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연구실에 혼자 있으려니 적적함이 밀려든다. 아무리 바빠도 외로울 틈은 있다는 말이 떠 오른다. 이런 글을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도 모르고 다만 내 멋에 겨워 글을 쓸 뿐이다.

제작년 봄이던가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왔더니 마당에 오래 묵은 벗나무가 있어 감상할 만했다. 딱히 부를 친구도 없고 해서 허드르진 벗꽃을 감상하며 나도 모르게 이 시를 소리내어 읊고 있었는데.. 이웃집 아주머니가 자기 집에 꽃잎이 많이 떨어지니 불편하다며 쓸어야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 층에서 지금 내가 시를 음미하고 있다고 하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참을 보다가 간다. 나는 잠시 깊은 탄식을 했다. 왜 주변에 강호의 묵객들이 득실대지 않고 아득바득한 생활인들하고 늘 부대껴야 하는가 하는 사뭇 우울하고 반성적인 감회에 젖어서...

飮酒

陶淵明

結廬在人境이나
而無車馬喧이라

問君何能爲오
心遠地自偏이라

採菊東籬下라가
悠然見南山하니

山氣日夕佳요
飛鳥相與還이라

此中有眞意하니
欲辯已忘言이라




집을 사람 많이 다니는 곳에 마련했으나
수레나 말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네

어쩌면 그럴 수 있지요?
마음이 멀어지면 사는 곳은 절로 외지는 법이죠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꽃을 따다가
느긋이 남산을 바라보니

산기운은 저녁이라 더욱 아름답고
새는 짝지어 돌아오네

여기에 사는 참 맛이 있으니
대답할 말을 잊겠네


이것은 5언 고시인데.. 나는 전에 첫 두구가 이해가 안되어 토를 結廬在人境하니로 붙여서 수십번을 읽다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자꾸 찾아보다가 일본 사람이 쓴 한문대계를 보고 확실하게 그 뜻을 알았다. 총기 있는 사람이면 금방 알 수도 있고 누구에게 배우면 쉽게 알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럴 때면 기억이 좀 오래가겠지 하는 위안을 하곤 한다. 그것의 핵심은 市隱이라는 뜻으로 大隱은 市隱이라고 한다. 도연명이 쓴 귀거래사는 아주 운률감이 느껴지는 명문인데 ...이 시와 많이 통한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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