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민'이라는 말이 좀 웃기다.
'시민의식을 보여달라'는 어떤 종용을 들으면 콧방귀를 흥, 뀌고는 '나는 면민인데, 메롱'한다.
촌년,이라는 말도 들었고, 내 자신이 그걸 감추려고 한 적도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시민이 아니라서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이를 도시 아닌 곳에서 키우는 것에 걱정을 많이들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아이는 도시 아닌 곳에서 자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시는 분업으로 굴러가는 곳이라,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는 온전하게 스스로를 책임지는 어른이 되지 못한다.
도시 밖에서 먹을 걸 가지고 들어와서 도시 안의 쓰레기를 도시 밖으로 밀어내는 존재들이 거대한 허영과 우쭐함으로 스스로를 부풀리는 도시에서 사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고양된다.
그런 면에서 서양은 도시국가 이상이 되지 못했다고도 생각한다. 자국민의 불만을 식민지로 해소하는 마음은, 작지.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은 신이 해 주십사 하는 마음도 어리기 짝이 없지.
1. 춘추전국이야기 1 : 춘추의 설계자 관중
나는 관중이 '촌놈'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필자가 관중에 대한 고적을 찬찬히 검토하면서 얻은 결론은 두 가지다. 하나는 관중이 근본적으로 심성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관중이 처음부터 끝까지 '야인野人' 곧 촌놈이라는 사실이다. 순자는 공자의 말을 빌려 관중이 천자를 보필할 교양인이 아니라 예를 모르는(교양이 없는) '야인'이라고 평했다. 관중은 소인이 아니라 야인이다. 고대에서 야인이라는 말의 의미는 도성 밖의 사람, 곧 귀족이 아니라는 뜻도 있다. 그런데 도성에 기반을 두지 않은 인간이 오히려 패업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역시 큰 인물이 되려면 뛰어난 야성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순자의 의도와는 물론 다르지만, 점차 야성을 잃어가는 현대인이 듣기에 '야인'이라는 말은 꽤 매력적인 말이 아닌가? -p166
공자가 보는 관중은 어떤 사람인가? 공자는 예를 목적으로 보고 극히 중시하지만, 관중은 예를 다만 도구로 보았다. 예를 근본으로 하지 않는 사람은 공자가 말하는 진정한 교양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관중은 예에서 엄격하지 않지만 근본적으로 '착하다'(仁). 공자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공자 스스로 관중이 인하다고 했는데, 공자가 보는 인은 예에 비해 어떤 것일까?
사람이 되어 인하지(착하지) 않으면 예는 알아 무엇 하며 음악은 알아 무엇하리요[人而不仁如禮何 人而不仁如樂何]? - 『논어』「팔일 八佾」-p171
도시인의 세련된 친절함이 도시라는 문명 밖에서도 유효할 수 있을까, 삐딱한 마음으로 본다. 자신의 주장에 따르는 불편이 자신에게는 올 리 없다는 음흉한 마음을 감춘 어린애같은 존재들이라고도 생각한다.
2. 유교와 여성
https://blog.aladin.co.kr/hahayo/15272244
'시민사회'나 '공공 영역'의 개념은 서구 자유주의 전통의 발명품이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존재를 [이상적인] 규범으로 가정하는 것은 사실상 서구의 역사적 현실을 비서구사회의 이상화된 발전 경로로 투영하고 결과적으로 대안적인 발전 모델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 53%
이런 대목을 만난다. 계속 다르다고, 심정적으로 부인하려는 어떤 태도에 대한 해석이 가능한 대목은 아닌가 생각한다.
왜 저렇게 싸운대? 싶은 서양의 날 선 태도들을 구경하면서, 억압이라면 억압일 나의 사고방식에 대해 계속 생각한다. 그걸 왜 드러내려고 하는 거야? 같이 살아가는 데 그게 그렇게 중요해? 같은 믿음들을 구경한다. 이슬람교도가 이슬람복식을 유지하지 못하는 한국은 억압적인 거라는데, 억압은 뭔가, 싶기도 하고 말이지.
3. 논어
和以不同(화이부동)을 크게 인상깊게 본 적은 없었다. 어디에라도 들어본 듯한 논어의 말들, '子曰, 君子矜而不爭, 羣而不黨'(자왈, 군자긍이부쟁, 군이부당, 군자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나 다투지 않고, 모이지만 무리를 짓지는 않는다)의 의미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지금의 대치상태를 보고 있으면, 어떤 말들은 그저 파벌을 만들어 자신의 이익을 탐하는 것의 그럴 듯한 포장지인가 싶다.
같이 살아가기 위해, 무슨 태도가 필요한가.
국가를 경영하는데 무엇이 필요한가.
함께 이야기 하기 위해 필요한 대전제는 무엇인가.
어떻게 같이 살아갈 것인가.
동아시아에서, 무리를 가족수준으로 쪼갰기 때문에, 국가가 가능했다.
춘추전국의 피뿌리는 혼란 속에서, 살아남은 정치철학이 유학이다. 그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은 이상국가가 조선이다.
모든 인간은 군자라는 이상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선택에는 명분이 필요하고, 명분의 대결인 정치의 장이 세 대결이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파벌을 이루지 않은 군자인 개인들은, 명분의 대결 가운데 더 그럴 듯한 명분을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