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해돋이를 맞이하러 동해로 가기 위해 일을 서두른 끝에 예상보다 일이 일찍 끝났다. 나는 한가한 심정으로 점심도 먹을 겸 산책을 나갔다.근처에 조그만 개울이 흐르는 곳으로.
날씨가 참 좋다. 먼산에는 내린 눈이 떡 가루처럼 쌓여 풍성하고 탁 트인 하늘을 보노라니 마음마저 한가롭다. 아, 저만치 앞서 바람의 전설이 걸어가고 있다.
내가 바람의 전설을 따라 가니 그의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번진다. 우리는 개울가를 거닐었다.

나 : 지난 가을에 놀던 고기들이 다들 어디로 갔을까? (독백)

바람의 전설 : 손을 들어 무언가를 떨어뜨리니
고기가 바위 밑에서 나온다. 놀랍게도 바람의 전설이 떨어드린 것은 조그만 돌이었다.

나 : 고기들이 화를 내고 돌아가는군요.

바람의 전설 : 장자와 혜시의 얘기가 떠오르는군.
(장자와 혜시의 얘기는 하도 유명하여 식자의 지겨움을 살 것 같아 생략하니 장자 책 추수秋水편을 참고 바람)

나 : 고기들도 색깔을 좋아할까요?

바람의 전설 : 좋아하지. 예전에 어떤 사람이 원숭이 털을 물에다 놓았더니 고기가 몰려들은 걸 보면 원숭이 털은 고기에게 있어 비단의 자수와 같은 것이지.

나 : 고기에 대해서도 어느새 그런 연구가...

바람의 전설 : 모성애가 강한 물고기는 고래이지. 그래서 고래를 잡는 사람들이 새끼 딸린 어미 물고기를 보면 먼저 새끼 고래에게 상처를 입혀 어미 고래가 보호하고 있을 때 어미를 잡은 다음 새끼도 잡느니라. 수컷 쏘가리는 매우 아롱다롱한 예쁜 무늬가 있는데 이것을 잡아 끈에 묶어 물에 놓으면 암컷이 몰려들어 만지고 할때 몽땅 잡기도 하지. 그리고 게는 수수를 아주 좋아하는데 이 수수를 줄에 매어 물에 놓으면 게가 와서 자신을 잡아 가는 줄도 모르고 수수에 매달리고...통발의 물고기들이 사람에게 잡히는 이유는 다 그 탐욕때문이지. 또 오징어 같은 놈은 사람을 보면 먹물을 쏘느데 오히려 그 과잉 방어심리에 의해 사람에게 자신의 위치가 노출되어 잡히기도 하고..낙지는 독특하게도 자기 개별성이 강해 어항을 놓으면 한 통에 크나 작으나 꼭 한 마리씩 들어가니 참 신기한 일이지.

나 : 그래요. 탐욕은 정말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해요. 그러나 슬픈 일도 있죠. 탐욕이 아니라 생활 때문에요. 제주의 해녀들은 옛날부터 전복을 땄는데 전복을 따다보면 상어를 만나 상어뱃속에서 장사지내는 경우가 많았지요. 전복이 비싸기도 하지만 살기 위해서 죽는 것이죠.

바람의 전설: 춘추에 보면 수없이 많은 인물이 탐욕으로 패가 망신하는 경우가 많지. 겸손하지 않고 거만으로 망한 경우와 비교하면 어느 것이 많은지 모를 지경이니 탐욕과 오만을 경계해야 하느니라.


우리는 물이 떨어진 겨울 시내에서 침거하고 있는 물고기들을 오래 쳐다 보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돌아왔다.

참고: 겨울에 물이 준 강이나 개울을 표현할 때 수락석출水落石出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지금 시점에 딱 맞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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