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깃발 (2disc)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제시 브래드포드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일본과 미국 사이에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때다. 이오지마는 한문으로 하면 '유황도'다. 유황이 나오는 화산섬 같은 정도로 이해된다. 영화의 대사를 근거로 하여 판단해보면 이오지마는 일본이 미국에게 뺏었던 괌이나 필리핀 같은 섬과 다르게 일본 본토에 속하는 섬이다. 일본본토에 속하는 만큼 일본은 미국의 공격에 그야말로 목숨을 바쳐서 싸우는 자세를 보인다. 전투는 그야말로 처절하게 펼쳐진다. 영화 속에 그 처절한 전투장면들이 재현되고 있는데, 보면 좀 끔찍한 장면들이 많다. <라이언일병 구하기>에서 보았던 그러한 전쟁의 실감이 여기서도 난다. 기관총에 맞아서 마치 짚단이 엎어지는 것처럼 픽픽 쓰러지는 병사들, 폭탄에 몸의 일부가 잘려나가거나 총알에 맞아서 시뻘건 피를 뿜어내다가 곧 죽음에 이르고 마는 병사들의 모습은 전쟁이란 것이 얼마나 처참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나는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의도한 이른바 '영웅만들기'에 대한 고찰의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전쟁자체에 몰입해서 보았다. 이오지마의 섬 곳곳에 굴을 파놓고 저항하던 일본군대 속에는 얼마만큼의 조선인 청년들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했다. 미군과 백병전을 벌이다가 총검에 찔려 죽어가는 일본군 병사는 혹시 식민지 조선의 청년이 아니었을까  영화의 중반에 보면 일본군이 미군에 밀려 전투가 거의 패배에 다다르자 일본군들은 동굴 속에서 수류탄으로 자폭을 한다. "뻥! 뻥!" 하며 동굴 속에서 들려오는 폭음에 미군병사들은 처음에는 영문을 모르다가 자폭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미군병사의 얼굴에 어리는 두려움의 표정을 보면서 오키나와 전투에서 집단자살을 강요당했다는 오키나와 원주민들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쟁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야만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전쟁은 가장 생산적인 산업이 되기도 한다. 결국 따지고 보면 1929년의 대공황으로 위기에 빠진 세계자본주의를 구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전쟁은 단기간에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그동안 정체되어있던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해버렸다. 그러나 전쟁이 만들어내는 문화의 파괴와 대량살륙은 인류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전쟁은 젊은 세대의 에너지를 착취해서 소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 전후는 한 세대의 공백(그 세대의 10-20%가 죽어버리는 형태로 실현되는)을 가져온다. 2차대전후의 독일과 러시아가 그러했고, 한국전쟁후의 한국과 중국이 그러했으며, 베트남 전쟁후의 베트남과 미국이 그러했다. 이 영화에서도 이오지마 전투에 참가한 주인공의 소대원들 중에 상당수는 이승에 없다. 승리자인 미군이 그러했다면 패배자인 일본군은 어떠했을까. 사회를 지배하고 역사를 이끌어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파괴와 죽음들은 사회를 새롭게 가꾸는 데 필요한 거름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보통 사람들의 가정에서 꼭 필요한 사람들인 것을 생각한다면 민중들에게 전쟁은 필요악이 아니라 절대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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