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1~8 세트 - 전8권
김용 지음, 임홍빈 옮김 / 김영사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산해경,을 보다가 머리없는 귀신 하경이 천제가 남녀를 만들고 사랑을 만들었다며 분개하여 일장연설을 하는 장면에서 웃었다. 애초에 남녀를 만들어놓으니, 세상이 이지경이 아니냐며 말하는 그러니까 머리잘린 귀신 하경은, 천상의 혁명분자,라고 언급된다. 

 

의천도룡기,를 읽다가 산해경의 그 이야기가 생각났다. 

 

의천도룡기는 온갖 사람들의 온갖 이야기가 있어서, 사랑이나 의리나, 정의로움이나 민족적 감정이나, 그 무엇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로 이어지면서 중국 한민족의 협사이던 주인공이, 단 한 사람의 정인이었다가, 네 명의 여인을 모두 아내삼고 싶어하는 주인공이 된다. 민족적 색깔도, 옳고 그름에 대한 태도도 불분명해진 남자 주인공은, 그래도 나쁘지 않다. 내가 나이먹는 것처럼, 책들을 통해 책속의 사람들이 나이먹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이먹으면서, 그렇게 모호해지고, 그런데도 싫지 않았다. 

 

나는 이미 마음 속에 이런 태도가 있었던 거다. 문제는 이미 있고, -천제가 남녀를 만든 순간에- 그 문제를 없애겠다는 그 모든 해결책은 그래, 모두 쓸모없다,라는. 우리는 그저 혼돈의 한 생을 살아가고 마는 존재라는 생각 말이다.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 

죽음이 휭행하는 무협지를 보고 있자니, 죽고 사는 게 사람의 일이 아닌 것처럼도 느껴지고, 살면서 하는 어떤 일들도, 그저 다 장난처럼 느껴진다.

 

나는, 서양이 말하는 것처럼 동양이 야만적이어서 덜 문명화되어서 식민지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이 나고 죽는 것처럼, '문명'이 성숙하다는 것은 '생명'이나 '삶'이나 어떤 것들과 되려 멀어져서, 결국 '야만'에게 밀리는 거라고도 생각하는 거다. 쭉 위로만 뻗을 수는 없는 거라고, 죽지 않겠다고 용맹정진하는 어떤 태도들-의료나, 보안산업 들-에 뚱해져서는, 은하철도 999의 철이에게 '네가 살리려는 어머니의 기계몸을 네 어머니가 정말 원하실까?'라고 묻고 싶은 지경이다.

 

몽고가 금과 싸우던 사조영웅전의 시대에서, 다시 원이 망하고 명이 싹트는 의천도룡기의 시대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들 가운데서, 그렇게 나는 쇠락을 수용하는 성숙한 문명으로의 동양을 본다. 영웅,이 등장한다고 해도 한계가 명확한 이야기 속의 세계가 그래, 나의 세계고 나의 마음이지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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