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과 크레테 -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쓴 차모니아의 동화
발터 뫼르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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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아도 그림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일종의 패러디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아무리 평범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발터 뫼르스의 손을 거쳐 '차모니아'라는 장소로 옮겨지면 환상적이고 무시무시한 모험이야기로 변신하고 만다. 하물며 그 유명한 '헨젤과 그레텔'을 모티브로 따 왔으니 발터뫼르스의 차모니아에서 그 이야기가 어떻게 변신할 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차모니아판 '헨젤과 그레텔'의 주인공은 부모님과 함께 휴가를 떠나 알록곰들이 운영하는 '큰 숲'으로 놀러온 쌍둥이 '페른하헨(차모니아의 난쟁이족)' 오누이다. 오빠와 여동생이 아닌 쌍둥이 남매. 선천적으로 낙천적인 성격의 페른하헨인 '엔젤'과 '크레텔'은 관광객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큰 숲'의 위험지역으로 한발짝 떼어놓는다. 원작에서 빵부스러기를 남기듯 자신들이 따 모은 딸기나무를 떨어뜨리면서... 그러나 오누이가 떨어뜨린 딸기나무는 땅꼬마도깨비가 모두 가져가 버리고 숲속에서 길을 잃은 오누이는 상상하지도 못한 위험에 처하며 결코 잊을 수 없는 모험을 떠나게 된다.

그림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은 기아상태에 빠져 자식마저 버려야 했던 중세유럽의 암울한 시대상이 반영된 작품이다. 그래서 조금은 슬프고 우울한 분위기를 띠게 되었다. 발터뫼르스는 이 이야기를 누구도 가보지 못한 '차모니아'의 '큰 숲'의 금지구역으로 가져와서 기발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모험담으로 바꾸어 놓았다. 선천적으로 낙천적이고 호기심이 갛안 페른하헨들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무섭고 기괴한 숲의 세계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험의 세계로 바뀔 수 있도록 하였다. 실제로 '차모니아'라는 대륙이 있다면 꼭 한번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개성이 강한 수많은 종족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틀어버리고 우리는 전혀 알 수 없는 '차모니아'의 수많은 전설들을 차용하여 스토리의 반전을 꾀하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다음엔 어떤 인물이 등장하여 어떤 이야기를 펼쳐놓을까? 하는 기대감에 흥분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발터뫼르스 소설의 매력은 역시 삽화를 떼어놓을 수 없다. 만화가 출신의 작가답게 소설의 모든 삽화를 직접 그린다는 작가는 이번에도 글로 설명하기엔 부족한 차모니아의 종족들과 등장인물들, 신비한 숲속의 모습 등을 흑백의 삽화로 묘사해 두었다. 오로지 펜을 사용하여 그린다는 삽화는 간결한 느낌이지만 '차모니아'의 신비로움을 보여주기엔 전현 부족함이 없고 오직 검은색 하나로만 그려진 흑백의 삽화만으로도 독자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여 마치 올컬러로 그려진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일종의 그림동화를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어른들을 위한 그림동화. 책의 묘사로는 상상하기가 힘든 장면들에 대해서도 삽화는 충분한 보충설명을 해 준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삽화만을 다시 보게 될 정도로 그림 자체의 매력이 있다. 그래서 그의 책은 언제나 삽화가 기대된다.

그의 다른 작품들과 다른 시도가 하나 있다. 바로 '미텐메츠식 여담'이다. 이야기의 흐름과는 전혀 상관없이 발터뫼르스가 원작자라고 주장(?)하는 공룡작가 미텐메츠가 자신의 기분이 내키는 때에 자신의 기분이 내키는 말을 지껄이는 일종의 넋두리? 혹은 스트레스 해소용 잡담? 아무튼 뜬금없이 끼어들어 대책없이 지껄인다. 그런데 그 지껄임이 너무 재미있다. 지금까지의 소설의 형식에서 오로지 주석의 형태로만 내용에 관여해야했던 작가가 방금 쓴 장면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거나 창작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한다거나 하는 식의 여담이 끼어들어서 소설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작가가 독자에게 들려주는 듯한 생동감을 넣어준다. 완성되어 활자로 박힌 책의 형태에 살아 숨쉬는 생동감을 전해주는 방식으로 충분히 차용해 볼 만한 형식이 아닌가 한다. 새로운 시도인데 그 시도의 참신함과 그 효과는 나에게는 긍정적으로 느껴진다.

발터뫼르스의 작품을 읽는 재미는 작가가 차모니아에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여러 동식물들의 이름들과 문학작품들의 제목에서 보여지는 작가의 장난기 가득한 말장난들도 빠질 수 없다. 특히 이번 소설에서는 알록곰들의 색깔을 묘사한 부분이 있는데 거의 2페이지에 가까운 정도로 파란색을 묘사한 부분이라던가 미텐메츠식 여담에 나오는 차모이나 문학작품들의 제목들에서 그런 말장난들이 두드러진다. 말장난이라고 그냥 건너뛰기엔 그 속에 담긴 작가의 유머가 아깝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 부분만 몇번씩 반복해서 읽게 된다. 참 묘한 매력을 지닌 부분이다.

'차모니아'라는 대륙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발터뫼르스의 뻔뻔하기까지 한 차모니아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차원에 실제로 그런 대륙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알록곰들이 지키는 큰 숲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엔젤과 크레테가 마녀에게 쫓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 어쩌면 발터뫼르스는 우리들 몰래 차원의 벽을 넘어 실제로 그곳에 가본 경험을 이야기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의 소설은 재미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마흔을 바라보는 내가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판타지 모험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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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는 혼자다 1
파울로 코엘료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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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화려함과 명성을 꿈꾸는 시절이 있다. 세계적인 영화배우를 꿈꾸기도 하고 세계최고의 모델을 꿈꾸기도 하고 세계 최고의 갑부를 꿈꾸기도 한다. 흔히들 말하는 ’슈퍼클래스’를 한번쯤 꿈꾸지 않는 이들은 없다. 그런 꿈을 이룬 사람들도, 아직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꿈을 쫓고 사는 사람들도, 그리고 이미 그런 꿈은 접어버린 채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매년 프랑스의 작은 마을인 ’칸’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 화려함에 대한 찬미이다. 꿈을 이룬 ’슈퍼클래스’는 자신이 꿈을 이루었음을 과시하는 무대이고 꿈을 쫓고 있는 이들은 자신의 쫓고 있는 꿈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무대이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간 이들에게는 한 때 동경했던 꿈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되새기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한번쯤은 꿈꾸었을 화려함과 명성이 최고의 수준까지 도달한 곳. 그곳이 바로 ’칸’이었고 코엘료가 이곳을 이야기의 무대로 삼은 것은 지극히 영리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화려함과 명성의 꼭대기에 올라서야 그 높이만큼 길어지고 깊어진 그림자를 똑똑히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잃어버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밀어넣어졌던 지독한 전쟁에서 살아남았고 그의 전부가 되어버린 사랑을 만났고 구체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체계가 자리잡기 시작한 변화의 시기에 자신의 꿈을 이루어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2년전 그의 전부였던 사랑은 아무말없이 그의 곁을 떠나버렸고 남겨진 그는 그녀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세계의 모든 허상들이 모이는 화려한 ’칸’에서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이 여전히 유효함을 알리는 메세지를 전달하겠다는 한가지 목적을 위해 수많은 세계들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사랑을 잃어버린 한 남자가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벌이는 24시간의 사건을 따라가는 형식을 취하는 이 소설은 그래서 ’추리소설’, 혹은 ’스릴러’라는 장르로 대변될 수 있는 소설이다. 그러나 작가가 서문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이 소설은 절대로 ’추리소설’이나 ’스릴러’가 아니다. 인간의 욕망이 원하는 화려함과 명성의 깊은 덫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성찰이 있고 지독하리만큼 깊은 한 남자의 사랑이 있고 꿈을 쫓아가는 이들의 뜨거운 삶이 있다. 인간의 욕망이 쌓아올린 이른바 ’슈퍼클래스’라는 이들의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불나방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달려나가는 인간군상이 걸려드는 수많은 덫들과 결국 허무할 수 밖에 없는 그 끝에 대한 비극적 종착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희망’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주제를 이야기 하기 위해 살인이라는 조금은 자극적인 소재를 택했을 뿐 절대로 ’추리소설’이 될 수 없는 소설이다. 추리소설의 기법들을 차용해서 독자의 몰입감을 높히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긴장감의 끈을 놓치 못하게 만든 코엘료의 멋진 트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무거운 주제에 비해서 상당한 재미를 준다.

 <연금술사>에서 코엘료는 ’꿈을 이루기 위해 무언가를 희생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꿈을 이루기 위해 넌 무엇을 희생할 것인가? 어디까지 버릴 수 있는가? 그렇다면 과연 네가 쫓고 있는 꿈이란 것은 진정 그럴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 꿈이란 것이 너의 욕망이 빚어낸 거대한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은 독자 스스로의 몫이고 그 답을 통해서 얻는 삶에 대한 작은 깨달음은 코엘료가 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작은 선물이다. 그의 선물을 받을지 말지는 온전히 독자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결국 남자는 혼자 남는다. 그가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었고 결국 완전범죄를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혼자였다. 반면에 여자 모델은 화려함의 정점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그의 연인에게 돌아갔다. 세상의 시각에서 그녀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곁에는 그의 연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성공하고 혼자남은 남자의 선택과 실패했으나 둘이 남은 여자 모델의 선택. 진정한 승자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판단하는 몫은 온전히 독자에게 남겨진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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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웃 영화가 소재를 더이상 구하지 못하게 되면서
수많은 작품들이 영화화 되었고 영화화가 진행중에 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영화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비록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내가 읽은 책들도 영화화가 된 작품들이 많은데
그 중에 정말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작품들을 몇개 골라 봅니다.
영화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반대로 그만큼 소설이 뛰어나다는 말이 되기도 하지요.
영화때문에 실망하여 놓치기엔 너무 아까운 소설들 입니다.
물론 영화가 완전히 졸작이라는 뜻은 아니며 원작을 읽었을 때 개인적으로 느낀 감동을
온전히 전해주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는 의미가 되겠죠.

 

1. 황금나침반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와 함께 세계 3대 판타지 소설중에 하나로 꼽히는 이 소설은 헐리웃의 무분별한 영화화가 얼마나 잔인하게 작품을 망쳐 버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금나침반]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심오한 주제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평행우주라는 우주관은 그 후 수많은 공상과학/판타지 소설에서 수많은 형태로 변주되면서 이 장르의 하나의 모델을 제시한 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영화화가 발표되었을 때 내가 우려했던 것은 작품의 깊은 의미 보다는 데몬이나 마녀 등 오락적이고 시각적인 부분에 촛점을 맞추게 되면 안된다는 것이었는데 그 우려는 그대로 현실이 되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까지 원작을 바꾸어 버리는 우를 범하며 많은 제작비를 날리며 흥행에 참패하는 결과를 나았습니다.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면서 이 소설 또한 급하게 영화화를 하면서 헐리웃 시스템이 가진 전형적이 폐혜를 여실히 보여준 작품이 되었죠. 그러나 이 소설 3권은 정말로 대단한 작품이며 그 주제의식 또한 결코 단순하거나 유치하지 않습니다. 판타지 소설이면서 성장소설이고 모험소설이며 사랑을 주제로 하는 소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대한 성찰 또한 뛰어난 정말로 놓치면 아까운 판타지 소설입니다.

 

2. 검은집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의 공포감은 5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요즘은 일종의 상식이 되어버린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그 시기에 어떤 동기나 의도가 없이 이루어지는 무차별 살인에 대한 이 소설은 내 주위의 누구라도 저런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에 한참동안 주변사람들을 의심하게까지 만들었던 충격적인 소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이 영화화 되었을 때 사람들은 영화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렸고 배우들도 많은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실망스러울까요? 그건 아마도 제가 느낀 그 공포를 그대로 재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아닌가 합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시각적 청각적 공포, 공포영화의 공식처럼 되어있는 예상치 못한 놀래킴으로 불러 일으키는 그런 공포가 아니라 소설속 인물이 전혀 공포스럽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 느낀 실제적인 공포감이 실감나게 다가오지 못한 까닭이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성공한 이유는 결국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의 힘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 소설 절대로 밤에 혼자 읽지 마십시요. 등골이 오싹 !!!

 

3. 눈 먼 자들의 도시

단 한권의 소설로 독자를 사로잡는 작가가 있습니다. 제게 주제사라마구라는 거장은 단 하나의 소설로 강력한 마력을 발휘한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나서 느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실망감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깨달음은 오랫동안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전에 전해진 영화화 소식은 그만큼 강한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아무에게도 판권을 허락하지 않았던 거장이 허락한 감독이라 믿음이 더 강했던 경향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역시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느날 모두가 눈이 멀어 버린다는 설정.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무런 조건도 없이. 거장이 만들어 낸 단 하나의 설정. 단지 눈이 멀었다는 단 한가지 이유로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인간이 신처럼 떠받들고 있는 도덕과 인간 지성의 위대한 승리라는 모든 사회적 제도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도덕이라는 허울에 쌓여있는 인간의 본성이란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희망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모든 주제의식들은 영화의 폭력적, 선정적 장면들과 함께 사라져 버렸습니다. 쉼표와 마침표만으로 이루어진 난독성 소설을 만화보다 쉽게 읽을 수 있게 만들었던 거장의 손길은 영화에서 여지없이 사라져 버렸죠. 영화 자체는 그리 졸작이 아닐지라도 원작 소설에 비한다면 그 격의 차이는 아쉬울 뿐 입니다.

 

4. 다빈치코드/천사와 악마

너무도 유명한 세계적 베스트셀러도 헐리웃의 장난(?)으로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재앙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교리의 근원을 파헤쳐 나가고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종교라는 것이 어떻게 인간을 파괴하는 무기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댄브라운의 소설은 단순히 반기독교적인 주제 때문에 교황청의 노여움을 샀다는 이유만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아닙니다. 자칫 지루하고 따분한 얘기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숨쉴 수 없을 정도의 스펙타클한 이야기로 만들어 놓은 그의 능력과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과학적, 역사적 사실들의 절묘한 조합. 거기에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이 함께 만들어낸 일종의 신드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영화화는 기정사실이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지만 그 결과에 대한 우려는 충분히 예상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책이 전하는 의미는 몽땅 버린 채 액션과 화제성만을 가져가 돈으로 얼버무려 만들어 낸 헐리웃의 만행은 충분히 예상된 것이었고 결과 또한 그랬습니다. 그런데 무슨 배짱으로 속편까지 만들었는지... 개인적으로 [다빈치코드]보다 [천사와 악마]를 훨씬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영화는 더욱 더 형편이 없더군요. ㅠ.ㅠ

 

5. Q&A (슬램독밀리어네어)

처음 [Q&A]라는 소설을 접했을 때 생소한 인도소설이었기에 많이 망설었던 기억이 납니다. 게다가 작가는 전문작가가 아닌 외교관이라고 하니 더욱 꺼림직했죠. 그러나 소설을 다 읽고나서는 '원더풀'을 연발할 정도로 대박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 소설입니다. 현대 인도사회의 가장 비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이 소설은 그런 비참함속에서도 결국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난 체포되었다. 퀴즈쇼에서 우승한 대가로'라는 첫문장의 기억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있던 이 소설은 올해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를 휩쓴 영화로 재탄생하게 되었죠. 대니보일 감독의 영화는 정말 상을 휩쓸만한 최고의 영화로 손색이 없습니다. 저도 너무 재미있게 보았으니까요. 그러나 원작과는 조금 다른 내용에 실망감이 생긴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소설은 한 소년의 성장기를 시간의 순서가 아닌 문제의 순서에 따라 배열하면서 기가막히게 연결시켜 두었는데 영화화가 되는 과정에서 소녀와의 사랑을 더하다 보니 조금의 각색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각색이 물론 좋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원작의 재미를 반감시킨 것은 사실입니다. 원작의 마지막에 이루어지는 반전마저도 영화에서는 빠져버렸으니까요. 그 반전 때문에 내가 이 소설을 좋아했기에 반전이 빠져버린 영화에 아쉬움이 남는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나저나 이 작가 정말 대단합니다. 이 소설에 반해서 작가의 최신작인 [6인의 용의자]까지 읽게 되었는데 그 소설 역시 [Q&A]에 결코 뒤지지 않는 재미를 줍니다. 조만간 영화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들은 얼마간의 부담감은 가지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란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위에서 뽑은 다섯권의 소설들도 영화가 완전히 졸작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헐리웃의 시스템이 조금은 망처버린 원작이 영화로 인해 잊혀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소설들이니까요.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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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악마 - 일러스트판
댄 브라운 지음, 김효설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6년 11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2009년 08월 05일에 저장
절판
다 빈치 코드 - Illustrated Edition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이창식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5년 5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2009년 08월 05일에 저장
절판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14,500원 → 13,050원(10%할인) / 마일리지 720원(5% 적립)
2009년 08월 05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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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비 독살사건 - 여왕을 꿈꾸었던 비범한 여성들의 비극적인 이야기
윤정란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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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였다....

새로나온 '나몰라 패밀리'의 노래 제목이 아니다.
이 책이 나를 낚아버렸다.
'조선왕비 독살사건'은 아무리 생각해도 '조선왕 독살사건'과 
내용이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제목이다.
'조선왕 독살사건'을 통해 독서의 즐거움을 알았고
'이덕일'이라는 인생의 스승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제목은 내가 도저히 읽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마력을 지닌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절대로 '독살'이 아니다.
'사건'이라는 말 조차도 조금은 민망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말 그대로 제목이 나를 '낚아' 버렸다.

역사에서 사라진 이름 왕비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였다.
조선의 왕들은 끊임없이 왕권의 강화를 꾀하였고
조선의 사대부들은 왕 조차도 하나의 '대빵' 사대부로 인정할 뿐
절대 왕권은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조선의 역사는 왕권과 신권의 끊임없는 대립의 역사였다.
그러나 그 모든 역사는 유교적 사회질서에 기반을 둔 남성의 역사일 뿐.
여성의 역사는 기록하나 남아있지 않았고 왕의 부인인 왕비 조차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다만 왕권과 신권의 끝없는 대립 속에서 남성들의 역사를 위해
약간의 조연의 역할만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게 잊혀진 여자들의 역사, 그 중 왕비들의 역사를 재구성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뛰어난 시도... 그러나 아쉬운 결과

역사에서 잊혀진 왕비들의 이야기를 끌어내었다는 시도는 뛰어나다.
그 결과를 떠나서 시도 그 자체는 충분히 평가 받아야 할 만한 가치가 있다.
왕을 중심으로 한 왕조의 역사를 써내려간 역사서는 많았으나
그 중심을 왕비에 두고 써내려간 왕조의 역사서는 아직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의 시각은 신선하고 이야기의 전개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그 가장 큰 원인은 남성위주로 이루어진 역사의 기록이 부족한 까닭일 것이다.
그나마 가장 많은 기록을 남겼다는 왕비들 마저도 그 사료의 부족은 어쩔 수 없다.
그 결과 왕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고 하나 결국 남성의 역사의 반복일 뿐이었다.
결국 '조선왕 독살사건'의 내용에서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책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교양역사서를 처음으로 접하는 독자라면 정말로 많은 도움을 주고 새로운 시각을 주겠지만
몇권이라도 조선의 역사를 다룬 역사서를 읽은 사람이라면 조금은 식상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쩌면 나의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일 수 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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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록밴드를 결성하다 - 사는 재미를 잃어버린 아저씨들의 문화 대반란
이현.홍은미 지음 / 글담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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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움...
 

8인의 인터뷰를 보는 동안 부럽다는 감정이 가장 많이 들었다.
중년의 나이에 이루어놓은 그들의 여유가 부러웠고
조금은 이기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들의 용기가 부러웠고
나이에 굴하지 않고 뭔가에 도전하는 그들의 열정이 부러웠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도 마음의 여유가 없는 이들에 비해 그들은 얼마나 여유로운가.
남들이 뭐라하든 조금은 자신을 위해 투자할 줄 아는 그들은 얼마나 용기가 있는가.
타인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미칠 수 있는 그들의 열정의 크기는 얼마나 큰 것인가.
 

목표점...
 

내년이면 40대에 접어드는 나이인 내가 보았을 때 그들은 약 10년 정도 위의 연배들이다.
그들이 즐기고 있는 그런 여유는 가장 밑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 경제적 여유이다.
거기에 가족의 화목은 또 하나의 조건이 될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책에 나오는 8인의 인터뷰이들은 어느 정도 성공을 한 사람들이다.
위에서 말한 그들에 대한 부러움은 그대로 그들의 성공을 나의 목표점으로 삼게 만든다.
앞으로 10년 뒤, 나의 삶이 그들이 즐기는 여유를 나도 즐길 수 있는 준비가 되게 만들겠다는 목표.
지금은 그들의 여유가 조금은 사치라고 느껴질 수 밖에 없는 나의 능력을 좀 더 키워야겠다는 목표.
성공의 기준은 여러가지가 될 수 있겠지만 그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여유라면 성공이라 말해도 되지 않을까?
 

반성...
 

어릴 때 부터 굳이 외모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중학교 들어서면서 내 얼굴을 점령한 여드름은 10여년 이상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고
군대를 갔다오면서 급격히 불어난 나의 뱃살들은 나의 스타일을 '무(無)'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 이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이 이상한 나이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포기하고 살았다.
그러나 Part 2.에  나오는 스타일들을 보면서 스스로 반성을 하게 만들었다.
나의 스타일은 '무(無)'가 아니라 '자살'이었다는 것. 이제는 나도 좀 가꾸어야 한다.
 

아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아쉬움을 남긴다.
8인의 인터뷰이들의 수준이 대한민국 상위 10%이내라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그들이 말하는 여유가, 그들이 말하는 용기가, 그들이 말하는 열정이
일반적인 대한민국의 아저씨들이 다가가기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의 대상을 너무 높게 잡은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이 책은 공감보다는 부러움을 불러 일으키는 태생적 한계를 지내고 있다.
과연 이 책을 읽고 공감을 나타낼 대한민국의 아저씨가 과연 몇 %나 될까?
책으로 내기 보다는 상류층의 잡지에 더 어울리는 듯한 느낌이다.
왠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어딘가를 몰래 엿보았다는 느낌.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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