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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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에서 '손님'이란 책 이름을 쳤더니 무려 122개나 되는 책이름이 나타난다. 도깨비 손님, 우리 집에 온 손님, 겨울 손님 등등. 이렇게 책이름에 손님이란 이름이 많이 붙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손님'이라는 말은 반가운 의미로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어렸을 적에도 우리 집이나 동네에 손님이 온다고 하면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반갑게 맞이하기 위해서 청소하고 정리하면서 부산을 떨었지 싶다. 손님은 잠시 머물다 가기 때문에 짧은 동안의 시간에 좋은 기억을 주기 위해서 긴장하고 그랬던 것이지.

황석영의 소설 제목인 손님이 상징하는 바는 '주인이 되어버린 손님'이다. 돌림병처럼 사람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무서운 손님이다. 여기서는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손님이다. 겨우 100여년전에 한반도로 들어왔지만 이제는 남녘과 북녘에서 주인이 되어버린 손님이다. 기독교나 공산주의 모두 민족과 민중의 수난기에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들어왔지만, 결국에는 사람을 억누르고 파멸시키는 사상이 되어버린 역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은이는 황해도 신천 학살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 가는 과정에서 그것이 우리 민족 내부의 싸움에서 생긴 사건임을 알아내었다고 한다. 노근리 사건처럼 미제국주의에 의한 학살이 아니라 기독교와 공산주의 간의 살륙임을 알아낸 것이다.

황석영은 황해도 신천학살의 이야기를 지노귀굿, 혹은 오구굿이라는 굿의 12마당 형식을 빌어서 들려주고 있다. 기독교도인 요한과 요섭 형제는 한국전쟁 뒤 남쪽으로 내려온 뒤 미국으로 이민을 간 세대다. 요섭은 목사다. 미국에서 북한으로 가는 고국방문을 통해서 그들의 고향을 찾아간다. 그 고향방문에 요한은 혼령으로 함께 따라간다. 황석영은 헛것이라는 표현을 쓴다. 신천학살 때 숨진 그 마을 사람들의 혼령은 지상을 떠돌다가 요섭을 따라서 북으로 간다. 그곳에서 해방전후와 전쟁전후로 벌어졌던 마을의 일들의 실상이 밝혀진다. 이것은 소설적인 장치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인 사실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것을 밝히는 이야기는 작가가 모두 이야기하는 방식도, 주인공이 진술하는 방식도 아닌,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다. 소설이 아니라 연극 같은 느낌도 준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아서 불편했는데 자꾸 읽다다 보니까 편안해졌다. 나는 한번 읽고 나서 다시 한번 앞에서부터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기면서 이해안 되던 부분을 읽어보았다. 그랬더니 이야기의 전모가 이해되었다. 결국 책을 두번 읽은 셈이다. 나는 같은 책은 두번 잘 안 읽는데 하다가보니 그렇게 되었다.

해방과 전쟁 전후의 이야기를 보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그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불구덩이를 지나왔을까 하는 안쓰러움이다. 내가 만약에 그 시대에 젊은이로 삶았다고 하더라도 어떤 선택을 강요당할 수 밖에 없지 않았겠나. 기독교든 공산주의든, 극단적 반공주의든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중간파란 존재하기 힘든 시대였으니까. 회색은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색깔로 취급되어서 어디에서든 환영받지 못했으니까.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다보면 사람은 어느 순간 마약에 중독된 사람처럼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다. 그것의 노예가 된다. 손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비극이 벌어진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장소와 시대에서는 그것이 극단으로 치달아서 수만명의 인민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을 벌였다. 공산주의가 옳지도 않고 반공하는 기독교도 옳지 않다. 재판도 없고 판결도 없는 학살이 서로간에 벌어진다. 내 논밭을 뺏어간 공산당의 세력이기 때문에 죽이고, 내 편을 학살한 반대편이기 때문에 죽인다. 나중에는 서로 같은 편끼리도 죽이는 일이 벌어진다. 어린애고 여자고 어른이고 가리지 않는다.  평소에 마음에 두고 있던 여자도 반대편이면 총을 무기로 능욕하고 지겨우면 죽여버린다. 과연 이런 세상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인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이런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유고내전에서, 아프리카의 내전들에서 이런 일들이 예사로 일어난다. 그야말로 문명속의 야만이다. 총든 자들이 저지를 수 있는 야만은 얼마나 무서운지. 막강한 힘이 주는 유혹. 돈가진 자들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힘없는 이들에게 저지르는 횡포도 본질은 같다. 어른이 어리고 약한 아이들에게 휘두르는 권력도 마찬가지.  여하튼 성찰되지 않은 힘은 남을 해치고 결국에는 자기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법이다. 세설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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