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1 - 반지 원정대(상)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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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속도감에 익숙함을 우선 고백하고, 주구창창한 구절들을 많이 건너뛰었음을 또 고백하고, 영화가 오히려 계속 읽는데 도움이 되었음을 또 고백하고. 그런 내가, '판타지의 고전'을 읽는다는 건 다른 문학의 고전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놀랍고 참신하다는 경탄대신, 무언가 익숙한 모양새들이 끊임없이 떠오른다.이 책을 다시 집어든 것은 사실 두번째다. 판타지 장르 자체에 대한 낯설음도 물론 있었지만, 다른 방식 - 만화든, 게임이든-으로 이미 만난 것 같은 느낌에 느리고 장황한 묘사에 계속 읽을 수가 없었다. 처음 만들어진 이야기는 변형되고 재해석되고 끊임없이 다른 모양으로 내게 왔었을 것이기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영화의 상상력들이 놀랍고, 영화속의 프로도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분명 잘 만들어졌으나, 원작은 그보다 방대하다. 영화가 포괄하지 못한 에피소드들도 흥미진진하다. 고전은 그런 것, 이란 약간의 인내심!만 있다면 문제없다. 시들은 영어로 읽는 것이 더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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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
다카기 진자부로 지음, 김원식 옮김 / 녹색평론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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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소에 다닌다는 이유로 '공존불가능한 사람'이란 대접을 받은 다음에, 반대하는 논리들은 무엇일까, 궁금하여 샀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설득된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설득되지 않았다.

발전소에 다니는 나에게 원자력 안전성 신화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공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상식적인 수준에서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10의 마이너스 24승 따위를 계산하는 사람이 얼마를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얼마를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기술적인 설명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깨끗합니다', '절대 안전합니다'라는 말은 신화가 된다. 나는 발전소가 있으면 없을 때보다는 나오지만, 그건 연구한 결과에 비추어 정해진 법적 수준 이하라고만 말할 수 있다. 그러고도 또 주춤하는 것은 안전하다,는 식의 신화만큼 방사능에 관하여 형성된 위험하다,는 신화때문이라서, 또 '완전히' 안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토를 달 것이다. 원자력이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주장하는 신화만큼, 방사능은 눈꼽만큼도 용납불가능하다는 신화도 만만치 않으니까.

난 설득될 수가 없었다. 내게 원자력은 기술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 수준의 문제다. 새로이 발견될 새로운 유해성을 지금의 내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쓸 수 있었다면, 앞으로도 이렇게는 쓸 수 있을 거라고, '안전하다'는 신화를 '위험하다'는 신화로 다시 덮어씌우는 것도 그리 미더운 처사는 아니라고, 대형산업단지의 입지에 대해서 개미지옥이라고 묘사하는 것에는 설득될 수 없었다고 고백하겠다. 작은 어촌마을에 발전소가 들어서고, 마을의 '순박'한 촌민들은 발전소의 '지원금'을 계속 받아들여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존재가 된다,는 시나리오에는 또 분개한다.

전기도 작게 쓰고, 물도 작게 쓰고, 그래서, 더이상 발전소도 짓지 않고, 댐도 짓지 않게 되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거짓말장이이고, 발전소자체가 악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이해도 설득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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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작은 나라 - 모든 것이 작은 코로보쿠루 이야기 1 동화는 내 친구 21
사토 사토루 지음, 무라카미 쓰토무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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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였다면, 동네의 어느 우거진 숲에서 작은 사람들을 기다렸을 것이다. 숲 가운데 작은 시내에서는 두 발로 서는 개구리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유심히 살폈을 것이다. 그리고는 자라서는 어느 우거진 인적드문 산을 깎아 길을 낸다는 말을 듣게 되면 깜짝 놀라서는 설명할 마땅한 이유없이 '어, 그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아이가 아니더라도, 나는 아직 보지 못한 작은 이들을 상상한다. 내가 무심해서 지나쳤을 지도 모르는.

우거진 숲과 맑은 물만 있다면 어디에나 존재하는 소중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너무 빨리 지나가서 내가 지나치더라도, 여전히 거기 있는 작고 소중한 이들을 상상하는 거다. 코로보쿠루가 아니더라도 다들 소중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것들을 일깨워준다.

사무실에 화분을 살리기로 결심한 순간, 화분의 잎사귀가 다른 빛이 되었다. 물을 먹고, 푸른 잎이 나는 것도 같다. 바라보는 마음이 변하면, 이렇게 달라지는 걸, 왜 그런 생각 못했을까 싶다.

작은 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눈을 빛내던 아이는 작은 이를 볼 수 없을지는 몰라도 숲의 바람과 나무나 풀의 소중함, 작은 생명체의 기운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책의 놀라운 환상이 주는 기쁨에 이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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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세계사 - 증보판
김향 엮음 / 가람기획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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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뒷얘기에 흥미가 있다면, 아라비안 나이트 풍의 대범한 생략과 압축적인 묘사에 혹한다면, 치정극과 이상한 광기들을 즐긴다면 읽을 만하다. 그녀가 선량한 피해자였건, 의도적인 잔혹녀였건, 대범한 정치가였건, 철없는 귀공녀였건, 단지 '악녀'라고 뭉뚱그려 묘사하는 건 사실 맘에 안 들지만, 흥미있다. 그렇다, 난 가십에 열광한다.

'루 살로메'라는 익숙치 않은 이름이 궁금해져서 다른 이의 책장에서 꺼내읽기 시작했는데, 익숙한 이름들 사이에 처음 듣는 이름들 때문에 계속 읽었다. 악명을 떨치는 색녀나-색녀가 되는 이유가 너무나 정숙한 여성이 자신들의 방탕함을 부각시킨다고 생각하는 가문의 의도된 강간이었다니, 원. 순식간에 정숙한 부인에서 색녀가 되게 하는 그 놀라운 테크닉이 궁금할 따름, 가부장제의 환상인가?-, 이상을 쫓는 남편의 이름 뒤에 악녀로 남은 부인들-아이는 줄줄이 낳았는데, 다 늙어 재산을 버리고 종교에 귀의한다는 남편을 안 말릴 부인이 누가 있을까?

벌이없는 남편을 먹어 살리면서, 폭언을, 물 한바가지를 못 쏟아 부을까?-과 나란히 또 머리까지 상을 들어 바쳤다는 부인도 등장한다. 살아있는 사람의 피를 짜서는 몸을 담궜다는 중세의 부인이나, 독약으로 서로를 죽여대는 치정관계며, 스물 다섯이 되기 전에 남편을 서넛쯤 바꾸고 아이를 낳고는 전쟁에 져서 패주하는 여자 군주도 신기하고. 돌아가면서 들려주는 이상한 얘기로 밤을 세듯이 딱 그런 정도의 흥미로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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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 - 서현의 우리도시기행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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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로 여행을 가도 하나도 낯설지 않고, 열심히 걷고 있는 데 새로운 풍경은 없고, 걷고 있다는 것이 '초라함'을 연상시키는 어느 도시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찬탄이 가득한 소개를 받고 간 어느 곳에서 별다른 감흥없이 돌아서던 기억이 있다. 낯선 도시에서 보고 싶은 것들을 다 못 보고 걷고 있던 거리가 갑갑해서는 내겐 왜 차가 없을까, 면허조차 못 땄을까, 자책하던 기억이 있다. 주로 서울에 대한 기억들로 채워진 거리 이야기는 우리 나라 어느 곳에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뒤틀린 역사의 기억, 성장만을 최선으로 삼던 기억, 문화를 상품으로 평가하는 태도, 그 모든 것은 우리 사고방식에 녹아 있는 것처럼 거리에도 녹아 있다.

사람보다 차가, 빠른 것이 아름답고 튼튼한 것보다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보다 화려하고 비싼 게 더 중요하고, 욕 먹어 마땅하다던 어떤 사고방식은 그대로 집이 되고 거리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함께 가는 것이다. 사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자라는 것도. 살고 있는 우리가 사회가 성숙하지 않은데, 도시가 성숙한 아름다움으로 서로를 배려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사람들이 손잡는 아름다움을 모르는데, 거리에 그런 아름다움을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팔려야 아름다운 거라고 비싸야 좋은 거라고 판단하는 가운데 독창적이고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또 모순이다. 아름다운 도시가 되려면, 정말, 많은 것이 변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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