전형적이다.

박완서 문학의 원체험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꼭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이어지는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를 안 읽을 수가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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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깃발 (2disc)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제시 브래드포드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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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일본과 미국 사이에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때다. 이오지마는 한문으로 하면 '유황도'다. 유황이 나오는 화산섬 같은 정도로 이해된다. 영화의 대사를 근거로 하여 판단해보면 이오지마는 일본이 미국에게 뺏었던 괌이나 필리핀 같은 섬과 다르게 일본 본토에 속하는 섬이다. 일본본토에 속하는 만큼 일본은 미국의 공격에 그야말로 목숨을 바쳐서 싸우는 자세를 보인다. 전투는 그야말로 처절하게 펼쳐진다. 영화 속에 그 처절한 전투장면들이 재현되고 있는데, 보면 좀 끔찍한 장면들이 많다. <라이언일병 구하기>에서 보았던 그러한 전쟁의 실감이 여기서도 난다. 기관총에 맞아서 마치 짚단이 엎어지는 것처럼 픽픽 쓰러지는 병사들, 폭탄에 몸의 일부가 잘려나가거나 총알에 맞아서 시뻘건 피를 뿜어내다가 곧 죽음에 이르고 마는 병사들의 모습은 전쟁이란 것이 얼마나 처참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나는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의도한 이른바 '영웅만들기'에 대한 고찰의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전쟁자체에 몰입해서 보았다. 이오지마의 섬 곳곳에 굴을 파놓고 저항하던 일본군대 속에는 얼마만큼의 조선인 청년들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했다. 미군과 백병전을 벌이다가 총검에 찔려 죽어가는 일본군 병사는 혹시 식민지 조선의 청년이 아니었을까  영화의 중반에 보면 일본군이 미군에 밀려 전투가 거의 패배에 다다르자 일본군들은 동굴 속에서 수류탄으로 자폭을 한다. "뻥! 뻥!" 하며 동굴 속에서 들려오는 폭음에 미군병사들은 처음에는 영문을 모르다가 자폭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미군병사의 얼굴에 어리는 두려움의 표정을 보면서 오키나와 전투에서 집단자살을 강요당했다는 오키나와 원주민들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쟁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야만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전쟁은 가장 생산적인 산업이 되기도 한다. 결국 따지고 보면 1929년의 대공황으로 위기에 빠진 세계자본주의를 구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전쟁은 단기간에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그동안 정체되어있던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해버렸다. 그러나 전쟁이 만들어내는 문화의 파괴와 대량살륙은 인류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전쟁은 젊은 세대의 에너지를 착취해서 소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 전후는 한 세대의 공백(그 세대의 10-20%가 죽어버리는 형태로 실현되는)을 가져온다. 2차대전후의 독일과 러시아가 그러했고, 한국전쟁후의 한국과 중국이 그러했으며, 베트남 전쟁후의 베트남과 미국이 그러했다. 이 영화에서도 이오지마 전투에 참가한 주인공의 소대원들 중에 상당수는 이승에 없다. 승리자인 미군이 그러했다면 패배자인 일본군은 어떠했을까. 사회를 지배하고 역사를 이끌어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파괴와 죽음들은 사회를 새롭게 가꾸는 데 필요한 거름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보통 사람들의 가정에서 꼭 필요한 사람들인 것을 생각한다면 민중들에게 전쟁은 필요악이 아니라 절대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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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사진
페터 슈테판 지음, 이영아 옮김 / 예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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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다. 표지에 실려있는 아폴로11호의 달착륙 사진은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사진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기대도 그렇게 크게 하지 않았다. 별 생각없이 넘겨가던 나는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사진과 레닌의 유명한 연설 사진에서 눈길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1차대전 이후에 터키는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했는데, 거의 100만명 가까운 대량학살이었다고 한다. 20세기 대량학살의 원조처럼 이야기되는 사건이다. 역사책에서 가끔씩 언급하는 이야기들을 들었는데 사진으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200명 가까운 아르메니아인들이 뼈와 가죽이 상접한 채로 죽어있는 장면은 지옥 그 자체다. 어쩌면 우리는 한국현대사를 통해서 이런 종류의 사진에 익숙한 사람들인데도 그 죽음의 장면은 처참하다. 담요에 덮여있거나 알몸으로 죽어있는 사람들의 군상은 어린아이에서부터 젊은이,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한 마을 사람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한 느낌이 든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있어서 우리는 아르메니아인 학살에 대해서 바로 알게 된다. 과연 영상은 글보다 직접적이다. 글로 쓴 기록들은 우리에게 상상을 요청한다. 그러나 사진은 상상의 여지를 줄여준다. 인식은 직접적이다. 그만큼 사진의 충격파는 크다.

이 책 속에는 85장의 사진이 들어있다. 20세기를 기록한 가장 유명한 사진들이다. 한번씩은 신문이나 책, 방송들에서 보아왔던 사진들이다. 사진으로 보는 20세기라고 책 제목을 달아서 무방할 듯하다. 이 책을 편집한 사람은 독일의 사진작가인데, 사진을 보는 시각이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미디어를 보는 시각도 비판적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거대방송사와 신문사들이 보여주는 사진은 아무래도 사회적인 진실을 순화시킨 것들이 많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고른 사진들이다보니 극단의 시대이자 폭력의 세기라는 20세기의 본질적인 사건들을 포착한 사진들이 많다. 러시아혁명, 1차세계대전, 스페인내전, 2차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캄보디아학살, 냉전, 냉전의해체, 걸프전쟁. 대부분 전쟁에 관한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다. 21세기의 상징이 된 9.11테러와 이라크전쟁에 관한 사진은 없다. 이 책의 원본이 나오던 2000년의 시점에 가장 비극적인 상징은 걸프전쟁과 보스니아 내전, 팔레스타인 분쟁 같은 것들이다.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21세기는 20세기보다 더한 극단이 시대가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 같은 것들도 들게 한다.

한국에 관한 사진은 딱 한장 나온다. 미국의 폭격기 여러 대에서 눈내리는것처럼 폭탄을 퍼붓고 있는 장면이다. 처음 사진을 볼 때는 늘 보던 사진이라서 별 생각없이 보았는데, 해설하는 사람의 해설이 정신을 번쩍들게 하는 말을 했다. 대강 이렇게 기억이 된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의 산하는 지극히 평화롭다. 그 자연 속에는 특별한 군사적인 목표물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미군은 엄청난 폭탄을 쏟아붓고 있다.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가 그 자리에 있던 피난민이거나 인민군이었다면 어땠을까하고 상상해보니 정말 끔찍했다. 그야말로 어떤 지역을 융단깔듯이 폭탄을 퍼붓는 한국전쟁의 시기는 '폭격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제공권을 장학했던 미군이 한반도에 쏟아부었던 폭탄의 양은 태평양전쟁시기에 일본에 대항해서 투하했던 것보다 더 많다고 한다. 폭탄은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우선 폭탄으로 땅에 보이는 모든 움직이는 목표물과 무기로 쓰일 수 있는 것, 엄폐물로 이용될 수 있는 건물은 모두 부수어버린다. 물론 미군은 한반도를 공산주의의 위협에서 구원해준 십자군이었지만, 그 댓가로 한반도는 셀 수 없는 파괴와 죽음의 시기를 건너왔다. 미군이 한반도에서 퍼부었던 폭탄 중에는 네이팜탄이 많았다. 숲이나 마을을 통째로 태워버리는 폭탄이 네이팜탄이다. 베트남 전쟁 중에 네이팜탄을 맞은 마을을 피해서 아이들이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치는 유명한 사진이 있다. 막 10살 정도 되는 여자아이가 불에 붙은 옷을 벗어버리고 울부짖으면서 도망치다가 미군을 만나는 장면인데, 나는 그 장면이 꼭 20여년 전에 한반도에서 벌어진 장면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단지 사진으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만 다를 뿐이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사진을 들라고 하면 마릴린 먼로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다가 바람에 날려올라간 치마를 누르는 장면이다. 간디가 물레를 돌리고 있는 사진이나 아인슈타인의 사진, 레닌의 연설 장면 같은 사진도 마음에 들지만 웬지 먼로의 사진에 마음이 갔다. 보통 방송이나 신문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인데 먼로의 풍부한 얼굴표정이 드러나있어서 마음이 가는 사진이었다. 그 표정과 눈빛 속에 들어있는 무엇인가가 섹스심벌이라는 기존의 먼로의 이미지와는 다른 느낌을 주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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