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동화
이탈로 칼비노 외 지음, 전대호 옮김 / 궁리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책을 바쁘게 골랐다. 오일장에서 감자와 호박을 산 다음이었고, 평화롭고 신기한 책을 사서는 나무 숲에서 자리잡고 읽고 싶어서 산 책이다.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들과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들이 나무를 소재로 했다는 공통점 때문에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있다. 익숙한 듯한 이야기는 주로 유럽의 민담을 다시 썼기 때문이고,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들도 의도적으로 민담풍을 따랐다.

나는 민담을 다시 쓴 것이 무언가 오래된 세월의 무게가 느껴져서 좋았다. 노골적으로 가르치는 바가 있다고 해도, 거기에는 곰삭은 맛이 있다. 이미 읽어 익숙한 이야기도, 약간은 기묘해서 깨고 나면 이상할 꿈같은 삽화때문에 조금은 다른 빛깔이 되었다. 딸기님이 핵심을 옮겨놓은 빈곤에 대한 이야기가 좋았고, 배와 함께 팔려간 소녀도 표지의 그림과 함께 잊히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의 민담은 아무 교훈이 없어서 잊지 못할 거고, 티베트와 인도네시아의 민담은 너무 대조적이라서 못 잊을 거다.

창작된 이야기들 중에는 독특한 상상이나 멋진 삽화의 원시림 책상과 조금은 노골적이었어도 다임링씨네 꼬마의 가출이 좋았다. 원시림 책상은 아무 것도 하고 싶은 '이야기'없이 단지 도시 속 사무실에 원시림을 옮겨놓는 어색한 장면 하나때문에 만들어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삽화가 멋지고, 다임링씨네 꼬마의 가출은 나무나 숲을 대하는 현대인의 태도가 재치있게 다가와서 비극적이다 할 결말에도 불구하고 귀여웠다.

이미 익숙한 유럽의 민담들이 주라서 아쉽다. 

밝은 날 숲에서 평화롭게 읽는 것보다 흐린 날씨에 살짝 추운 듯한 기분으로 읽는 것이 더 잘 어울리는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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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꾼 우시지마 2
마나베 쇼헤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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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재미난 만화책들을 샀니라."

그래서 도착한 택배 한 박스에 이게 두 권 들어있었다. 먼저 읽고 난 나의 소감은 이런 것.

"아, 이런 건 좀 사지 마라."

나의 감상이 이런 이유는 너, 무, 나, 도 신랄해서 무섭기 때문이다.

베르세르크의 공포는 현실을 벗어나지만, 이건 절대로 현실이다.

안다, 이 만화가 묘사한 이상의 심한 일들이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과연?) 그런데도, 못 보겠다.

허영심 때문에 파멸해가는 젊은 여자를 보는 것은, 도박벽 때문에 사채를 쓰고 그 사채 때문에 모진 꼴을 당하면서도 다시 파칭코 앞에서 서성이는 가정주부를 보는 것은, 검고 진지한 그림체 때문에 더욱 더 무섭다. 그렇게 나약한 인간이라서 무섭다.

고리사채는 정말 쓰면 안 되겠구나, 를 학습하는 데는 정말 좋은 책이다.

하지만, 쓰게 된다면 그건 우시지마 말대로 몰라서가 아니라 늘 그러듯이 나만은 괜찮겠지 혹은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 때문이란 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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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Outs 15
카이타니 시노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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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재미있다.

이 놈의 만화는 리그 꼴찌 팀이 우승하기 위해 나아가는 여정, 쯤으로 묘사되는-아직도 계속되는 중이니 우승할 지는 모른다고 해도- 스포츠 만화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빛깔이 되는 것은 '야구는 도박'이라는 걸 깔고 들어오는 승부의 묘사다. 심리전과 정보전, 이기기 위해 필요한 냉혹함, 따위. 게다가 15권에 접어들어 이 만화 경기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점점 자라고 있다.

아직 15권이고 갈 길이 먼데도, 살짝은 위태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런 스포츠 만화 구도에 끼어들어오는 상투적인 풍경을 만났을 때다. 야구장을 벗어났으니, 이제 그런 상투적 구도가 다시 필요할지는 미지수지만, 앞으로의 전개를 독자의 입장에서 걱정하고 있다.

그리고, 내내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수긍하다가, 한순간 멈칫 '정말 그래?'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팀워크라는 걸 깨우치기 위해 도입한 극단적 '성과급' 제도를 맞닥뜨린 순간이다. 어쩔 수 없이 직장인이라, 아 이런다면 정말 무섭겠다, 가 되어서, 그런 순간 원하는 결과가 나온다는 게 정말이 아니라, 만화라서 가능한 거면 좋겠다, 뭐 이런 식이 되는 거다.

좀 더 두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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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
돈 리 지음, 임주현 옮김 / 문학사상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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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수자,이면서 차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러나, 소수자라고 그러한 차별에 갇히는 것은 또 그만큼 어리석다.

한국에 사는 한국인인 나는 돈 리가 말하는 미국땅의 한국인,이 느끼는 차별을 멀게만 느낀다. 그러나, 마지막 자전적 단편에서 드러나는 '차별받고 있다'에 사로잡힌 그 안에 갇힌 한국인이 이해가 되었다. 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한 심정, 다르지만 알겠다.

나는 여자다. 모두 자기 자리에서 그런 고민에 빠지는 것처럼, 나는 내가 여성이라는 것에서 그런 고민에 빠진다. 내가 어리석게도 차별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또 혹은 어리석게도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을까봐 걱정하고 행동할 때마다 근심한다.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하다.

다른 단편들은 그런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풍경처럼 처리하지만, 마지막 단편에서는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좁은 이민자 사회를 묘사하기 위한 것인듯, 서로 다른 단편들은 조금씩 다른 면으로 연결되었다. 배경이 모두 같아 살짝 단조롭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어느 순간 아 먼저 단편의 아저씨가 이제 다른 모습으로 여기 등장하는구나, 알아차렸다. 그래,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삼 남매가 세 편의 단편으로 등장하고, 또 다른 방식으로 얽힌 사람들이 또 등장하는 식이다. 숨은그림찾기같이 것도 즐거웠다. 

전체적으로 폭발하는 이미지라기보다는 물에 비친 풍경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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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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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재미있는 책인데, 이걸 신랑에게 읽어보라고 해야 할지 어디 숨기고 못 보게 해야 할지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나의 고민은, "아내가 결혼했다"고 자신을 골이 마구 들어오던지 말던지 골대에 기대어 서서 망연자실한 골키퍼에 비유한 이 남자의 아내가 너!무!나!도! 완벽하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반응은 "네가 이 여자 반에 반만 해도, 이 남자처럼 당근 살 수 있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결혼을 축구에 비유한 장면들, 결혼에 대한 인류학적 조망, 세상 어디엔가 존재한다는 일처다부제의 마을이 모두 유쾌하고 놀라우며, 생각할 거리를 던짐에도 불구하고, 역시 최악의 반응에 대한 걱정이 모든 것을 앞선다.

여성에게 여러 모로 불리한 사회에서 여성의 비행?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이유 혹은 조건이 필요하다.

아내가 바람이 날 때는 남편이 무심하고 때로는 난폭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필요하고, 여기서는 약간 다르지만, 이 아내가 결혼을 두 번 할 수 있으려면, 정말이지 최고의 아내여야 한다. 고부갈등이란 말은 들어본 적 없는 양 두 결혼으로 맺은 관계에 능숙하고, 살림도 척척,  밤에도 능란. 뭐 이런 것.

이론적으로는 '여자가 두 번 결혼하는 게 무에 그리 큰 잘못인가'라는 생각이 들도록 온갖 것들로 설득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 보면 '넌 절대 이 여자처럼 못할걸, 꿈도 안 꾸는 게 좋아, 솔직히 이 여자정도 되니까, 다른 남자랑 결혼하겠다는 여자랑 그냥 살지, 누가 살겠냐'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고나 할까.

뭐, 웃고 그만인 책으로 지나치게 진지한 게 나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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