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사보았던 기억이 있다. 몇 부분 뒤적이다가 말았는데 어느새 책이 책꽂이에서 사라져버렸었다. 느낌표에서 이 책을 추천할 때도 한번 읽어보아야지 하는 생각은 했더랬는데 그 때는 웬지 마음이 나지 않았다. 막상 책을 서점에서 산 것은 1주 전이다. 술먹고 집에 가는 길에 우연히 길가에 있던 서점에 들러서 책을 뒤적거리다가 이 책을 샀다. 술먹고 고르는 책인데도 여러권의 책을 물망에 올라놓고 골랐던 기억이 난다. 초판본과 맺은 인연으로 치면 15년 정도 되는 셈이다. 내가 산 책은 2006년 2월 118쇄본이다. 많이도 팔렸다. 소설이 100쇄를 넘긴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사람들 가정에 대부분 한 권 정도는 있다는 소리가 아닐까 싶다. 책을 한번 손에 잡으니 세시간 정도는 그냥 간다. 마치 재미있는 영화 한편을 보는 것 같다. 아니면 말 잘하는 친구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듯이 그냥 술술 훌러간다. 어제 오늘 이틀 만에 다보았다. 재미있는 소설의 특징이 그렇듯이, 다음이 궁금해서 책을 덮어놓고 다른 일을 하기가 싫었다. 결국 오전에 끝장을 보고 말았다. 무언가 가슴이 뿌듯하고 아련해오는 게 있다. 이런 게 감동이 아닐까 싶다. 문학에서 우리가 얻기를 바라는 위안 같은 것을 나는 받은 느낌이다.

박완서는 막 쉰살을 넘긴 나이에 이 소설을 썼다. 소설로 그린 자화상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소설과 자서전의 성격이 골고루 들어있다고 느꼈다. 50살 정도가 되면 보통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픈 유혹을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60살이 되기에는 아직 10년을 남겨둔 나이지만 이 때쯤이면 자식들을 대부분 다 키워서 대학에 보내고 난 뒤의 나이다.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의 지위에 도달해 있을 즈음이다.  박완서는 개성 시골에서 자란 유년시절의 기억과 서울로 이사와서 겪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한국전쟁 직후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고 있다. 삶이란 것이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소설가의 어린시절도 즐거움과 괴로움이 골고루 섞여있다. 세살무렵에 아버지를 갑작스런 병으로 잃어버리고 난 뒤의 여자아이는 할아버지와 숙부들의 그늘에서 아버지없는 설움을 특별히 겪지 않고 자라난다. 그러나 서울로 가서 성공하고픈 욕망이 강했던 어머니의 결단에 의해서 서울로 이사를 하고, 거기서 초등학교와 여고(중고등학교가 통합된 6년과정)시절을 겪는다. 그 기간은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시기와 8.15해방, 한국전쟁 전의 혼란기였다. 그 시절의 혼란을 겪으면서도 지금의 우리가 그렇듯이 어린시절, 청소년시절은 똑같이 겪게된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나 할 것 없이 인생은 겪을 것을 다 겪어야 성숙하는 법이다. 단지 1950년의 그 격동기는 스무살의 처녀가 겪어내기에는 너무도 혹독한 것이었다. 그 시절의 이야기는 한편의 풍경화나 풍속화처럼 느껴진다. 일제하에 면서기로 지역민들을 수탈했던 큰숙부와 얼음장사와 밀매로 장사를 해나가는 작은 숙부, 젊은 혈기로 좌익운동에 빠져드는 오빠와 그것을 말리는 어머니, 그 밖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당대의 그림을 형상화하는데 꼭 필요한 인물들이다. 나는 언뜻 리영희의 <역정>을 떠올렸는데, 그 와는 또다른 맛이 있다. 워낙 모든 이들의 삶을 뒤흔든 대사건이었다보니 그 시대를 살아낸 모든 사람의 이야기는 생생하고 전형적이다.

박완서 문학의 원체험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꼭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이어지는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를 안 읽을 수가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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