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만화를 보게 된다. 아이였을 때라면 나도 좋아했을 텐데, 어른이 되어서 본 감상은 다르다. 극장에서 본 '화염의 해바라기'는 아, 아이들은 이렇게까지 어른들을 가소롭게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아이들이 그러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어른들이 이렇게 멍청하고 가소롭고 한심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이런 생각. 이미 어른인 나는, 어른이 한심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영화 속의 상황은 변명의 여지가 없고 어른들은 어디 찌그러져서 아이들의 용맹함에 의지해야 하는 존재다. 

아이들이 티비로 보는 걸 곁눈질로 보면서, 저건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해? 싶은 지경들을 만난다. 코난이 주인공이니까, 과장적으로 그려진 아이는 작지만, '은빛 날개의 마술사'에서 기장과 부기장도 쓰러진 비행기를 코난과 코난의 여자친구와 몇 몇이 비상착륙시킬 때는 의문이 계속 생긴다. 상황이 위험하면 아이라도 해야 한다. 어른이 사라진 세상에서 아이가 운전을 해야 하는 책도 본 적이 있으니, 상황이 그렇다면 누구의 손이라도 빌려야 한다. 그래도 역시, 갸우뚱하며 남편을 봤더니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나보다. 그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닌지, 검색한 위키백과의 각주(https://ko.wikipedia.org/wiki/%EB%AA%85%ED%83%90%EC%A0%95_%EC%BD%94%EB%82%9C:_%EC%9D%80%EB%B9%9B_%EB%82%A0%EA%B0%9C%EC%9D%98_%EB%A7%88%EC%88%A0%EC%82%AC)로도 달려 있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어른들이 운영하는 세계를 무시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래야 그 다음 자신이 어른이 되었을 때 감당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태도의 어딘가에 존중이 있어야, 지나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점점 더 어쩌지 못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내게 권력이 주어진대도 욕 먹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싶은 데다가. 가끔은 이게 뭐 그리 큰 일이라고 호들갑을 떠느냐고도 하고 싶다. 

무언가 나의 일로 받아들이고 변명을 하고 있다. 아이일 때 밖으로 발을 빼고 하던 그 말 '야! 일 좀 똑바로 하라고!!!'가 안 되는 거다. 사후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였다는 것들에 점점 더 동의를 못하고 있다. 사고의 경중에 대한 감각도 줄고, 결과가 없는데도 문제삼는 태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게 된다. 

늘, 교통사고가 아니라 브레이크 밟은 걸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원자력발전소에 다니고 있어서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브레이크를 밟았다니, 얼마나 위험했던 거냐?는 말을 듣고 있는 기분이라서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https://ko.wikipedia.org/wiki/%EB%AA%85%ED%83%90%EC%A0%95_%EC%BD%94%EB%82%9C:_%EC%9D%80%EB%B9%9B_%EB%82%A0%EA%B0%9C%EC%9D%98_%EB%A7%88%EC%88%A0%EC%82%AC

다만 연출이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힘든 전개가 나온다. 극장판 중에 코난과 같은 일반인이 조종석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일반인이 조종석에 들어가는 행위는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 적으로 2001년 9월 11일에 발생했던 9·11 테러 이후로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또한 아마추어 조종사가 대형 여객기를 극장판에서 연출한 부두에 착륙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위키백과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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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세 번 찢다 - 계보 사상 통념을 모두 해체함 ㅣ 리링 저작선 1
리링 지음, 황종원 옮김 / 글항아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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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종교를 물으면 '유교'라고 대답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인간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방법은 역시 정치라고 생각하는 인간이고, 사람의 마음이 복잡하고 다루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인간이고, 모순되게도 겸양이라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무엇보다 내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아더왕연대기의 드루이드교신자가 기독교에 대해 '여자나 아이들이나 좋아할 종교'라고 말하는 태도로 모든 결정과 책임을 신께 미루는 태도가 싫다. 

중국의 전통과 서양의 전통은 사실 다‘구분‘을 말하고 있으나, 정치와 종교, 승려와 속인의 관계가 다르며 구조도 완전히 상반된다. 저들의 전통은 정치와 종교의 합일이다. 즉 종교는 통일되었고 국가는 다원화되었다. 반대로 우리의 전통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이다. 즉 국가는 통일되었고 종교는 다원회되었다. 만일 기어코 천일합일을 논해야 한다면, 그 역시 저들의 것이지 우리의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전통은 정치를 부각시키는 것이고, 저들의 전통은 종교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저들의 상태가 훨씬 더 원시적이다. -p248

공자는 지식인이었기에, 내가 그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법은 그를 지식인으로 대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천직은 군중을 선동하고, 민의를 조작하며, 지도자에게 유세하여 그들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처방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의견을 물리치고 참말을 하는 데 있다. -p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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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회를 재방으로 두 번이나 조금씩은 토막나게 보았다. 

해외입양아로 성년이 되어 관장이 된 남주(라이언골드)가 덕질로 단련되었으나 직장에서 덕질을 숨기는 아이돌 홈마 여주(성덕미)를 레즈비언으로 오해한다. 아이돌에 대한 유사연애감정으로 묶인 여주와 여주의 친구는 아이돌이 묵은 호텔방을 성지순례하고, 바짝 붙어앉아 웃으며 이야기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여자들이 느끼는 그 즐거운 행복감을 공유하고 있다. 안전하고 무해한 연애감정을 행복하게 공유하는 두 성인 여성을 남주는 그대로 연인으로 오해한다. 

나는, 어떤 태도가 더 좋은 태도일까, 생각했다. 

두 성인이 한 호텔방에 묵는 것 만으로, 그 둘을 성적인 관계로 생각하는 것.

두 성인이 한 호텔방에 묵는다. 그건 그냥 그럴 수 있는 일로 생각하는 것.

오해는 해소되고, 남주와 여주는 연애를 하게 되지만, 세상이 성적인 은유들로 가득 차고, 성적인 긴장감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 피곤하다. 그런 세상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아서 또 피곤하다.

한창 서로의 짝을 찾는 시기에, 성적인 긴장이 가득 찬 공기가 나는 버거웠다. 그것보다 더 많은 삶의 순간들, 우정들, 관계들이 있다. 사랑에도 삶에도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담긴다. 

못 본 체하고 말하지도 못 해서 고통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는 팡쓰치의 엄마가 되는 것도 문제겠지만, 세상 모든 따뜻함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도 끔찍하지 않은가. 어려운 일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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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박현찬,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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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왜 글을 쓰는지, 여기 왜 글을 쌓아두는지 한참 생각했을 때, 결국 그건 허영심이라고 생각했다. 옛 어른들이 글을 쓰듯이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도 아니고, 공개적으로 올리는 상소도 아니고, 내가 읽은 책을 기록하면서 이렇게 열린 듯 닫힌 듯 모호한 공간에 이렇게 글을 쓰는 건 결국 허영심인 거라고. 그걸 인정하고 나니까,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세상을 구해보겠어,라던지, 당신을 바꿔보겠어,라던지 커다란 의미 따위는 없어지고, 그저 나만이라도 내가 남겨놓은 이 허물들 가운데 갇혀서 조금 더 나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거다. 


회사가 책을 사주면서 그래도 직무에 도움되는 책을 20%는 사라고 쪼개놓았다. 흥미위주의 소설들로 책을 사댔는데 그럴 수 없어서 그 중 그래도 관심있는 책을 골랐다. 지금의 관심은 옛 사람들의 글, 생각 들이라서 글쓰기 책으로 포장한 이 소설을 샀다. 유학자의 배움과 글이란 어떤 것인지,소설형식으로 가공한 연암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글들을 정리하기 위해 애쓰는 아들이 아버지의 어떤 시기를 기록한 내용을 읽으며 글 쓰는 법을 배우는 형식이다. 천천히 깊이 생각하면서 옛 글을 읽으라고 읽은 가운데 세상을 보며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지금에도 유효한 말들이다. 사마천이 사기를 쓰던 그 마음은, 누구 보라고 쓰는 글이 아니다. 명예나 돈을 탐해 쓰는 글이 아니다. 오래 살아남는 글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은 자신의 마음에 정직한 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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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살림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책을 읽을 때 아주 단편적인 이상한 부분들이 기억에 남았다.

1. 모래요정과 다섯아이들 

엄마랑 아빠랑 이야기하는 장면이 아마도 이 책일 것이다. 아이들이 모래요정을 만나고, 이런 저런 모험을 하기 훨씬 전에. 

아빠는 엄마에게 묻는다. 

'큰 집에 살고 싶어? 아이를 많이 낳고 싶어?'

'아이를 많이 낳고 싶어'

그래서, 큰 집 대신 보모와 하녀를 두고 아이를 다섯 낳았다,로 시작하던가. 

그걸 읽는데, 어, 요즘에는, 나라면, 이런 대답을 할까, 하면서 신기한데, 이러면서 읽었다. 아이를 많이 낳고 싶은 마음을 순순히 인정하는 엄마는 신기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2.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이 책에서 만난 장면은 이런 거였다. 

작가가 웨이터노릇을 할 때, 노련하고 숙련된 호텔 웨이터가 자부심을 가지는 묘사였다. 

많은 손님을 능숙하게 처리하는데 가지는 숙련된 웨이터의 자부심에 대한 묘사는 뭔가 신기했다. 그게 뭐라고 얕잡아보이는 마음이 글에서 드러났던가, 아니면 내게 그런 마음이 있었던가. 별것도 아닌 것에 그런 식의 자부심, 그런 식의 위계라니, 했던 것도 같은데, 그게 어떤 마음인지는 궁금했다. 

그런데, 가족이 늘고 밥을 해 먹이고, 회사에서 고참이 되고, 후배가 느니까, 먹이는 일이, 얼마나 큰 일인지 매번 자각하게 된다. 

지금은 좀 더 순수하게 멋진데, 라는 마음이 되었다. 




3.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여기서 만난 장면은 이런 거였다. 

아직 헤지지 않았는데, 빨래를 한다고 무리로부터 모욕당하는 이야기. 와, 좋은데. 

물이 귀한 몽골의 사막에서 유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니까 그럴 수 있는 거지만, 나는 그 때 빨래가 정말 싫었나보다. 그 이야기를 보니까, 옷을 좀 더 입고, 빨래를 좀 덜 하는데 변명이 되었다.^^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더 있는데, 사실 전쟁의 이야기니까, 권력을 찬탈하고, 여자를 약탈하는 유목의 삶에 대한 이야기니까, 나는 여자들이 얼마나 힘들까,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장면이 더 기억나는 것도 같다. 여자가 귀하니까, 아이가 귀하니까, 여자의 정절에는 좀 더 무딜 수도 있는 거구나, 같은 것. 그렇다면, 그건 또 그런 데로 장점인걸, 싶었다. 


또 생각나면 마구 마구 붙여야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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