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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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목도 그렇죠. 그냥 제 성품에는 고를만한 책이 아니예요. 추천으로 읽었는데, 너무 울어서 부끄러웠어요. 어떤 사람이 추천한 거냐면, 조금은 필요에 의해서 친해야겠다, 생각한 사람이 음, 내 취향은 아니네,라는 당신의 취향으로 골라주신 책이지요.

그래요, 제가 좀 쿨한 척 하느라고 혹시 너무 유치하지는 않을까, 혹시 너무 진부하지는 않을까, 너무 교훈을 주려는 마음이 뚝뚝 묻어나는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 그래도 내가 이분과 친해지려면 읽는 것도 좋아, 그게 어디야, 하면서 읽은 거지요. 그래요. 그랬어요. 그런데, 가슴이 먹먹해져서 바보같이 울었어요.

메마른 정복의 역사가 드러나지요. 눈물 흘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백인들과 빈 마차를 뒤에 두고 시체를 안고 걷는 인디언들의 묘사는 가슴이 아파요. 정직하고, 가난하고, 사랑이란 걸 할 줄 아는, 필요한 것 이상 자연에서 취하지 않고, 다섯살짜리에게도 '비밀의 장소'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인디언 노부부를 사랑하게 되지요. 작별의 말 대신 '너를 기다리고 있으마'라고 말하는 '이번 생은 좋았어, 다음은 어떨지 모르지만'이라고 말하는, 이 노부부를 알게 된 게 기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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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여성들 - 늑대를 타고 달리는
막달레나의 집 엮음 / 삼인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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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래 복잡한 문제였다. 성매매란 것은, 성산업이란 것은. 그런데도 이 복잡함은 역시 버겁다. 화마가 쓸고 간 자리에서 반쯤 타버린 일기장이 나오기를 벌써 몇 번째, 그 자리의 여성들은 갇혀있는 희생양이다. 명백히 사라져야 할 매춘과 나쁜 사람과 착한 사람의 대결구도를 책 속에서 찾을 수 없다. 그 지역으로 걸어들어가기로 결심한 연구자들처럼 책을 읽는 나도 당황한다. 내가 갇힌 이미지- 살아있을 때는 음탕하였다가 죽은 다음에는 창살에 갇힌 피해자가 되는 모순 같은 것-들이 깨어진다.

선량한 얼굴을 하고서는 매매춘여성에게는 바가지를 씌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나는 얼마나 다른가, '왜'를 연발하는 연구자와는 또 얼마나 다른가. 필리핀 여성이 카톨릭교도인 자신을 어떻게 납득시키면서 클럽에 일하는지, 그녀가 얻는 가족내 권력은 또 어떻게 기형적인지, 문제는 명료해지지 않고 더 복잡해진다. 아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것은 여기에서 출발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조각난 모습으로 아니라, 이상하게 변덕스럽고, 또 그럴 수도 있는 모습들을 보려고 마음먹는 것. 내가 복잡해지는 걸 버티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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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스피리트
이사벨 아옌데 지음 / 지리산 / 199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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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아옌데는 정말 탁월한 이야기꾼이고, 그러면서도 그 속의 삶들은 얼마나 진하고 짙은지 입이 떡 벌어진다구요. 다른 나라의 고통에 무지한 어떤 사람에게도 이건 칠레에 좌파정권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 좌파정권이 어떻게 자유선거로 집권했는지, 어떤 사람들이 그들을 지지했는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지요.

그건 거대한 정권의 생성과 몰락에 대한 줄거리가 아니라, 그 속에 어떤 삶, 아버지는 군부정권에 복무하는 지주이고 손녀는 혁명가를 사랑하는 어쩌면 특이하고 어쩌면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통해 보여주지요. 고문이나 죽음도 또한 그 안에 있지만, 미로속의 방에서 나누는 사랑이나, 커다란 용서도 또 그 안에 있지요. 이 삶의 모습들은 마술적인 묘사들로 더욱 아름답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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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바트 비룡소 걸작선 16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지음, 박민수 옮김 / 비룡소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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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사람은 가끔 당황하면서도 행복하겠지만, 내게는 좀 애석한 습관이 있다. 책을 것도 내게 정말 좋았던 책들을 가끔 즉흥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린다는 거다. 이 책은 우리 집에 묵은 동료에게 주었다. 선물이예요. 아들에게 주세요. 책을 선물할 때 얼마나 기분좋은지 말로 못한다. 가끔 책장을 뒤지면서 그 책 어딨더라, 하고 찾을 때는 정말 애석하지만.

크라바트는 책의 처음에서 비루먹은 소년이었다가 책의 말미에서 멋진 청년이 된다. 그렇게 변모하는 것은 학생이 바글바글한 그러니까 호그와트식의 마법학교가 아니고, 음침한 중세의 외딴 방앗간이다. 난 사실, 학생들 하나하나의 묘사의 상투성에 화를 내고 있었다. 살림하는 방앗간의 일꾼묘사가 내내 '보잘 것 없다'거나 '고작'이거나 였으니까. 그렇지만 그건 조금은 기우다. 복선이고, 방앗간 마법사를 속이는 것처럼 나를 또 속인 거니까.

마법사는 착하지도 않고, 크라바트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마법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삶과 자신의 삶을 의지대로 선택하는 친구의 죽음을 묵과하지 않아도 되는 삶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자기 대신 다른 이를 죽이는 나쁜 마법사에 대한 응징으로 마땅히 후자의 선택을 해야 하지만, 난 내내 생각하고 있었다. 아까운데, 둘 다 가능하면 안 되는가, 하고. 쉬운 선택이 결코 아니다. 사랑도 없고, 우정도 없어도, 가끔은 욕망이 크면 마법이 그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다는 거짓 믿음에도 속으니까. 내가 이런 유혹에 자신없으니까, 땀을 흘리기로 결심한 이 멋진 크라바트가 더 좋은 거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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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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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고 싶은 글은 이렇다. 간결하게 딱 필요한 만큼을 쓰고, 나는 잘 드러나지 않는 그런 글. 진심이 묻어나는 단문,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나는 내가 글을 쓸 때 더 이상 길게 쓸 수 없는 것이 나의 성품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읽는 동안 '아, 난 쓸 말이 없었던 거구나' 깨달았다. 군더더기 없는 글은 감동적이다. 젊은 날의 여행경험을 듣는 것과 오래 살아 겪은 일도 많은 사람의 여행에 대해 듣는 게 또 얼마나 다른지 깨달았다. 어디에도 친구가 있고, 역사 속의 인물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숭배하게 되는 마음도 알 것 같고. 소를 몰아 밭을 가는 늙은 농부의 악의없는 헐뜯음도, 산골 작은 학교의 선망도 아주 가깝고 싱싱하게 다가왔다.

나 사실 편견이 있었다. 쾌도난담의 김훈은 뻔뻔한 마초 아저씨 같아서 그의 책은 읽지 않으리라 하기도 했나보다. 그런데, 한겨레의 기자가 되고, 발전노조 파업에 대한 기사를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의 편견은 차라리 솔직한 투명때문에 생긴 거였다. 물론 책의 활자가 좀 더 작거나, 혹은 줄간격이 좀 더 조밀하거나, 용지가 덜 빳빳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 글을 더 많은 사람이 읽으면 좋겠지만, 그 글의 좋은 냄새보다 포장의 뻣뻣함에 질려버릴까 겁이 나니까,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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