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삼체 2부 삼체 2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단숨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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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볼 때는 밝은 면을 생각하고'사자소학의 구사를 어디 옮겨놔야겠다. 

삼체는 1부와 2부가 아주 다른 인상이다. 

1부가 과거의 이야기이고, 2부가 미래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2부에서 본격적으로 외계의 존재가 드러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1부가 좀 더 좋았다. 미래를 상상할 능력도 마음의 심연을 숨길 능력도 내게는 없어서, 우주에 떠있는 은하함대의 묘사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황망하고, 면벽자를 보는 것은 괴롭다. 외계함대가 또 하나의 제국이 되어 우주에 떠있는 미래를, 지하로 파고 든 세계를, 외로운 사람들을 상상하는 게 힘들었다. 차라리, 중국 문화대혁명의 시대에 폭주하는 젊은이가 믿음으로 행하는 과격함을 보는 것이 나았다. 적어도 그걸 보면서는, 예원제의 인간에 대한 절망도, 그 젊은이들의 과격한 믿음이 적어도 선의였음을 조금은 상상할 수 있었지만, 2권에서 우주가 암흑의 숲이라는 것은 너무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다. 

작은 범주로, 결국은 지금 사회의 은유로 SF 소설을 읽는 나는, 우주가 암흑의 숲이고 문명을 가진 존재를 단독자로 숲에 숨은 사냥꾼처럼 묘사하는 것이 싫었다. 거대한 우주라는 암흑의 숲에 고립되어 존재하는 문명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분별없이 다른 존재를 멸망시키는 그런 존재라는 것이 싫었다. 

우주 속 문명을 사회 속 인간으로 좁혀서 이해해버리는 한심한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 외로워서 살 수가 없는 심정이다. 삼체인이 같은 자원을 쓰지 않을 수도 있는데, 개미처럼 작을 수도 있는데, 영혼처럼 존재할 수도 있는데, 공존을 상상해볼 수도 있는 게 아닌가, 혹은 이러나 저러나 망하는데, 현실을 저당잡혀 불행할 게 뭔가, 뭐 이런 생각만 한다. 4백년 후에 벌어질, 일거수 일투족이 중계되는 적국과의 전쟁에 대비하기로 마음 먹는 용맹함을 아, 그래 존경하게는 된다. 명백한 미래,라는 걸 수용할 수가 없다. 어쩌면 덜 문명화된 존재가 미래를 확신하지 않는 존재가, 어리석은 존재가 오히려 먼 미래까지, 메뚜기처럼 살아 남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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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족 2017-07-06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다, 그냥 책을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북이 걸려있는 거지.
 
여자와 남자는 같아요 - 2016 볼로냐 라가치 상 논픽션 대상 수상작 내일을 위한 책 4
플란텔 팀 지음, 루시 구티에레스 그림, 김정하 옮김, 배성호 추천 / 풀빛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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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갔을 때, 나는 과에 한 명뿐인 여자였다. 선배와 걷다가, 선배가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데 라이터가 없었는지 두리번거리길래, 대뜸 앞서 걷던 사람(남자)에게 불 좀 빌려달라고 했다. 그렇다, 나는 상식이란 게 없는 여자,다. 눈이 동그래진 선배가 여자가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했던가. 왜?라며 나도 놀랬지만,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았다. 모르는 편이 나은 것들이 있다. 


이 책은, 남편이 네 권의 내일을 위한 책 세트-'민주주의를 어떻게 이룰까요', '독재란 이런 거예요', '사회 계급이 뭐예요'와 함께-로 아이들을 위해 산 그림책이다. 남자와 여자는 같다,고 말하기 위해, 현 사회의 부조리를 말한다. 

나는 아이를 성별에 따라 다르게 키우지 않는다. 바지를 입고 싶다는 아이에게 치마를 입히지도 않고, 치마를 입고 싶다는 아이에게 바지를 입히지도 않고. 여자 아이라고 장난감 자동차를 빼앗지도 않고, 남자아이라고 인형을 업지 못하게 하지도 않는다. 직장에 다니느라 아이를 맡기고 키우면서도, 다른 생각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 받아들이게 하려고 한다. 아들이 아빠와 친한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딸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어쩔 수 없다고도 생각한다.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사람 다섯이, 책임지는 어른 둘과 자라는 중인 아이 셋이 사이좋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책은 '남자와 여자는 같아요'라는 말을 하기 위해,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대접하는 사회를 묘사한다. 다르게 키우고, 다른 일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걸 읽는 딸은 이 책을 공감할까? 남자가 중요한 일을 하게 되고 여자는 아이를 키우게 된다,는 말을 오히려 배우지는 않을까? 

내 딸이 차라리 상식없는 어른이 되어, '왜?'라고 질문하기를 바란다.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꿈을 꾸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세상이 이런 것 쯤은 나중에, 나중에 알아도 된다. 결국 모른다면 오히려 좋다.

남자도 여자도 그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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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 다른 나라 말로 옮길 수 없는 세상의 낱말들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1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루시드 폴 옮김 / 시공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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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한테 '너, 아스퍼거 같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회사에서 하는 심리검사지를 확인했다. 친구야, 나는 정상이란다. 뭔가 냉소적인 나는, 이제 저런 식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말도 생겼네, 그리스 신화의 그 괴물의 침대가 쳐내는 인간형이 여기 하나 더 생겼네, 참 세상 한심하네,라는 생각도 했다. 아직은 정상이라지만, 좀더 정교해지면 아마 나도 '사회성이 떨어져서' 아스퍼거 진단이 내려질 수도 있지,라고도 생각한다.  

선배한테 '야, 너는 참, 너 자신만 납득하면 되는 거냐'라는 말도 들은 적 있다. 뭐 나쁜 말도 아닌 것 같고, 그대로 또 사실인 것도 같아서, '그렇지, 나는 나만 설득하면 되지'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 이렇게 살다 보니, 사람들이 나는 눈치 안 보는 줄 아는데, 나는 딸 셋에 아들이 막내인 집에 둘째 딸이다. 그 눈치 다 보면 살기가 너무 버거우니, 이런 식이 된 거라면 변명인가.  

가끔, 다른 사람이 어찌 볼까 전전긍긍 하면서 또 그렇게 타인을 탓하는 사람을 보면 '눈치는 네가 보면서, 왜 다른 사람이 눈치 줬다고 뭐라고 그러냐?'라고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눈치가 작동할 때, 최종 결정자는 결국 자기자신이어야 한다.  


책은, 마케팅이 화려한 데다가, 그림이 들어간 쪽글이라 한 번쯤 구경하다가, 우리 말은 무슨 말이 어떤 설명으로 들어갔을까, 궁금해서 샀다. 그러고는 카페하는 형님한테 선물했다. 무난하고, 내가 드러나지 않는 책이다. 


번역되지 않은 우리 말로 '눈치'가 들어있다. 외국인들이 마법이라고 느끼는 그 '눈치'. 적당한 선에서 쳐내지 않으면, 스스로를 파괴할 수도 있는 '눈치'. 눈치가 작동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회라서 가능한 말이다. 공통의 가치관이 작동하는 부분일 수도 있고, 그저 휩쓸리는 대중심리가 작동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삼백이'에 나오는 할머니이야기나, '신과 함께'처럼 기본적으로 결국 죽어서라도 댓가를 치르게 되고 지금의 손해가 앞으로의 손해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오래된 정서를 좋아하는 촌년인 나는, 그저 맞장구치는 말들은 못 들은 체 한다. 


스스로를 단단히 하고, 자신에게 맞춰서 적당하게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한다. 눈치,는 예민한 감각이고, 약자의 불편을 알아차릴 때는 꽤나 쓸모가 있다. 그러나 언제나 내가 먼저 살아야 하니까,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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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해서, 고졸인 동료에게 학번을 물은 적도 있고, 공대 여자,에 대한 농담을 한 적도 있다. 

칭찬이니까 괜찮다고 얼굴이나 몸매를 말하는 상사들보다 나라고 조금도 더 낫지는 않다. 


주말에 해피투게더 재방송을 봤다. 최고의 한방을 홍보할 목적으로 나온 연기자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덕화에게 무엇을 물었더라. 이덕화가 이순재선생님한테 들은 말이라며 전했다. 선생님께, 어떻게하면 선생님처럼 오랫동안 일할 수 있을까요?라고 여쭸더니, '나는, 말을 안 해'라고 대답하셨다고 한다. 그럴 듯한 성대모사에 한바탕 와르르 웃었고, 이어서 이덕화가 부연설명을 했다. 대기시간이 길어지거나, 젊은 배우가 늦거나,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거니'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그저 '말을 안 해'라는 말만 들었을 때도, 그렇지, 말이 많으면 실수도 많지, 그러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는데, 부연의 말을 듣고는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거니'가 살면서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까, 아, 그렇구나, 싶었다.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테니, 하고 싶은 말이라도 한 번 더 생각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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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 - 우리시대의 신앙이 되어버린 '발전'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
질베르 리스트 지음, 신해경 옮김 / 봄날의책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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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문장(http://munjang.or.kr/)에서 습작을 평가해주는 게시판이 있었다. 거기서 회사에서의 승진법칙같을 걸 찾는 '승진과학 혁명'이라는 단편을 보았다. 회사원인 나는 낄낄거리면서, 오, 절묘한데,라고 웃었다.(http://newmirror.cafe24.com/index.php?document_srl=84490&mid=w9_Rshort). 

철학과였던 친구는, 네가 하는 그 복잡하고 많은 생각들을 옛날사람들이라고 안 했겠냐고, 사람들 생각이란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뭐, 나야, 그런가, 했지만, 이 책을 보면서, 친구의 그 말도, 문장에서 본 재미난 소설도 생각이 났다. 

서양 기독교 문명 안에서 쓰여진 이 책은, 지금의 맹목적이고 치기어린 발전에 대한 맹신과, 그 맹신을 뒷받침하기 위해 신학이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설명한다. 과학과 종교를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서로 다른 두 축으로 생각하던 나는, 인간의 삶이 변하는 모습들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이나 종교도 변해 왔다는 걸, 혹은 인간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이나 종교가 개발되어 왔다는 걸 배운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자연에 비추어 생각해오던 그대로, 흥망성쇠,를 상정했던 신학이 과학의 등장과 식민지 개척의 역사들과 맞물려서, 발전에 대한 믿음을 뒷받침하게 되는 기록이다. 여전히, 누군가는 인류의 문명이 흥망성쇠 와중에도 결국에는 올라가고는 있다고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은 나에게 위가 어딘가요?라는 질문을 주었다. 

인간이 삶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무엇이던지 간에, 과학이건 심리학이건, 신학이건, 경제학이건, 변하는 사회의 가치들을 설명하기 위해 복무한다. 절약이 미덕이던 시대와 소비가 미덕이던 시대가 수십년 사이에 달라지고, 더할 수 없는 풍요 가운데에서 여전히 발전이나 진보를 말하는 것을 본다. 

쉽게 읽지는 못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어쩌면 절대적인 지식이 있어, 추구한다기 보다, 수없이 많은 생각들 중에 지금의 삶을 가장 잘 변명하는 말들이 시대의 사상이나 이론이나 뭐로도 살아남는가 싶다. 젊은이들을 착취하는 지금의 문명이 '발전이 영원하리라는 환상'만으로 작동하려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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