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민주주의거든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조홍민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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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너무 읽고 싶었는데, 이사를 해야 해서, 책짐이 무서워서 이제야 읽었다. 

너무 읽고 싶은 이유가, 책 제목 때문이었는지, 저자가 '사요나라 갱들이여'의 그 작가여서였는지는 모르겠다. 

책은, 2011년 3월부터 2015년 3월까지, 매달 하나씩 쓴 논평을 모아 놓았다. 2011년 3월에 벌어진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사고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독도문제도, 혐한시위나 반일감정에 대한 이야기도, 교육의 문제도, 비정규직의 문제도, 거의 세습되다시피하는 정치의 문제도 이야기한다. 

일본의 이야기들이라서 생소한 사건들을 토막의 쪽글로 읽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글들이 인용하는 사람도, 잡지도 알지 못할 때는 좀 바보같다고 느껴졌지만 다른 풍경은 아니었다. 

오래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진지한 선생님이 그려지는 글들이었다. 


'연민의 바다'를 향해,를 읽다가 소통에 결국 실패한 순간, 내가 느꼈던 막막함을 얼마만큼은 설명해주는 대목이라 연필을 찾아 밑줄을 쳤다. 


'난폭한 주장'따위가 아니야,는 내가 느끼는 두려움, 교실에서 등수를 모두 불렀다는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 '그건 교육적이지 않습니다'라고 민원을 넣었다가, 시험 잘 본 딸이 자기 등수를 알려달라고 엄마가 그런 말을 해가지고 선생님이 안 알려준다며 항의하는 지경에 처한 내가 느끼는 그런 고독감,에 대한 말 같아서 작가의 말도 아닌 작가의 인용에 줄을 쳤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교육과정까지 함께 짠다는 실험적 공교육을 운영하던 사람이 한 말이었다. 


'피해자의 아량, 가해자의 신중함'에서 이 대목은 우리나라에서도 결국 절판이나 수정출판된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이고, 이 부분도 작가가 들어 인용한 부분이다. 

인간은 논리로 세계 전체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 않다. 논리야말로 공동체를 닫아버릴 때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외부를 이해하는 별개의 원리를 필요로 한다. 그 탐구 끝에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깊은 생각과 충분한 논의‘가 닫아버리는 소우주의 외부에 ‘연민의 바다‘가 펼쳐지고, 네트워크와 동물성을 통해 임의의 공감이 여기저기서 발화하고 있는 그러한 모델이다. (p44 ‘연민의 바다‘를 향해)

저항이 있는 쪽은 사실 현장의 지자체나 교사나 학부모들이에요(p83 ‘난폭한 주장‘따위가 아니야)

과거는 항상 현재의 심판을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p89, 피해자의 아량, 가해자의 신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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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언트 - 영어 유창성의 비밀
조승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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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옆에 한국사람 없으면, 더 잘 말할 수 있어'라고 말한 적 있다. 하고 싶은 말의 수준이라는 것이 얄팍하기 그지없는데, -이게 뷔페인가요? 나 이게 얼마인가요? 정도- 옆에 한국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품평이 무서워서 입이 안 떨어지는 내 자신을 알기 때문이다. 배울만큼 배웠지만, 유창해지기 전까지 말하기보다 듣고 품평하기를 즐기는 사람들 속에서 영어,처럼 계급적인 언어를 입밖으로 꺼내기가 어렵다는 거지. 뭐, 더 잘 말한다고 해도 부끄러운 수준인 건 알고 있다. 다국적의 사람들이 영어로 수업받는 교육에 갔다가 '대학은 졸업했느냐'라는 질문도 받아봤다. 그건, 그 나라가 공식어로 영어를 쓰는 나라였다는 것은 차치하고, 내가 형편없는 영어 말하기를 구사하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는 거지. 그때의 나는 잘하고 싶었지만, 지금의 나는, 도대체 왜,라는 지경이다. 아이쿠, 공식어가 영어가 아니어서 나라에 말과 글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어이쿠, 내가 살면서 여즉 영어쓰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는데, 만났어도 하고 싶은 말이 없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까도 싶고. 영어를 아무리 잘 해도, 하고 싶은 말이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싶어가지고는 그래 영어공부 그만하자, 가 되었다.

책은, '인문학적 지식이 풍부하다'는 서재 분의 소개 때문에 읽기로 한 거였고, 동기부여를 위한 도입부에 뚱해졌다가(일본에서 영어는 한 마디도 못하는 박사도 노벨상을 받거든, 그러니까, 언어가 아니라 내용이라고), 영어의 구조나, 우리말의 구조, 동서양 사고방식의 차이 등을 재미나게 읽다가, 유창해지려면, 이것저것 하라는 대목에서 더 읽기 싫어진 거다.

아, 영어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의사소통하기 위해 구사했던 방식이구나. 영어에 유창해진다는 것은, 그 문화에 유창해지는 거라서, 차라리, 영어를 못하는 이방인으로 나를 대할 때, 그 사람이 내게 더 관대해지는 거구나, 까지 읽은 다음이니. 아 도대체 왜 유창해지겠어,가 되는 거다.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할 수 있어야 소통이 되지요,라고 묻는다면, 아, 제가 최근에 우리말로도 설득에 실패했어요. 라고 말하고 싶다. 문화를 공유하고,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제가 소외감을 느낀다구요. 더 많이 더 얄팍하게 말하면서, 어떤 만족감을 느낄지 알 수 없는데, 우리 말도 못하는 주제에 영어가 유창해질 때까지 어이쿠 그 공부 안 할래요,가 된 거다.

 

그 다국적 수업에서 나는 그 수업에 참여한 선배 여성들에게 묻고 싶은 말을 묻고, 대답도 들었다. 대화를 가로막는 장벽은 발음을 품평하는 나의 태도나, 귀기울여 듣지 않는 나의 무심함이었지, 마구 토막나 흩어지는 엉망진창 영어단어들이 아니었다.


* 지금 막 끝까지 읽었다. 다른 언어를 익히는 게 다른 영혼을 갖는 거라는데, 책 속에 분열된 자아가 폭발한다. 언어학이나 인문학 책으로 만들었다면, 책이 안 팔릴 거라서 이렇게 썼는지 모르겠으나, 언어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글로벌 링구아 프랑카인 영어를 마스터하는 것이, 한국이라는 좁은 우물을 빠져나와 세계인을 이해함으로써 세계평화에 기여할 거라는데. 이해가 되냐고 되묻고 싶다. 언어 전쟁에 우리 말이 살아남도록, 우리 말을 더 열심히 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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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의 눈
최용탁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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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왔는지 모른 채로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너무 재미있다고 남편이랑 키득거리며 웃었는데, 한 마디도 안 보탠 것은 왜 그랬을까. 그러니까, 책 속에 하고 싶은 말이 모두 있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더해지지가 않아서 그랬나보다. 지금 다 늦게서야 뭐라도 말하고 싶은 것은, 흥미진진한 요즘의 뉴스가 내가 재미나게 읽었던 책 속 이야기를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다. 


책 속에 있는 여덟개의 이야기 중에 혜원거사 창종기,가 있다. 사기꾼 백부달,이 교도소의 귀인을 만나 교계(그러니까 종교계)에 의탁하게 되는 이 이야기는 낄낄거리면서 읽지만, 씁쓸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 귀인의 말 중에 기억에 남은 말을 옮겨 적으려고 책을 펼쳤다. 

'믿고 따르는 사람 셋만 있으면 일단 굶지 않고 헐벗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 사람이 한 사람을 거두어 먹이기로 결심을 하면 그 한사람은 나머지 세 사람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수천 년을 이어 온 이 사업의 불변의 법칙이자 비밀이다.'


찾다가, 오히려 지금 상황에 더 적확할 다른 말을 찾았다. 

'사기를 치려거든 사기를 당하면서도 오히려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라'


선배로 인정할 수 없다,는 시국선언을 듣거나, 시국선언에 정파적 발언을 포함해서 결국 총학을 불신임하겠다는 뉴스를 듣고 있으면, 결국 믿는 동안 행복했던 건가, 싶다. 

한정된 자원 때문에 선 협상의 테이블에서 이야기하는 게 너무 수고로와서, 그저 결정권을 가진 권력자가 내 편이기를 원하는 태도를 본다. 저 힘없는 상대방을 설득하느라 내 수고를 들이고 싶지 않고, 대단한 분을, 믿고 따를 만한 분, 그리고 내 편인 그 분에게 권력을 주고 싶어하는 그 바쁜 성정. 먹고 살기에 바빠서 궁금해 하지 않는 사이, 언론과 언론을 독점한 기업과 큰 목소리 낼 수 있는 사람들은 돈을 따라 목소리를 내고, 정책과 제도에서 우리의 시간은 계속 사라진다. 

지금, 이 엄청나게 어이없이 부끄러운 상황 다음에 스스로 무언가를 좀 더 감당해서 그래도 더 나은 사람을 알아볼 눈이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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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갔어, 버나뎃
마리아 셈플 지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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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도, 버나뎃을 좋아하지는 않았을 거다. 멋지게 차려입고 이상하게 입는 사람은 깔본다는 이사한 지 십년도 넘었으면서, 나랑은 놀지 않을 버나뎃, 살림도 하지 않고, 무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버나뎃. 


이야기는, 지나치게 말이 많은 이메일, 팩스, 보고서, 기사, 초청장 등으로 구성된다. 지역적인 특성, 그러니까,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에 이사간 듯한, 혹은 그 반대인 듯한 묘사들이 가득하다. 버나뎃은 남편의 일로 이주한 십수년 째 적응하지 못한 아내이고, 세 번의 유산 끝에 병약했던 딸을 낳아 기르고 있는 엄마다. 엄마지만, 살림은 하지 않는다. 엄마지만, 엄마들과 어울리지도 않는다. 엄마들을 '각다귀떼들'이라고 부르고, 자기 자신을 학대한다. 이야기가 이상하게 튄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쁘게 평가하지 못하는 것은, 버나뎃이 스스로를 학대하는 태도가, 그렇게 스스로를 학대하면서도 스스로를 위로하는 태도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아서였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는데도, 딸아이의 건강을 빌면서 자신의 어쩌면 스스로에게 가장 소중했을 창조적 욕구를 거래하는 것이나, 그래서 더 이상 눈을 빛내며 스스로 몰두할 것을 잃은 채로 지내면서도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래 가장 몰두했었고 그래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 시절을 기억하는 것. 사람을 지탱하는 허영심,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그렇게 뛰어났었어,를 기억하는 마음, 그렇게 뛰어났었다는 걸 인정받았기 때문에 되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마음, 말이다. 타인의 기대 안에서, 어쩌면 커진 기대만큼 커진 시기와 질투 안에서 버나뎃이 어떻게 스스로를 지키기로 했는지 그 부서질 것 같은 마음이 기댄 허영심,을 알 것 같았다. 나는, 책 속의 버나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남극의 추운 날들이 버나뎃을 변화시켰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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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지구의 미래에 희망은 있는가? - 기후변화 Climate Change 아주 특별한 상식 NN 16
디냐르 고드레지 지음, 김민정 옮김 / 이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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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들을 나오자마자 열권을 모두 질렀다. 그러고는, 지금에사 느적느적 읽어나가면서, 다 읽고는 노조사무실에 버려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나쁘지 않아서, 노조사무실에 두고 다른 사람들도 읽으라고 해야지, 했던 거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은, 아 열권을 딱 정렬해서 두면 좋은데, 그럴 수가 없겠어, 싶은 거다.

 

올 여름의 폭염과 늦게 까지 가시지 않는 더위 덕에, 이미 몸으로 기후변화를 체감하고 있으니, 아주 조금만 설득한다면 와다다 달려나갈 수도 있었는데, 글들이, 글들이, 글들이. 에휴. 번역이, 번역이, 번역이, 꼭 내가 해 놓은 거 같았다.

 

책에 대해 말하려고, 그러니까 번역이 그렇더라고 말하려고 들어갔더니, 다행히 새로 번역한 책이 올라와 있다. 나름 최신의 자료들도 보충했다니 다행이다. 이 책은, 어떡해야 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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