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새해인사스럽지는 않습니다만, 올 한 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있는 그대로'가 도라는 것은 이런 태도에 충실할 때 얻어지는 어떤 안목, 관점에 인식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동양에서 진리란 고정된 데이터 값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언제나 새롭게 보는 태도에서 일어나는 세계와의 동기감응의 체험입니다.-p104,하늘에서 온글,한글, 박규현 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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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 용감하게 성교육, 완벽하지 않아도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심에스더.최은경 지음 / 오마이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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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인유두종바이러스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했다. 올해 1차를 접종해야 내년에 2차를 맞을 수 있는데, 결국 맞히지 못할 거 같다. 우편으로 접종안내가 왔을 때는 남편이 아이를 다그쳤다. 아이는 주사맞은 친구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면서 맞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 남편은 나라에서 어련히 알아서 필수접종해주겠냐며 아프다고 안 맞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다그쳤다. 평소에 예방접종을 군소리없이 맞는 딸이었어서, 나는 그럼 나중에 네 돈 내고 맞아라,라고 하고 말았다. 아빠에게 울면서 안 맞겠다는 딸에게 나는 설득할 말을 못 찾은 것도 물론 있다. 이걸 계기로 섹스에 대해 말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딸은 이게 여자들만 맞아서 될 일이 아니라고도 말했으니, 나는 딸도 여기저기 주워들은 말들이 나만큼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살펴보면 이성애혐오도 있는 것 같은 십대 딸에게-십대의 나는 엄마를 뒤에서 안은 아빠를 보고 더럽다고 생각했었다!!!!-, 네가 섹스를 했을 때 옮으면 죽을 수도 있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이 주사를 맞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게 어려운 거다. 얘가 아마도 '안 할 건데!'라고 말하면 거기에 대해 무슨 말을 하겠는가 말이다. 살아봐, 말 같이 되나, 그러니까 맞아야 돼,라고 말하는 게 가능합니까? 나는 아이가 안 할 건데,로 백번 쯤 항의하고, 그 말에 아이가 갇히는 걸 원하지 않았다. 십대의 나를 돌이켜 생각했을 때, 나는 내가 말한 대로 딱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고, 말한 것을 지키려고 일없이 애썼고, 내가 한 말들에 갇혀서 쩔쩔 맸고, 내가 이렇게 빨리 나이먹을 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설득할 말을 못 찾고, 맘대로 하라고, 이제 네 인생,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고 말았다. 남편도 결국은 내버려둔다. 돈 내고 맞으려면 아까울 텐데. 


아이들은 정말 모를까, 성행위를 직접적으로 노골적으로 가르쳐야 할까, 나는 못 하겠다. -그런 그림책 캡쳐만 보고도 혐오스러워서 스크롤을 마구 내렸다- 똥을 누고, 오줌을 누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걸 모르지 않는 것처럼, 직관적인 형태로부터-여자에게는 구멍이 있고, 남자에게는 막대기가 있으니- 이미 알고 있는 게 아닐까,라고도 생각한다. 물론 여자들은 좀 더 오래 아닌 채로 남기도 하지만,-대학생 때 친구가 같이 자면 아이가 생기는 줄 알고 지하철에서도 못 잤다고 했던가- 사실, 나는 초등학교 때였던가 엉덩이를 딱 붙이고 쩔쩔 매던 개 두 마리를 여러 아이들과 함께 목격한 적이 있다. 상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소풍이라도 가는 길이었나, 거의 한 반이 같이 걷고 있었는데, 그걸 본 나는 못 본 척 했고, 짖궂은 남자애들은 아는 체를 하려고 했던가. 그래도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정확히 알았다고는 할 수 없는 게, '흥분하면 남성의 성기가 딱딱하게 곧추 선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실 놀라기는 했다. 남자에 관심이 없었나? 섹스에 관심이 없었나? 이전의 나의 상태는 저런 물렁물렁하고 축 쳐진 게 어떻게?-남동생이 있다-였었다. 내가 남동생한테 섹스북,이라는 책을 사줬으니, 나도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인 것은 틀림없는데, 왜 부모가 되어서는 이렇게 된 걸까. 성에 대해 말하는 게 부끄러운 건, 너무 본능적인 일이라서 '말'이라는 문명의 도구에 담기 어려워서라고 생각한다. 다들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건, 그저 존중이라는 생각도 든다. 부끄러워 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고지식한 건가. 그 부끄러운 마음이 정말 없는가? 성을 몰라서 강간이나 폭행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게 아닌가? 성교육을 통해 성행위를 통해 쾌락을 얻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건가? 쾌락을? 가르쳐? 쾌락을 얻을 때 필요한 예절을 가르쳐???? 그저 나에게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고 밖에는 더 가르칠 말도 없는 내가, 성은 더 특별?해서 가르쳐야 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미 부모는 아이를 낳았고, 아이들은 부모에게 성에 대해서 필요한 것은 이미 배운 게 아닐까? 책 속에 가득 찬 교정하려 드는 어떤 태도에 대한 반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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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럽다,가 오지랖,이 욕인 세상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게 욕일 수 있는 세상,을 의심한다. 

은희경의 소설을 읽으면서였나, 이제 시골에서 나고 자란 정서는 소수자가 되겠구나, 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인구의 거의 대부분이 도시에 살고 있다. 촌에 사는 사람을 무능으로 낙인찍기도 하고, 그 자체로 혐오하는 정서도 가끔 느껴진다. 그렇지만, 나는 촌스러운 게 나쁜 말인지 의심하고, 그걸 나쁜 말로 쓰는 사람들의 우월감을 동정한다. 촌스러운 것, 촌스러운 채 살아남는 것은 삶을 구성하는 단순한 것들을-먹고, 자고, 싸고, 사랑하고- 인식하고, 그게 얼마나 중한지 아는 거고, 부풀려진 말들에 휩쓸리지 않고 부풀린 허상 뒤에 똑같은 존재를 알아차리는 거다. 


드라마를 보면서, 무너진 공동체를 그리워하는, 도시에서의 외로움 가운데 이상향을 그리는 마음같다고 생각했다. 가깝게 지내지는 못해도, 오랜 세월이 쌓여서 마음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나는 강함에 대한 이야기이고, 세상이 훨씬 더 살 만 하다는 이야기이다. 


강함은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난다. 그 강함은 그 자체로 약한 사람을 건드린다. 

시샘을 받기도 하고, 쑥덕거리기도 하고, 상처를 주려는 시도들을 하게 만든다. 

나보다 처지가 나빠서, 적어도 나는 저 사람보다 행복해도 된다고 공연히 우쭐했던 약한 마음이 그 사람이 웃으면 김이 빠진다. 내 마음 속에 행복과 불행을 타인의 것들과 비교하는 가운데, 마음은 더 약해지고, 행복은 멀어진다. 

행복은 비교하는 가운데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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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아란타로 가다 - 개정판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11
설흔 지음 / 생각과느낌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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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슬플 것 같아서 열심히는 못 본 '녹두꽃'에서 백이현,이 전봉준과 만나는 장면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부와 문명이 진보가 필요하다는 백이현에게, 전봉준은 서양의 부가, 문명이 기술적 진보가 얼마나 야만적인지 말한다. 동양이 미개해서 야만적이어서 식민지를 겪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나는 ( https://blog.aladin.co.kr/hahayo/8552588 ) 그래도 가끔, 과거를 돌이켜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한다. 

소년, 아란타로 가다, 는 대륙의 문명을 일본에 전하는 조선의 통신사,가 배경인 이야기이다. 부가 흐르는 어지러운 길이나, 휩쓸려가는 사람들, 문화와 함께 흘러드는 태도들, 먼저 서양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인 일본을 보는 통신사의 태도를 본다. 영성에 대한 책을 보고 있어서, 깨달음과 과학기술이 나란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있어서, 기술은 기술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도 있어서, 나는 이언진이 소년에게 하는 말들을 곱씹게 된다. 지금의 기술적 풍요가 딛고 선 것이 비어버린 마음 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나는 여전히 태도를 정하지 못하겠다. 소년은 아란타로 가서 무엇을 보고 느끼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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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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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실패했지만, 아이에게 여러권짜리 책을 권해보려고 한 적이 있다. 

"이렇게 여러권인 건, 되게 재밌어서야. 끝까지 내처 읽을 수 있다니까."

김용의 무협소설이었던가, 토지,였던가. 

태고의 시간들,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났다. 내가 이북으로 읽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아래쪽 페이지와 무관하게 이 이야기가 sns시대의 대하소설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각각의 존재들-사람도 사물도 있다-의 시간이 짧게 묘사되는 도입과 그 각각의 시간들이 얽히면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 그랬다. 태고,라는 지명이지만, 지명일까 싶은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러시아군과 독일군이 등장하는 유럽의 어지러운 역사를 배경으로 사람들의 삶이 사랑이 포개지고, 현실과 환상이 얽히는 이야기 가운데 전쟁이나 살인, 혼란 가운데 몸을 일으키려는 야망, 젊은이의 좌절, 쇠락하는 과거의 영화 같은 것들이 묘사된다. 

재미있었다. 그런데, 재미있게 읽으면서 죄책감이 들었다. 전쟁에 대한 묘사,를 이야기로 읽는 것이, 이야기로 숨는 내 자신이, 이런 이야기들을 재미있다고 읽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이런 생각들이 어지러워서 읽는 것도, 쓰는 것도 회의가 드는 지도 모르겠다. 

산다,는 건 뭘까. 이야기가 없는 삶에서,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은 더 섬세해질까. 살아내는 사람들을 책을 통해 구경하면서, 나의 삶에서 책이나 티비를 빼면 뭐가 남을까, 뭐 이런 생각을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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