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인생의 갈림길에 서서


사람은 항상 인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내가 요즘은 그렇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과감하게 현실을 박차고 모험을 걸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직시하면서 나중을 도모할 것인가. 모험의 성공확률은 높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모험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만약 자꾸 현실에 주저앉게 된다면 나는 점점 소심한 인간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고 차츰 나의 열정은 식어가고 나의 재능은 녹이 슬 것이다. 멀리 뛰기 위해 너무나 자중한 나머지 더 이상 뛸 수 없을 정도로 근육과 신경이 굳어 버린 개구리처럼, 오래도록 학대와 모멸을 참고 견딘 나머지 이제 더 이상 민족의 노래를 부르지 않고 아니, 부르고 싶지도 않은 스러지는 민족처럼. 이성의 명령에 따라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예측 가능한 결과를 가져오기는 한다. 그리고 앞으로 더 좋은 상황에서 자신의 꿈과 이상을 펼칠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이 많다. 이런 두 선택 가능한 문제를 두고 오랫동안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성과 감성이 뒤섞인 바람이 불고 그 사이에서 나의 저울추는 자주 이동한다. 어떨 때는 동시에 두 가지 생각이 나란히 달리기도 한다.
이런 것이 하나의 고민이 아니겠는가. 하나의 번뇌가 아니겠는가.

나는 또 바람의 전설을 만나러 갔다. 이제 나의 독자들도 바람의 전설이 어떠한 사람인지 대충 눈치를 채고 있을 것이다. 오늘 바람의 전설은 당비파를 뜯고 있다. 당비파의 애잔한 리듬이 바람의 전설이 살고 있는 서재(思之齋--韓退之와 王羲之를 생각한다는 의미임) 에 가득 울린다. 바람의 전설은 오늘 思之齋와 어울리게 風之說로 바꾸어 표현해 본다.

풍지설 : 오호 친구. 오늘은 어째 얼굴에 잔뜩 근심을 달고 왔느뇨.

나 : 근심을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게 슬픕니다. 그리고 어떤 선택이 과연 옳은지 알 수 없고 내가 내 스스로의 인생을 열어 가는 힘이 이다지도 적은지에 대해서도...

풍지설 : 그렇다. 자신의 근심과 고뇌를 깊이 있게 들어줄 친구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지. 자기 편이 되어 큰 사랑의 힘으로 어루만져 주는 가족이나 연인이 있는 사람도 행복하고 자기의 속 마음을 다 털어 놓고 가르침을 구할 수 있는 스승이 있다면 역시 행복하지 않으랴, 그 선택마저 옳은 방향일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하지 않으랴. 그러나 정말 중대한 기로에 선 사람은 항상 외롭나니, 친구나 가족과 연인이 감당하기엔 그 근심과 고뇌가 크기 때문이니라. 스승. 그렇다. 스승도 우리를 어느 정도까지는 이끌어 줄 수 있어도, 곧 스승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민이 생겨나기 마련이지.

나 : 그럼 무엇을 생각하여 어떻게 판단을 내려야 할런지요.

풍지설 : 그건 그 사람의 운명이지. 아니면 그 사람의 그릇이거나 그 사람의 인격이거나 가치관 그런 것인데...결국 그 선택은 그 사람이 그동안 쌓아온 지혜의 총 집결과 본능적 예지력의 총집약이 아닐런지. 그 사람이 가장 잘 판단할 수가 있지. 물론 그동안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최대한 받아야 하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많겠지.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 정 말 큰 스승은 사람을 떠나 위대한 자연의 이치이고 그 자연보다 더 큰 스승은 우주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너 자신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네만. 마음을 차분히 하여 밤중에 자신에게 한 번 잘 물어보게나. 의외로 문제는 쉬운 곳에서 풀려 나갈 수도 있으니까...

나 : 그러지요.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정말 자신에게 진지하게 한 번 물어 봐야지요. 자신의 길이 정말 무엇이지에 대해... 가장 날 잘 이해하고 가장 날 사랑하는 내 자신에게요.

당비파 소리는 삶의 비밀을 품은 채 서재 창문을 넘어 하늘 저편 멀리 잔잔히 퍼져간다. 나는 내 어깨에 드리워진 무거운 짐을 느끼며 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살아간다는 게 아아, 몹시 외로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