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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바트 ㅣ 비룡소 걸작선 16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지음, 박민수 옮김 / 비룡소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내 주변사람은 가끔 당황하면서도 행복하겠지만, 내게는 좀 애석한 습관이 있다. 책을 것도 내게 정말 좋았던 책들을 가끔 즉흥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린다는 거다. 이 책은 우리 집에 묵은 동료에게 주었다. 선물이예요. 아들에게 주세요. 책을 선물할 때 얼마나 기분좋은지 말로 못한다. 가끔 책장을 뒤지면서 그 책 어딨더라, 하고 찾을 때는 정말 애석하지만.
크라바트는 책의 처음에서 비루먹은 소년이었다가 책의 말미에서 멋진 청년이 된다. 그렇게 변모하는 것은 학생이 바글바글한 그러니까 호그와트식의 마법학교가 아니고, 음침한 중세의 외딴 방앗간이다. 난 사실, 학생들 하나하나의 묘사의 상투성에 화를 내고 있었다. 살림하는 방앗간의 일꾼묘사가 내내 '보잘 것 없다'거나 '고작'이거나 였으니까. 그렇지만 그건 조금은 기우다. 복선이고, 방앗간 마법사를 속이는 것처럼 나를 또 속인 거니까.
마법사는 착하지도 않고, 크라바트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마법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삶과 자신의 삶을 의지대로 선택하는 친구의 죽음을 묵과하지 않아도 되는 삶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자기 대신 다른 이를 죽이는 나쁜 마법사에 대한 응징으로 마땅히 후자의 선택을 해야 하지만, 난 내내 생각하고 있었다. 아까운데, 둘 다 가능하면 안 되는가, 하고. 쉬운 선택이 결코 아니다. 사랑도 없고, 우정도 없어도, 가끔은 욕망이 크면 마법이 그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다는 거짓 믿음에도 속으니까. 내가 이런 유혹에 자신없으니까, 땀을 흘리기로 결심한 이 멋진 크라바트가 더 좋은 거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