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
주강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솔직히 말하자면 그간 나는 독도 문제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독도문제를 가지고 신나게 떠들어댈 때도 연례행사거니 했다. 내가 세상사에 눈뜬 이후부터 지금까지 30여년을 그렇게 독도는 문제시되어왔던 것이었으니 새삼스레 나도 덩달아 열내기가 뭐했던 것이다.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땅>보다는 한돌의 <홀로 아리랑>이 더 예술성이 있는 노래라서 독도 공식노래는 한돌의 것으로 하는 것이 좋다는 정도가 내 의견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다 무지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독도문제의 역사성과 미래적 가치를 내가 몰랐던 것이다. 최근에 노무현 대통령이 고이즈미 전 일본총리에게 제안했었다는 '동해를 평화의바다로 부르자'는 구상도 어찌보면 그가 독도문제에 얽힌 복잡한 속내를 잘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지도자나 민중이나 똑같이  너무 우리 주변의 바다에 대해서 모른다. 이 책은 어쩌면 동해와 서해에 얽힌 역사적인 의미를 짚어주는 거의 최초의 책이 아닐까 싶다.

책은 1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다. 독도와 울릉도 문제를 다루고 있는 부분이 모두 네 장으로 앞을 차지하고 있다. 다음으로 왜구문제, 일본과 서양의 교류, 근대일본의 메이지유신과 한반도침략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 네 장으로 중간을 차지한다. 이어서 일본의 동남아시아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장과 임진왜란과 왜성을 다루고 있는 장, 거문도를 무단점거한 영국해군 이야기, 대마도와 이키 섬 이야기가 나온다. 맨 끝에 동해와 일본해에 얽힌 역사적인 기록들을 다루고 있는 장이 마지막 장으로 나온다. 이 정도면 바다를 소재로 한 동아시아의 역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일본은 섬에 대한 욕심이 많은 나라다. 현재 중국과 센가쿠 열도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으며, 이른바 북방 5개섬 문제로 러시아와 오랜 설전을 벌여왔다. 우리 나라와는 독도문제로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왜 일본이 무인도나 다름없는 작은 섬들에 이토록 신경을 쓰고 있는가. 그것은 바다가 가진 가치를 일본이 냉철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는 자원의 보물창고이며, 물류가 움직이는 고속도로다. 일본은 자신들이 가진 땅보다 세배가 넘는 바다를 자국령으로 가지고 있다. 이른바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200해리 영해조항으로 인하여 엄청난 양의 바다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독도를 그렇게 끈질기게 물고늘어지는 것은 바다를 땅과 다름없이 보고 있는 일본의 시각때문이다. 우리는 그에 비해서 바다의 가치에 대하여 일본만큼의 인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조선건국 이후 700여년 가까운 역사동안 우리는 바다에 대하여 덜 의식하고 살아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주강현은 여말선초에 동아시아 바다에서 기승을 부린 왜구 때문이라고 말한다. 왜구는 일본의 지배세력과는 약간 거리를 두고있는 독자적인 해양세력이라고 한다. 14세기무렵부터 동아시아 바다를 지배하면서 명나라와 고려, 조선을 노략질해왔다. 그 때문에 조선정부는 섬을 비우는 ‘공도정책’을 실시해왔다. 울릉도와 완도, 진도 같은 섬도 비웠다고 한다. 그만큼 왜구의 노략질이 극심했던 모양이다. 공도정책의 결과로 우리는 섬과 바다에 대해 무지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울릉도는 조선조 내내 공도정책이 유지되는 동안에 고통받는 민중들에게는 이상향으로 인식되어 ‘동해의 이상향 삼봉도’라고 불렸던 모양이다.


이렇게 조선조정이 공도정책을 실시하는 동안에 우리에게 울릉도와 독도는 사실상 잊혀진 섬이 되어있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 대마도 사람들이었다. 수시로 울릉도를 자기네 영토로 지배하려는 야욕을 보였다. 여기에 쐐기를 박은 사람이 있었으니 숙종 때 동래의 어부인 안용복이었다. 안용복 사건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올 정도로 당대의 조일간 왜교분쟁을 야기시켰다. 주강현은 안용복을 하늘이 낸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안용복은 울릉도와 독도의 영토문제를 제기해서 외교적 매듭을 지은 사람이다. 평범한 어부가 그런 일을 해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조선의 지배세력은 그를 외교문제에 개입했다하여 유배를 보냈다고 하니 봉건지배세력의 통치란 참 어이가 없다. 주강현은 동아시아 바다에서 독도는 바둑으로 치면 화점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만큼 독도를 우리 영토로 사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독도가 가진 경제적, 생태적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그것을 우리가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신흥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이 메이지 유신을 이룬 중추세력은 이른바 ‘삿초동맹’이라는 인물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 삿초동맹이란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동맹이라는 것이다.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모두 변방의 바닷가에 위치한 곳이다. 그런데 그 두 곳에서 일본을 새로운 나라로 변화시킨 혁명세력이 길러지고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그들이 단순히 일본을 근대화시키는 데 머물지 않고, 일본의 대륙침략의 선구가 되었다는 점이다. 1866년에 타결된 삿초동맹은 사카모토 료마의 중재로 기도 다카요시, 사이고 다카모리 등이 당대의 봉건권력인 바쿠후 타도를 위하여 극적으로 밀약한 것이다. 기도 다카요시는 조슈번 출신, 사이고 다카모리는 사쓰마번 출신, 사카모토 료마는 도사번 출신이다. 이 동맹이 바로 메이지 유신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 사람의 후진들이 모두 이토오 히로부미를 비롯한 침략세력들이었다. 모두 육군이나 해군대장들이 되고 식민지총독이 되었던 사람들이었다. 명성황후를 살해한 사람들도 모두 이 출신들이었다. 냉혹한 정신으로 일본의 근대화를 밀어붙이고 조선침략과 중국침략,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자들이 바로 이들의 후예들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유신과 침략의 역사를 너무 모른다.


김교신과 함석헌의 스승으로 유명한 우치무라 간조는 1894년에 발간한 영문판 <일본과 일본인>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일본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두 명을 고르라 한다면, 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사이고 다카모리를 들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의 중세를 통일한 인물이라면, 사이고 다카모리는 메이지유신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둘다 조선정벌을 적극 주장하고 행동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알아도 사이고 다카모리는 모른다. 그만큼 우리가 일본의 근현대사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소리다. 지금 일본의 지배세력은 사실상 2차대전 전범들의 후신이다. 마치 독일에서 나치당의 후예들이 집권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일본은 전후에 식민지와 침략전쟁에 대해서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았고, 내부적으로도 전범세력을 청산하지 못했다. 이것은 미국이 아시아의 반공기지 구축을 위해서 일본내의 우익세력에 손을 내민 것이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일본은 그나마 일본의 전쟁본능을 제어해주고 있던 평화헌법을 바꿀려고 하는 중이다. 일본의 평화와 민주주의 세력은 이미 지리멸렬한 상태다. 이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한겨레>에 기고하는 서경식의 걱정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지금 유럽은 대통합과 평화, 번영의 시대로 가고 있다. 그에 비해서 동아시아는 각국의 민족주의를 자극해서 대립하고 불신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과연 공동의 번영은 가능할 것인가? 또 한번 동아시아의 바다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시대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인가? 굳이 우리가 일본에 대해서 격화된 감정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대로 정확히 알고 있어야 된다. 무지는 힘이 될 수 없다. 올해는 을사늑약 102주년, 해방 62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또다시 침략의 세기를 보내선 안 될 것이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바다를 무시하고 국가를 경영한 나라치고 번영한 나라가 드물다. 우리는 어찌보면 그간 삼면이 바다인 나라인데도 바다를 내륙의 중심지만큼 대우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운의 역사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육지와 해양의 역사를 함께 아우르는 자세를 가지고 공부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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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자누스 2008-12-25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유럽은 대통합과 평화, 번영의 시대로 가고 있다"는 사실과 다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