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자가 능숙하게, 호텔을 검색한다. 해변에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고, 스파가 있는 호텔.

그러고는 버스정류장에서, 배웅을 하는 거다. 해사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찰랑이면서, 

'저, 여행, 안가요'

그 다음 장면에서는 사원증이라도 목에 건 듯 시커먼 직장인의 정장을 입은 여자가 화상통화하는 사람들은 부모님이다. 딸 덕분에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는 부모님. 


보면서, 누구에게 소구하는가, 이런 생각을 했다. 

그 광고가 '딸~ 나도 여행가고 싶어'라고 말하도록 부모님을 추동하는 광고라면, 정말 효과가 있을까, 싶고. 그 광고가 이제 돈을 벌기 시작한 젊은이가 효심을 발휘하게 할 목적이라면, 상황이 그게 가능할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돈을 벌지만 저런 광고는, 이라는 생각을 한다. 

점점 취업이 힘들어지는 세상에서, 자기 시간을 기대하기 힘든 직장생활을 견디는 것이, 나의 여행이 아니라 부모님의 여행이라는 것이, 무언가 답답했다. 


광고가 없는 욕망도 만들어, 살 필요 없는 것도 사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면, 지금 저 광고가 만들어 파는 욕망은 무엇인가. 


행복한 가정이다. 

얄팍한 목적에 이렇게 거대한 욕망을 결합시키다니, 정말 효과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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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 편이야 - 세상을 바꾸는 이들과 함께해온 심상정 이야기
심상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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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입장은 '분업에 반대한다'는 거였다. 그러다가 양자오의 '맹자를 읽다'에서 맹자가 분업에 반대하는 농가를 반박하는 장면을 만났다. 농사를 짓기 위해 쟁기도 만드는가, 옷을 입기 위해 옷도 만드는가, 정치란 마음을 쓰는 일인데, 왜 정치가에게 그걸 요구하는가. 

여성인 내가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에, 남성인 네가 양육이나 가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나에게 그래, 사람은 자기 삶의 최소한을 자기 손으로 꾸려야 한다는 의미였던 나는, 그 다음의 말들을 아직 찾지 못했다. 

여성인 내가 사회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남성인 남편이 양육을 하기는 하지만, 나도 남편도 회사에서의 성취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는 않다. 이건 어쩌면 분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수하는 부분이 되버린 거다.


심상정의 난, 네 편이야,를 읽었다. 언니가 준 책이다. 여성정치인 심상정의 현재가 과거와 함께 빼곡하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나는, 성공한 여성들의 가족이 언제나 궁금했고, 이 책에서도 가정은 어찌 돌보고, 아이는 어찌 건사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여성의 성취에 언제나 따라붙는다는, 지극히 여성차별적이라는 그 질문을 다른 사람이 안 하면, 내가 할 판이다. 그게 나는 제일 궁금하니까- 


함께 운동했던 정치적 지향이 같은 남자와 결혼해서, 서른다섯에 아들을 하나 낳았다. 남편이 자신의 활동을 축소하고, 아내의 활동을 지지했다. 아내가 더 바빠지면서는 살림을 도맡았다. 아이는 자신의 부모가 돌보았다. 이 가정에서도 분업은 있다. 전형적인 성취를 위한 전형적인 분업이 아니라, 비전형적인 성취 가운데 비전형적인 분업이다. 

부르기 나름인 각자의 삶이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했는지,를 말할 수 있는 삶이 아니다. 비전형적이기 때문에, 둘 다 선택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전형적인 삶 속에서는 둘 중 누구도 '선택'처럼 보이지 않는다. 문화,란 그런 식으로 작동하니까. 

부르주아지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하층계급 여성이 전일제 가사노동자가 된다. 아니면, 나를 키운 부모가 나의 아이도 키운다. 아니면, 전일제 보육시설이나, 기숙학교에 보낸다. 나는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 새로운 길은 여전히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모두의 정답 따위는 없고, 그저 나름의 삶,이 나름의 방식으로 삶이 그 앞에 있다. 내 삶은 어쩌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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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 - 제5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43
김이윤 지음 / 창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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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가 강하다고 생각한다. 

오래 전에,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은 이 책을 읽으면서, 청소년 주인공도 불치병에 걸린 엄마도 아니고, 아무 것도 모르는 아빠에 이입한 나는, 화가 났다. 여여가 만나러 가는 아빠는 여여의 존재를 아예 모른다. 나는, 이것이 부당하다고 분개했다. 아무리 그 기여가 작아도, 그걸 몰라도 되는 존재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관계가 짐이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고, 혼자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지금의 나는, 관계가 정말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그래서 살 수 있게 만드는 거고,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아이와 맺는 그 관계의 현실성/물질성을 아빠가 아이와 맺는 그 관계의 추상성이 결코 넘지 못한다고 자만한다. 그래서, 책 속에서처럼 아이가 생긴 줄도 모르고 사는 아빠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책 속에, 아이의 시점에서 말하지 못한 것들이 있을 텐데도, 엄마의 어떤 상황들이 물론 있었을 텐데도, 엄마의 성격 묘사에 편견을 갖는 거다. 아, 젊은 날의 나 같은 사람이야, 혼자서 뭐든 할 수 있다고, 다른 사람의 말들을 흘려듣고, 아이가 생겼는데도 온갖 번거로운 일들을 그저 미뤄두고, 혼자 키우기로 한 거야, 라고. 


무언가 지나치게 본능적인 거라, 인정할 때마다 이성적으로 물러서지만,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가장 중한 일이고, 여성은 그 자체로 이미 강하다. 


스스로의 강함을 모른다는 건, 애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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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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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나이는 아마도 쉰을 넘지 않았겠지만 우리에게는 그가 여든은 되어 보였다. 우리는 그가 친절하고 조용했기 때문에, 그에게서 가난의 냄새-그의 두 칸짜리 셋집에는 아마 욕실도 없었을 것이다-가 났기 때문에, 그가 가을과 긴긴 겨울 동안 누덕누덕 깁고 닳아서 반들거리는 푸른색 양복(그가 가진 다른 하나의 양복은 봄여름용이었다)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얕잡아 보았다. - p23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철저하게 논의하던 주제들 중 한가지일 뿐이었다. 세속적인 관심사도 있었고 그런 것들이 수백만년 뒤에나 올 지구의 종말이라든가 그 당시 생각으로는 지구의 종말보다 나중에 올 것 같았던 우리 자신의 죽음보다 훨씬 더 중요해 보였다.-p71

나는, 내가 젊었을 때 나이 든 사람들을 어떻게 보았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경멸했었는지, 기억한다. 그런 기억들이 있어서, 나는 나의 아이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나의 말과 행동이 어떻게 비칠지 또 조금이나마 상기한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그 시기를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놀랐다. 긴 인생에서 짧은 시기, 그러나, 자신의 죽음이 지구의 종말보다 나중에 올 것 같았던 시기, 낡은 것들을 경멸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원하던 시기, 그러면서, 세상과 자기 사이에 자리를 찾아가는 시기. 외롭고 쓸쓸하고 그래서 친구가 필요한 시기. 

마음 속에 자신의 특별함과 평범함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소년의 우정이, 자기 땅을 그대로 사랑하고 자부하는 소년의 마음이, 결국 뿌리뽑혀 괴로운 어른의 마음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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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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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선생님이, 동양의 고전을 강의한 내용을 묶은 책이다. 선생님이 받아들인 각각의 이론들을 원문의 일부를 읽고 설명했다.여러 날을 조금씩 읽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제자백가가 출현했던 당시 중국의 통치형태가 대부 이상은 관계로, 이하는 법으로 다스렸다고 말하면서, 유가가 대부이상의 통치수단을 전 인민에게 확장하는 방식의 이념이었다면, 법가는 그 반대방식이었다고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에서, 금융범죄를 저지른 최고경영자의 재판과 병치시켜 이민자의 경범죄 재판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가졌던 그 불편한 감정이 되살아났다. 법이 가장 강경하게 작동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감정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인가,하고 생각했다. 지금과 제자백가시대의 차이라면, 모두 그걸 알고 수용했다는 거고, 지금은 표면적으로는 그게 아니지만, 실상은 그러하다는 것인가,라고도 생각했다. 


사람 사이에 분쟁이 벌어졌을 때, '그래! 법대로 해, 법대로'라는 말이 나온다면, 그건 사람 사이의 관계는 끝장내겠다는 말이 아니냐고 되물은 적이 있다. 법은, 가장 나중의 일이고 예외없이 작동하는 법은 쉽지 않다. 예외없는 원칙의 집행을 요구하는 주장을 들을 때면 언제나 양영순의 짤-지하철? 문이 닫히고, 문에 끼인 신체는 절단된다(엘리베이터였던가?)-을 떠올리는 나는, 유가의 태도에 더욱 공감한다. 

모두가 왕의 권력을 나눠 가진 시대에, 강경한 법을 누가 집행하는가,는 법을 집행하는 자, 만드는 자,에게 권력을 집중시킨다. 법은 필요하지만, 가장 마지막 수단이고, 세상이 바뀌면 바꿀 수 있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무엇이 더 중요한 세상인지는 모르겠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 권력에 따르는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언제나 위를 선망하는 세상의 심리는 그대로 그 영향을 받는다.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사람에게 권력을 주는 것, 그게 민주주의에서 내가 할 일이라는데 그게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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