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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뭐든지 할 수 있어 ㅣ 창비아동문고 174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강일우 옮김, 일론 비클란트 그림 / 창비 / 1999년 4월
평점 :
품절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우리들 초중학교 시절에 삐삐와 코난이 없었다면 얼마나 재미없었을까 하고 말이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문화라고는 텔레비전이 거의 전부였던 시절의 일이다. 그 때 우리가 즐긴 것은 <전우>나 <마징가 제트><육백만불의 사나이><원더우먼><소머즈>같은 싸우고 죽이고 하는 종류의 드라마들뿐이었다. 그렇게 황폐하던 것들의 와중에 처음 등장한 외계인 같은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말괄량이 삐삐다. 아마 1980년 전후가 아니었을까 싶다. 정말 삐삐는 이해하기 힘든 존재였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여자아이였다. 그 요상한 외모며, 천하장사도 이겨낼 힘, 부모도 없이 큰 저택에 혼자 사는데다 금화를 한 궤짝이나 가지고 있는 부자라는 점 같은 것은 우리 머리로는 이해가 불감당인 그런 인물이었다. 그래도 얼마나 재미있었던가.
마징가 제트와 삐삐는 그렇게 우리 정신생활의 세계에서 공존했다. 항상 선악이 분명한 세계 속에서 주인공과 악당이 싸우는 것만 보다가, 삐삐처럼 희한한 주인공에 악당같지 않은 악당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우리 정신세계를 조립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미래소년 코난도 그런 점에서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들을 창조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과 미야자키 하야오를 한참 지난 뒤에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이 위대한 예술가임을 평론가들이 말해주기 전에 미리 알아보았다.
린드그렌의 작품은 무엇을 읽어도 재미있다. 우리 말로 번역된 것도 많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60권도 더 된다. 내가 읽은 것은 겨우 다섯 권 정도다. 그 가운데 이 책 <난 뭐든지 할 수 있어>가 제일 마음에 든다. 모두 열 두편의 단편동화가 모여 있는 작은 책인데, 읽고 나면 이 책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꼬마 아이들이 머리 속에 선명하게 남아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세 편의 동화이다. 표제작인 '난 뭐든지 할 수 있어'와 '봐 마디타 눈이 와','펠레의 가출'이 그것이다. 모두 스웨덴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품격, 강아지 같이 귀여운 아이들을 보여준다.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없게 귀엽다. 아이들이 모두 싱싱하게 살아 있다. 아이들은 부모와 이웃의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신나게 뛰논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식민지와 분단, 전쟁, 산업화의 그늘에 찌들어사는 아이들을 그릴 수 밖에 없는 우리 동화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내가 린드그렌의 동화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