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 다른 나라 말로 옮길 수 없는 세상의 낱말들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1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루시드 폴 옮김 / 시공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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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한테 '너, 아스퍼거 같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회사에서 하는 심리검사지를 확인했다. 친구야, 나는 정상이란다. 뭔가 냉소적인 나는, 이제 저런 식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말도 생겼네, 그리스 신화의 그 괴물의 침대가 쳐내는 인간형이 여기 하나 더 생겼네, 참 세상 한심하네,라는 생각도 했다. 아직은 정상이라지만, 좀더 정교해지면 아마 나도 '사회성이 떨어져서' 아스퍼거 진단이 내려질 수도 있지,라고도 생각한다.  

선배한테 '야, 너는 참, 너 자신만 납득하면 되는 거냐'라는 말도 들은 적 있다. 뭐 나쁜 말도 아닌 것 같고, 그대로 또 사실인 것도 같아서, '그렇지, 나는 나만 설득하면 되지'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 이렇게 살다 보니, 사람들이 나는 눈치 안 보는 줄 아는데, 나는 딸 셋에 아들이 막내인 집에 둘째 딸이다. 그 눈치 다 보면 살기가 너무 버거우니, 이런 식이 된 거라면 변명인가.  

가끔, 다른 사람이 어찌 볼까 전전긍긍 하면서 또 그렇게 타인을 탓하는 사람을 보면 '눈치는 네가 보면서, 왜 다른 사람이 눈치 줬다고 뭐라고 그러냐?'라고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눈치가 작동할 때, 최종 결정자는 결국 자기자신이어야 한다.  


책은, 마케팅이 화려한 데다가, 그림이 들어간 쪽글이라 한 번쯤 구경하다가, 우리 말은 무슨 말이 어떤 설명으로 들어갔을까, 궁금해서 샀다. 그러고는 카페하는 형님한테 선물했다. 무난하고, 내가 드러나지 않는 책이다. 


번역되지 않은 우리 말로 '눈치'가 들어있다. 외국인들이 마법이라고 느끼는 그 '눈치'. 적당한 선에서 쳐내지 않으면, 스스로를 파괴할 수도 있는 '눈치'. 눈치가 작동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회라서 가능한 말이다. 공통의 가치관이 작동하는 부분일 수도 있고, 그저 휩쓸리는 대중심리가 작동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삼백이'에 나오는 할머니이야기나, '신과 함께'처럼 기본적으로 결국 죽어서라도 댓가를 치르게 되고 지금의 손해가 앞으로의 손해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오래된 정서를 좋아하는 촌년인 나는, 그저 맞장구치는 말들은 못 들은 체 한다. 


스스로를 단단히 하고, 자신에게 맞춰서 적당하게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한다. 눈치,는 예민한 감각이고, 약자의 불편을 알아차릴 때는 꽤나 쓸모가 있다. 그러나 언제나 내가 먼저 살아야 하니까,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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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해서, 고졸인 동료에게 학번을 물은 적도 있고, 공대 여자,에 대한 농담을 한 적도 있다. 

칭찬이니까 괜찮다고 얼굴이나 몸매를 말하는 상사들보다 나라고 조금도 더 낫지는 않다. 


주말에 해피투게더 재방송을 봤다. 최고의 한방을 홍보할 목적으로 나온 연기자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덕화에게 무엇을 물었더라. 이덕화가 이순재선생님한테 들은 말이라며 전했다. 선생님께, 어떻게하면 선생님처럼 오랫동안 일할 수 있을까요?라고 여쭸더니, '나는, 말을 안 해'라고 대답하셨다고 한다. 그럴 듯한 성대모사에 한바탕 와르르 웃었고, 이어서 이덕화가 부연설명을 했다. 대기시간이 길어지거나, 젊은 배우가 늦거나,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거니'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그저 '말을 안 해'라는 말만 들었을 때도, 그렇지, 말이 많으면 실수도 많지, 그러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는데, 부연의 말을 듣고는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거니'가 살면서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까, 아, 그렇구나, 싶었다.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테니, 하고 싶은 말이라도 한 번 더 생각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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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 - 우리시대의 신앙이 되어버린 '발전'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
질베르 리스트 지음, 신해경 옮김 / 봄날의책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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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문장(http://munjang.or.kr/)에서 습작을 평가해주는 게시판이 있었다. 거기서 회사에서의 승진법칙같을 걸 찾는 '승진과학 혁명'이라는 단편을 보았다. 회사원인 나는 낄낄거리면서, 오, 절묘한데,라고 웃었다.(http://newmirror.cafe24.com/index.php?document_srl=84490&mid=w9_Rshort). 

철학과였던 친구는, 네가 하는 그 복잡하고 많은 생각들을 옛날사람들이라고 안 했겠냐고, 사람들 생각이란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뭐, 나야, 그런가, 했지만, 이 책을 보면서, 친구의 그 말도, 문장에서 본 재미난 소설도 생각이 났다. 

서양 기독교 문명 안에서 쓰여진 이 책은, 지금의 맹목적이고 치기어린 발전에 대한 맹신과, 그 맹신을 뒷받침하기 위해 신학이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설명한다. 과학과 종교를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서로 다른 두 축으로 생각하던 나는, 인간의 삶이 변하는 모습들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이나 종교도 변해 왔다는 걸, 혹은 인간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이나 종교가 개발되어 왔다는 걸 배운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자연에 비추어 생각해오던 그대로, 흥망성쇠,를 상정했던 신학이 과학의 등장과 식민지 개척의 역사들과 맞물려서, 발전에 대한 믿음을 뒷받침하게 되는 기록이다. 여전히, 누군가는 인류의 문명이 흥망성쇠 와중에도 결국에는 올라가고는 있다고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은 나에게 위가 어딘가요?라는 질문을 주었다. 

인간이 삶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무엇이던지 간에, 과학이건 심리학이건, 신학이건, 경제학이건, 변하는 사회의 가치들을 설명하기 위해 복무한다. 절약이 미덕이던 시대와 소비가 미덕이던 시대가 수십년 사이에 달라지고, 더할 수 없는 풍요 가운데에서 여전히 발전이나 진보를 말하는 것을 본다. 

쉽게 읽지는 못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어쩌면 절대적인 지식이 있어, 추구한다기 보다, 수없이 많은 생각들 중에 지금의 삶을 가장 잘 변명하는 말들이 시대의 사상이나 이론이나 뭐로도 살아남는가 싶다. 젊은이들을 착취하는 지금의 문명이 '발전이 영원하리라는 환상'만으로 작동하려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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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시교 - 전 세계 학부모를 열광시킨 동양식 자녀교육법
인젠리 지음, 김락준 옮김 / 팝콘북스(다산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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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직 셋째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중이라, 복잡한 와중에 운영위원이란 걸 하게 되었다. 세대차이도 있고, 입장 차이도 있고 결국 젊은 엄마들과 싸우기나 한다. 예전에 막 직장내 여직원회를 인계받았을 때도, '직장어린이집을 24시간 운영해서, 아이 걱정 없이 직장에 헌신하게 하자'는 요구가 있어서 끔찍했었다. 다 늦은 기억을 끄집어 내는 것도, 다 늦게 이 책에 대해 쓸 마음이 되는 것도 지금 내 상황 때문이다. 


이 책은 중국의 엄마가 쓴 육아서다. 완전 좋은 책인데, 너무 두꺼워서 분책되어 이상한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는 거대한 나라 중국에서 교육한 전공자인 저자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아이를 키운 경험, 다른 엄마의 사례들, 가끔은 언론에 보도된 이야기들도 있다. 모든 아이는 다 다르고, 다 다른 아이를 그 각각의 아이의 성정에 맞게 때를 기다려 가르치는 이 엄마의 태도를 존경한다.

 

가족이 축소되고, 도시화가 진행되는 상황이 다르지 않아서, 많은 엄마들이 겪는 어려움들이 묘사되고, 양육의 어려움 때문에 정작 아이와 자신의 관계를 망치는 선택들, 을 보면서 안타까워한다.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 중에, '시누(정확하지 않다, 책이 동생네 가 있다)의 아이는 봐주면서, 자신의 아이를 안 봐주면 억울할 거 같아서' 아이를 시골의 할머니에게 보내 키우는 엄마 이야기가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데려온 아이는, 잘 적응하지도 못하고, 엄마와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엄마와 아이라고 해도, 역시 막 만난 처음에는 서먹서먹하고, 켜켜이 쌓이는 시간과 수고 속에서, 관계는 변하는 거다. 아이도 사람이라서,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자신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을 안다. 엄마라고 해서, 아빠라고 해서, 쉽게 엄마나 아빠로 존중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아이라고 해도, 자신과 다른 존재임을 존중해야, 그 존재만이 알 수 있는 기쁨과 슬픔을 최소한 들으려고 노력해야, 오래 지속되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게 쉽지 않지만, 그래서 더 큰 기쁨이 된다. 수고로운 것 없이 좋은 것만 취하는 방법은 없다.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건 모두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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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를 키우는 마음
    from 뒤죽박죽 뒹굴뒹굴 2020-11-12 06:09 
    아이를 키우는 데 딱 한 권의 책을 읽는다면, 나는 인재시교,를 읽겠다. (https://blog.aladin.co.kr/hahayo/9371196) 인재시교,에서 아이를 대하는 태도,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좋았어서, 인재시교가 언급하는 수호믈린스키의 책을 찾아 읽었다. 우화를 좋아하는 나의 성정을 보태어, 교육학자라는 저자의 우화집을 골랐다.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받아본 책은 굳이 정의하자면, 공산주의자의 교육서다. 교육의 태도는 아이를 대하는 태도로
 
 
 

변변이 선배에게 결혼인턴제,를 브리핑하는 모습을 주말에 재방송으로 보았다. 

나도 '동거가 뭐가 나빠요?'나, '살아보고 결혼하겠다'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결혼 십수년차의 감회는 '그래봤자',라는 거다. 

동거할 때 친절한 남자가 결혼 후에 괴팍해지거나, 둘만 지낼 때는 문제없던 남자가 아이가 생긴 순간 꼴도 보기 싫은 이기주의자처럼 느껴지는 걸 1년의 인턴기간은 드러내지 못한다. 

 

지금은 차라리, '모든 도는 부부에서 비롯된다'라는 말이 진리같다. 


어디로부터도 강제되지 않는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는 그 남녀의 관계가 모든 도의 시작이라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거다. 서로의 노력이 없으면 쉽게 무화되는 그 관계가 바로 모든 관계의 출발이다. 관계라는 인생의 숙제들을 그저 나름의 방식으로 대하면서, 다시 또 새로운 관계들을 만든다. 남편의 가족들과 나의 가족들이 새로이 가족이 되고, 다시 우리의 아이들이 더해진다. 

늘 좋을 수만은 없는 그런 관계들에서, 나는 확장되고 결혼은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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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다니다가, 이런 글을 보고 마음에 남았다가 이런 글이 되었습니다. 댓글에 링크가 깨져서, 인용페이지를 포함해서 옮겨놓습니다.

https://ygmh.skku.edu/ygmh/tradition/comment.do

 

 

<명구>
君子之道, 造端乎夫婦.

<해석>
군자의 길은 부부에서 시작한다.

<내용>
왜 군자의 길이 부부에서 시작된다고 할까? 해답은 『주역(周易)』에서 찾을 수 있다.
“천지가 있은 후에 만물이 있고, 만물이 있은 후에 남녀가 있고, 남녀가 있은 후에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은 후에 부자가 있고, 부자가 있은 후에 군신이 있고, 군신이 있은 후에 상하가 있고, 상하가 있은 후에 예의가 있어 처신할 방도가 있게 된다[有天地然後有萬物, 有萬物然後有男女, 有男女然後有夫婦, 有夫婦然後有父子, 有父子然後有君臣, 有君臣然後有上下, 有上下然後禮義有所錯].”
사람은 애초에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난다. 가족이 인간관계의 출발점인 것이다. 그런데 흔히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물보다 진하다는 피로 맺어진 끈끈한 혈연관계, 곧 부모와 자식, 그리고 형제자매가 모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녀가 부부로 결합함으로써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관계의 근원적인 출발점은 부부라고 할 수 있다.
『중용』에서 “군자의 길은 부부에서 시작된다[君子之道 造端乎夫婦].”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남녀가 부부로 만나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음식에 대한 취향, 잠자는 시간,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 매사에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게다가 부부로 맺어지면, 두 집안이 결합되면서 부부의 부모와 형제자매를 비롯하여 많은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가 형성된다. 그리하여 흔히 어렵다고 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고부관계 뿐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배우자의 형제, 자매, 친인척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주어진다.
부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이해하고 서로 맞추어 가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어쩌면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다. 앞에서 인용한 『주역』의 구절 다음에 “부부의 길은 오래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항괘로 표현된다. 항이란 오래 간다는 말이다[夫婦之道不可以不久也, 故受之以恒. 恒者, 久也].”라는 구절이 이어짐은 당연한 듯하다. 결혼은 그저 부부생활의 시작일 뿐이다. 진정한 부부는 서로 이해하면서 서로 맞추어가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원만한 부부관계는 오랜 세월의 노력이 축적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출전> : 『중용(中庸)』

<집필자> : 강중기/ 인하대 철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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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5-30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ㅠㅠ 모든 도는 부부에서 비롯되고 자식에서 완성되는 것 같아요.

별족 2017-05-30 10:06   좋아요 0 | URL
http://ygmh.skku.edu/ygmh/menu4/sub_04_01.jsp?mode=view&article_no=315600&board_wrapper=%2Fygmh%2Fmenu4%2Fsub_04_01.jsp&pager.offset=0&board_no=63
저도 여기서 보고 쓴 말이라서 제 말은 많이 부족하죠. 원문을 링크해두겠습니다.

hnine 2017-05-30 11:56   좋아요 0 | URL
君子之道, 造端乎夫婦
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