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미스 다이어리 박스 세트 (6disc) - KBS 일일시트콤
김상미 외 감독, 임현식 외 출연 / KBS 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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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올미다,를 할 때, 나의 하루는 올미다를 중심으로 돌았다.

매일매일 올미다가 시작하는 시간까지는 어떡해서든 집에 들어가야 했고, 올미다가 끝나야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었다.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것만 같던, 내 친구같던 세 처녀와, 할머니들, 부록과 우현삼촌까지, 지피디와 정민군과 동직이까지 그렇게 오래 잘 알던 사람들을 못 보게 된 지 여러 날이 지났다.

지난 시월 말에 예쁘게 막을 내린 이 프로를 디비디로 다시 만나서 보고 있자니, 애틋한 마음에 웃음도 나고, 눈물도 난다.

서른 개의 에피는 1년동안 알던 친구를 추억하기에는 아쉽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싶고. 부록으로 붙은 토크쇼, 제작과정, NG스페셜은 그 많고 사랑스러운 에피소드들을 내가 매일매일 만날 수 있도록 이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깨닫게 했다.

사는 것에 초라하거나, 화려하거나 그런 거 없고, 내 곁의 누구나, 무엇이나 소중하고 귀하다고 말해주던 이 따뜻한 시트콤을 오래 곁에 두고 계속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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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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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버린 청춘의 날들은 후회스럽기 마련이다. 어른인 척 했던 것에도, 무심한 척 했던 것에도.

이건 고3 마지막 학교의 행사 - 아침에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에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80킬로의 행군-에 참여하는 친구들이 그런 아쉬움들을 만회하려고 애쓰는 그런 이야기이다.

밤이 가져다 주는 감상과 어둠과, 지친 몸을 빌어 용기를 내는.

밤 속에 흩어지는 비밀은, 입 밖으로 튀어나온 비밀은 갇혀 있을 때보다 가벼워지고, 소설의 빛깔은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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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호와 아마존호 네버랜드 클래식 23
아서 랜섬 글 그림, 신수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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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하는 생각이지만, 난 좀 순화될 필요가 있다. 이런 책들에 대한 반응에 항상 시큰둥하다. 피가 튀고 절대적인 위기 따위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역시 좀 민숭맨숭하다고 느끼게 되어 버린 것이다.

온갖 미덕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상이 먼저 나를 차지했다. 어린이의 모험물이 그런 식이면, 얼마나 끔찍한가, 아이들은 약하고 어린 존재인데, 나쁘고 교활하기까지 한 악당이 등장한다면 이야기가 시작도 하기 전에 피투성이일텐데. 그런데도, 어른들의 모험물, 심각한 하드 보일드들에 길들어져서는 이런 모험물에 시큰둥한 어른이 된 것이다.

자신들의 항해를 기획하는 독립적인 아이들, 아이들의 항해를 지지하는 멋진 어른들, 괴팍한 아저씨, 허술한 악당이 등장하는 멋진 모험물인데도. 

아무래도, 이 책도 좀 더 좋아할 아이에게 선물한 다음 안타깝게 책장 앞에 서성이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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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의 다른 방법 - 모습들 눈빛시각예술선서 7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이희재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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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지고 있었던 책은 이게 아니다. 그 책은 더 멋진 표지였다. 사진으로 가득채운 표지에 멋부리지 않은 글씨체로 '말하기의 다른 방법'이라고 쓰여있었다. 그 사진은 흑백사진이었는데, 흑판에는 글자가 가득하고, 어린아이는 팔을 뻗어 무언가를 보태고 있다. 그 책에는 멋진 표지에 어울리는 안 사고는 못 배기게 하는 정말 끝내주게 멋진 서평이 걸려있었다. 그걸 보고 홀랑 반해서 나는 그 때 그 책을 샀다. 다시 그 서평을 본다면, 이 서평을 쓰겠다고 마음먹지 않았을 텐데, 찾을 수가 없었다. 구판정보조차 없다. 아, 모두 과거형이고, 그 책을 다시 볼 수 없다니 왜 이렇게 안타까운지 알 수가 없다.

서평에 홀랑 넘어가 책을 산 게 2002년 8월 31일이고, 그 때 읽으면서 바로 한 생각은 '음, 나는 그만큼 안 좋네'였고,  훨씬 좋게 느껴질 책이 나를 만나서 홀대받는다는 생각 때문에 그 다음부터 누군가 '사진'이란 걸 한다고 하면, 아, 그 사람에게는 더 좋겠는걸, 뭐 이런 식이었는데, 막상 사진을 한다는 누군가에게 선물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다시 꺼내니, 표지의 사진부터 나를 당겼다. 그래서, 선물하기로 마음먹고 다시 책을 펼쳤었다.흑백의 사진들, 사진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 말미에 사진에 대한 긴 이야기-그때도 못 읽었고, 다시 볼 때도 역시 못 읽었다-. 사진을 볼 때마다, 아 역시 주고 싶지 않아, 가 닥쳐서 심난했다.  심난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2005년 12월 선물하기는 했다.

지금 들어와, 나를 유혹했던 서평조차 다시 읽어볼 수 없고, 그 애틋하던 표지사진마저 볼 수 없다는 걸 알고 다시 후회가 닥친다. 긴 글을 못 읽겠다면, 그저 그 사진들만 다시 봤어도 좋았을 텐데, 바보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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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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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혹은 어떤 사람은 둘 중 하나로 충분하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대한민국사'를 쓴 한홍구 교수를 만날 기회가 될 때, 내가 그렇게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또 정작 그 분이 이야기하시는 동안 책을 읽던 때보다 즐겁거나 좋지 않다는 걸 깨달으면서였다. 책으로 충분했다. 이 때 내가 한 생각은, 교수님은 책으로 읽으니 더 좋은데, 책으로 본 얘기 얼굴 보면서 듣는다고, 더 좋지 않은 걸, 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이 책을 소개하는 티비프로에서, 한비야씨가 이야기하던 생각이 났다. 물론 거기서 한 이야기는 이 책 전체보다 짧지만, 이야기를 듣는 편이 책보다 훨씬 좋다. 아주 훌륭한 글솜씨가 아니니까, 게다가 사람이 전해야 하는 바쁜 마음이 앞서면, 그런 감정들이 뒤섞이면 잘 쓰던 사람도 쉽지 않으니까 그런 것을 이해한다. 그런데도, 역시 책을 모두 읽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같이 이야기를 하고 싶지, 다시 책을 읽고 싶지는 않은 걸, 한다. 내가 한비야님과 대화를 나누게 될 일은 아마도 없을 테니,  내게 부족한 열정이란 걸 충전하려고 혹시 또 책을 집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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