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004.10.31.
오늘은 시월의 마지막 날, 일요일. 지금은 시월의 마지막 밤. 아침 10시에 수원에 사는 형과 국민대 앞에서 만나 등산을 하였다. 모처럼 하는 산행이라 숨이 가쁘다. 한 두 번 쉬어 형제봉이 바라다 보이는 지점에 왔다. 쉬기에도 안성맞춤이고 전망이 좋은 바위가 있어 올라갔다. 단풍이 물들어, 골짜기마다 물들어 십리 이십리 아아 단풍의 물결. 우리는 절정을 이루고 있는 산을 바라보며 잠시 휴식에 젖었다. 몸에 진 짐도 잠시 벗어 놓고 마음의 짐도 내려 놓고 단풍이 주는 음악과 그림 속에 빠져 그저 그렇게. 산 정상 부근에는 단풍이 거의 떨어져 나무들의 뼈가 드러나고 산 아래는 아직 단풍의 불이 붙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경사가 심하지 않은 저 계곡 어디쯤에 집을 한 채 엮고 들어앉아 한 십년 글을 읽고 싶다. 집에 있으면 모르지만 일단 나와보면 그동안 집에 있었던 자기 자신을 한탄하게 되는 것도 세상을 사는 하나의 이치일까. 더 깊은 한탄을 하지 않기 위해서도 나는 오늘 또 나의 삶을 다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단풍
하늘은 어질어 수목의 잎을 피우고 거둘 때 한 바탕 잔치를 허여한다. 사월이 생명력의 향연이요 여명이라면 시월은 그 찬란한 광희요 노을이다. 저 단풍진 산과 숲을, 숲과 나무를, 나무와 산을 정신이 어지럽도록 빠져들어 바라보노라니 내 비록 시인은 아니지만 한 줄 시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속인아, 웃지 말진저. 저 산이 주는 감흥을 절제하지 못하는 나그네는 시월과 아니 우주와 교감하는 언어를 다루고자 하나니.

단풍이 있는 짧은 휴식

단풍이여
 네가 이토록  만리를 나는 붕새인 줄은 몰랐다. 거짓이라고 신화라고 알았더니 오늘 하늘의 구름 상서러이 모두 걷힌 날 이토록 큰 깃을 퍼덕이며 물들었나니. 아아 네가 저 전설 바다 북해를 차고 오른 지가 언제드뇨. 고구려 들판 만주를 물들이고 성큼성큼 발해를 지나,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다 오오, 금강산, 그 금강산에서 노닌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아아 어느새 북한산 산성을 넘어 이 부드러운 산자락에서 서울을 굽어보며 잠시 숨을 고르는구나, 너의 고운 자태여
  십리 이십리, 천리 천리 산마다 물들고 물들었는데
  그 절정의 바다에 
잠시 짐을 내려놓고, 짐진 어깨마저 내려놓고, 마음에 올려 둔 가시 한 짐 마저 내려놓고 본다 연인의 눈동자를 대하듯 부드러운 눈길로 본다. 온통 발그레한 얼굴로 선한 표정으로 나를 마주한다.
바람이 불어오고 너는 이제 먼길을 떠나려는듯  늙고 지친 잎 몇 자락을 툭툭 털고 다시 깃을 다듬고. 나도 가야지 해가 다 지기 전에, 텅빈 한 해의 가을, 혹은 이삭이라도 주워 내년에 뿌릴 씨를 거두기 위해.
바위를 내려오니 등뒤에서 대붕이 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 가야할 하늘은 시리고 푸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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