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상나라 정벌 - 은주 혁명과 역경의 비밀
리숴 지음, 홍상훈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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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서 읽는 데 오래 걸렸다. 상나라-내가 배울 때는 은나라였다-에 대한 최신의 발굴결과를 토대로 상나라가 어떠했는지, 주나라는 어떻게 세워졌는지에 대해 재구성한 이야기이다. 상나라,에 대해 내가 아는 이야기는 주지육림의 마지막 왕에 대한 이야기와 봉신연의다. 봉신연의는 책으로도 드라마로도 봤다. 

상나라에 대한 최신의 발굴결과들을 묘사하는 내용들은 무섭다. 무섭지만 계속 읽었다. 무섭지만, 재밌었다. 인간의 잔인함을 보는 일은 경각심을 준다. 


한자에 대한 책을 볼 때, 한자는 '전쟁과 제사를 위해 만들어졌다'라는 묘사를 본 적이 있다. 한자라는 문자의 많은 부분이 전쟁과 제사에서 비롯되었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전쟁과 제사,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제사,를 개별 가문에서 이뤄지는 선대 조상에 대한 공양, 정도로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최신의 고고학적 발굴이 드러내는 제사,는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인 공자가 제사 예법 전문가로서 안내하던 그 제사의 원형은 잔인하고 무시무시하다. 피와 살이 튀는 언어,의 묘사가 함축적이거나 현대에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문자의 형상 가운데 숨어 있었던 거다. 코를 베고(劓), 귀를 베고(刵), 눈을 뚫고(民), 창으로 목을 치고(伐), 묶어 질질 끌고 가고, 고통으로 소리지르고, 그 소리가 하늘에 닿게 하고, 죽여 그 살을 나눠먹는 제사의 모습이 문자로 남아 있었다. 이제 새로이 발굴된 제사갱의 뼈로도 남아 있다. 


국가,가 생기기 전 고만고만한 부족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시대에 두드러지게 강력한 부족이나 나라가 돌출한다. 생존을 위협하는 강력한 존재의 등장 가운데, 그 존재의 믿음을 알게 된다. 저 강한 나라/부족이 신에게 선택을 받아 자신을 지배하고 있고, 그 신께 무엇을 바치고 있는지 보는 순간의 두려움을 상상한다. 다시 역사 가운데, 그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내고, 새로운 나라의 믿음을 구성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다시 후대에서, 새로운 나라의 믿음을 구성하기 위해서 어떻게 과거를 덮었는지도 상상한다. 


믿음,은 무섭고, 믿음을 이겨내기 위해 다른 걸 믿기로 한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국가의 새로운 믿음을 위해 아예 이전의 역사를 날조하기로 공모하는 후세에 대한 이야기로 역경과 사서에 대해 썼다. 애달프고도 간절하다. 


우리가 이걸 알게 되는 건 도움이 될까.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는 모두 일상적으로 쓰이는 용어지만, 이 두 용어의 의미는 전혀 대등하지 않다. 청동기는 석기를 완전히 도태시키지 못했으며, 그저 상류사회 사름들의 생활이 바뀌었음을 나타낼 뿐이었다. 마치 문자를 발명한 뒤에도 대다수 사람이 여전히 문맹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사회의 발전 수준은 종종 소수 엘리트 계층이 대표하곤 한다. - 12%


바꾸어 말하자면 그들은 '야만'의 이족異族을 신들과 선조에게 바치는 방식으로 하늘의 축복과 보우를 기원하고 그것을 통해 대지에 군림하면서 여러 부족을 통치할 칼자루를 획득했던 셈이다. 

상나라 사람들의 인신공양제사가 흥성할 무렵에 왕실은 그런 제사의 최대 주관자가 되었다. 이것은 왕권과 신권이 고도로 융합했음을 나타낸다. - 22%


게다가 사회의 잉여 생산품을 소모하여 부의 지나친 집중으로 인해 직업적 통치계층이 나타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26%


상나라 사람들의 관점에서 세계는 냉혹하고 폭력과 살육, 약탈, 불안전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그들은 귀신에게 명확한 선악개념이 있다고 여기지 않았고, 어쩌면 그들에게 본래 명확한 선악개념이 없으니 당연히 귀신이 그런 것을 가졌으리라 상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34%


선조가 되는 신들의 관계가 화해를 이루어야 인간 세상의 각 부족의 관계도 화해를 이룰 수 있다. - 50%


사기 은본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주왕은 달변인 데다가 견문이 무척 민첩하여 용력이 남들보다 뛰어나 손으로 맹수를 때려잡았다. 


그러나 그의 결점도 바로 여기에 있었을 수 있다. 자신감이 지나쳐서 세상 사람들의 능력이 모두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기고 남의 의견을 듣지 않았고,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변명할 재능이 있었다. 그야말로 이런 격이었다. 


지혜는 간언을 막기에 충분했고, 말 솜씨는 잘못을 꾸미기에 충분했다. 신하들에게 능력을 자랑하고 천하에 명성이 높아서 모두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겼다. - 61%


이 때문에 상 왕조와 적대한다는 것은 귀신 세계의 의지를 위반한다는 뜻이니, 성공할 수 없었다. - 63%


사기 은본기에서는 또 주창이 석방된 뒤에 '낙서의 땅'을 바치며 주왕에게 포락형을 폐지하라고 청하자, 주왕이 허락했다고 했다. 사실 이것은 후세에 만든 도덕적 서사일 뿐 당시의 규칙에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주왕 시기의 큰 특징은 다른 부족의 인간 희생뿐만 아니라, 상족의 귀족도 죽여 제사에 바쳤다는 것이다. - 71%


신과 소통하는 이 두 사람은 모두 각자의 문명을 변화시켰다. 다만 모세는 하느님과 특정 부족에만 묶여 있었으나, 문왕은 상제와 특정 부족 사이의 연결을 풀어버렸다는 점에서 달랐다. - 75%


'덕'에 대한 그의 해석은 그저 보통 사람의 아름다운 바람일 뿐이었다. 즉, 살인하고 싶지도 않고, 까닭없이 살해당하고 싶지도 않으며, 성스럽고 명명한 군주의 통치 아래 안정적으로 살 수 있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형 주발은 반드시 '덕'이 있는 군주가 되어야 했으니, 그렇지 않으면 주족 전체가 죽어도 묻힐 곳이 없어지는 지경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 79%


때로 주공은 노골적으로 폭력을 사용한다고 위협하고 이익을 내세워 유혹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상족이 이런 것들은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그들에게 도덕을 이야기하면 지나치게 심오해서 쇠귀에 경을 읽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물론 이것은 긴급한 일이 있을 때였고, 평소라면 상족에게 도덕을 설교해도 괜찮았다. -86%


이번 주공과 소공의 대화 가운데 일부는 『상서』「군석 君奭」에 수록되었다. 거기서 주공이 가장 많이 언급한 것은 왕조의 흥망과 교체의 교훈이었다. 그는 이 일의 배후에 하늘-상제의 변화 의지가 있으나, 천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바로 사람의 '덕', 그러니까 현실 문제를 처리하는 인간의 준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공은 "하늘은 믿을 수 없다 天不可信"라고 하면서 사람이 상제의 뜻을 짐작하려는 것은 지나친 욕망이니, 그저 인간 세상에서 해야 할 의무를 잘 이행해야 할 뿐이라고 했다. - 87%


너 주봉이 형벌을 가하고 죽이는 경우가 아니면, 다른 누구도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하라. 네 주봉이 또 코를 베고 귀를 자르라고 한 경우가 아니라면, 다른 누구도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하라. 

非汝封刑人殺人, 無或刑人殺人. 非汝封又曰劓刵人, 無或劓刵人.(『尙西』「강고」) -88%


이것은 주나라의 전통적인 '동성불혼 同姓不婚' 즉, 존외혼 族外婚 관습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 90%


첫째, 그것은 상족의 문자 체계를 계승했으나 일부 언어 습관은 주족에게서 비롯되었다. 둘쩨, 그것은 상족의 '상제'관념을 계승했으나 또 점차적으로 약화시켜서 뜻이 애매모호한 '하늘天'로 바뀌었다. 셋째, 그것은 상족의 인신공양제사 종교를 엄격히 금지하고 인간과 신 사이의 거리를 멀리 벌려놓아서, 신들이 직접 인간 세상의 일에 관여하는 것을 거절했다. 넷째, 주족은 신중하고 겸손하며 집단을 중시하고 우환 의식이 풍부했는데, 이런 것들이 모두 새로운 화하족의 전형적인 품격이 되었다. - 90% 


부귀한 자는 처첩과 노비를 저승으로 데려가서 계속 자기를 모시게 하고 싶었으므로, 고대 사회에서 인간 순장은 단절되지 않고 청나라 때까지 면면히 이어졌다. - 92%


3000년 전의 고대 인류 문명에서 오직 화하만이 독자적으로 신권의 통제에서 벗어나 하나의 '이류異類'가 되었더. 이것은 지나치게 조숙한 세속 문명으로서 지금까지 줄곧 지속되고 있다. - 93%


하지만 주공의 가장 중요한 작업은 상족의 인신공양제사 종교와 그와 짝을 이루는 약육강식의 종교적 가치체계를 소멸한 것이었다. - 93%


주공의 사상이 나타나고 형성된 것은 주로 인신공양제사를 지내는 종교에 대한 두려움과 그런 종교를 소멸해야 할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 - 93%


이런 세속적 도덕 원리는 '추기급인推己及人'즉, 자기와 타인의 입장을 바꾸어 고려해서 타인을 대하는 방식을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 93%


말하자면, 민족 간의 정복과 살육에서 화해와 융합으로 나아갔고, 공자는 그 수혜자이자 이 은밀한 비밀을 풀어낸 사람이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으나 분명히 말하지 못하고, 그저 꿈속에서만 하소연할 수 있을 뿐이었다. - 95%


어쩌면 인간은 깊은 연못을 응시하지 말아야 할 듯하다. 설령 깊은 연못이 거기에 있더라도. -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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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5-11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나라는 사기에 기록되어 있었지만 중국에서도 신화로 취급했지요.근데 갑골문에서 발견한 역대왕의 이름이 사기와 동일해 실존하는 나라로 판명되었지요.그리고 상나리시대의 청동기는 현대에도 복원이 불가능한데 주조방법이 노예의 희생을 담보로해서 현대에는 제작불가라고 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살아남기 - 밈과 혐오의 세계 생존 전략
마이너 리뷰 갤러리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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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재밌다고 자꾸 권해서 읽어보았다. 유튜버 마이너리뷰갤러리,의 두번째 책이다. 

만화책으로 많이 나오는 '살아남기'류의 안내서다. 

나는, 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읽는데, 딸아이가 재밌다면 뭘까 궁금하기는 하다. 

"내가 커뮤니티는 안 해서"라고 감상을 시작하려고 했더니, "거기 나온 거 거진 다 알지?" "응", "엄마는 하는 거야", "안 쓰는데?", "그래도 하는 거야", 라고 한다. 뭐 그런 건가. 

나는 하릴없이 폰을 볼 때, 다음에 가서 펀 게시판을 계속 링크따라 여는데, 그러면서 커뮤의 글들을 본다. 그리고, 굳이 꼽자면 알라딘을 하고 있고, 여기는 글도 쓰고 있다. 커뮤의 말들을 내가 거진 아는 이유는, 펀 게시판을 계속 열어보기 때문인가, 싶다. 

게다가, 인터넷 세상이 처음 열린 순간부터 어쩌면 밀도는 낮을지 몰라도 꾸준하게 계속 해 오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인터넷 세상에 막 진입한 어떤 사람이 인터넷 커뮤니티의 반응에 깊게 몰입하지 않아도 된다고 인터넷 세상의 성격을 알려주려고 쓴 글이다. 여기는 가상의 공간이고, 실재의 삶이 너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먼저 화내는 사람이 지는 사람'이라는 태도로 달려드는 공간이라는 거다. 조롱과 혐오가 기본값이고, 너무 진지한 건 웃음거리가 되는 가장 사랑하는 걸 공격하기 위해 숨죽이고 그게 드러나길 기대하는 공간. 

주목받고 싶었던 날들에 '무플보다 악플'이라는 말에 공감하며 들락거리는 어떤 곳, 현실이 커지면 외면하다가, 커졌던 현실이 작아지는 순간이나, 커졌던 현실에서 내쳐졌을 때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놓는 곳, 커뮤의 말들이나 커뮤의 태도라는 안경으로 현실을 봤다가는 큰 코 다칠 수도 있는 공간, 현실과 다르지만 그 나름대로는 현실이 되는 공간. 함께 만드는 어쩌면 지옥.

나는, 이 안내서가 알려주는 '혐오와 조롱이 기본값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고지식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예전에 다른 책을 읽고 비슷한 감상을 남긴 적이 있다. ( https://blog.aladin.co.kr/hahayo/9134986 ) 삶의 균형은 내가 잡아야 하고, 어디에 살든 사람이 살고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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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5-10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MZ세대들이 과거 세대보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과도한 SNS탓이란 의견도 있더군요

별족 2025-05-10 17:10   좋아요 0 | URL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가운데 행복은 없죠. 그게 뭐라도 말이죠.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89140.html


카스피님의 글( https://blog.aladin.co.kr/caspi/16358277 )을 통해 칼럼을 보았다. 매체의 지면을 가진 기자가 칼럼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 건지, 생각해 보았다. 

기자는 '여자가 서른다섯이 넘어가면 임신출산의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걸 아무도 공공연히 말하지 않기를 바라는 건가? 남자들이 속으로는 젊고 어린 여성을 원하더라도, 그걸 입 밖으로 내는 것은 절대 안 되는 일이라는 건가? 

나는 임신이나 출산,이 어리고 젊은 여성이 가지는 권력의 원천,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기자의 태도에 동의가 되지 않는다. 광수의 질문이나 그 질문을 여과없이 방송에 내보낸 매체가 '여성을 도구로 생각하고, 사람을 나이로 차별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끝없이 동안,을 추구하는 여성들이 스스로 그걸 알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내가 몇 살로 보이느냐?'고 묻는 여자 출연자들이 떼로 나오는데, 그 여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권력은 타인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종류의 힘이고, 짝짓기가 이뤄지는 공간에서 힘의 우열은 확실히 젊고 어린 여성에게 있다. 다루지 못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위태롭고 위험하고 두려운 일이기는 해도, 그게 힘이 아닐 수는 없다. 

그래서, 여자들의 무리 가운데서 '언니'라는 호칭은 가끔 모멸이나 무시,를 의미하기도 한다. 여자들끼리만 있을 때 언니,와 남자들도 있는 데서 부르는 언니,는 다르다는 걸 여자들은 안다. 

불편하고 감당하기 어려울 수는 있지만, 말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말은, 어쩌면 문명의 도구이고, 우리는 말을 해야만 한다. 말이 실질과 다르더라도, 그 말과 실질을 맞춰 보면서 상대를 탐색하고 그 말 가운데 서로를 옭아매면서 내가 아닌 남을 이해하고 더 깊은 관계들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뭐, 신문사 데스크의 기자님과 내가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건 아니지만, 좀 더 내밀한 영역까지 공개하고 있는 그런 연애프로그램 가운데, 둘의 대화를 어디까지 공론의 영역으로 보아야 할까. 공공의 영역에서 할 수 없는 말이 너무 늘어나서, 이제 방송이 점점 내밀한 영역으로 파고 들어간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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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 SERI 연구에세이 47
송호근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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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잃어버렸다. 

2006년에 출간된 책을 2025년에 읽었으니, 시의성이 떨어져서 공감이 안 되는 건가,하면서 읽었다. 그런 것만은 아닌 게 그 때 읽은 사람 중에도 별이 작은 사람들이 있네. 


내가 읽으려고 고른 크리스마스 선물로 산 책이었는데, 언니는 이 저자가 너무 싫다고 했다, 여러 해를 묵혔다가 다 늦게 읽었다. 내가 궁금한 것은, 한국인의 평등주의,였고, 언니가 싫어한 것은 저자의 선민의식,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도 나의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고, 언니가 왜 싫어하는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펀 게시판 같은 데서 '이렇게 힘들게 대학에 왔는데, 학벌주의가 더 공고해졌으면 좋겠어요'의 잘 포장된 다른 말처럼도 보이는 책이다. 교양없는 부자와 교양있는 가난뱅이가 같이 올라간 도마 같다. 

아예 다른 종류의 문화를 향유하면서 계급을 공고히 구분한다는 서양 중산층의 분별 기준을 가소로워하는 나는,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바라는 게 뭘까, 계속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이 부유층의 어떤 행태를 덜 좀 깠으면 좋겠는 걸까. 지나치게 돈자랑하는 꼴을 못 보는 대중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걸까. 

한국인은 이러저러하다,는 어떤 특성에 대한 책들이 말미에 그런 점을 고쳐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하면 나는 좀 싫어하는데 좀 그런 책이다. 우리가 디뎌야 할 한 두 세 계단 쯤이 앞에 더 있는데, 평등주의 때문에 못 갈 거라는 말이 우스웠다. 평등주의 때문에 더 살만해진 어떤 걸 모르는가, 싶다. 전국민의료보험제도가 있고, 어느 정도 공평하게 이뤄지는 교육이 있다.   

총기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미국에서 살고 싶지 않아, 나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게 꽤 좋아서 그런 것도 같다. 샘이 많아서, 휩쓸린다면 끝간 데 없이 괴로울 나라지만, 덕분에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단점이라고만 하지도 못한다. 어떤 세상이라도 자기 중심은 자기가 잡아야지. 

지금의 나에게, 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의 사회나 국가 형태로 '선진국'이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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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제주도 사람이라 시청에 장애물이 있다. 

내가 지나온 시대들이라 시청에 장애물이 있다. 

아무 장애물이 없는 딸들은 즐겁게 시청하며, 내가 지나온 시대들을 그렇게 상상한다. 


1. 52년생 애순이는 어떤 시대를 살았을까. 

  드라마를 보다가 제일 먼저, 으잉?, 한 순간이다. 52년생 애순이가 고등학교를 마치기 전에 관식이랑 가출했다가 돌아왔을 때 애순이 작은 아버지는 애순이에게 '고등학교도 졸업 못하면 공장에서 납땜도 못 해'라면서 타박한다. 나는 어? 저건 아닌데, 라고 생각했다. 44년생인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신의 학력이 '선생은 너무 시시해서 안' 할 수 있는 거였다고 말했다. 75년생인 내가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 학교에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기숙학교 전단지가 있었다. 열 두 세 살 먹은 여공들이 평화시장 닭장같은 공장에서 시다를 하던 시대가 1970년이다. 52년생 애순이가 고등학교를 못 나왔다고 공장에 못 갈 시대가 절대 아니라는 거지. 52년생 애순이가 배경으로 비치는 그런 집에서 물질하는 어머니와 살면서 뭍으로 대학을 가겠다는 꿈을 꾸는 건, 너무 허무맹랑한 꿈인 시대인 거다. 44년생인 아빠는 대학시험을 칠 때 할머니가 '똑 떨어지라'면서 소금을 뿌렸다고 했거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도 대단한, 돈, 자체가 없는 시대였다. 52년생 애순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묘사가 하나도 없었던 그 '돈'에 대한 묘사가, 국민학생으로 보이는 금명이의 가방 속에서 월사금 고지서로 나올 때 기이하다고 느끼는 거지. 엄마 뿐인 애순이는 '대학'을 꿈꾸는데, 금명이의 아빠인 관식이는 '선생님께 월사금은 다음 주까지 드린다고 해'라고 말한다. '돈'이 없는 시대, 고등학교를 다니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거였는지, 지금 세대는 모를 테고, 아마도 그래서, 저렇게 묘사하는 거지, 싶다. 초등학교 반장 에피소드도 너무 현대인의 관점이라 확인을 했다. 75년생 내 친구는 그 동네에서 처음 반장이 된 여자였다고 했다. 국민학생이던 나는 아예 반에서 따로 뽑았다. 반장은 남자만 하고, 여자는 부반장부터. 후보로 올라갔다. 표가 많았는데도 아예 물러나라고 따로 불러서 말을 한다고? 그걸 억울하다고 집에 가서 운다고? 그렇게 울면 엄마가 가서 항의해 준다고? 역시 너무 현대적인 관점이라 이해가 안 된다. 상상으로 잘 꾸며낸 과거네, 싶어서 이입하기보다 물러나서 보게 되었다. 


2. 90년대 제주도 아파트에는 누가 살았을까.

  금명이가 대학을 가고, 유학을 보내려고, 애순이는 엄마가 살던 집을 팔고 시내 작은 아파트로 들어간다. 드라마의 묘사는 낡은 아파트로 집을 줄여서 가면서, 딸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를 묘사하지만, 나는 90년대? 제주도? 아파트? 의심하는 마음이 되서 남편에게 묻는다. 90년대 제주도에 낡은 아파트가 있어? 그 때? 제주도에 아파트는 부자들만 사는 데였지. 별로 없었어. 

속았네, 금명이가 속았어. 엄마들은 딸들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과장하여, 정신적으로 지배하려고 하니까, 빚진 마음을 심어주려고 묘사한 어떤 거에 속은 거네. 

이런 식으로 어긋나는 묘사들에서, 어른들 말을 걸러 듣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남동생은, 대학에서 학자금대출 신청이 까였다고, 우리 집이 그렇게 가난한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고 했었다. 나는 가난한 부모가 자신의 전부를 내어 우리를 키웠다고, 엄마가 말한 대로 상상했지만, 아빠는 '그래도 우리 살 궁리도 해야지'라고 말했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말하는 건 걸러 들었어야 하는 거다. 정말 드라마의 묘사는 애순이가 금명이한테 다 퍼주고 도심의 아파트 작은 집으로 줄여서 들어가는 거였지만, 실상은 엄마가 좀 더 도심으로 편리한 삶의 방식으로 이전했을 수도 있는 거고, 오히려 더 부자가 된 걸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나쁘다는 게 아니라, 부모가 그렇게 자기 삶을 챙기는 게 자식들한테도 좋은 거지. 그런데, 드라마는 오해하고 과장하고 애닲아 한다. 


3. 모래시계 

   어! 어? 제주도에서 모래시계 했어? 내가 모래시계를 기억하지. 딱 서울방송에서만 했는데, 신문이며 뉴스며 대서특필되는 인기였으니까. 그건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거였으니까 말이다. 남편에게 물었더니 방학을 보내고 났더니, 서울서 보고 온 놈들이 너도 나도 그 얘기를 해서 어이가 없었다고 했지. 제주도에서는 모래시계,를 볼 수 없었습니다, 지. 


4. 독립하지 못하는 부모 자식 관계에 대해

4막을 볼 때, 남편은 "정말 못 봐 주겠네"라고 했다. 이제 내 나이와 비슷해진 애순이와 관식이가 나보다 열살은 이르게 나았으니, 열 살은 더 먹은 큰 딸과 작은 아들을 끼고 있는 묘사가 불편했다. 서로 독립하지 못하게 옭아매는 부모자식 관계는 힘들었다. '둘째는 없어'라는 양금명과 박충섭의 묘사는 아쉽고, 과장적으로 괴로운 출산의 묘사나, 지나치게 가까운 부모자식 관계를 보고 있자니 괴로웠다. 일년에 열번도 못 본다,며 아쉬워하는 애순이를 보는데, 늘 힘드니 오지 말라,던 아빠 생각이 났다. 늘 길 위에 아이들을 조마조마해하던 아빠 생각이 난 거지. 나도 조금은 그런데, 어떻게 애순이는 자주 오라고 하는 거지 싶었다. 자주 보고 싶어도, 꾹 참는 부모 마음을 모르니까, 그러는 건가. 정말 그런 부모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모르는 건가. 상상하는 미움, 상상하는 관계, 어른이 되지 못하는 부모와 그런 부모 밑에서 독립하지 못하는 자식들,을 보는 건 괴롭다. 자식이 나에게 '어디 평생 나 끼고 살아 봐'라고 하면 공포물인데. 드라마는 그걸 모르는 거 같다. 

부모가 되어 강인해지는 마음, 어른이 되는 마음, 에 대한 묘사가 없다. 저런 엄마도 있겠지, 싶지만, 저런 엄마를 좋아하기는 정말 어려운데, 싶은 엄마가 애순이였다. 엄마인 애순이의 강함이나 단단함은 없다. "이걸 열여덟에 어떻게 했대?"라는 양금명에게 "열여덟에 나으면 더 쉽단다"라고 토를 다는 나는 '지나치게 서로를 애닯아 하는 엄마와 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딸들을 이르게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 아들은 아직 더 모자라다고 생각한다- 그런 자신만만함을 꺾기 위해 많이 애쓰면서 충돌하게 되는데 말이지. 


젊은이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나아지는 것은 양금명 덕분이어야 하고, 성실한 부모님 세대의 삶은 끝까지 팍팍했어야 하는 거였나,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성실한 남편과 살면서, 정말 티비 속 묘사처럼 팍팍했다면, 그건 애순이가 정말 잘못한 게 맞는데 말이지. 부모는 자기 몫을 항상 챙기고 자식을 보살폈어야 하고, 자식은 부모가 자신의 전부를 내어줬다고 마음의 빚을 만드는 그 모든 말들을 적당히 걸러 듣고는, 자기가 할 수 있을 만큼만 부모에게 되갚으면 되는 건데 말이지. 양금명이 오애순한테 대거리할 때는 참, 요즘 문제적 커뮤니티의 장면들을 눈 앞에 펼쳐놓은 듯 딱 밉던데.   


2025년을 사는 여성,이 부모세대의 말들로부터 상상하는 윗 세대의 묘사,가 화면 속에서 펼쳐진다. 첫 화를 봤을 때, 아, 이렇게 허술해서 공중파에서 못 하는 거네,라고 생각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고 초6 딸이 열심히 보고 있어서 같이 봤다. 이제 드라마를 만들면 보는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만은 아니니까 '타겟이 세계인이라서, 현대의 젊은이라서, 저렇게 만들었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나한테는 너무 가짜같은 이야기네,라고도 생각하고 있다. 김수현(드라마 작가, 사랑이 뭐길래, 인생은 아름다워, 내 남자의 여자, 사랑과 야망, 등등등을 썼습니다), 드라마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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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3-29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족님 말씀처럼 요즘은 지난 세대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선지 60~70대들에게 물어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들을 전혀 알아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한마디도 작가들의 직무유기죠.
실제 52년생 애순이가 고등학교를 갈 나이면 대체로 66~67년도 인데 이 시기면 서울에도 중산층을 제외하면 여성들이 고등학교를 가는 일이 드문 시기라서 제주라면 여고진학이 매우 드물었습니다.이 당시는 시골에서는 가난한 집의 여성일 경우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식모살이를 하는 이들이 많던 시대였죠.그만큼 그 당시 고등학교는 말 그대로 고등 학력자였다고 할 수 있는데 고등학교 못가면 공장이나 가라니 참 고증이 안된 이야기죠.
제주도에 살지 않았기에 90년대 제주도의 아파트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서울의 경우만 봐도 아파트라는 것은 7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강북지역에 일부 있었던 주거 형태이고 강남 개발이 되며서 8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보급된 주거문화 였습니다.하지만 8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아파트는 이른바 강남에 많이 포진되었고 기존의 강북 지역은 여전히 단독주택이 대다수 였죠.이런점에서 본다면 서울보다 늦은 지역인 제주도에 아파트라는 것은 남편말처럼 부자들만 가는 주거형태였을 겁니다.
지금이야 각 지역마다 민방이 생겨서 SBS를 볼 수 있지만(SBS+지역뉴스및 방송),SBS가 처음 생긴 90년대는 서울방송이란 말 처럼 서울과 인근 경기지역에서만 시청이 가능했기에 모래시계를 제주도에서 볼 수는 없었겠지요.만일 VTR로 녹화해서 봤다고 하면 그건 말이 되는 이야기죠.
조선시대도 아니고 해방직후 이야기도 아닌 70년대 이후 이야기인데 이처럼 틀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작가들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드라마의 경우 시청율만 따지고 또 누가 이 새대 고증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별족 2025-03-30 07:01   좋아요 0 | URL
저는 세계인을 상대로 한 기획물이라는 게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젊은 시청자를 몰아서 이슈가 되면 되니까 짧은 릴스로 풀 만한 장면을 넣고, 인지도 있는 젊은 배우를 주인공으로 삼고요. 여러 고증 실패는 드라마판이 너무 젊어져서 정말 모르는 걸까 싶기도 합니다.

Comandante 2025-04-10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더 많이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알라딘 서재에 이상한 사람들 너무 많아서 힘드네요....

별족 2025-04-11 12:34   좋아요 1 | URL
좋게 봐 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양과 질이 함께 가기 힘든 사람이라 글이 많아지면 안 좋을 거예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