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학 동아리 망년회가 있어 나갔다가 뒤끝이 좋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중여동 모임에 나가는건데...나는 좀 기분이 가라앉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현자를 찾아갔다. 현자의 집 앞에서 옷깃을 여미며 공손한 태도로 그의 허름한 집을 찾았더니 현자는 늦은 시간에도 불을 밝히고 책을 보고 있었다. 바람의 전설로 불리우는 현자는 나에게 차를 한 잔 권하였다. 다음은 나와 현자인 바람의 전설과의 대화이다.
나 : 현자시여 , 술자리는 어디에서 멈추어야 하나이까?
바람의 전설 : 그대가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두되 마지막은 피해야 하는니라. 가능한한 12시를 넘겨서는 아니된다. 자시엔 하늘이 생기고 축시엔 땅이 열리며 인시엔 사람이 생겨나므로 사람은 자시전에 자고 인시가 다 가기 전에 일어나는 것이 가장 좋으니라. 다만 우리나라는 일본을 기준으로 하므로 한 시간 늦게 계산해야 하니 1시 전에 자서 6 시 전에 일어나야 하나니 12 시 이후의 술자리는 해로웁고 12시가 넘어 부르는 친구는 나에게 해를 끼치느니라.
나 : 현자시여, 술값은 누가 내야 합니까?
바람의 전설 : 술값도 내고 싶은 사람이 내는 것이 가장 좋다. 세 명이 넘을 경우엔 각자 부담하되 자신이 조금이라도 많이 내려고 해야 한다. 한 잔의 공술을 마시면 그만큼 나의 덕이 줄고 한잔의 술값을 더 내면 나의 적덕이 남느니라. 적선지가에 필유여경 하나니, 항상 남보다 조금 더 내려는 자세를 지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친구들이 내가 술값을 낼까봐 걱정하게 되나니 내는 술값은 같되 서로 내려 하는 것과 서로 안내려 하는 것은 우정의 견지에서 보면 하늘과 당 차이지만 내는 것은 같느니라.
나는 현자의 말에 머리를 조아리고 잠시 침묵한 다음 한 잔의 차를 현자에게 올리고 말했다.
나 : 현자시여 , 이 겨울에 외로운 사람과 그리운 사람이 많나이다.
바람의 전설 : 외로운 사람은 그리워 하고 그리운 사람은 외로워 하나니, 이것은 인간의 본질이니라. 정말로 위대한 것은 외로움에 그 씨앗이 숨어있고 그리움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나니 그리움이 있어 그대는 시인이 되고 외로움이 있어 그대는 철인이 되리라. 외로울 때야 말로 더 큰 외로움을 향해 나아갈 때이고 그리울 때야말로 더 큰 그리움의 바다로 가야 할 때이니 그대여, 외로움이 외롭지 않을 때까지, 그리움이 그립지 않을 때까지 가 본 적 있느뇨. 사실 알고 보면 사람들은 늘 외롭기를 원하고 있지 않느냐. 사실 알고 보면 사람들은 늘 그리움을 원하고 있지 않느냐. 외로울 땐 외로워 하고 그리울 땐 그리워 하는 것이 중요하느니라. 그러므로 외로운 사람은 외로움을 한 없이 음미하고 그리운 사람은 그리움을 한없이 음미하라. 그리고도 외로워 할 것이 남아있고 그리워 할 것이 남아 있더냐.
나 : 현자시여, 이 잠들지 못하는 영혼에게 무슨 말을 주시렵니까?
바람의 전설 : 나도 잠들지 못하는데 내 누구에게 말해줄 것이 있겠느냐. 잠들지 못할 때처럼 축복받은 때는 없나니, 그대는 남은 술이 있느냐. 남은 술의 향기가 우리에게 인생의 비밀 한자락을 풀어 주려나 보다.
나는 한 잔의 술을 현자에게 바쳤다. 현자는 한 잔의 술을 음미하듯 마시고는 온화하기 춘풍 같은 얼굴로 한 동안 우주를 느끼며 노닐다가 내게도 한 잔의 술을 부어 주었다. 말없이 마시는 한 잔의 술에 한 잔의 침묵이 흐르고 나는 스르르 와선을 하고 싶은 생각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