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힘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세상은 점점 미쳐가고, 나는 점점 고립되는 느낌이 드는데, 이런 미쳐가는 세상에 아이들을 셋이나 낳아놨다는 자책이 마구 닥치는 와중에, 읽으면서 위로받는다.

아, 세상은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저 좁고도 현명한 인간의 길 밖으로 끊임없이 벗어나며 갈짓자로 둥그런 지구 위를 그저 뱅뱅 돌고 있는 거로구나,라는 깨달음.

인간, 인류의 삶이 무언가 더 '나아지는' 게 아니고, 그저 그렇게 살아내고 있는 거라는 그런 깨달음.

백년 전이나 백년 후나, 사는 모습은 많이 달라 보일지라도, 그 속에 인간들은 내내, 그런 고민들을 하며, 과거를 또 어떤 식으로 추억하며 회상하게 될 거라는 깨달음.

 

내가 살아가는 동안도 내 마음과는 다를 테고, 앞으로 아이들도 그럴 거라는 깨달음. 그 속에서 삶을 살아낼 수 밖에 없다는 깨달음.

 

마음의 힘은 백년도 전에 쓰여진 두 소설 나스메 소세키의 '마음'과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서 화자를 빌려와서는 그들의 고민이 현대를 사는 우리의 고민과 얼마나 같은지 보여준다. 그들의 두려움이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현대인의 그것과 닮은지 보면서 위로받는 거다. 세계대전을 목전에 둔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갖는 고민과 불안이, 미쳐버린 시대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고민과 불안이, 지금과 얼마나 닮았는지, 인류가 걸어가는 갈짓자 걸음이 좀 더 좁은 폭으로 그나마 현명한 인간의 길에 수렴하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 길이 더 높거나 더 나는 어떤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또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이폰으로 비행기로 세계가 연결된 지금이, 태어난 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삶보다 무언가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하니까, 또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무엇을 긍정하고, 무엇을 부정할 지 자신하지 못하는 것에 더하여, 나의 기준에서 미래를 비관한 다음 아이의 삶이 아마도 불행할 거라 단정하는 것은 또 무언가 내 아이를 나의 소유물,로 대하는 태도가 아닌가, 싶어 그만 두자,고 생각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5-10-17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쓰메 쏘세키 고양이로소이다 읽어봤는데 시대 차이를 잘 못 느꼈어요.

별족 2015-10-19 09:01   좋아요 0 | URL
저는, 읽은 게 도련님,뿐인지라. ^^
 
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일터는 도시가 아니다. 5개 대도시(서울,대전,대구,부산,광주) 중 가장 가까운 곳도 세 시간은 걸리고, 가장 가까운 영화관도 한시간은 걸린다. 나는, 도시에서의 삶도 별다를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데다가, 직장이 안정적이니 뭐 만족한다. 그런데, 점점 도시화된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정말이지 참고 듣기에 힘든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직장 때문에 이주한 나도 이런데, 여기가 고향인 사람은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지경이다. 익명게시판에 하도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서 화가 나서, 구구절절 쓰다가 날려먹었다. 00에서 썩는다,며 분개한 사람의 글 아래, '사람이 생각을 하면 '썩지'는 않습니다. 지하철에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출근하는 삶이 부럽다면, 말리지는 않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한다고, 그게 다 '말'이 되는 건 아닙니다.'라고 마치면서, 너무 심한 말인가 싶어 고민하는 틈에, 무언가 신비로운 조화로 모두 날아가버렸다. 너무 모진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고 생각했다. 듣기 좋은 말만 하려고 하는 건가 싶어, 내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다.

 

이 책은, 읽고 싶지 않았는데, 의외로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서, 궁금해서 읽었다. 이게 2,30대 젊은이의 사고방식이라면 궁금했다. 호주 시민권을 취득한, '한국이 싫어' 떠나는 계나를 보면서, 노동자의 자존심도 내팽개치고 '강제'순환에 찬성하던 젊은 직원 둘과 한참을 이야기할 때 결국 가닿지 못한 부분들을 여기서도 본다.

보잘 것 없는 개인,인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전능한 누군가가 어떻게 좀 해 주세요.

나는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세상이 미친 거예요.

자신이 하는 말들이 어떤 것들을 고착화시키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아무렇지도 않게 뱉으면서, 자신은 아무 책임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그렇게 빠져나간다.

자신은 아무 책임이 없으니, 더 심한 말로 욕할 수 있고, 결국 네 의견은 상관없고, 나는 '싫!다!고!'라고 닫아버린다. 사회가 미치면, 그 속에 사람들도 미친 거다.

 

이, 소설은, 아첨같다. 사람들이 다 그러니까, 너도 그런 거다,라고 말하는 아첨.

소설,은 어때야 하는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개정판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여성학, 여성주의, 페미니즘이 '사랑'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페미니스트,를 '이기적인 여자들'로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이기적'이기로 결심하고 만난 페미니스트,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가부장제에서 희생하는 어머니,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그런 것들을 거부해서 단절해야 한다고 잘난 체하던 내 앞에서 여성단체 활동가였던 그 분은 '내가 안 하면, 엄마가 다 해야 해서'라고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명절에 그 수고를 하는 사람이 여자들 뿐인 게 분해도, 내가 하지 않으면 엄마가 혼자 다 해야 해서 하고 있다고, 그게 치기어린 청춘 앞에서 어떤 식으로 들릴지 아니까 작은 목소리로 그렇지만 사실대로 말해주신 거다. 


우리는, 모순 속에서 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모순 속의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으로 하고 싶었다고 했다. 나도 그런 제목이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책 속의 단정적인 표현에 조마조마한 마음이 되면서, -나는,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를 낳을 수 있어 좋다,고도- 상충하는 여성주의 내부의 입장에 대한 설명들을 듣는다. 여성을 억압하는 만큼 남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에 대해 생각하고, 삶의 순간들에 말들을 보탠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조언들을 잡스러운 글들로 만날 때, '여자인 자신이 상사라는 걸, 모르는 타인에게 분명히 하기 위해 부러 반말을 한다'라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럴 수 있겠다,고는 생각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거다. 아이들에 대해 가끔 닥치는 죄책감에도 직장에 다니는 것은, 내 남편이 혼자 짐 지고는 '처자식 먹여살리려다보니'라고 변명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고, 회사가 이런 사람-아이를 가진 엄마들-들을 포함하고도 굴러가는 조직이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첫사랑 쟁탈기 보름달문고 63
천효정 지음, 한승임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회사,에서 '소통'에 대한 강연을 했다. 남편 이야기를 많이 하는 아나운서 출신의 강사님이 참 예뻤는데, 다른 이야기를 많이 해서 급하게 정리하며 붙인 소통의 다섯가지 규칙 중에 하나가 가시처럼 걸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하라'. 그럼 '소통'을 할 수 있어? 질문이 계속되는 거다. '11년에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거짓말 연습'을 읽었을 때도 그런 질문이 나왔었다. 


'소통'을 하려면, 상대도 나도 진실,을 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책은, 딸의 마법천자문 32권을 사면서, '삼백이'의 동화작가를 검색해서 동화책들을 넣었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나는, 거짓으로 가득 찬 정연함보다, 진실로 가득 찬 혼란을 고르겠다.

 

아이라고, 모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숨긴다고, 숨겨지지도 않는다. 

연기,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보여지기'를 그만 둔 세라,의 용기가 예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15-07-2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대도 나도 진실을 말하려 노력해야 비로소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
번뜩 머리를 치는 월요일입니다
좋은 구절 감사합니다^^

별족 2015-07-20 15:11   좋아요 0 | URL
좋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라마 불패, 하지원의 '너를 사랑한 시간'을 낮시간 재방송으로 잠깐 잠깐 본다. 

아직, 이입하지 못했고, 이입하기에는 너무 산발적인 시청이라, 둘 다 너무 멍텅구리처럼만 보인다.

오랜 친구가 아마도 연인이 될 테지만, 연인이 되기 직전을 오려낸 장면들에서 남자와 여자에게 각각 닥치는 설렘을 묘사하고 있었다. 

인피니트의 엘,이 하지원을 설레게 하는 연하남으로 나왔다. 햐~멋지구나. 

둘은 같이 출장을 가서 성공적으로 일을 성사시키고는, 기분 좋게 여행기분을 내며 놀다가 숙소에 들어간다. 출장 온 일이 성공했으니, 오늘 밤은 축하하자며 꽃단장을 마친 하지원이, 엘-극 중 이름을 쓰고 싶은데 기억이 안난다-의 숙소를 노크하려고 섰다가 열린 문으로 살금살금 들어가서는, 엘이 성난 목소리로 하는 통화를 엿듣는다. '괜찮아, 된다구, 정직원. 팀장님이랑 각별하다구.~' 설렜다는 게 부끄러워서, 우두커니 서 있다가는, 알아차린 엘이 돌아보는데, '그런 거였어?고작 정규직 일자리 때문이었어?'라며 항의한다. 나는, 사랑에 속았다고 생각하는 분하고 억울한 하지원 대신, 불쌍한 인턴직원 엘에 이입해서는 '고작'이라니 '자신의 권력'을 모르다니,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권력,을 인식했어야 한다. 

권력,을 인식한다는 것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과는 다르다. 

각자 누리는 새털만큼의 권력,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 학부형이 선생님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 소비자가 생산자나 유통업체에 행사할 수 있는 권력, 젊은 여성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 굳이 권력, 이라고 이름붙이지는 않지만,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그 작은 관계,영향력들을 인식하고 있어야 했다. 

팀장이고, 나이도 많은데, 심지어 말 한마디로 존재기반을 허물 수도 있는데, 상대의 행동에 설렘을 느꼈더라도, 자신의 위치나 권력을 인식했더라면,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았을 거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많은 관계는 그저 남자와 여자로는 오려지지가 않는다. 다른 많은 관계, 배경이나 조건,이라고 불러서 혐오하기도 하는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 그런 것들을 인식해서, 서로를 보는 걸 제약할 필요도 없지만, 그런 것들을 인식하지 못해서 서로의 행동이나 방식을 오해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어야, '갑질'을 안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