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전기와 통신과 물, 가스가 연결되어 내게로 온다. 

그래서, 어떤 말들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전기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한다. 

내가 취업했을 때는 전기를 만들고, 팔기도 하는 회사였다. 그래서 신입들에게 '세금'이 아니고 '요금'이라고 정정시킨다.  

만들기도 팔기도 하는 회사인데 공기업이라서, 같이 취업한 친구는 자기 물건 쓰라고 영업했지만-그 친구는 통신사였던가, 카드회사였던가-, 나는 아껴쓰라고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익을 내려고 격렬하게 노력하지는 않는 회사라서 좋았다. 


보기 흉한 송전탑이 산을 가로지르는 이유나, 주렁주렁 통신선이 전봇대에 매달리는 이유나, 땅 속에 뒤죽박죽 파이프가 지나가는 이유는 편리 때문이다. 와이파이가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해저를 가르는 몸통보다 두꺼운 케이블을 지난 다음에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아니면, 머스크의 로망대로 촘촘히 띄운 인공위성이 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거나. 


도시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다. 

전기 말고는 어렸을 때부터 쉽게 집으로 들어온 것들이 아니다. 

어렸을 때, 물은 마당의 펌프에서 길어서 부엌에 통에 채웠다. 펌프가 수도꼭지가 되고, 그게 또 부엌으로 들어갈 때도, 그 물은 사람을 불러 뚫어 만든 지하수였다. 

여전히, 가스는 망에서 오고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다. 아직도 엄마가 사는 시골집에는 떨어지면 트럭이 새 가스통을 싣고 와서는 다 쓴 가스통을 싣고 간다. 

전화는 언니가 고등학교를 갔을 때도 집에 없었고, 한참이나 없었고, 아빠는 동창회 전화를 돌리는 나에게, '전화요금은 괴산 중놈이 내느냐'고 화를 냈다. 


에코페미니즘,을 읽을 때였던가, 도시의 상수도망을 만들기 위해 시골의 지하수원이 고갈된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쉽게 물을 쓰지 못하던 어린시절과 겹치면서, 언제나 물들이 귀하다. 


전기회사에 들어와서 '세금'이 아니라 '요금'이라고, 내가 쓴 만큼 내는 돈이라고 들으면서, 전기도 어린시절의 물처럼 느껴진다. 


인터넷망,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원이 들어가는지 듣고 나서는, 산다는 게 두렵다. 


그런데도, 망을 통해 공급되는 이 많은 것들은 망을 통해 공급되기 때문에 쉽게 자각하지 못한다. 

요금이 충분히 비싸지 않으면, 물을 물 쓰듯, 전기를 또 물 쓰듯 쓸 수 있게 된다. 자각이 없다. 내가 쓰는 물이 무엇의 댓가인지, 내가 쓰는 전기가 무엇을 치르고 내게 오는 건지, 아예 느끼지 못한다. 공기가 아닌데도 공기라고, 공공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지금은 통신이나 인터넷까지도 그렇게 된 것도 같다. 필수재, 공공재, 그래서 비용을 올려서는 안 된다,고들 한다. 

정말 그래? 

게다가 망을 통해 공급되는 물건은 무언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망 자체에 들어가는 돈에 대해 자꾸 잊는다. 관심은 최초생산방식에 집중되서, 망 자체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만든다. 그리드,를 읽을 때 미국에서 집에 태양전지를 올리고, 만들 수 있을 때 만들어 팔고, 부족할 때 망을 통해 전기를 공급받는 부자들 때문에, 망의 부하는 커지는데, 비용을 청구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듣는다. 이익이 나야, 망을 개선할 수 있는데, 이익을 낼 방법은 아예 없는 구조를 꽤나 진지하게 친환경이라 좋은 거라고 말한다. (최근 읽은 기사에서 한전에서 연간 망을 유지보수하는 비용이 6~7조라고( https://www.energy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62713 )하더라.) 


물과 전기가 공공재라서 요금을 올리면 안 된다는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많은 자원이 투입되서 누리는 편리인지 댓가를 치르고 싶지 않은 걸까. 아니면, 내가 아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https://www.youtube.com/watch?v=EyAhO7_981g&t=20s



https://www.youtube.com/watch?v=T65PZXxD7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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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놈이 반찬투정이 심하다. 소시지나 햄이 없으면 상에 앉아서 한숨을 푹 쉬고 '먹을 게 없다'면서 숟가락을 드는 둥 마는 둥 물러난다. 첫째 딸이 그런 적이 없어서 이건 뭐지 싶은 날들에 생각을 했다. 왜 첫째는 안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첫째를 키우면서 남편이랑 먹는 걸로 많이 싸웠다. 나는 남편이 딱 둘째처럼 하는 걸 보고, 화를 냈었다. 남편은 그 때, 내가 재주도 없고, 재능도 없다면서 젓가락을 깨작거렸고, 그럼 직접 해 먹어라, 도대체 뭐하자는 거냐고 싸웠다. 

그러니까 첫째는 고학년이 되어서는 자신의 후라이팬을 사달라고 했다. 스텐팬만 있는데, 코팅팬이 있어야 유튜브에서 본 요리들을 해 볼 수 있다면서 그랬지. 그러고는 동생들 밥을 해서 먹여 보는 방학도 여러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직접 하지 않는 밥에는 어떤 밥에도 화를 내거나, 투정을 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럼 첫째 아이를 보고 둘째나 셋째가 반면교사 삼는 건 뭘까, 생각했다. 

나는, 언니가 엄마, 아빠랑 싸우는 걸 보면서 내 행동을 교정해 왔다. 

언니가 대학에 가고, 그 해에 친구들과 등산을 간다는데, 아빠가 잠자리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앉기를 반복하면서 걱정을 했다. 그러고는 결국 언니는 그 등산을 못 갔는데, 나는 그걸 보고 대학에 가서 무얼 하든 엄마나 아빠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언니는 부모님과 더 가깝구나,라고 느끼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행동이 바뀌지는 않는다. 나는 언니가 부모님과 충돌하는 걸 보면서,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했다. 

그렇지만, 역시 첫째가 가지는 부모님의 상과 둘째가 가지는 부모님의 상은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도 든다. 이 끈끈한 관계의 끈을 쌍방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면에서 언니는 부모님이 좀 더 단단히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내가 하는 어떤 태도의 노력이, 이 인연의 끈을 잡고 있는 단단함의 크기가 나나 부모님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할 수 없는 과격함이나 강경함을 언니한테 볼 때마다 놀라는 거다. 

가족이란 참으로 신기한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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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로 유튜브를 봤다. 궁금한 노래들의 뮤직비디오를 찾아봤다. 

세븐틴의 손오공,과- 마치 된 것 같아 손오공- 조용필의 feeling of you.

그러고 있으려니, 딸아이가 와서는 르세라핌의 신곡들을 찾아 보는 거다. 

우선, 언포기븐,을 보고, 연결되서 나온 노래가 '이브,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https://www.youtube.com/watch?v=D-AlVUXUrew ) 다. 


가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게 없어서, 아이가 묻는다. 제목의 의미가 뭐냐고. 

셋 다, 하지 말라는 일을 하는 여자들이지. 


이브는 기독교에서 최초의 여자라고 하는데, 하느님이 처음 아담을 만들고, 심심하니까 그 갈비뼈를 뽑아 이브를 만드셨대. 그리고 둘이서 에덴동산-생각이 안 나서 그냥 동산이라고-에서 무사태평하게 살았어. 그런데, 하느님이 그 둘 한테 먹지 말라고 한 열매가 있거든. 그건 먹지 말라고 그것만 먹지 말라고 했는데, 뱀이 이브를 꼬셔서 그걸 먹어. 선악과라고 하는데 그걸 먹고는 거기서 쫓겨나는 거지. 


프시케는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데, 에로스의 신부야. 에로스는 사실 아프로디테의 아들이잖아. 여기는 이유가 있는데, 프시케 아빠가 자기 딸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보다 이쁘다고 떠벌리고 다닌 거지. 그러니까, 아프로디테가 자기 아들보고 프시케한테 화살을 쏴서 이상한 걸 사랑하게 만들라고 하거든. 그런데, 에로스가 화살을 쏘려다가 자기가 찔려서 우선 프시케한테 반하고, 엄마 몰래 결혼을 하는 거지. 그런데, 결혼을 하면서 자기 모습을 보지 말라고 해. 자기는 그래도 신이라서 그랬나, 이유는 잘 모르겠네. 그러고는 멋진 궁전에서 온갖 걸 누리게 해 주는데, 프시케가 자기 언니들한테 그걸 보여줬더니 언니들이 아마도 신랑이 괴물이라서 보지 말라고 했을 거라고 부추기는 거지. 그래 프시케가 몰래 에로스를 훔쳐보다가 들켜서는 에로스가 달아나버리는 거지. 다음에 프시케가 에로스를 찾아나서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건 잘 모르겠네. 


푸른수염의 아내에서 푸른수염은 중세 성에 사는 남자인데, 결혼하면서 아내한테 성 안의 모든 문을 열어도 되지만, 절대 열면 안 되는 문에 대해 당부하는 거지. 그 아내가 그 문을 열었을 때 그 문 안에는 푸른 수염과 결혼했었으나 실종된 여자들의 시체가 있는 거야. 


둠둠둠 심장이 뛰지, 심장이 뛴다.

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떻게 하지 않을 수 있지? 

이야기의 어떤 면들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속의 여자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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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휴일 오전 농구를 하러 나갔다. 

운동장에서 농구를 할 만큼 하고, 해는 좀 더 올라가서 뜨겁다. 

아이들도 해가 뜨거웠는지, 이제 농구는 그만 하려는지 같이 운동장 가 그늘로 피했다. 

그늘로 피했는데 심심했던지 풀싸움을 시작했다. 

풀을 한 줄기씩 골라 뜯어서 어느 풀이 센 지 대결을 한다. 머리카락 싸움처럼 양 끝을 잡고 서로 가로지르게 해서 어느 게 끊어지는지 대결이다. 아이들이 풀을 고르는 게, 영 성에 안 차서, 질기고 질긴 풀들을 골라 나도 풀싸움에 들어갔다. 질기고 긴 풀 줄기를 여러개 모아서 대결에 들어갔더니, 초4 여자 아이가 둘러보고 쑥 솟은 민들레 꽃대를 여러 개 들고 왔다. 아, 아, 그건 정말 약해 빠져서 안 되는데. 속이 빨대처럼 텅 비고, 누군가 그 씨앗을 날리고 싶을 때 쉽게 꺾여서 어디든지 씨를 날릴 수 있는 약하디 약한 민들레 꽃 대 여러개를 가지고 오다니! 어쩜 이렇게 모를 수 있지!!!!


이 얘기를 엄마한테 하면서, 엄마가 나를 볼 때 그런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갑자기 느껴졌다. 

그래도 엄마는 나를 놀리지 않았는데, 나는 벌써 여러 번 아이를 놀렸다. 내가 제일 한심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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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혼,을 볼 때도 남자와 여자와 아이,에 대해 생각했었다. 환혼의 도화부인은 장강의 몸에 환혼한 왕의 아이를 낳는다. 왕은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고, 장강은 그 아이가 왕의 아이라서 세상을 혼란에 빠뜨릴 거라고 생각한다. 애꿎은 도화부인은 아이를 낳고 죽었는데, 바람피운 적 없이도 바람피운 여자가 되어 불명예를 짊어지고, 불쌍한 장욱은 자기 자신의 운명을 제약하려는 집나간 아버지와 불명예를 짊어진 어머니의 그늘 아래서 자란다.


닥터 차정숙,에서 서인호와 최승희는 첫사랑이다. 애틋한 첫사랑이었는데, 서인호의 갑작스러운 실수? 사고로 차정숙에게 아이가 생기면서 헤어진다. 서인호는 차정숙과 아이를 책임지면서 살아가다가, 미국으로 연수를 가서 최승희를 다시 만났다. 최승희에게 아이가 생겼고, 최승희는 미국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서인호를 가끔 만나다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서인호와 같은 병원에 근무하면서 좀 더 자주 만난다. 차정숙은 이십년을 두 아이를 키우며 가정주부로 살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레지던트 1년차로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그 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일부일처제나 가부장제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다는 건 틀린 말은 아닌 것도 같다. 

그렇지만, 일부일처제나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불리한 제도라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 

짧은 쾌락이 전부라면, 남성이 아이에게 가지는 책임감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길고도 험난한 과정이기 때문에 여성이 그 전부를 떠받치기는 어렵고, 할 수 있다면 그 짧은 쾌락으로 생겨난 아이에 대해 남자에게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지금 교수인 최승희는 차정숙에 비해 자신의 삶이 억울한 게 많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날 자신의 남자친구를 빼앗은 차정숙이, 남편의 그늘 아래에서 정상가족 속에서 아이를 키운 차정숙이, 그렇게 애인을 빼앗긴 자신의 가해자라고 생각한다. 그 관계를 털어내지도 못한 채로, 그런 원망과 억울함 가운데, 다시 만난, 이미 결혼한 남자와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른다. '네가 너무 궁금해서, 보고 싶어서'라고 말하면서 우는, 아비없는 아이를 낳아 기른다고 가족들에게도 내쳐진 최승희는 불쌍한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다 그럴 수도 있지만, 한국에 들어와 아이를 빌미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정상가족의 환상에 사로잡혀서 이미 자라서 고등학생인 딸아이의 아비를 만들어주겠다는 말로 다시 그 남자와 여행을 하고, 만나고 사랑이라고 말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아이가 생겼다는데 기뻐하지 않았다는 말에, 나는 언제나 그랬다는 서인호를 오히려 이해한다. 짧은 쾌락 뿐인 관계에서 길고 오래고 무거운 책임이 생겼다. 

남성이 가지는 가족 내 권위는 여성인 어머니가 아이를 독려해야만 가능하다. 부재하는 많은 시간 어머니가 지지하지 않는다면, 아버지는 가족을 겉돌다가 내쳐지는 비루한 존재가 되고 만다. 어머니는 가족 내 권위, 허명을 지워줌으로써 남성을 아버지로, 책임지는 자로 만든다. 위태로운 자신, 아이를 돌보고 살려야 하는, 아이의 위험을 스스로의 위험으로 감당해야 하는 여성인 자신의 위태로움을 남성에게 의지하면서 그렇게 아이를 키운다. 혼자서는 하기 힘든 일을 해내기 위해 짧은 쾌락 뿐이지만 남자에게 가부장이라는 거대한 문화적 최면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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