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전설은 이렇게 말했다

9. 역설의 인생론

설 연휴 기간에 아는 선생님들에게 세배를 하기 위해 좀 일찍 올라오게 되었다. 한 이틀 연휴가 더 남아 있어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었는데 승부의 늪에 빠져 사흘이나 헤어나지 못하고 감기마저 걸려 완전히 폐인이 다 되었다. 눈은 멍멍하고 숨쉬기는 불편하며 열이 나는 가운데서도 이 승부에 대한 집착에서는 헤어나질 못하겠으니 병이로고. 탄식이 저로 나오는데 뜻하지 않게 바람의 전설이 왕림하였다.

불초한 소인 : 설한풍이 매서운데 어이하여 고명하신 은군자께서 친히 옥보를 옮기어 이처럼 봉호한사(蓬戶寒士)의 누옥에 왕림하셨나이까?

현자인 바람의 전설 : 근년에 없던 대한 추위로되 이토록 천기 양명하거늘 세초에 진덕수업(進德修業)할 생각은 아니하고 침식을 잊은 채 수담(手談)에 탐닉한다 하기에 내 보기에 딱해 그 아둔함을 일깨우러 왔니라.

나 : 애초 나의 급수를 회복하고 곧 그만둘 요량이었으나 두면 둘수록 승률이 낮아지니 탐욕불승(貪慾不勝)인가 하옵니다. 소인 잠시 완물상지(玩物喪志) 한 것이 도를 지나쳐 이처럼 현자의 옥체를 피로케 하니 부끄럽사옵니다.

***** 잠시의 침묵

바람의 전설: 네 역설의 지혜를 아느냐?

나 :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삼가 가르침을 청하옵니다.

바람의 전설 :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니라. 이기려는 마음이 앞서면 혜안이 흐려져 수가 보이지 아니하고 수가 보이지 않는데도 경박하고 조급하게 자꾸 두면 지는 것은 명약관화. 자신이 질 수 있음을 아는 것이야말로 탐욕을 극기하는 것이니 바로 지는 것이 이긴다는 이치이니라.

나 : 승부의 세계는 승부를 초월하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옵니까?

바람의 전설 : 그렇다. 가장 강한 고수는 승부를 초월하는 철학을 가진 자이니라. 그런 자는 지는 것도 이기는 것으로 삼기 때문에 지는 일이 없이 항상 부동심(不動心)을 유지하니라. 그런 자의 승부는 아름다우며 그와 승부하는 자에게도 지는 일이란 없느니라.
… … … …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生則死 死則生)' 란 말도 다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고 아는 것이 모르는 것이고 모르는 것이 아는 것이란 말도 다 역설의 인생론이니라.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말도 다 한 근원, 한 뿌리에서 나온 물이거나 가지이니라.

나 : 참으로 자욱한 안개가 걷히고 일월을 대하듯 저의 아둔함이 가시어지는 듯 합니다. 이 검을 무엇이라 이름하오리까?

바람의 전설 : 이 검법은 탐욕에 사로잡히고 아둔하여 미망에 빠진 자나 고난과 위기에 처한 자에게 역설의 대전환을 통하여 한 줄기 빛의 길로 인도해 주나니 이 검법을 역설활인신검(逆說活人神劍)으로 이름지을지니라.

나 : 삼가 가르침을 명심하겠나이다.

참고: 봉호한사 : 가난하고 한미한 선비를 지칭하는 말로 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